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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여행기
4월 24일
TAM항공편으로 칠레 수도 산티아고 공항에 22시 40분에 도착하여 호텔에 투숙한다.
마포초 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 도시를 가로지르고 있는 산티아고는 칠레인구의 약 3분의 1인 5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남미 제4의 도시다.
비교적 온난하며 맑은 날씨가 연중 300일 이상이지만, 스모그가 심한 것이 탈이다.
1541년 스페인인들이 황금을 가져가기 위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를 돌아 안데스를 넘어왔고, 이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아라우카노족의 끈질긴 저항을 분쇄하면서 이 도시의 기초를 이루었고, 당시의 전쟁 요새로 사용되던 곳이 현재는 공원으로 조성 되었다.
스페인에서 파견된 발디비아 장군이 1541년에 산티아고를 중심으로 식민 도시를 건설했다.
16세기 남미대륙에 스페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잉카제국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토착 마푸체인들이 중앙부와 남부에 살고 있었다.
1810년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전쟁(18010~1818)을 치렀으며, 1879년~1883년 태평양전쟁에서 페루와 볼리비아와 싸워 현재 북부지역을 얻었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군사독재(1973~1990)로 3천 여 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되는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남미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몇 않되는 나라중 하나로 치안은 대체로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지리적인 조건으로는,
태평양과 안데스 산맥을 따라 길고 좁게 뻗어 있는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긴 나라로 남북의 길이가 5,600Km라 비행기로 가도 6시간이나 걸리며, 폭은 180km의 세계에서 제일 길쭉하게 형성된 나라다. 북쪽은 페루와 북동쪽은 볼리비아와 동쪽은 아르헨티나와 접하고 있으며, 북쪽의 사막지대에서부터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산림지대와 만년설로 덮인 빙하, 남극지방의 빙산까지 하루에도 4계절을 볼 수 있는 다양한 기후지대를 갖고 있다.
칠레는 자원이 많고 인구가 적어서 1차 산업만으로도 남미의 호랑이 국가라고 부를 만큼 큰소리치며 잘 살고 있다.
이곳의 기후 상황은,
한국과 계절이 반대로, 18도의 아열대로부터 59도의 한대까지 이른다. 북부는 건조한 사막 지대이고, 중부는 지중해성 기후인 평야지대이며, 남부는 강수량이 연간 2천mm이상이 오는 온대기후인 삼림지대로, 울창한 침엽수림이 광활하게 우거져 있다. 산티아고는 해안에서 100Km 떨어진 내륙에 있고, 여름은 건조하며, 겨울에 비가 많지만, 기온의 변화는 별로 심하지 않은 편이어서 여름에도 30도를 넘지 않고,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는 없다.
1페소는 한화로 약 2원~3원정도
다음 날 아침 산티아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시가지 뒤쪽으로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이 보인다.
안데스 산맥 500m의 고원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산티아고는 1541년 건설된 도시로 시내 전 지역이 공원과 기념 동상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처음 들린 곳은 모네다 궁전(Palacio de Moneda)이다. 팔라시오는 대충 짐작대로 팰리스(궁전)고, 모네다는 돈이다.
모네타 궁은 원래에는 조폐국으로 지었으나, 1846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많은 분이 알고 있듯이 이곳은 아옌데 전 칠레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테타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곳이고. 1990년 혁명당시 독재자 피노체트가 죽임을 당한 곳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출범시킨 아옌데는 여전히 많은 칠레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반대로 쿠데타를 주도했던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칠레인들도 많은 편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와 닮은 일이 많은 것 같다. 현재 모네다 궁 앞에는 거대한 아옌데 동상이 서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 청와대처럼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모네다 궁을 벗어나 5분 정도 걸어가면 청량한 느낌의 나무들이 반기는 아르메스 광장이 나온다. 이곳 광장에는 휴식을 취하러 나온 칠레인들과, 자신의 그림을 팔기 위해 나온 화가들, 그리고 각종 공연을 펼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산티아고에서 가장 유서 깊은 녹지공원으로 주위에 시청사, 대성당, 산티아고 박물관 등이 있어 시내 관광의 중심지다.
아르메스 광장 북쪽으로 곧장 걸어가면 중앙시장이 나오는데 칠레산 각종 해산물을 구경하기에도 좋고, 다양한 재료로 만든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어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맛은 좀 생소해도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좋았으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칠레엔 팁 문화가 있어 음식 값의 10% 정도를 팁으로 지불해야 한다.
산티아고의 수산시장이 단연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는 비싸 엄두도 못내는 신선한 성게 알을 접시 체로 맛보는 느낌이란 먹어보지 않고서는 알기 힘들다. 그리고 칠레 최고의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의 유서 깊은 시 푸드 레스토랑의 홍합요리 역시 잊을 수 없다.
여행의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여행자들에게 반겨주고 즐겨 줄때 가장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밖에도 근처에는 산티아고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타루치아 언덕(Cerro Santa Lucia)과 산 크리스토발 언덕(San Cristobal)이 있다. 산타루치아에서 내려다본 산티아고는 고층건물들이 즐비해 한국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설산만이 여기가 산티아고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처음 산티아고에 스페인 사람들이 들어 올 때에 지은 대성당은 마푸체 인디언들에 의한 방화로 얼마 못가 전소되어 버리고 이후 3번이나 중건되었으나 1552년, 1647년, 1730년 지진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재의 건물은 이탈리아 건축가 호아킨 토에스카의 설계로 바로크와 클래식 스타일의 1745년 건립되었으며, 쌍 탑은 19세기 후반에 만들었다.
지진의 피해에 대비하기 위하여 외벽의 두께가 1m가 넘는다고 한다.
1558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칠레 가톨릭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산프란시스코 야비엘의 목상과 무게 20kg이 넘는 17세기의 은 램프를 볼 수 있으며 성구 안치소에는 회화 "최후의 만찬"도 있다.
프란시스 피사로가 나무십자가와 성당을 지었다.
아르마스광장 북동쪽에 있는 언덕으로 산티아고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산크리스토발 언덕에 올랐다. 이곳에는 성모상이 산티아고 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또 전 시가지를 내려다보인다.
시내의 전경을 가장 환상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원래는 스페인 요새였으나 1576년 원주민들의 격심한 저항 속에서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두자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따 산 크리스발이라 이름 지었다.
산티아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190km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남미 제1의 무역항 발파라이소와 해양 휴양도시 비냐 델 마르를 구경 가기로 한다.
발파라이소로 향하는 고속도로 변에는 드넓은 포도밭과 포도주 공장이 들어서 있다. 한 곳을 정해 들어가 보니 들어가는 길 양편에 포도나무들이 길게 늘어져 총총히 잘 익은 포도가 우리를 반기는 듯하다.
보통 우리가 먹는 포도와 다르게 약간 작은 것으로 한 송이마다 정말로 꽉 찬 송이가 나무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일행 중에 이 나무에서 몇 송이씩 따 먹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고급이라면서 내 놓은 것은 한잔에 시음하는 것도 3불씩 내라고 해서 정말 기분 나쁜 장소로 온 같아, 또 다른 포도주를 시음으로 주길래 한잔 먹고 돌아 나왔다. 일행 중에 몇은 비싸다는 와인을 기념이라고 하면서 몇 병 산다.
풍부한 향과 새콤하고 풋풋한 특유의 맛이 매력적인 국내외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칠레 와인 맛의 비결은 풍토와 기후 조건. 남위 30~40도에 걸쳐 있는 토양으로, 다양한 포도 품종 생산을 가능하게 한다.
커다란 항구가 보이는 바다 곁으로 간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 입장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집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색깔 있는 유리로 현관을 꾸미고 벽면엔 재미있는 벽화를 그려 넣기도 하며, 번지수도 집마다 개성 있게 새겨 넣는다. 그저 골목을 누비며 집 구경만 해도 시간이 아주 잘 간다.
항구도시인 발파라이소는 온화한 기온과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가가 높으며 항구도시 특유의 분위가가 잘 드러나 있는 도시다.
발파라이소에서 처음 들린 곳은 Pablo Neruda의 집이 있는 Isla Negra다. 현재 박물관이 된 이곳의 입장료가 1인당 우리나라 돈 5천 원 정도로 좀 망설였지만 그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의 느낌이 매우 좋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1904년 태어난 파블로 네루다는 어려서부터 체코의 시인 J.네루다의 시를 탐도하고 16세부터 파블로 네루다를 필명으로 시를 썼다.
내부에는 네루다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물건들과 그가 생활했던 모습들이 소개되어 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장식품들도 눈길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맨 위층에 마련된 서재가 가장 눈길을 끌고 나의 눈동자를 정지시킬 정도로 부럽게 보인다. 촬영은 금지된 상태지만. 탁 트인 바다와 오밀조밀한 집들이 한눈에 펼쳐지는 전경에 이런 곳에서 그는 열심히 조국의 앞날에 대한 글들로 생을 마감한 장소라는 의미에서는 그들이 잘 보전해야만 할 곳이라 짐작된다.
그는 칠레에서 둘도 없는 유명인으로 아직도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1921년 축제의 노래를 발표하여 시단의 인정을 받은 네루다의 시의 테마는 고통과 고뇌, 고독과 절망이다.
1934년부터 1939년까지 스페인 영사로 있을 때 인민전선정부가 탄생하고 이어서 내란과 프랑코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인간적인 연대를 역설하는 정치시인으로 변모하고 반파시즘의 시를 썼다.
<나무꾼이여, 눈을 떠라>로 스탈린 국제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73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격렬하게 항의하는 시를 쓰다 병상에서 숨졌다.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파블로 네루다의 집은 발파라이소 일일관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라고 그들은 전하지만 내가 본 결과로는 단지 그가 유명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정도의 박물관과 근처 집들이 소박하게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는 쿠바의 헤밍웨이 기념관보다 못한 감을 준다.
우리나라 산동네처럼 구성된 이 동네에는 특별히 탈것이 하나있다.
바로 아랫동네와 윗동네를 연결해주는 엘리베이터로, 우리도 호기심으로 타봤는데 내려갈 땐 은근한 스릴이 느껴지며, 우리 돈 몇 백 원 정도의 이용료로 올라갈 때가 내려올 때보다 더 비싸다.
한 여행 책자에 비냐 델 마르를 고급 휴양지로, 발파라이소를 빈민들의 어촌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더 보석 같은 곳이었다. 발파라이소의 대부분은 급경사로 이루어진 구릉 지대였다. 항구를 둘러싼 45개의 크고 작은 언덕에 남미 특유의 형형색색 집들이 배치돼 있는 것을 보며 좀 색다른 풍광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발파라이소에는 칠레 항구 도시의 잔잔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일찍부터 왠지 낭만이 느껴질 것 같은 비냐 델 마르(Vina del Mar)로 향했다. 산티아고에서 1시간 정도를 달린 후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자극할 무렵, 칠레 최고의 휴양지 비냐 델 마르에 다다랐다. 아직 쌀쌀하고 흐려서인지 바닷가의 풍경은 약간 을씨년스러웠고. 흐린 하늘 속에서 차가운 파도소리만 들릴 뿐이다.
우리는 대통령 별장이 있다는 카스티요 언덕(Cerro Castillo)으로 향했다. 바다와 해안선, 파란 하늘과 예쁜 집들이 어우러지는 전경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카스티요 언덕을 둘러본 후 해안선을 따라 걸어본다.
칠레에 와서 제대로 된 와인 한 번 못 마셨다는 생각에 우리는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미구엘 토레스라는 와인 레스토랑을 우연히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칠레에서 상당히 유명한 와이너리라고 한다.
우리는 와인 몇 병과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가운데 두고 마지막 날 저녁, 내일 늦은 저녁이면 비행기를 타고 떠날 여정을 앞두고 여럿이서 각자 여행의 행운을 빌며 맛있는 간식을 했는데, 잘생긴 웨이터가 골라주는 와인은 저렴한 가격에 맛도 훌륭했지만 보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내가 동경하는 곳..,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모아이의 이스터 섬, 바로 이곳은 너무 외진 곳이라 이번에 찾아 가지는 못하고 다음을 기약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백인이고 특히 유럽식 교육제도가 잘 되어있어, 세계 100위 안에 드는 훌륭한 대학교가 2개나 있으며, 이 교육적 성과는 매년 이루어지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수도인 산티아고는 비교적 치안이 좋고 청결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과거 피노체 군사독재정권이 17년 지속되면서 역시 군사정권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따라서 우리의 상품과 제도를 선호하며 한국을 좋아하는 그들의 모습이다.
국가가 나서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연금제도등 노후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다.
한국과는 자유무역협정을 맺어서인지 거리에는 우리나라 차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띄고 우리 상품 광고도 흔하다.
40시간을 운전해야만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는 땅덩이, 칠레. 자그마치 우리나라의 열 배나 되는 이곳은 적도부터 남극까지 다양한 환경과 문화가 존재한다.
서울보다 소박하지만 아름답다고나 할까? 낭만과 정취가 있고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느껴진다.
공기도 맑고 도시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좋고, 유럽에 와 있는 뜻한 기분이다.
칠레 사람 자신들은 와인 소비량이 적고 주로 80%가 외국에 수출을 한다.
전자 제품도 삼성, LG, 현대차. 가아 등은 일본자동차와 견주고 있다.
삼성전자 선호도가 1위로 6~7년간 제일 많이 팔리고 있다니 기분 좋은 일이다.
교민은 3,000명 정도인데 가족 친지의 초청을 받아 이민을 오기 때문에 단합이 잘 되고 경제적으로 상류층을 이루며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안데스산맥의 중턱에 있는 잉카호수를 찾아 가는 길에는, 메말라 보이는 땅에, 포도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어 어느새 우리네 식탁에 익숙하게 놓여있는 포도와 그 수많은 와인에 수긍이 간다.
우리나라에도 수입되어 많이 먹고 있는 칠레의 과일은 토양이 비교적 늦게 형성되어 미생물이 많은 어린 땅에 일조량이 길어 태양열을 많이 받고 일교차가 커서 맛이 좋은데 과일의 직접 수출은 거리가 워낙 멀어 신선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들을 한다.
북쪽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남으로 남극해까지 8,000Km 에 달하는 안데스산맥은 해발 7,000m 고산의 만년설이 녹아서 빙하를 이루고 아래쪽 계곡엔 눈 녹은 녹색 빛 뿌연 물이 급류를 이루며 하얀 물거품을 머금고 흐르는데, 고맙게도 이 물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칠레의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해결해 주고 있다.
올라 갈수록 꼬불꼬불 가파른 급경사길 따라 절벽 위 티 없이 파란 하늘엔 태양이 밝게 빛나고 황량한 바위산엔 드문드문 마른 풀 더미가 바람에 춤추고 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가이드의 목소리가 여정에 지친 나그네에겐 달콤한 자장가로 들려 와서, 잠속에 빠져들다가 억지로 눈을 떠 차창을 내다보니 말을 탄 목동과 수많은 양떼들이 길을 가득 메우며 지난다.
이것을 보는 순간 평화로운 농촌의 일상을 보는 듯하다. 한참 더 올라가니 고산지대라 귀는 멍하게 울리고, 길은 더욱 험해지는데,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큰 바위들이 절벽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또 아찔한 길 아래 계곡엔 거칠게 흐르는 흙탕물이 숨바꼭질하듯 고개를 내민다.
드디어 3,100m 중턱에 오르자 깊이를 알 수없는 잉카호가 태고 적 신비를 간직한 채 기다리고 있다. 잉카인의 유골이 다수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지금은 인적의 흔적도 없이, 멀리 보이는 만년설아래 석양을 머금은 황금물결마저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만년설 하얀 눈을 모자처럼 쓴 산 아래, 푸른 잉카호를 배경삼은 멋진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 한 잔의 맛이 오래 오래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우리와 반대인 계절이 실감나게 초목이 삭으러든 호숫가에 노랗게 핀 작은 꽃, 금국의 무리가 너무도 반갑다.
와락 눈물이 솟아날 것만 같은 쓸쓸한 호수에, 손이라도 담가보려 호숫가 돌 무더기에 앉으니 아직도 식지 않은 한낮의 열기가 반갑고 차갑지 않은 물은 더욱 좋다.
겨울에는 이 주위가 두터운 눈으로 뒤덮이고 산등성이는 온통 멋진 스키장으로 변한다는데, 지금은 짐작도 않되게 삭막한 악산일 뿐이고...
푸른 산, 맑은 폭포물의 노르웨이 만년설산의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풍경 삭막하고 황량해서 더 가슴을 파고드는 자연의 신비 앞에 오늘 이렇게 나의 행로를 잠시 멈추어 주는 이곳이 지금 생각해도 그립고 새롭다.
또 다시 이곳을 떠나야 할 나그네의 길이기에... 모든 것이 진귀하기만 하다.
산티아고 분위기는 우리나라 서울과 풍경이 비슷하고. 특히 도로가 잘 정비되었다.
주세가 거의 없어 포도주가 싼 나라다. 그 나라 돈으로 2000-3000페소만 주어도 꽤 좋은 포도주를 산다. 하지만 국내반입량은 2병 이상 절대 금지하므로 현지에서 먹는 것이 편하다.
이 나라 사람들도 역시 영어 한마디도 모르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서는 정말 손짓 발짓 혼줄 나는 표현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
남쪽의 마이포 계곡에는 아름답고 풍성한 포도로 가득한 포도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세계적 명성을 갖고 있다.
음식은 남미 여러 나라가 그렇듯이 이곳도 대체로 짠 맛을 선호하고 있다.
산티아고 시내 돌아와서 점심은 해물로 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저녁은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을 먹어본다.
파릴라다 (parillada)를 먹어 본다.
파릴라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음식으로 곱창, 소의 선지를 섞어서 불에 구워 낸 것이다.
코르데로 데 마가야네스 (Cordero de Magallanes)란 것은,
양고기는 마젤란 램이라고 하며 이를 쇠꼬챙이에 꿰어 굽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외국 여행자들의 시선과 입맛을 사로잡는데 칠레의 특산품 마젤란을 이용하여 만든 대표적 음식이“코르데로 데 마가야네스”다. 다들 입맛에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석식 후 공항으로 이동 20시 10분에 LAN기편으로 산티아고 국제공항을 출발 약13시간 45분을 경과 후, 아침 6시 50분에 LA공항에 도착하여 아세아나 항공으로 또다시 바꿔 타고 서울까지 무려 13시간 10분이 지난 그동안 날짜 변경통과하면서 인천에 27일 오후 6시 10분에 도착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보는 풍경을 글과 사진으로 완벽히 표현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요즘엔 글쓰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사진은 이미 여행 전 부터 나 자신 포기해 상관없지만, 분명히 여행 초반보다 여행기가 내용도 없고 산만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마음까지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쿠바에서 부터 나의 여행은 하루하루가 꿈같은 나날들이였고 희망적이었던 것인데도 이제는 나이 탓인가 보다.
세상의 끝이라는 뜻의 <우수아이아>,
지구는 둥근데 어디가 끝이란 말인지, 세계를 돌아 다녀 보니 무엇이 처음이고 끝인지 모르겠다.
26일 간의 긴 여행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 쿠바. 페루,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8개국을 여행하면서 정말 느낌도 많았고. 배움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못 가본 여러 나라들의 다음 여행을 생각하면 가슴이 또 다시 뭉클해지며, 앞으로 체력적인 보완이 선결되어야 할 것들, 여려가지가 산재해있어 답답함도 있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머릿속에서 궁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