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정모때 아우토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임의 한분이 하프를 신청하셨는데 사정이 생겨서
이번 공주백제마라톤에 참가를 못하게 되시었다고 하시면서
번호표를 하나 주셨습니다.
번호표는 하프지만 풀을 뛰기로 마음먹었죠.
그래서 주말 LSD 한다는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싸부님과의 접속장소(?)인 버스정류장으로 나갔습니다.
싸부님의 하얀 애마에 동승을 하고 휴일의 새벽을 시작했습니다.
긴장하지말기..
속으로 주문을 외워보지만 허사입니다.
마치 아련한 첫사랑을 만나는 날처럼 가슴은 마구 두근거리고
손에는 진땀까지 납니다.
"어이 허브님 지금 떨고 있어요?"
요사이 점점 더 장난끼스러워지신 천리마님께서 한마디 던지십니다.
"떨긴요~ 몬 말씀을 고로코롬 하신대요?지가 어디 떨사람인가요?"
아무렇지도 않듯 이렇게 대답했지만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움찔했답니다.
애써 태연한척..
마음을 진장시키려 농익는 가을에게 애꿎은 눈길만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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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에선 오히려 담담해지고 마음이 좀 진정이 됐답니다.
오프닝행사가 귀에 들어오질 않습니다.
그저 내귀는 총성을 향해 열려만 있을뿐..
그렇게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나도 그 무리들에 흡수됩니다.
천리마님께서 5킬로당 25분페이스로 뛰라고 하셨는데
글쎄요...
그렇게빨리 뛰다가 중간에 퍼져서 완주라도 몬하면 이 무슨창피랍니까?
그냥 몸을 풀면서 자연스럽게 뛰다보니 어느새 5킬로 푯말이 보이더군요~
시계를 보니 29분...
오늘은 예행연습이니 저기 저 앞에 보이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만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뒤를 따랐습죠.
약 3킬로정도를 가니 앞에 반가운 문자가 새겨진 옷을 입은 분이 달리더군요~
'남양주시청'
뉘신가 옆으로 살짝 다가가 뵈니 회장님이셨어요~
열심히뛰라며 힘"!!"을 외쳐주시더니 어여 앞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저또한 잘 달리시라는 말을 드리며 회장님을 뒤로한 채 앞으로 앞으로...
주로의 경치는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활주로처럼 곧게 뻗은주로는 자칫 지루하기도 했지만
옆으로 흐르는 금강의 물소리가 우릴 응원했고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마음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던 코스모스는
주자한명한명에게 수줍은듯 엷은 미소를 흘리고 있더군요~
중간중간 마을 어르신들의 신명나는 풍물이 지친 주자들에게 힘을 주기에 충분했어요.
그렇게 10여킬로를 가다보니
광명마라톤 단체복을 입은 동호회원들이 무리를 지어 달리더군요~
그중에 여자가 한명 있었는데 그녀를 중심으로
앞서고 뒤서고 하면서 경기전략도 얘기해주며 초반에 무리하지말라 이르더군요~
제생각엔 아마도 그녀를 위해,
아니 솔직히 그녀의 입상을 위해 페이스메이커를 해 주는것 같았어요.
'그래, 저 女만 따라가자"
제 목표가 이번엔 4시간 페.메에서 그女로 바뀌었죠.
10킬로 정도를 가면서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아차...
이번에도 구간 시간측정하는 시계 누르는것을 또 잊었지 뭡니까?
에효~ 허브.. 머리하고는...
출발전에 파워젤 먹는법을 천리마님흔테 배웠는데 잘 할수있으려나
그것도 걱정이되기 시작했어요~
웹서핑중에 들렸던 어느사이트에서 읽은것이 생각나
15킬로 지점에서 파워젤 반을 먹었어요.
'처음먹어보는건데 역겨우면 어쩌지?'
하지만 그런걸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듯 두발은 이미 앞으로..
앞으로만 외치고 있었어요~
어느새 하프 반환점...
그곳을 무시하고 풀코스 주로로 달리는 저를보고 옆에 달리시던 어르신이 그러십니다.
"하프반환점 지났는데 안 돌아가세요?"
그냥 배시시 웃는 저를 보곤 이미 상황을 알아차리셨는지
그분도 저와 같은색의 미소입니다.
그분과 동반주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어요~
본인은 대전에 살며 마라톤에 입문한지는 3년정도 됐다.
이번 춘마에 본인도 출전한다.
하프기록이 얼마냐?
지금 골인목표가 몇시간이냐?? 등등..
저는 이번이 처음 풀이며 춘마의 예행연습으로 한다고 하니까
35킬로까지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 따라가며 절대로 절대로
오버페이스 하지말고 35킬로 이상에서 나가라고 주문하신다.
"화이팅~~!!"을 외치시며 먼저 나가신다.
페이스메이커주위엔 그 시간대에 완주하려는 주자들이 몰려서 달린다.
마치 연못에서 먹이줄때 물고기들이 주위로 모이듯이 말이 다.
드뎌 30킬로 통과다.
5킬로마다 파워젤 반을 먹는다는 생각으로 숫자 5만 생각하며 달린다.
달린거리에 비례할수록 주로에서 벗어난 주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칭을 하는주자,
쥐가났는지 종아리를 두손으로 안타깝게 주무르는 주자,
천천히 걷는주자,
창피함도 잊고 주로 가까이에서 개인민원(?)을 해결하는 주자..
그들을 뒤로하고 여전히 난 앞으로.. 앞으로...
또 눈에띄는 글자..
'구리마라톤클럽'
그분옆으로 다가가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옆동네분 이시네요.
저는 남양주 천마산마라톤클럽의 허브입니다.
힘 내시고, 완주하세요."
자신의 닉이 '베어스'라고 소개하시며
어여 가라고 하신다.
30~35Km 사이를 마의 구간이라 하던가?
선배님들이 그러셨다지?
마라톤은 30Km부터 시작이라고 ...
'시작'
'시작이라꼬??'
그래 어디한번 해볼테면 해보라지...
'나는 달려야 한다'
'주로에서 걷지않기..'
'무슨일이 있어도 달려야만 한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워보지만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힘들게 힘들게 마의구간을 빠져나오니 아뿔싸.. 또 다시 언덕...
평상시 같으면 그다지 경사지지않은 느낌의 언덕이건만 지금은 달랐다
사력을 다해 생각없이 그저 달릴뿐...
머릿속으론 어느새 결승선에 가있는 나를 상상하며 말이다.
가쁜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내가 안스러웠는지
동반주하던 분이 물적신 스펀지를 건넨다.
고글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감사하다는 예쁜웃음을 보내며 그분을 따른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40Km를 알리는 푯말..
4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그래, 힘을 내자.. 힘을내..'
이제 거의 다왔다고 생각하니 없던힘이 생기는 듯 했다.
'41'이라는 숫자를 지나고 '42'라는 숫자도 지나쳐
이제는 몇백미터만 남았다.
41킬로부터 남은 사력을 다해본다.
적어도 4시간안에는 들어가야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시계를보니 4시간안에는 충분히 들어갈듯하다.
그래도 사력을 다해본다.
결승선의 인파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며 내 왼발은 이미 빨간 매트를 밟고 있었다.
그순간 또 다른 손은 시계를 스톱시키고 있었고...
3:54:07 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다가왔다.
눈가에 맺힌 이슬을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다.
고글을 쓴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덧글]
비록 첫 풀완주를 남의번호를 가지고 달렸지만
의미란 부여하기 나름일뿐...
이렇게 내 인생의 진한 느낌표를 하나 더 추가할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