느림_김준호 개인전
일시: 2009. 11. 20~ 12. 3
장소 : 갤러리 브레송
기억의 편린
김준호의 사진은 자신의 기억과 무의식을 토대로 보이는 것과 기억되는 것들 사이의 존재 혹은 비존재의 복합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그 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비어있는 존재에 대한 암시이자 기다림이며 강요된 침묵으로 드러난다. 또한 이미지들은 결코 끝나지 않은 과정의 연속처럼 제시되며 우리의 시각을 붙잡아두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사진은 지나간 과거이자 현재의 머무름이며 동시에 미래의 드러냄을 반복하는 시간과 공간의 불연속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여기서 시간은 이미지 생성과정의 조건이 되며 공간은 그 세계가 창조되는 터전이 된다. 즉 그의 작업은 살아있는 현재와 순수했던 과거, 그리고 이 두 조건들의 결핍에 대한 반복을 응시하며, 자아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의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이미지는 작가의 외적 경험의 형식으로 재현된 공간적 무대이며, 동시에 지체되거나 연기된 시간적 거리감으로서의 풍경인 셈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기억은 시간이라는 물리적인 존재 안에 종속되어 있는 사적인 것들로 과거라는 시간 안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현재라는 개념은 과거를 그 근거로 시간 안에 조직되며, 따라서 과거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표현되기 때문에 추상적인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이 깃든 골목길에서, 수많은 사연과 수많은 이야기가 섞여있는 그곳에서, 마치 빗장 풀린 시간처럼 낯선 실체와 마주한다. 세월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있는, 이제는 그 흔적마저 사라져버릴 그곳에서 작가는 어린 소년의 시선이 아닌 이방인의 그것과 마주한다. 삶이 상투적이라기보다는 낯선 실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처럼, 우리의 기억은 이렇게 텅 빈 시간의 공허를 발견할 뿐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현재의 매개체로서의 추억이나 기억은 사라진 현재를 재현하고 재생함으로써, 그 안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재현하는 것이리라. 비록 그가 선택한 대상이 빈약하고 피상적인 이미지라 할지라도, 자신이 느끼는 방식으로 경험한 세계의 실재를 포착하여 사라진 현재를 재현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어떤 형식을 통해 시간을 도입하는가하는 것이다. 즉 그의 사진 풍경은 보이는 것과 기억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의 문제이며, 이것은 사라진 신화적 현재로 재현되고자 한다.
김준호의 작업에서 담벼락은 상투적인 의미에서의 담벽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소로서의 실제적 공간을 상징하며, 그림자는 시간적 요소이자 그 기억의 실체인 셈이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어떤 대상에 끌리거나 혹은 냉담해지는 것은 의식적인 반추나 결정 때문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이끌림 때문인 것처럼, 작가는 담벽에 투영된 일상적인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미적 관념을 실현하고 있다. 따라서 작가의 회상을 통해서만 연상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시간 안에서 반복되고 중첩되는 이미지이며, 역설적으로 존재의 부재를 드러내는 형태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사진 이미지들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처럼, 불안한 무언가가 중첩된 듯한 심리적 구조를 드러낸다. 그 이유는 아마도 빛과 그림자로 인해 허상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의 공간적 구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비어있는 연속되는 파노라마 공간에 두 개의 이미지를 겹쳐놓는 방식으로 흑백의 추억을 하나씩 둘씩 채워 넣기 시작한다. 이렇게 의도된 사진적 몽타주는 그 자체로 사색적이고 충분히 개념적이다. 그것은 몽타주 사진이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에 대해, 본래의 대상에 대해, 그리고 새로운 몽타주 이미지에 대해 특정한 관계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그것이 사물의 리얼리티를 포착하거나 혹은 왜곡하거나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현실의 측면들을 우리의 시야에 회복시키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마치 공간적 경험과 어떤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체험된 거리가 나와 사물들을 상호 연결시켜 주듯이, 작가에게 사진적 몽타주는 기억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한 노정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오히려 사물을 진지하게 느끼고 관찰하며,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는데 자연스럽다고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작가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사진 찍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늘 같은 장소를 맴돌며 늘 비슷한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의 느낌을 사진으로 찍는다. 이렇게 사진기에 기록된 이미지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세계와 꼭 닮아있기 때문에 다시 끄집어내고 싶은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강 혜 정(사진평론)
첫댓글 축하합니다. 21일 정모도 멋진 자리가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