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간다
11월 13일(월) KBS 뉴스 및 시사프로 진행자들이 교체되었다. 새로 사장이 취임하면서 이루어진 방송장악의 시작이다. 사장은 취임 연설에서 방송의 정상화라는 상투적인 언사로 낙하산 인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시연했다. 이명박/박근혜 때 일어났던 공영방송의 빙하기가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름 화려했지만 실속 없었던 공영방송의 가을이 끝나가고 있다. 전 세계가 전쟁의 광란에 휩쓸리고 있는 지금, 우리의 땅도 또 다른 광기로 들어가는 길목 앞에 서있는 것이다.
가을의 종말은 나에게도 느껴진다. 몸의 이곳저곳에서 기능저하가 발생하고 인지적 집중도 약해지면서, 생각은 있는데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퇴직 후 약 10년간의 가을은 별 성과없이 끝나면서 겨울을 맞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다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이유로 과음을 하고 있다. 술이 깬 다음날, 기분이 황량하다. 가끔은 술에 취하고도 쉽지만 이제 그런 낭만은 몸이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낭만이 아니라 절망적 허무만 닥칠 뿐이다.
겨울은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혹한의 추위 속에 고통을 가져오지만,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의 끔찍한 현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의 필요성을 만들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준비의 필연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삶은 언제나 도전의 연속일 뿐이다. 완벽하게 여유롭고 평화로운 시기는 오지 않는다. 다만 자유와 평화를 향한 합치된 의지를 유지하고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혹한 시절을 견디는 힘을 주며 패배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끝없이 반복할 뿐이다.
겨울에도 최소한의 인간적 자존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옷과 집 그리고 식량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자원도 없는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서 죽어가고 사람들은 무력하게 방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원이 확보된 사람은 어쨌거나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존을 의존하지 않는 자유야말로 살아있음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행운을 가진 사람은 더 나은 선택과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겨울임에도 겨울과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무너지고 약해지는 육체와 정신이지만, 할 수 있는 한 다시 찾고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살아있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우선 시작은 다시 읽고 쓰고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낭만에 대한 헛된 탐닉에서 벗어나 술에 대한 허상을 버리고 정신의 명료함을 추구해야 한다. 과음한 다음 오랫동안 멍하니 육체적·정신적 허망에 빠져있으니 드는 생각이다. 남은 날들이 얼마이든지, 명료한 정신으로 살아야겠다. 과도함을 경계하고 평정을 유지하면서 외부의 개입에 관계없이 나의 길을 가야간다.. 가을은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겨울은 결코 나를 허무 속에 빠트리지 않을 것이다. 정신을 빠짝 들게 하는 찬바람이 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세상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 우선은 그게 중요하다. 또 다른 실천을 위해서도....
첫댓글 - 기후가 변하고 있다.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단풍의 색깔도 뒤죽박죽이다. 나이듦은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생각은 잡다란 혼돈 속에서 어지럽게 흔들린다. 이러한 삶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강렬한 삶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노려보고 있다.
- 지금 계속 듣고 있는 첼로 연주 'Last exit to Brooklyn' OST 가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가깝게 파고 든다. 쓸쓸함의 비상구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