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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선교 여행 일기를 모아서 올립니다.
혹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분은 읽어 보세요.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날 겁니다.
물론 이글은 시상 내역에서 제외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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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 3. (월)
현재시간 오후 4시25분. 정확히 4시에 교회에서 출발했다.
이제 선교여행의 장도가 시작된 것이다.
출발부터 여러 가지 일들이 엉키면서 우리를 긴장시켰다.
기상은 7시 30분... 분당 팀들을 모두 픽업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늦잠꾸러기 성미마져도 모든 준비를 미리 마치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로 출발한 것은 정확히 9시 30분...
기분 좋게 교회로 가던 중 돌발 전화가 왔다.
예상치도 못한 전도사님의 늦잠.....
교회 열쇠가 없는 관계로 성미와 고은은 제3교육관에 있어야 했다. 춥다. 그리고 졸리다.
나중에 온 지성, 해성 자매를 데리고 쇼핑에 나섰다.
성남 지하상가와 성호시장에서 선교사님 드릴 이불(면 100%)과 페드를 사고, 감 1상자를 샀다.
전도사님도 오시는 길에 동대문 시장에 들러서 비누방울 핸드폰을 구입해 오셨다.
물건이 없어서 동대문 시장을 다 뒤지고 다니셨단다.
시간 여유가 많은 줄 알았는데 눈을 들어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점심시간... 아직 진아는 퇴근을 못한 상태라 팀원 5명과 해성이가 식사를 했다.
당분간 김치 구경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김치찌개, 그리고 돼지고기.....
그런데..... 돼지고기에..... 돼지 껍질에.... 함께.... 털도 달려 있는 것이다.
갑자기 식욕을 잃고 비위가 상한 여자 팀원들....
겨우겨우 밥 한 공기를 비우는데 만족하고 일어섰다.
얼마 후에 목사님이 오셨다.
오늘부터 휴가이신데 일부러 오셔서 기도를 해 주시고 가셨다.
마지막 짐 정리.. 해도해도 끝이 없다.
모두 몇 상자나 되나? 옷-6상자, 프로그램-3상자, 모니터와 본체-2상자, 밑반찬-1상자, 김과 자리-1상자, 기타-1상자. 모두 박스만 14개이다. 거기다 개인 가방 6개, 내 베낭 1개, 기타...
모두 22개.... 생각해 보라. 6명이 22개의 짐을 들고 어떻게 갈 것인지...
문제는 또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국할 때에 짐으로 부치는 것은 1인당 23Kg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를 다 체중계에 재 보아야 했다.
최종적으로 138Kg이 넘으면 안되는데 일단 짐으로 부치는 것은 대략 128Kg...
개인 가방과 내 베낭, 컴퓨터 본체는 들고 기내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22개나 되는 짐을 교회차에 다 싣고 보니 사람이 탈 자리는 5인석 밖에 남지 않았다.
4시가 조금 못되어서 진아가 퇴근하여 교회로 왔다.
일단 출발하는 6명은 어떻게든 끼워 앉아서 가겠지만 환송하기 위해 따라가려던 강도사님 사모님과 선양이, 해성이는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해성이가 끝까지 우겨서 억지로 한자리를 더 만들어서 함께 인천공항까지 갔다.
오랜만에 한강을 따라 달린다. 뒤에 꼽사리 낀 해성이가 계속 재잘거리는 관계로 출발하는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하다.
오후 5시 10분. 예상보다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차선을 잘못 타서 버스 전용차로에 들어선 우리 차는 감시하는 아저씨의 눈총을 받으며 화물을 하차했고, 함께 따라온 해성이가 끝까지 짐을 날라주며 도움을 주었다.
주차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강도사님은 결국 인사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가신다는 전화를 하셨고, 하마터면 해성이도 빠뜨리고 가실 뻔 했다.
그럼 어쩜 해성이가 진짜 인형(?)이 되어서 화물칸에 실릴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모든 수속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넉넉해서 인지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짐을 먼저 부쳤다. 상자와 기타를 먼저 보냈다. 그리고는 마일리지 카드를 작성하고, 공항세 납부, 환전...
다행스럽게도 환율이 싸서 약간의 이득을 보았다.
겨울옷을 맡기려 했더니 비용이 너무 비쌌다. 1벌당 3,000원.. 추가 1벌당 1,000원 그러니까 우리팀은 8,000원 가량의 비용이 들고 그게 5일치면 40,000원이다. 그래서 그냥 가지고 가기로 했다.
빨리 출국수속을 밟았다. 혹시 공항 면세점에 살 것이 있는지 보려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또 발생했다.
내가 가져갔던 큰 여행용 가방이 문제였다. 기내 반입이 안되는 사이즈란다.
다시 짐 부치는 곳으로 갔다. 거의 문을 닫고 몇 군데만 열어두고 있었다.
허용치가 138Kg, 아까 사용한 것이 121Kg. 그러니까 여유는 17Kg뿐.
당연히 오버다. 짐 무게 21.5Kg..... 그러나 하나님이 도우시사 추가 비용없이 그냥 통과시켜 주었다.
하나님께 감사...
이 일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만일 우리가 시간을 딱 맞추어서 왔다면 탑승 시간에 맞추느라 허겁지겁 달려야 했을 것이다. 다만 탑승 전에 면세점 둘러보기는 포기해야 했다.
참, 오늘은 연예인을 둘이나 보았다.
짐을 부치고 기다리면서 나만 빼고 모든 팀원이 나훈아를 보았단다.
반대로 탑승직전 32번 GATE에서 전도사님과 내가 장나라를 보았다. 못본 청년들이 어찌나 아쉬워하던지...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지만 아마도 그쪽은 first class에 탈 것이고, 우리는 economy class니까 만나 볼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 시간 8시 40분...
성미가 비행기의 이륙 장면을 무척이나 보고 싶은 모양이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비행기 안에는 여기저기 좌석이 비어 있었고, 이륙이 지연되는 틈을 타서 성미와 지성이가 재빨리 창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껏 기대를 갖고 자리까지 옮겼는데, 이륙은 순식간에 끝나고 말았다. 기대를 많이 한 성미와 지성이가 약간은 실망한 표정이다.
마닐라 공항까지 거리는 1624마일.. 시간은 4시간 가량이 걸린다.
출발전에 아내와 아영, 지훈과 통화를 했다. 아직 어려서 아빠가 무얼하러 가는지도 모르는 녀석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니 꽤 어색했다. 아쉽게 아내를 데리고 가지 못햇다. 명훈이가 엄마를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데리고 가야겠다.
이번 여행은 왠지 마음이 무겁다. 그만큼 준비도 모자르고, 먼저 다녀온 청년 면려회가 너무 거창하게 일정을 소화해 냈기 때문에 우리가 어쩌면 초라하게 비교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다. 승무원들이 열심히 물수건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니 밥을 주려는 모양이다.
먼저 음료가 나왔다. 옆좌석에 말썽꾸러기 꼬마 둘이 앉았는데, 결국 바지에 콜라를 엎었다.
우리 집 꼬마들도 저런데 말이다.
식사가 나왔다. 치킨과 쇠고기. 선택의 시간이다.
소고기를 시켰다. 양송이, 쇠고기가 든 고급 음식 같아 보인다. 하지만 항상 기내에서 먹는 것은 아무래도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그 중에 고은이는 식사를 절반이나 남겼다. 현지식은 더 느끼하다는데 사뭇 걱정이 된다.
현재시간 10시 35분...
원래는 11시 35분인데 거꾸로 날기 때문에 1시간을 뒤로 돌렸다.
상당히 늦은 시간인데 잠이 오질 않는다.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있나 보다.
20분 후면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다. 필리핀 입국을 위한 서류를 작성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11시 10분에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연결 통로가 이어지기까지 거의 30분이나 흘렀다. 사람들이 비상구 방향으로 몰리다 보니 30분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게 되었다.
탈 때에는 몰랐었는데 우리 외에도 단기 선교를 위해 온 다른 팀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정말로 놀기 위해 선교여행을 온 사람도 있었다. 또 국제 기아 구제팀이 대규모로 합쳐져서 입국장은 한국인들 뿐이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입국심사...
이번엔 좀 쉽게 넘어갈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실 우리가 가져간 것이 구제품이라고 말하면 거의 대부분을 압류 당한다고 한다.
특히, 동물 약품은 사전 허가 없이는 통관이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몽땅 압류 대상이다.
당연히 하나님께 기도를 먼저 드리고 나섰다.
하나님, 주의 복음을 위해 사용되어질 이 물품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잘 통과되게 해 주옵소서.
일단 서로 짐을 나누고 동행이 아닌 것처럼 다른 줄에 서서 들어갔다. 다른 팀원들은 국제 기아 구제팀에 휩쓸려 쉽게 통과가 되었다. 나만 따로 서게 되었다.
검사를 맡은 여직원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짐들을 바라본다.
내 짐에 무엇이 있지? 앗 컴퓨터.... 컴퓨터는 가방에 들어가지 않아서 박스로 포장을 했는데 누가 보아도 대번에 컴퓨터임을 알 수 있는 형태다.
청년 면려회의 유상필 형제가 뺏길지도 모르지만 비싼거 아니니까 부담갖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무겁게 들고와서 뺏긴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먼저 사발면 박스를 뜨더니 이내 시선이 컴퓨터 박스에 머문다.
'What is this?' 'Computer. It's mine.' 그랬더니 대번에 컴퓨터에 연결하는 케이블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가방 안에 있다고 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의 가방 안에 있는데...) 그래도 그 자리서 내가 가방을 막 열려는 제스쳐를 취했더니 통과란다. 휴~~~.. ^^;;;
통과해서 나와보니 벌써 12시 20분...
A지역에서 선교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선교사님도 먼저 오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마닐라에서 잠발레스로 출발... 아마도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릴 것이다.
우리의 인원이 적기 때문에 선교관이 아닌 선교사님 사택에서 묵도록 해 주신단다. 또 하나님께 감사.
차에 오른 팀원들이 마닐라 시내를 통과할 때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밖을 내다보더니 고속도로에 들어서서는 이내 골아 떨어졌다.
선교사님 사택에 도착한 것은 정확히 3시...
새벽이라기 보단 칠흑같은 한밤중이다.
그마나 차 안에서 숙면을 취한 터라 다시 정신들을 차리고 싱싱하게 짐을 날랐다.
저 짐들을 다시 들고 한국으로 갈 일은 없겠지? 이런 생각이 위안이 되었다.
선교사님이 부탁하셨던 물품들을 정리해서 드렸더니 사모님이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이 외로운 생활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짐 정리를 마치고 대충 씻었더니 새벽 4시이다.
이제 내일 할 프로그램 준비물을 점검하고 의료품 정리를 마쳤다.
이제 조금이라도 더 자야한다.
내일 일정을 소화하려면 말이다.
2003. 2. 4. (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말 푹 잤다.
혹시 늦잠을 잔건 아닐까? 날은 이미 동이 붉게 터오르고 있었다.
놀란 마음에 뒤척이던 몸둥이를 벌덕 일으켰다.
6시 35분.... 겨우 2시간 30분을 잤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렇게 몸이 개운하고 가볍다니....
기상시간까지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일찍 일어나서 주변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선교사님께 누가 될까봐서 다시 잠을 청했다.
다시 눈을 뜬 것은 7시 45분.
정말 짧은 시간을 잤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팀원이 다 숙면을 취했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하나님의 능력.... 한국에서는 8시간을 넘게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았었는데 말이다.
감사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8시 경건의 시간...
'나의 켈커타를 찾아라'라는제목의 말씀이었다.
감상적이고 피상적인 선교가 아닌 실제적 복음전도 방안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아침식사. 메뉴는 밥과 미역국.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옥수수, 바나나.
옥수수는 한국 것보다 더 부드럽고 맛있었다. 오늘 아침 일찍 사모님이 직접 장에 가서 사오셨다.
바나나는 필리핀 산지에서 난 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향이 짙고 달고 새콤한 뒷맛이 있다.
선교사님은 특히 커피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우리가 준비해간 블루마운틴을 어느새 갈아서 커피를 내려오셨다. 정말 예상치 못한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진아의 말이다. 앞으로 어떤 고생을 하게 될까 하는 기대와 걱정이 섞인 독백이다.
오늘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출발이다. 먼저 제스막 교회에 가서 사역을 하고, 안디옥 교회에가서 저녁을 보낸 뒤에, 다음날에는 발리윗 교회에 가서 사역을 하고 저녁에 다시 이곳 사택으로 돌아오게 된다.
필요한 짐이 무지 많다. 선교사님의 차는 5인승 픽업인데, 짐을 싣고 나서 공간이 거의 없었다.
일단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앞자리에 앉으시고, 뒷자리는 전도사님, 진아, 고은이 앉고, 나와 성미, 지성은 짐들 사이의 뒷자리에 앉았다.
성미와 지성이는 처음 타는 뒷자리라 세찬 바람 마져도 재미있나 보다.
마닐라가 수도이고 우리가 온 잠발레스는 우리나라의 대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거리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가득하다. 어제는 늦은 시간이라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날이 밝고 보니 세상이 무척 깨끗하다는 느낌이다.
정말로 파란 하늘, 야자수, 쏟아지는 태양.
지금쯤 서울은 영하를 오르내리면서 옷깃을 여미며 다닐텐데, 우리는 면티 하나를 입고도 연신 땀을 흘리고 있다.
산들의 모습도 특이하다. 우리의 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맥의 줄기가 연속되었다면, 필리핀의 산은 선이 굵지만 그다지 높지 않고 약간 이상하리만큼 독립적으로 한두개씩 솟아 있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제스막(Jessmak) 교회... 안디옥에서 세운 지교회이다.
막사이사이의 친척되는 사람이 기부한 땅에 세운 곳이라 하여 끝에 '막'자를 붙였단다.
아침에 서둘러서 출발하였는데도 11시 40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제스막 교회는 아스팔트에서 벗어난 시멘트 길을 20여분 더 달린 후 다시 비포장 도로를 20여분 들어가야 닿을 수 있었다.
교회가 있는 마을에 다다르자 선교사님은 경적을 울리며 가셨다. 아이들을 모으시는 것이다. 어느새 아이들은 자동차를 따라오며 환호했다. 이들은 돈이 없어서 학교에 보내지 못한 까닭에 아이들이 모두들 집에 있었다. 따라서 선교사님이 오시거나 선교팀이 오는 날을 상당히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낯선 사람들.... 아이타 족은 수많은 필리핀의 민족들 중에서도 소외되고 못사는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보급품이 잘 전달되어서인지 그들의 옷은 그런대로 지금의 유행에 크게 뒤떨어져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이 아이타 부족들은 잘 씻지 않는 전통(?)이 있어서 구리빛 피부가 더욱 꽤제제하게 보였다.
먼저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게중에는 잘 마음을 열지 않을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호기심과 즐거운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예상보다 어른들도 많았다.
일단 준비해간 찬양을 시작했다. 이도앙아라우(이날은).
차지성은 오면서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도 막상 아이들 앞에서 자꾸 틀렸다. 낯선 아이들, 익숙치 않은 발음이 부담스러웠으리라. 하지만 노래가 반복되면서 페이스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우리 선교팀..
다음 곡은 상알라니 해수스(예수이름으로)...
이 곡은 주로 박수를 치면서 했는데 호응이 별루였다. 박수치는 방법만 단순히 바꾸는 것인데 그것 마져도 이들에겐 어려웠나 보다. 아직 우리와 친숙해지지 않은 터라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곧이어 방역과 미용시간.
워낙 모기가 많은 곳이라 방역은 필수이다. 그러나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방역을 할 수가 없었다.
미용은 말이 미용이지 머리에 있는 이를 박멸하는 것이다. 우리는 개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지 전도사님인 헨리 전도사님은 지름길인 듯한 길로 우리를 인도했는데 온통 큰 돌길이었다.
나름대로 바위나 돌들이 있는 길에 자신이 있었지만 현지인들의 발걸음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또한 도착지가 어디인지 알지 못한터라 그 길이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처음 만난 개울은 그냥 지나쳤다. 그곳엔 물소가 한가로이 멱을 감고 있었다. 한참을 더 걸었더니 얕은 개울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이를 박멸하기 위해 아이들의 머리를 린덴로션(이를 죽이는 약)으로 감아주고, 샴프로 다시 감겨 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먼저 왔었던 팀들이 다 했었던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색해하거나 버티지 않고 쉽게 따라 주었다. 물론 머리를 감은 아이들에게만 사탕을 나누어준다는 협박(?)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몇 마디 되지 않는 영어로도 아이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아이들은 씻겨주다가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생각났다. 집에선 거의 아이들을 목욕시켜 주거나 머리를 감겨준 일이 없었는데....
거의 1시간 30분 정도가 흘렀다. 다시 교회로 향했다. 교회 안에는 이미 통돼지 바베큐구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대략 30-40Kg정도 나가는 돼지에 지름 6cm정도의 긴 장대를 끼워서 그대로 9시간이상 숯불에 구운 것이다. 이 음식이 이 부족의 최고의 음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리얼한 돼지의 모습에 장대가 박혀 있는 모습에 우리 여자 팀원들은 식욕마져 잃어버린 모양이다. 내가 조금 맛을 보았는데, 약간 싱거웠지만 숯불 냄새가 베어서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그곳 제스막 교회의 사람들은 1년에 한번이나 고기를 먹을까 말까 한다니 거의 동네 잔치의 분위기였다. 배식이 시작되었다. 우리 여자 청년들이 밥을 퍼주고 현지 전도사님이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눠주셨다.
밥을 옮기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2개의 솥에 밥을 했는데 그 중 한 솥에 아주 작은 개미들이 수백마리나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모인 사람들도 많은데 한솥으로는 분명히 모자랄 것 같았다. 당황한 진아가 사모님께 묻는다. '사모님 이거 어쩌죠?' '그냥 나눠 주세요. 저도 그냥 먹어요.'
다시 한번의 충격.... 잠시 정신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숨돌릴 겨를도 없이 밥을 퍼주는 청년들.... 나는 중간에서 사람들이 줄을 잘 서도록 치안(?)을 담당했다.
1사람 당 밥 1주걱, 고기 3-4조각을 받고는 상당히 흐뭇해했다. 원주민들은 원래 수저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말 밥알 한톨도 흘리지 않고 깨끗이 먹는 모습이 또한 인상적이다.
모두에게 배식이 끝나고 아직 음식이 좀 남았다. 두 번째 배식을 할 때에는 거의 시장 바닥처럼 요란스러웠다. 한번이라도 더 배식을 받기 위해서....
식사 시간에 또 새로운 일이 생겼다.
아까 목욕을 시키는 동안에도 발견을 했는데 머리에 기계충 같은 것이 잔뜩 난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가 3명이나 되었다. 누런 딱지가 머리에 여기저기 생겼는데 그 밑에선 고름이 나왔다. 잘 씻지 않은 탓이다. 일단 염증이 생겼다면 가피를 제거하지 않으면 계속 밑으로 고름이 생기게 된다.
더욱이 병이 난 아이들이 3-5세의 꼬마들이라 너무 안쓰러웠다. 가피를 뜯어내는 동안 무척이나 아팠을 것이다. 3명의 아이들을 치료하는데 근 1시간이 넘게 걸렸나보다. 간호사 후보생인 고은이는 근처에 뵈지도 않고 오히려 전도사님이 옆에서 어시스트를 해 주셨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원래 목표했던 개들은 하나도 진료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돌보는 사이 미리 물을 부어 두었던 사발면이 우동 면발이 되었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않는 신기한 사발면. 겨우 식사를 마치고 잠시 사모님과 대화를 나눴다. 오늘 같은 진료 케이스가 무척 많다고 하신다. 심지어 염증을 방치하여서 팔에서 구더기가 나온 아이도 있었다고 하신다.
이러는 사이 교회 안에서는 우리가 준비해 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글 없는 그림책...
진행은 편진아 선생이 영어로 했고, 중간 통역을 안디옥 교회의 한 성도님이 하셨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통역하는 분이 현지어로 바꾸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진 못한 것 같다.
이어진 시간은 만들기....
즉석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서 액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원래 만들기는 내일 발리윗교회에서 할 예정이었는데 어찌하다보니 상황이 엉켜 버렸다. 아마도 선교사님은 발리윗교회 만큼 제스막교회의 어린이들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애초에 1명당 1장을 찍기로 했는데 준비한 수량이 너무 부족한 관계로 각 가정 당 1컷을 찍기로 했다.
즉석에서 사진이 나오자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했다. 그리고 예쁜 사진틀에 넣어주자 정말 기뻐했다.
정말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반응이었다. 현지의 전도사님 가정과 우리 선교사님 사모님도 무척 예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아마 저들은 그 사진들을 가보로 물려줄 거라고 하신다.
이제 Last... 핸드폰 모양의 비누방울을 나누어 주는 순서...
핸드폰 모양이라 아이들이 거의 목숨 걸고 달려든다. 그러나 우리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32개뿐....
선교사님이 지혜롭게 나누어 주셨고,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이것저것 정리를 마치고 제스막을 출발했다. 오후 3시 30분...
예정보다 1시간 일찍이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었는데 아이들은 우리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며 따라온다. 흙먼지가 날리는 자동차를 따라서....
한국의 아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함.... 그들의 낯선 외모가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게 하는 이유이다.
오는 길에는 여전히 트라이시클이 도로를 활보하고 다닌다.
1시간여 걸려 달려온 안디옥 교회. 발리윗교회를 개척하신 이후에 개척한 교회이지만 오히려 더 안정된 교회. 그리고 오늘 다녀온 제스막교회의 모교회이기도 하다.
정말 그 이름에 걸맞는 활약을 하고 있는 교회였다.
널찍한 본당과 부속 건물들. 구석구석엔 청년면려회 팀이 가꾸어 놓은 환경미화 흔적으로 가득하다.
안디옥교회에 도착한 팀원들이 갑자기 피로감에 빠져들었다. 씻는 것도 뒤로한 체 청년들은 교회의 나무 의자를 붙여 놓고 잠에 빠졌다.
한참 휴식을 취한 후에 저녁이 준비되었다.
필리핀 사람들은 특히 손님 대접에 극진했다. 현지의 릭전도사님 부부는 우리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는데 자신들은 우리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전혀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닭 숯불구이 냄새가 진동했다. 필리핀식 닭꼬치.... 양념이 기가막히게 맛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망고.... 망고에 큼직한 씨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수박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박은 우리나라의 수박이 더 맛있는 것 같다. 암튼 배부르게 먹었다. 사모님은 내일을 위해 잔뜩 먹어두라고 자꾸 권하신다.
8시 정각에 시작된 선교 특강....
필리핀 선교의 포인트를 우리에게 짚어주셨다. 빈민 선교의 중요성과 아동 선교의 절박함....
그리고 이곳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간증하셨다. 교회 짓는 이야기, 선교관 부지 매입 과정 등등.....
그리고 우리가 선교사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은 살펴보았다. 역시 기도밖에는 없다는 결론....
기도회가 이어졌고, 내일 일정을 위해 길지 않게 마무리를 지었다.
내일 일정을 위해 간략한 회의를 했는데, 액자만들기의 경우 오늘 겪었듯이 현지 아이들에게 만들기를 맡기기보다는 우리가 완성품을 주기로하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액자틀을 밤에 모두 완성하기로 했다.
액자틀을 만들면서 선교사님 부부의 여러 가지 간증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항상 체험하시는 부분이 부러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이렇게 선교팀들이 올 때면 갖고 계신 이야기 보따리를 모두 풀어놓으시는 것 같다. 외로움의 방증이리라.
모두 정리한 시간은 밤 11시... 그리고 이 글을 쓴다.
지금은 11시 45분. 전도사님과 진아는 본당 뒷편 방에서, 성미, 지성, 고은과 나는 본당에서 자게 되었다. 연신 지성이가 덥다고 하는 바람에 선풍기까지 틀고 모기가 있다고 졸라서 모기향도 잔뜩 피웠다.
세 녀석이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 모양이다.
아직도 수다를 떨고 있다......
2월 5일 (수)
요란한 닭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는 숙소가 도로 옆이라 시끄러운 트라이시클 때문에 깼는데 이번엔 닭이다.
시간은 6시 10분... 어제 그렇게 방역을 했는데 아침부터 귓전에 모기가 왱왱거린다.
6시 30분에 모두 기상하고, 7시에 아침 묵상이 이어졌다. '입으로 하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말씀이었다.
오늘도 나의 입술이 오직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짐정리를 하고 아침식사. 메뉴는 카레밥.... 모두 한국식이라서 식사를 양껏했다. 오늘 저녁 수요예배는 안디옥교회가 아닌 사택에서 드릴 예정이라서 두고 갈 짐을 제외하고는 모두 싣고 가야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기타를 이곳 안디옥교회에 두고 가야한다. 현일이가 열심히 치던 기타, 새롭게 민호가 기타에 흥미를 갖게 해 준 기타.... 왠지 막상 기타를 두고 가려니까 손에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아까워서가 아니라 추억 때문에..... 다만 이곳에서 더욱 복음 사역에 귀히 사용되어질 것을 기대하며 손에서 내려놓고 교회당을 빠져 나왔다.
8시... 출발이다.
릭 전도사님 부부에게도 즉석 사진을 찍어 건네주었더니 무척이나 좋아하신다.
계속 손을 흔들어 답례하시는 릭전도사님 부부를 뒤로하고 차가 달린다.
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되짚어간다. 다시 물을 2통 사고, 어느 시장에 이르러서 선교사님은 우리를 내리게 하셨다. 아마도 선교사님은 따로 몇 가지 더 챙겨오실 물품이 있으신 모양이다.
우리가 내린 곳은 어느 시골 장터였다. 시골 아낙네들이 장을 보아서 자기 마을에 가서 다시 소매로 팔기 위해 잔뜩 물건을 들고 온다. 작은 생선, 과일, 채소, 사료....
우리도 과일과 몇가지를 사서 목적지에 갈 차를 수배했다. 우리가 타고 갈 차는 '우리꾸리'라는 것으로 찌프니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찌프니보다 힘이 좋지만 겉모양은 어감처럼 꾸리꾸리하다.
오늘 가는 발리윗교회는 화산폭발시의 화산재로 완전히 한마을이 묻혀버린 마을을 통과해야 하는데 일반차나 찌프니, 트라이시클등은 갈 수 없는 곳이다.
100년 전부터 필리핀 원주민 아이타 부족을 향한 선교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산에 거주하며 살아온 아이타 부족은 밀림으로 들어오는 선교사들을 향하여 활을 쏘며 저항, 선교사들은 쉽게 아이타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없었다.
1991년 6월. 하나님은 600년간이나 휴식을 취하던 피나토브 화산을 폭발하게 하셨다.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아이타들은 산에서 내려와야 했고, 필리핀 정부는 정착촌을 지어 그들을 집단 거주하게 했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에서 구제의 손길과 함께 복음의 전파가 시작되었고, 아이타들은 늦게나마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으나, 그들은 문명 세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지 못하였기에 극빈층에 속하였고, 다시 산으로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1992년 김영호 선교사님이 이곳을 찾아 처음으로 세운 것이 올드 발리윗교회.....
우리꾸리는 모래밭 같은 광야를 거쳐 지나갔다. 차가 불쌍할 정도로....
한참을 비좁게 앉아서 달리던 차가 어느 마을에 이르러서는 멈추어 섰다. 거기서 다 내려야 했고, 우리는 여기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지금시간 10시 05분... 난 베낭을 메었고 나머지는 아까 시장에서 산 망고와 파인애플을 들었다.
피나토브 화산 폭발시 화산재가 빗물과 함께 흘러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퍼졌나갔다. 지금 우리가 걷는 이곳도 그 영향으로 먼지가 많이 나는 건조한 모래 같은 땅이다.
뙤약볕 아래에서 걷는 것이 아무래도 익숙치 않은 여자 청년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울을 만났다. 냇물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깊어서 그냥 건넜다가는 속옷까지 다 젓을 판이다. 좀더 얕은 곳을 찾기 위해서 상류로 향했다. 그곳에서부터 자주 냇물이 등장했다. 운동화를 신고 온 사람들은 차라리 맨발을 택했다.
깨끗한 냇물, 한가롭게 멱을 감는 물소, 멀리 보이는 이국적인 산, 용암이 흘렀는지 깎아낸 듯한 흙벽. 따가운 태양만이 이러한 멋진 풍경을 우리에게서 가리웠다.
마지막 냇물을 건너고 한참을 걷다가 산길에 들어서서 이내 시원한 그늘을 찾았다.
망고를 다 먹고 가기 위해서였다.
더운 날씨에 걷다보니 갈증이 상당히 났다. 아까 선교사님 차에서 오늘 쓸 식수를 내리지 않아서 물이 없었기 때문에 망고는 우리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어찌나 시원하던지.... 모두가 길에 주저앉아서 원주민식(?)으로 망고를 베어 물었다. 이 시간엔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망고가 이렇게 시원할 줄이야. 사실 실온인 망고가 시원할 리가 없지만, 목마른 우리에겐 더할 나위없는 음료가 되어 주었다. 길에서 10여분을 쉬었다. 이제 손이 가벼워졌으니까 다시 출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을이 나타났다. 정면에는 학교도 있었다. 그 앞에 우리의 목적지 발리윗 교회가 있다. 11시 30분..
이곳은 말하지면 뉴발리윗교회이다. 먼저 세운 올드 발리윗교회는 더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고, 이곳은 국가에서 마을로 조성해준 계획도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산의 폭발로 마을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사람들이 다 흩어져 버렸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이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식수원을 허락하셔서, 오히려 교회로 인해 다시 마을이 형성된 아주 은혜로운 마을이다.
초기 사역을 감당하실 때에 김영호 선교사님이 2년도 넘게 왕복 4시간씩 걸어서 이 발리윗교회에 오셨다는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너무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발리윗을 담당하시는 쟈니 전도사님이 성도들과 열심히 찬양을 하고 계셨다. 친절하게도 우리가 쉴 수 있도록 상당시간을 원주민들과 함께 찬양을 인도하셨다.
우리 팀원들은 12시까지 쉬었다가 찬양을 시작했다. 어제 제스막교회에서 보다는 좀더 안정적인 찬양과 율동을 드렸다. 특히 이곳이 제스막교회보다 복음이 3-4년 먼저 들어왔기 때문에 이미 많은 면에서 교육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원주민들의 모습들도 제스막교회의 원주민들보다 어딘지 모르게 깨끗해 보이고 질서정연했다.
그러는 사이에 선교사님이 도착하셨다. 차에는 오늘 나누어 줄 구제물품인 쌀과 라면이 실려 있었다.
'글 없는 그림책'을 선교사님이 직접 인도하셨다.
역시 반응은 폭발적이다. 아이들의 세세한 감정까지도 읽어내시면서 인도하신 까닭에....
그때 우리 팀원들 중 일부는 나누어줄 풍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풍선으로 푸들 강아지와 칼을 정신없이 만들었다.
교회 안에서의 프로그램은 이제 하이라이트만 남겨 두고 있었다. '사진만들기'
어제 제스막의 원주민들처럼 이곳 사람들도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즉석에서 사진이 나오는 것을 처음 본 모양이다.
교회에 50-60명 가량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100명이 넘는 아이타들이 교회당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는 개인당 1장의 사진을 찍어주려 하였었다. 단체 사진이 되면 그 사진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교회당에 몰려들었다.
어제는 상당히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어수선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오늘은 일단 모든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내보낸 다음 공터에 줄을 세우고 한가족씩 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바로 액자가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시간도 적게 걸리고 혼잡스럽지도 않았다.
사진을 들고 기뻐하는 아이타 사람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것에 기뻐하고 감격하는 모습에 순수함이 베어나온다.
마지막 컷은 교회 앞에서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간 전체 사진.. 내년에는 한컷으로는 부족할 만큼 많은 아이타들이 교회에 꽉 차기를 기원해 본다.
이제 남은 순서는 구제품 전달. 지난 팀이 가져온 이약이 다 떨어져서 미용시간을 건너뛰었더니 시간이 많이 남아버렸다.
선교사님이 미리 쌀을 사셔서 봉지마다 나누어 담아 오셨다.
쌀 1봉지, 라면 3개. 이것이 1인당 할당량이다.
이 구제품들이 이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기쁨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이 구제품 속에 예수님의 복음이 섞여 들어가서 쌀은 떨어지고, 라면은 다할지라도 주의 말씀이 그들 속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되기를......
아이들에게는 사탕과 풍선, 핸드폰 모양의 비누방울 등을 나누어주었다. 비누방울을 뿜어대며 뛰는 아이들...
결코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들은 우리보다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아멘'할 줄 아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저들의 신앙이 그들의 일생동안 꾸준히 성장하고,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크게 사용되어지길 기도한다.
모두가 돌아가 버린 후 약간은 허탈감이 밀려온다.
사실 지금 이 시간이 선교여행 사역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일정은 선교관 부지와 현재 선교관을 둘러보는 일과 문화체험을 하는 순서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너무 부족한 준비, 아쉬운 짧은 일정, 적은 인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알기 쉽게, 또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으로 우리에게 펼쳐서 보여 주셨다.
아마도 이런 준비의 부족을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선교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 팀원 중 아무도 입을 벌려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시 한번 잘 준비해서 멋지게 주의 일을 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였을 것이라 확신한다.
아쉬워하는 쟈니 전도사님 부부를 뒤로한 채 우리는 다시 선교사님의 차에 올랐다.
역시 뒷자리에 세명이 타야 했다. 더구나 이곳은 비포장 도로에다가 화산재가 밀가루처럼 날리는 곳...
하지만 뒷자리에 앉고 싶었다.
아까 우리꾸리를 타고 올 때에는 몰랐었는데 화산재로 뒤덮인 광야는 정말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런 식물도 살 수 없는 곳, 흰색의 가루가 끊없이 널려있는 죽음의 땅......
이 죽음의 땅 또한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이다. 하나님이 화산 폭발을 일으키신 이유를 우리는 확신한다. - 아이타들의 선교를 위해서 말이다. 밀림을 떠나지 않고 산속에서만 살면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살아온 아이타 중에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가 무척 많이 날렸다. 대략 20여분만을 달렸을 뿐인데 몸은 온통 흰 화산재 먼지로 뒤덮히고 말았다. 먼지가 날리는 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가 나타난 것이 이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
안디옥교회가 아닌 사택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시간이 또 무척 많이 남았다. 먼저 샤워를 하고 이제 이곳에 두고 갈 짐과 가져갈 짐을 분리했다.
동물진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가져가야 하는 짐도 많다. 그러는 사이 밖에서는 선교사님이 숯불에 돼지 생삼겹살을 굽고 계셨다. 점심을 전혀 먹지 못했던 나는 무척 배가 고팠기에 고기가 무척 많이 들어갔다.
모두가 배부르게 식사를 했다. 특히 한국에서 가져온 볶음고추장에 함께 먹었더니 숯불 냄새와 어울어져 맛이 일품이다. 사모님이 더 먹으라고 자꾸 권하셨지만 이미 한계치를 넘을 정도로 먹은 뒤였다.
현지식에 적응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너무 잘 얻어먹는 것이 아닌가 하는 미안함마져 든다.
너무 많은 시간이 남은 관계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찬양을 시작했다. 처음엔 만들어간 핸드북에 있는 곡으로 시작했는데 복음성가 책을 선교사님이 내어 오셨고, 근 1시간이 넘게 찬양을 불렀다.
이 피아노는 선교사님 딸이 주로 쳤었지만 지금 호주에서 공부하는 중이라 오랜 동안 피아노가 닫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8시가 되었다. 수요 저녁예배....
한국에서부터 미리 준비해온 정결한 예물을 먼저 걷어서 헌물로 올렸다.
또 우리는 이 예배가 안디옥교회에서 드려질 것을 예상하고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찬양과 함께 수화를 준비했었다. 안디옥교회 현지 성도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어짜피 하나님께 드리고자 준비한 찬양이라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드렸다. 내 생애 처음 예배 반주를 한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말씀 중 은혜로웠던 부분을 소개한다면 이렇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계셨던 예수님은 제자 2명에게 나귀 새끼를 풀어오라고 명하셨다. 나귀의 주인에게 미리 허락을 받아 두신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다만 나귀를 끌어가는 이유를 묻는 주인에게 '주께서 쓰시겠다.'고 말하라고 했을 뿐이다.
'주께서 쓰시겠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인데도 나귀 주인은 순순히 나귀 새끼를 내어주었으며, 예수님의 사역 일부분을 장식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동현아, 너의 ***을 나에게 주어 주의 일에 사용되게 해라.'
우리의 욕심과 고집이 그런 주의 음성을 피해 거절한다면 분명히 주님은 다른 이의 손에서 쓰시거나, 억지로라도 내 것을 사용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영의 눈이 밝게 뜨여서 주께서 부르시는 음성에 빨리 순종하여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이 믿음이며, 지혜이다.
수요예배에 이어 간증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선교사님이 인도하셨다.
짧은 2일간의 사역이었지만 개인마다 느낀 것이 사뭇 달랐다.
간증의 시간 동안에 자신이 느낀 것과 함께 기도의 제목들을 말하였고, 그 제목을 놓고 통성기도를 드렸다.
모든 간증과 기도회가 끝난 시간은 9시 40분경....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모님이 갑자기 할루할루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셨고 전도사님도 찬성, 여자청년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우리는 그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지만 밤에 나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들뜨게 했다.
선교사님이 피곤해 보이셨는데 직접 운전해 주셔서 우리를 데리고 가 주셨다.
밖으로 나왔다. 유난히 맑은 하늘에 보석을 깔아 놓은 듯 별빛이 찬란하다. 기온도 선선하여 움직이기에 적당했다. 선교사님 차가 5인승이기 때문에 역시 3명은 짐칸에 실려(?) 가야 했다.
짐이 없어서 한결 편했다. 시속 80Km의 바람을 서서 맞는 기분도 무척 스릴 있었다. 짐칸에 같이 앉은 성미와 진아는 북두칠성 자리를 찾았다고 환호성을 친다. 나도 내 생애 최고의 하늘을 바라본 것으로 기억될 것 같다.
도로는 바다를 따라서 뻗어 있었다. 바다 근처가 되면 냄새가 물씬 풍기며, 찬바람이 귓전에 부딪혀 온다.
할루할루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팥빙수와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음식점이 금방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길을 나섰는데 30분 이상을 차로 달려서 겨우 도착했다. 이렇게 멀리 와야 할 것을 알았다면 가지 말자고 했을 텐데... 피곤한 선교사님께는 정말로 죄송했다.
이곳의 지명은 수빅(Subic).... 우리가 들어간 곳은 Chow King.... 체인스타일의 페스트푸드점이다.
우리는 모두 8명이었는데 할루할루는 5개를 시켰다. 성미, 지성, 고은, 진아, 선교사님, 사모님은 둘이서 하나, 그리고 나와 전도사님은 각각 1개.... 아마 많이 먹을 것 같은 사람들에겐 싸우지 말라고 1개를 다 주문해 주신 것 같다.(^^;;;) - 당연히 나와 전도사님은 둘이서 먹는 사람들보다 진도가 빨리 나갔다.
할루할루의 색은 약간 보라빛을 띠었고 그 안에는 빙수 외에 열대 과일로 채워져 있었다. 보라색이 나는 것은 색소가 아니라 그곳 고구마의 특유 색이라고 했다.
여행 중에 호젓하게 빠져 나와 외식을 즐기는 기분이 참 좋았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사택에 돌아왔다. 하긴 내일 일정이 모두 관광이기 때문에 급하게 일어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유난히 길게 느껴진 하루다. 매일 보내던 하루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피곤했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2월 5일
늦잠을 자려해도 불가능하다.
도로변이라 유난히 트라이시클의 소음이 크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비고 가장 먼저 일어나 씻고 짐을 대강 정리했다.
아침식사를 했다. 빵과 커피, 망고 바나나.. 이른 아침에 사모님이 사오셨기 때문에 아직도 빵이 따뜻했다. 처음 먹어본 필리핀의 빵과 쵸코잼이 커피와 잘 어울렸다.
선교사님은 댁에 계시고 우리는 인근 시장을 먼저 찾았다. 그곳에서 과일을 샀다.
짝푸릇.. 겉모습은 둥글고 초록빛이며, 뾰족뾰족 튀어나왔지만 안에는 노란색이다. 사이사이엔 완두콩보다 약간 더 큰 크기의 씨가 들어있다. 매우 달콤하고 끈적끈적하다. 이 짝푸릇은 이 나라에선 최고의 과일로 통한단다. 짝푸릇을 약간 사고 파인애플과 망고를 샀다.
드디어 찌프니를 세워서 탔다. 울롱가뽀 시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이다. 찌프니는 짚차의 모양인데 좀 낮으면서 긴 형태이다. 문은 모두 운전석, 조수석, 맨 뒤 등 3군데이지만 문짝은 없다. 말하자면 마을버스 같은 것인데 차가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이 달려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속도계도 달려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주로 뒤쪽 입구를 통해서 타는데 요금을 운전사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 운전사에게까지 손이 닿지 않으면 옆사람에게 요금을 건네주어서 운전사에게 전달한다.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타다보니 항상 시끌벅적하다.
울롱가뽀 시장에는 Public Market이라는 대형 단층 건물이 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재래시장처럼 과일, 생선, 공산품, 옷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파는 시장이다.
사모님은 우리에게 새우구이를 해 주시기 위해 해물을 사셨고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시장을 거닐며 구경을 했다. 무엇을 사고 싶어도 막상 우리에겐 돈이 없었다.
시장의 모습은 20여년 전의 우리 서울을 연상하면 거의 맞을 것이다.
어느 정도 해물과 과일의 구입이 끝나자 사모님을 졸라서 기념품을 사러 갔다. 나는 찌프니 모형 2개, 보석함 1개, 열쇠고리, 메모자석등을 샀다. 이걸 모두 13,000원에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공항에서의 반의반 가격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이것저것 사고 나서 선교사님과 약속한 장소로 갔다. 선교사님이 많이 늦으신다. 이유를 물어보니 중간에 교통사고가 나서 길이 막힌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이제 수빅만을 향하여 출발.
차 뒤에는 숯불구이를 위한 도구로 가득 차서 매우 혼잡했다. 정말 겨우 꾸겨 타서 갔다는 표현이 맞다.
1시간이 넘게 차로 달려서 도착한 곳은 Sbma beach (Subic Bay Metropolitan Authority)
이곳 사람들은 지금이 늦겨울 정도라서 해변은 텅텅 비어 있었다. 주차장이 무지 넓었고, 그 한쪽 구석에는 필리핀 영화를 찍고 그냥 버려 둔 커다란 모형 나무배가 있었다.
일단 우리는 해변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왕새우 구이와 가재, 생선 구이.. 정말 맛있게 잘 구워졌다. 그리고 배가 터지게 먹었다. 그 정도를 한국에서 먹으려면 30만원도 더 넘게 들 것이다. 아주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정말로 휴양지에 놀러온 느낌이다. 모든 팀원이 선교여행 가서 호강하다 왔다는 질책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정도로...
식사 후에 선교사님은 최근에 푹 빠진 바다 낚시를 위해 낚시터로 가셨고, 여자 청년들은 거의 영화 배우를 흉내내며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어댔다.
정말 아름다운 바다다. 일반적으로 바다하면 수평선이 보이는데 이곳은 만이라서 저 건너엔 아름다운 얕은 산이 보인다. 그 바닷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깊은 물속의 바닥과 산호까지 드려다 보인다.
아주 깨끗한 초록색.... 인간의 재주로는 결코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색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때였다. 원숭이들의 습격... 우리는 동물원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가져온 음식을 훔쳐가기 위해서였다. 빈 캔 콜라병이 마구 찢기어 있을 정도로 녀석들의 습격은 집요했다. 음식물 곁에 한 명이 보초를 서야 할 정도였다.
남자 청년이 없는 탓일까? 이렇게 좋은 바다에 와서도 한 녀석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언저리에서 물장난만 친다. 장난기가 발동해서 성미를 물에 빠뜨렸다. 결국 물에 빠진 성미의 물귀신 작전으로 어렵지 않게 지성과 고은을 몽땅 바다에 넣었다. 다만 전도사님은 처음부터 물에서 멀찌감치 계셔서 빠뜨릴 수가 없었고 눈치빠른 진아는 끝까지 사진기를 사수하며 버텨냈다.
일단 물에 들어가더니 신이 난 모양이다. 저희들끼리 어울려서 노는 것을 보고 선교사님께 가 보았다. 오늘은 바람이 많아서 영 신통치 않은 듯 했다. 연신 미끼만 끼워 다시 바다에 던지시는 선교사님을 뒤로하고 해변으로 돌아왔다.
해변엔 원두막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고무튜브와 플라스틱 카누가 있었다. 분명 돈을 내고 빌려야 하는 배인 듯 하다. 그러나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성미가 용감하게 보트 하나를 끌어내렸다. 생각보다 무지 무거웠다. 하지만 일단 바다에 띄웠더니 상당히 안정적이다. 다만 노가 없는 것이 흠이다. 성미, 지성, 고은 셋이 타고 나름대로 열심히 손으로 젓는 듯했지만 배는 물결을 따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바다에 들어가서 배를 밀어 주었다. 그렇게 두 번 정도를 왕복하다가 바닷속의 바위에 무릎이 부딪혔다. 부딪힌 순간 많이 찢어진 것을 느꼈다. 신나게 놀고 있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올라와서 지혈을 시켰다.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이렇다니깐... 어딜가도 한군데 꼭 다친다...
오후 4시 30분 쯤 되어 모두 정리를 했다. 바람도 많이 차가워졌다. 선교사님은 고기는 고사하고 고기에게 낚시대를 하나 빼앗겼다고 무척 아쉬워하신다. 고기가 물고 바다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다리를 다치고 나서는 이내 차의 안쪽으로 앉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선교사님의 차 안에 타는 것이다. 나 대신 3명의 미녀(?)들이 뒷짐칸에 앉았다.
먼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미국인이 경영하는 Vasco's라는 Bar이다. 오래된 전쟁 유물들을 박물관처럼 소장하여 전시한 곳이다. 분위기는 참 좋았는데 좋은 자리가 남아있지 않아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지체된 터라 곧장 저녁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잠발레스의 비버리힐스 같은 곳이다. 경비들이 출입구를 엄중히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미녀 3총사가 있다. 그들의 살인적인 미소(?) 한방에 그냥 통과!!!
경치 좋은 산길을 드라이브해서 도착한 곳이 있다. 박쥐가 있는 곳... 차를 세우신 선교사님이 한 나무를 가리키셨다. 나무 가지 한 개에 20-30 여개의 까만 것들이 땅을 향해 달려 있었다. 언뜻 보기엔 무슨 열매같아 보였다. 그것이 모두 박쥐였다. 그러니까 한 나무에 근 700-800마리나 되는 박쥐가 매달려 잇는 것이다. 이들은 과일 박쥐로 밤이 되면 과일을 찾아 나선다고 한다.
여자 청년들은 박쥐라니까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차에서조차 내리려하지 않았고 진아만 먼 발치에서 박쥐인 것을 확인하고는 비명을 지르고 차로 달려가버렸다. 우리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음식점을 향해 갔다.
6시가 다 되어서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여비를 많이 아낀 까닭에 스테이크를 먹기로 한 것이다. 선교팀을 데리고 이렇게 고가의 고급 음식을 먹으러 온 것 또한 처음이라고 하신다. 스테이크는 참 부드러웠다. 스테이크 둘레에 있는 베이컨도 맛있었고, 감자 튀김도 괜찮았다. 다만 후식으로 마신 커피가 자메이카 스타일이라 좀 씁쓸했다.
참 여유로운 식사시간이었다.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선교사님 부부는 자식자랑을 하셨고 우리는 교회 자랑, 성도님 자랑을 했다. 7시가 넘어서야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돌아가는 길은 왠지 쓸쓸했다. 이제 모든 일정을 끝내고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토록 맑은 밤하늘을 언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사택에 돌아와서는 다들 짐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출발할 때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짐이 마음마져 가볍게 한다. 짐정리를 하는 동안 사모님께 경비를 계산하여 드렸다. 일단 사모님이 모든 경비를 지출하시고 나중에 한꺼번에 우리가 계산해 드리기로 했었다. 우리가 처음 환전한 것은 150만원-1267달러... 이중 적어도 우리 경비와 구제품 비용으로 1000달러 이상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찌프니 대여, 호텔 투숙등 여러 가지가 취소되었다. why? 6명이라서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린 너무 적은 인원이라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반대로 인원이 너무 적어서 들어갈 비용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절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600달러... 사모님이 쓰신 경비의 총액이다. 정말 깜짝 놀랄만큼 적게 들었다. 그렇게 줄이느라 사모님은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여유가 600달러 정도가 생겼다. 전도사님과 상의한 끝에 600달러를 목적헌금으로 드리기로 했다.
'현지 교회 전도사님들의 오토바이 구입 목적헌금'
오토바이가 꼭 필요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부터 마음속이 참 무거웠는데 이 헌금으로 다소나마 보탬이 될 것을 생각하니 뿌듯하다.
그러는 사이 짐정리가 끝나고 강평회가 시작되었다. 강평회는 주로 자신들이 겪은 간증들을 토대로 발언이 시작되었다. 어느 한 사람도 출발 전부터 고민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돈 때문에, 시간 때문에, 그리고 개인적인 고민들.......
그러나 그 고민들을 넘어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또한 모두들 경험했다고 한다.
정말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세밀하게 역사하시고 감동을 주셨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선교여행은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기다가 이번 선교 여행을 통해 선교의 비젼을 갖게 된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9시 정도에 시작한 강평회가 11시 30분이 넘어서야 끝났다. 너무도 은혜로운 강평회였다.
Best dream team - 가히 오늘의 주제라 할 수 있는 말이다.
팀원 한명 한명이 너무도 잘 뭉쳐 주었고 소중한 동역자였다. 정말 어느 누구도 이 소중한 경험들을 정말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서둘러서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새벽 5시에 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2월 7일 (금)
쌀쌀한 가운데 눈을 떴다. 4시 15분.
정말 단 하루도 피곤해서 늦잠을 자는 일이 없이 넉넉하게 깨워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먼저 드렸다.
거짓말처럼 이런 시간에 일어나면서도 전혀 피곤하거나 졸립지가 않았다.
아직도 다리엔 통증이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수월치 않고..... 뒤뚱뒤뚱...... 민망해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화장실 사용을 마쳤다.
세면과 짐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4시 45분. 선교사님도 일어나셨고, 아침묵상은 5시 정각에 짧게 했다.
5시 10분. 이제 출발.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중한 경험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할 일 많은 땅을 뒤로하고 가는 미안함과 아직 우리의 젊은 피를 필요로 하는 선교의 현장들을 더 이상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결심들이 아마도 우리의 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였으리라.
사택에서 5분 거리에 새로 지을 선교관 부지가 있었다. 모자라는 새벽시간이지만 그 부지를 들러서 살펴보았다. 400평정도의 네모난 땅... 짓다가 한참 중단한 듯한 시멘트 건물. 새벽 차가운 공기와 흐린 날씨가 더욱 쓸쓸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하지만 이제 선교관이 완공이 되면 현지 아이타들을 위한 신학교가 생겨나는 것이고, 복음이 더욱 체계적으로 전파되어질 것이다. 바로 그곳, 선교관 부지는 나에게 필리핀선교의 미래를 보게 한 것이다.
통성기도와 사진을 간단히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마닐라 공항을 향해서 출발.
차안에서 모든 팀원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일찍 일어난 탓이다. 8시경에 빠빵가라는 곳에 이르렀다. Jollibee라는 음식점에 차는 주차했다. Jollibee는 필리핀 자국의 페스트 푸드점으로 한국의 롯데리아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소금과 마늘이 들어간 볶음밥, 쏘시지 2개, 달걀후라이, 커피 등이 아침 메뉴이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다른 팀원들은 조금 입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선교사님과는 작별이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정말 담대히 사역하시는 선교사님. 그 신앙과 인품에 존경을 보내며 우리들과 사모님은 다시 차에 올라 먼저 출발했다.
아침을 먹은 후라 팀원들에게 다시 생기가 돌았다. 이런저런 있었던 일들을 두고 계속 재잘거린다. 그리고 얼마 후엔 다시 조용해졌다. 다들 잔다.....
9시 45분. 차가 막힌다. 마닐라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다. 우리 서울만큼이나 마닐라는 교통지옥이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12시 40분발이라 마음이 괜시리 급해졌다. 만일 출국수속이 까다로우면 또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 공항에 들어서는 것부터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있었다. 운전사의 기지가 막히는 길을 우회하여 바로 공항 2층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 동안 우리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사모님께도 작별을 고했다.
출국수속은 예상대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공항 내부가 좁은 까닭일까? 공항에 들어서는 것부터 줄서기가 시작이다. 긴 세겹이나 되는 줄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데만도 근 1시간이나 들었다. 반면에 통관 절차는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이번엔 모두 무거운 자기 가방을 기내에 들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약간의 시간 여유를 갖고 면세점들을 둘러보았다.
주로 기념품점들을 다녀 보았는데 우리가 시장에서 구입한 것들과 똑같은 물건들이 있었다. 가격은 4배나 비쌌다. 다들 시장에서 더 많이 사올걸 하고 후회를 하는 눈치다. 나는 부모님께 드릴 말린 망고를 몇 개를 사들었다.
비행기에 오른 시간은 12시 20분. 정확히 40분에 이륙했다. 4시간을 비행해야 한국에 도착이다. 가는 동안 아내에게 줄 선물을 기내에서 주문하고, 식사하고,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내용들을 쓰다보니 4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다. 5시 10분 인천 도착. 거꾸로 이번엔 1시간이 손해다.
6시 30분이 되어서야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짐이 늦게 나와서였다. 항상 짐이 문제라니깐....
서둘러 공항 버스를 찾아서 올랐다. 역시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이 공항 버스를 대기시켜 두셨다.
일원동까지 가는 버스(609번)가 우리가 탄 직후 출발했다.
5일만에 도착한 한국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거리에 달리는 눈에 익은 국산차들. 갖가지 아름다운 조명을 품어대는 한강의 다리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우리말로 통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금요일... 찬양집회를 늦지 않게 가야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버스 노선이 집중적으로 막히는 길들만 골라서 다녔다. 반포 고속터미널 -> 논현동 -> 강남역 -> 양재역 -> 대치역 -> 일원동..... 반포에 도착한 시간이 7시 30분... 이대로라면, 가장 막히는 금요일을 감안하면 교회엔 겨우 8시 30분 정도에나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원동에 내려서 걷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더 걸릴 수도 있겠다. 무지 배가 고픈데, 밥 먹을 시간도 없겠다. 투덜투덜.....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길은 잘 뚫렸다. 강남역에서만 조금 막혔을 뿐, 8시 10분 정도 일원동에 도착했다. 다시 하나님께 감사 드리며 가방을 끌고 올라가는데, 앗 사거리 코너에 교회차가 서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은 정말 끝이 없구나.....
8시 15분 교회에 도착. 모두 교회당에서 기도를 드린 후 성집사님이 준비하신 저녁을 먹고 금요 찬양까지 잘 준비해서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이번 짧았던 일정은 이렇게 모두 마무리가 되었다.
이 짧은 일정동안 우리가 한 건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준비에서부터 출발, 모든 일정들, 건강, 식사 그 세세한 것 하나 하나를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 하셨고 그것을 느끼게 하셨다.
이번 팀원들은 약간 달라질 것이다. 겉모습은 그대로일지 모르지만.
믿음은 갈등의 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번 선교 여행처럼 어렵지만 과감하게 현실보다는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께 의탁한 팀원들.....
어떤이는 돈 때문에, 어떤이는 직장 때문에, 어떤이는 장래의 불투명함 때문에.....
각자 다른 짐들을 둘러매고 끙끙거렸지만 결국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계시다는 것....
그 열매를 따 먹어보지 못한 자들은 절대 논하지 말라.....
그 열매가 우리에게 주는 그 희열과 감사와 축복을.....
또 똑같은 갈등의 상황에 섰을 때에 이젠 좀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오늘도 나에게 물어보고 계신다.
'나를 가장 사랑하느냐?'
첫댓글 김동현집사님 감사합니다... 글을 너무상세히 잘 적어주셔서 읽으며 많은 읂혜를 받았습니다. 글정말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은혜를 새삼 느낌니다
03년..내 생에 최대의 날이었는데..흠..지금다시금 반성을..ㅜㅡㅜ;;;;;새록새록기억이나효!!!!나도 언능 준비해서 글겨야디...훼훼~~~
나두 청년ㅇ1도1서 그런 ㄷ1호┃ㄱ┡ 있으면 꼭 한번 가보구 싶어여 ㅇ1글을 ㅅ1상한다면 ㅇ1글은 상을 꼭 바ㄷ┟야 할껏 같다ゴゴ 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