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돈수 돈오점수, 정혜쌍수 / 교관겸수
허공스님이야기
심안군(心眼郡) 정견리(正見里) 혜인사(慧仁寺)에 신도 한 분이 큰 스님을 친견했다.
이 처사(불교에서 남자 신도를 지칭)는 깨달음으로 향한 노력이 대단했는데 그건 혜인사의
모든 스님들도 인정을 할 정도이다.
이 처사의 얼굴은 언제나 맑았으며 성품 역시 무엇하나 튀는 법이 없고 자신이 불교의 가르침을
조금 더 빨리 인연이 되었으면 정진하는 수행승이 되었을 거라고 큰스님께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처사는 이미 아이 셋을 둔 엄연한 가장이었으니 현실을 두고 머리를 깍을 수는 없는지라
현실에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다음 생에는 꼭 수행승으로 태어났음 하는 바램을 언제나 두고
있었다.
큰스님께 삼배를 드린 후에 이 처사는 평소에 매우 궁금하여 아직도 답을 얻지 못한 답을 큰스님께
질문을 하였다.
"큰스님. 돈오돈수입니까? 돈오점수입니까?"
[여기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에 대해서 간략하게 알고 넘어 가자.
돈오돈수: 성철- 지눌의 깨달음의 논리에 대한 반박: 깨달음은 그 자체로 궁극적인 경지이기 때문에
다시 더 닦아야할 이유가 없음. 만약 다시 더 닦아야 한다면 아직 덜 깨달은 것임.
돈오점수: 지눌- 돈오: 단번에 깨달음/ 점수: 점차로 닦아나감- 단번에 깨쳤다고 할지라도 아직
습기(과거의 잘못된 습관)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 따라서
보살행을 통한 점진적인 습기의 제거가 필요하다는 주장
돈오점수를 주장한 지눌의 입장은 이후 한국불교의 기본입장이었으나, 성철스님이
-선문정로-에서 돈오돈수를 주장하면서 지눌을 비판하는데, 이로 말미암아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찾기위해 노력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
큰스님은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을 그렇게 계셨다.
처사는 항상 궁금했던 답을 얻을 량으로 큰스님의 말이 떨어질 때 까지 눈을 땅바닥으로 향한 채
스님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큰스님이 말문을 여셨다.
"허험..그 문제가 세속에서 매우 흥미있고 어느 것이 답일까? 하면서 궁금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어느 사람들은 이미 답을 스스로 내려버린 사람들도 있을 겝니다. 허나 세속에서 있는 수행자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결코 세속 사람들이 답을 알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시곤 스님께선 무언가 정리를 위한 생각을 하시는 듯 했다. 이윽고,
"처사님의 가정이 아무리 행복하고 가족끼리 사랑으로 뭉쳐져 있어도 그 사랑과 행복은 어떠합니까?
영원한가요? 그렇지않습니다. 그것 역시 만들어 가며 지켜야 하고 노력이 뒤따르는 법입니다.
지켜나가지 않으면 행복과 사랑은 언제든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예를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어느 노스님께서 깨우치셔서 그 답을 세속 사람들에게 알려줬다 손쳐도 그것이 과연 불교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예를 들어 깨달음의 목적지가 서울이라고 칩시다.
열심히 수행해서 제가 서울을 갔다고 치고 사람들에게 아...서울은 이러이러하다 라고 말하고
지난 번에 서울을 다녀온 사람이 말한 것과 제가 본 서울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고 말하면서
제가 본 서울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다시 이러하더라고 말하면 서울을 가보지 않는 사람들은 단지
제 말만 믿고 아...서울은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할까요?
그러기에 서울에 도착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더보고 더느끼는 것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서울은 언제나 한결같이 변함이 없지만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큰스님은 그렇게 예를 드시고 덧붙여 말씀하신다.
"세계 복싱 챔피언이 있다고 칩시다. 그 챔피언은 영원한 챔피언 입니까?
세계 복싱협회에서 공정하게 다음 상대를 붙여서 다시금 이겨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땀을 몇 말을
흘려야 하고 새벽에 조깅을 하고 다시금 스파링이나 샌드백을 열심히 두드리고 체중을 유지하고
해서 타이틀을 지켜야 하듯이
불교가 다른 종교보다 탁월이 우수하다고 느끼는 것은 과학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서양에서 불교도들이
늘어가는 것입니다. 핵물리학의 거장이며 상대성 이론의 주자인 아인슈타인도 모든 종교중에 과학적
으로 설명이 가능한 종교는 불교라고 했듯이 와서 보고 문질러봐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깨침역시 하나의 완성된 완벽함이라면 유지시킬려면 지켜나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도 아라한(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사람)에게서 조차
오온( 다섯가지 감각 무더기: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인간의 몸을 가진 이상 자유로울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다는 것이 지키는 것이라보면
그것이 바로 지눌스님의 돈오사상이 아니겠는지요?"
큰스님께서는 밀씀을 이어가신다.
"저 역시 하루 24시간을 마치 굶주린 호랑이가 먹이를 노려 보듯이 깨어 있어도 인간에 몸에 의지해
있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방일해도 흐트러지려 하는 것이 인간의 몸과 마음이지요.
흔히 인간의 본성이 곧 부처이다고 하는데 그 본성을 캐어내어 지키기가 힘이 들 듯 지키지 않으면
부처가 되지 않음이니 마찬가지로 고양이가 쥐를 노려보듯 깨어 있어 방심하지 않을 때
그 말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가지 한 말을 곱씹으면 처사님이 바라시는 답이 있을겝니다.
그러니 처사님도 방일 하지 마시고 열심히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큰스님의 말씀은 이렇게 끝맺음 되었다.
처사는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를 드리며 삼배를 하곤 나오는데 모든 의혹이 풀리는 듯 얼굴이 밝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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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처님께서도 아라한(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사람)에게서 조차 오온( 다섯가지 감각 무더기: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셨는데 인간의 몸을 가진 이상 자유로울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깨어 있다는 것이 지키는 것이라보면 그것이 바로 지눌스님의 돈오사상이 아니겠는지요?"
"허나 세속에서 있는 수행자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이 문제는 결코 세속 사람들이 답을 알아내지는 못합니다."
그럼으로 수행은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아니라 점수돈오(漸修頓悟)고 돈수돈오점수가 아니라 점수돈오돈수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점수(漸修).....수행을 통하여 닦아서 돈오(頓悟).....한 티끌의 의심도 없이 확철대오하고 돈수(頓修).....더 이상 닦을 것 없는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