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을 보내고 나서 이번에는 거인들을 앞장세웠다. 이 눈보라가 사람의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서 한 조치였는데 앞장서서 걸어가던 거인들은 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심지어 뒤로 돌아갔다가 다시 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자기가 도대체 어디까지 온 것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드는 눈보라와 더불어 꼭대기에 있다는 신전을 방비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장치였다.
"흐흐흥, 흐응∼."
거인들도 힘들어하는 가파른 산길을 평지 걸어가듯 올라가며 제느는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즐겁다기보다는 무척 설레하는 것 같았다. 발걸음이 마치 둥실둥실 떠가는 듯 하다. 그래서 하도 빨라서 거인들도 앞질러 가길래 일행을 챙기는건 온전히 내 몫이 됐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은 다 잊어버린 듯 하다.
"막내야! 잘 따라오고 있냐!"
"네! 형님! 괜찮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괜찮은가보네. 역시 이런 추운 곳에서 산 거인들이라 그런지 푹푹 빠지는 눈도 별 장애가 되지 않고 추위도 그런가보다. 다만 아까부터 배가 고픈 것인지 보거를 비롯해서 다들 옷 속에서 뭔가 고기 같은 것을 꺼내서 계속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는 육포처럼 딱딱하게 얼은 고기인데 이 아무 것도 없는 하얀 벌판에서 저런건 어떻게 구한 거야?
"아리나, 뭐 보여요?"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하지만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점차 강해지는 걸로 봐서 산 위에 뭔가 강대한 것이 있습니다. 기운이 여기까지 흩뿌려질 정도로…."
정말로 긴장하고 있는지 아리나는 활을 쥔 손에 얼음이 얼어붙어 있는데도 그걸 못 느끼고 있었다. 아니, 나는 왜 안 느껴지는데? 제느 말대로 내가 무식해서 그런거야? 정말 그런거라면 진짜 할 말이 없다.
"자기야! 자기야!"
벌써 눈에 희미하리만치 앞서 나가던 제느가 돌연 뒤로 폴짝폴짝 뛰어오더니 말 그대로 육탄돌격, 태클을 걸었다.
"어억!"
말만한 처녀가 가슴을 들이받는 충격에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어찌 버텨내니 제느는 자기가 방금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듯 안 들어주면 큰일난다는 표정을 짓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쿨럭, 무, 뭐?"
"나 업어줘어어."
이보세요, 그런 말 가지고 굳이 이렇게 압사할 정도로 들이받을 건 없잖아? 안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말야, 그리고 가슴 아프다면서 이렇게 들이받아도 멀쩡한 거야? 나 원 참.
"자, 업혀."
"후앙."
앉아서 등을 내주자 이상한 콧소리를 내며 제느가 업혔다. 그 이상한 버릇만큼 등에 느껴지는 중량감도 상당하다. 정말 애 때문에 이렇게 변한 거야? 무슨 가슴에 딱딱한 공을 달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등에 닿는 것만으로도 좀 아픈지 팔을 내 어깨에 대고 버티고 있었다.
"제느야. 저기…아파? 안고 갈까?"
"아냐 괜찮아. 자기 힘들잖아. 그냥 가."
"지금 나 힘든 게 문제니? 어서 내려."
결국에 제느를 안아들고 가니 옆에서 같이 걷는 아리나의 눈길이 왠지 차가웠다. 왜 그러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한번씩 눈길을 줄 때마다 등골이 시큰시큰 거린다. 설마 이게 솔로부대의 포스더냐.
품에 안긴 제느는 머리카락을 정리해 앞으로 넘기고 내 목을 꼭 끌어안고선 나 가는 데로 몸을 맡긴 채 가느다란 숨만 내 목덜미에 내고 있었는데 얌전히 안긴 그 모습과는 달리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뭐라뭐라 칭얼대며 뭔가 속삭여댔다. 뭔 소리를 해댔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건 너무나 한꺼번에 쏟아진 정보량에 단기 기억 장애가 생겨서 그런 듯 하다.
"건물이 보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능선 위를 칭얼대는 그녀를 안아 든 채 걸어가다가 문득 바람소리에 섞여 들리는 아리나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드니 아무것도 안보였다. 그렇지만 제느는 뭔가 보이는 모양이다.
"우와, 눈 덮인 벌판 위에 서 있는 통나무집이라니, 낭만적이야."
"통나무집? 지금 그게 낭만적으로 보여?"
"그럼! 옛날에 저런 집에서 잠깐 살아봤는데 얼마나 운치 있는데. 당신은 모를 거야."
이런 눈보라 속에서 태평하게 그런 소릴 한다. 더구나 괴물이 나오는 산등성이인데 말야. 솔직히 그렇게 쾅쾅거리는데도 눈사태가 안 나는 것이 참 신기한 동네다.
보거가 그 집을 보더니 반색을 하며 몸에 붙은 얼음 조각들을 털어냈다.
"아이구. 신령님. 몸 좀 녹이구…."
"안 돼. 가까이 가지마. 나 내려줘."
'그 때는 자기만 있으면 딱 좋다고 생각했는데 말야.'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경고하면서 속으로는 사람 애간장 녹을 목소리로 속삭이고 참 대단하셔. 내려주니 제느는 포니테일을 풀어 다시 묶더니 총을 꺼냈다. 아까 어딘가 잊어먹은 줄 알았던 소총인데 어디서 잘도 찾았군. 그걸 가지고 찰칵거리며 뭔가를 이리저리 끼워 맞추던 제느가 눈보라 저쪽으로 겨냥을 하더니 냅다 쏴대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이구 하늘이 무너진다!"
소리가 나자마자 거인들은 재빨리 푹 엎드리더니 재미없는 유머를 해댔고 아리나는 옆에서 불꽃이 번쩍거리자 깜짝 놀라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에 바빴다. 아니 왜 갑자기 또 아무 말도 없이 총 쏴대는데? 진짜 저러다 수틀리면 무조건 냅다 갈기는 버릇 드는 거 아냐?
"왜 갑자기 난리야 제느야!"
총을 쏘다가 재장전하는 틈을 타서 말하니 제느가 마치 담배 씹는 듯 입술을 질겅질겅거리며 총을 쏜 방향을 가리켰다.
"아르벤. 이런 곳에 있는 집이 제대로 된 집 일리가 없잖아. 자기는 말야 이런 눈 밖에 없는 들판에 서있는 조잡한 통나무더미가 사냥꾼의 오두막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야?"
"야,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죄 없는 사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되는 데로 쏴버려서 해결하면 이 세상에 복잡한 일 하나도 없겠다."
"자기는 말야…."
라며 핀잔주는 식으로 눈을 흘기며 탄창 개념인지 붉게 빛나는 원통을 바꿔 끼운 제느가 얼굴을 들이대고 핀잔을 준다.
"세상에는 이렇게 총 몇 번 쏴주면 편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끝나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아야돼. 공포영화 레파토리가 뭔데? 애초에 좀 이상하고 수 틀렸다 싶으면 다 날려버리고 그냥 나와버리면 될걸 괜히 들어가도 총이나 칼 한 자루 들고 가서 다 죽고 혼자 살아남아 오잖아. 쯧쯧쯧. 세상은 그렇게 살면 안 돼."
"아니 그건 그러면 이야기가 성립이…."
"그러니까 영화지! 위험을 겪으려면 수 틀릴 때 싹 날릴 수 있는 힘을 가지거나 해야하는 거라구. 삶은 영화가 아냐. 그렇게 수 틀려도 안 도망쳤으니까 자기가 죽었지 말야. 사람 감동은 실컷 먹여놓고 정작 죽으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하라구…."
옛날 그게 생각나는지 제느의 눈에 눈물방울이 그렁그렁 매달린다. 거 참, 순식간에 자기 빠져나갈 구멍은 잘 만든단 말이야. 저런 얼굴보고 화낼 수도 없는데….
"에잇. 하여간 약삭빠르다니까. 괜히 이상한 사람 잡은 거면 알아서 해."
손으로 눈물을 훔쳐주고 등을 토닥이니 제느가 좋다고 품에 매달려서는 부비적 거린다. 그걸 데리고 일행을 확인하며 5분여를 걸으니 제느가 쏜 총에 맞아 완전히 풍비박살난 집이 눈에 보였다.
"심하다…."
"그렇군요…."
다들 한번씩 감탄사를 내고 제느를 바라보니 그녀는 나는 아무 잘못 없다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상당히 잘 지어놓았을 법한 통나무집은 벽과 기둥이 무너지고 지붕이 내려앉아 흉물스런 폐가의 모습 그대로였다. 집을 이루던 목재들이 구멍이 뻥뻥 뚫리거나 두 조각 난 채 허물어져 있고 집 안에 있을 법한 집기들이 눈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안에 누가 살아 있을지 심히 의심 가는 상황.
"보, 보거. 가서 지붕 좀 들춰봐."
"예, 예!"
보거와 거인들이 가서 무너진 집의 잔해를 치우는 동안 크리스와 네프리스를 챙겼다. 둘 다 정신은 있었지만 알딸딸한 상태인지 눈앞에서 뭔짓을 해도 놀라지 않을 태세다.
제느는 그 잠깐 동안 잔해들을 치우는 거인들 옆으로 가더니 뒷짐을 지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잔해를 뒤져 웬 괴 생물체를 잡아서 질질 끌고 왔다.
"이게 뭐야?"
"괴 생물체."
속으로는 몰래 내 맘 다 읽어대고 있는거 아냐? 하여튼 제느가 집어 온 그 괴 생물체는 정신을 잃고 눈밭에 쓰러져 있는데 신기하게도 인간형인데다 귀도 뾰족하지 않고 머리는 아이보리보다 조금 짙은 듯한 크림 같은 색깔이었고 얼굴은 상당히 곱상하게 생겼다. 물론 인간 기준으로. 도대체 이 넓은 우주에 인간형 생물만 있다는 건 낭비의 극치라는 걸 모르는 건가? 상상력의 부재야 뭐야?
"앗. 하나 더 있다."
마나님께서는 주먹을 탁 치며 그렇게 말하더니 잔해로 뛰어가서 또 다른 생명체 하나를 꺼내와 끌고 왔다. 마찬가지로 정신을 잃고 있는데 총알에 좀 맞은 듯 입고 있는 옷이 찢어져있고 상처 주위가 은색 액체로 더럽혀져 있었다. 길다랗게 허리까지 닿고 있는 머리카락은 옆처럼 아이보리 크림색이었고 피부는 예상과는 다르게 진한 초콜릿 빛이고 가슴에 신체 일부분이 솟아올라 있는데…와아. 제느보다 큰 것 같아.
"뭐야? 뭘 보고 있는 거야?"
"윽, 아니야, 절대 그런거 아니야."
제느가 노려보는 시선이 참으로 차가웠다. 아니 그것 좀 봤다고 뺨을 꼬집을건 없잖아. 하여간 잠시라도 한눈 못 팔게 아주 단속 철저히 해요 아주. 멋쩍고 뻘쭘해서 머리카락을 긁으려고 하니 길다랗게 자라난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그러고보니 나 고등학생의 스포츠머리가 아니라 여자처럼 허리까지 닿는 장발이었지? 저 길어서 밧줄로도 쓸만한 길이의 머리카락을 맨날 보다보니 이 긴 머리카락이 긴것 같지가 않아.
"아주 여자만 보면 저절로 눈 돌아가셔?"
"아니, 어여쁘신 우리 마나님을 두고 누구한테 눈길 준단 말이야. 그냥 호기심에 본 것 뿐이야. 응. 그런거야."
그렇게 아부하니 제느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트려진다. 물론 입으로는 한번만 봐준다느니 또 그러면 재미없다느니 경고성 멘트를 마구 날리긴 했지만 그래도 좋게 끝났잖아?
"아니,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안에 있는 걸 알고서도 쐈단 말이야?"
"내가 있는 줄 어떻게 알아. 그냥 위험해 보이니까 쏴버렸지. 어쨌든 안 다쳤으니까 걱정마. 야! 그거 다 치울 필요 없어! 이리와!"
초콜릿 빛 피부를 가진 여성을 보고 시샘이라도 났는지 무슨 불만이라도 생긴 건지 신경질적으로 소리쳐댄 제느는 둘을 제대로 눕히고 뺨을 툭툭 쳐가며 깨우기 시작했다. 저러다 목 부러질라.
"아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아리나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멱살을 쥐고 사람을 짤짤짤 흔들던 제느를 재빨리 말리기 시작한다. 엥? 뭔가 중요한 인물들 인거야?
"이 분들은 지금 깨어날 리가 없는 분들입니다. 제발 무례한 행동은 삼가해 주십시요!"
"응? 너 아는 녀석들이야?"
"대지신과 천의 여신이십니다. 몇 천년 전에 사라지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있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강제로 재움 당하신 것 같으니 안정을 취하시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 이 세계의 정한 신이란 말이지."
제느가 손을 놓으니 아리나는 완연히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하나씩 들쳐업고 집 쪽으로 가더니 거인들을 부려 뭔가 하기 시작했다. 부서진 벽을 세우고 흩어진 집기들을 모아 안으로 가져가는걸 보니 간호라도 할 생각인가보다.
"하여튼…."
아리나가 둘을 데리고 간 눈밭을 내려다보던 제느가 한숨을 푹 내쉬곤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 걱정에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졌구나. 정말 저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진짜 많이 힘든가보네. 하여튼 이럴 때 내가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싫다. 무식한건 정말로 죄구나.
"가자."
뒤로 다가가서 안고 귓가에 속삭이니 그녀가 눈을 감고 몸을 기대왔다.
구한 대지의 신과 하늘의 여신까지 해서 늘어난 일행을 이끌고 계속 산을 올랐다. 처음 여기에 들어와서 거의 한나절 가깝게 지났는데도 아직 정상은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거 정말 정상에 올라갈 수 있을지도 의심된다. 설마 무한루프로 계속 돌아가거나 하는 건 아닐까 추측도 해봤지만 현재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제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신들은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이용가치가 좀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두 분은 이 세계의 창조신이시기에 세계가 망가질까봐 그저 감추어 두었을지도 모르지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감사 드립니다."
아리나는 보는 사람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정말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뜬금 없이 무엇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지만 제느는 약간 기분이 풀린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왜 그런지 물어봐야지.
"아리나, 도대체 이 세계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 자식 처음부터 악신 아니었어요?"
"그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던 아리나는 말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표정을 풀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약간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역사란 와전되기 마련이고 사실은 신화가 되어버렸지요. 지금은 멸망해버렸지만 엘프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에 따르면 그 분들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이방신님들입니다."
"이방신?"
아니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나? 무심코 제느를 바라보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그들은 여행의 와중에 신성을 얻었을 거야."
"저에게는 생명을 맡긴 300만 모두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직접 신들을 만나 최초로 문명을 일으킨 분들도 있지요. 신들께서는 아주 오랫동안 저 하늘 위의 황폐한 암흑, 별이 빛나는 찬란한 공간, 공동묘지를 돌아다니시며 문명과 지혜를 전해줄 종족을 찾고 있었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세계를 변혁할 힘을 지니게 되었지요."
무슨 만화나 영화에서 나올 이야기 같은데. 아니, 그런데 나와야하는 이야기 아냐?
"그들이 타고 온 물건이 있을 텐데?"
"단 하나를 빼고는 모두 바다 속에 가라앉혔습니다. 지금까지 남아 있으리 라곤 생각되질 않는군요. 마지막으로 남은 하나는 오릴산 기슭에 묻혀있습니다."
"오릴산? 흐음…."
제느가 흥미가 동한 듯 입가가 말려 올라가더니 날 빤히 바라보며 뭔가 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날 보고 어쩌라는 거야? 설마 여기서 그거 찾는다고 더 있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지금 애 하나 찾는 것만으로도 한 달도 넘게 돌아다닌 건데 난 이제 그만 집에 가서 공부 열심히 해서 수능 봐 가지고 즐거운 대학생활을 하고 싶단 말이야. 연애도 하고 말야. 응?
"자기야아∼."
"으악!"
그 표정으로 날 부르는데 목소리가 그야말로 소름끼칠 정도로 귀에 착 달라붙는, 정말 등골이 싸늘할 정도로 듣기 좋은 간드러진 목소리다. 평소에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목소리라는걸 떠나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낼 수가 있는 거지?
"…."
아리나도 그 목소리에 놀랐는지 두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허리를 휘감고 있는 팔에 섬뜩함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켜야했다.
"자기야아아∼."
"아, 아니 저기 말야…!"
갑자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제느가 두 팔로 날 껴안더니 몸을 부비부비 부벼댄다. 그 서슬에 아리나가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헛기침을 하고 뒤를 보니 보거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부드러운 감촉에 얼굴이 빨개지는 걸 감수하며 이걸 어떻게 하나 난감해하는 사이 우리 마나님은 자기 혼자 결론을 낸 듯 신나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며언∼ 우리 아기 찾고 나서 거기 가는거다아. 알았지? 그 대신 나중에 집에 가면 갖고 싶은 거 열 가지만 사줄게. 가.격.에.상.관.없.이."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갖고 싶은 거 열 가지? 아니 이러면 이거 마음 약해지는데 이거 정말로.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저런 소리 들으면 피식 웃어 넘기기나 하지 가지고 있는 재산이 얼만지 뻔히 알면서 저런 소리 들으면 귀가 너무나 솔깃해서 바짝 서버릴 것 같다. 우와 이거 고민되네.
"아, 아니 뭐 그런거라면 아하하, 아니 그러니까…."
"하아아아…."
아리나가 대놓고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 쥔다. 아니 젠장, 지금 내가 이럴 게 아니잖아?
하지만 그러기엔 제느의 유혹이 너무나 강렬했다. 가격에 상관없이 아무거나 사주겠다니, 돈에 쪼들려 살며 갖고싶은 건 세상 천지에 널린 나 같은 평범한 고등학생한테는 정말 엄청난 유혹이라구.
"알았어. 대신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거다? 자. 약속."
"응! 이히힛! 약속했다?"
새끼손가락을 걸고 지장을 찍으니 마나님은 기분 좋게 웃으며 품에 매달렸다.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이 거절 했다간 한 달은 부루퉁하게 변해서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 같다.
"흠. 크흠. 아리나. 수도에는 되도록 빨리 돌아가야 하지 않아요?"
"괜찮습니다. 왕성이 무너졌지만 성벽은 아직 건재하니까요. 그리고 저들도 목 밑에 칼을 들이댔다지만 등뒤를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고…아직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아직 하루 정도 밖에 안 지난 거구나. 그러고 보니까 아리나나 네프리스가 없었다면 또 제느 찾아 삼만리를 할 뻔했다. 어떻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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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들어가면 깔라고 나오는 먹튀브 X 정말 싫어요 오노~
그동안 보니 몇개월인지 세기도 힘들 정도로 메롱 했네요 -_-;
본의 아니게 잠수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학교 졸업하고 보니 남는게 시간이 아니게 되더군요 ㅠ.ㅠ
첫댓글 얼마만인것입니까.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