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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일감하고 (거창 마리 - 함양 마천)
코스거리 (총 47k)
마리 - 안의 - 지곡 - 함양 - 구룡삼거리(청학산) - 오도재 - 금계 - 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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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떠보니 8시 10분 전이다. 거창행 8시 20분 차를 예매해 두었는데 큰 일이다. 엄청 서둘러서 겨우 동서울터미널에 닿았다. 어제 밤 2시 경에 배낭을 꾸리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늦잠을 잔 것이다. 버스에서 잠 좀 자려는데 뒤에 앉은 중년 아줌마 2명이 서울에서 거창까지 3시간 반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끊임없이 떠들어댄다. 이건 ‘아줌마의 힘’이 아니라 몰상식에 가깝다. 정말이지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꾹꾹 참고 거창까지 잘 버텼다.
이번 코스는 땜빵코스다. 독자들은 아마도 좀 어리둥절할 것이다. 거창군 마리 이전 코스가 늦가을이었는데, 갑자기 한겨울 얘기가 나오니 말이다. 그 자초지종은 이렇다. 그러니까 지난 가을 마누라가 지리산 단풍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마리에서 마천까지의 코스를 건너 뛰고 바로 지리산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리고 지지난 주에는 또 지리산에 눈이 내리는 바람에 지리산 눈 구경 간다고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까지 트레킹을 했던 것이다. 그러는 바람에 마리에서 마천 코스를 이제야 가게 된 것이다. 12시 10분에 거창시외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바로 동남추어탕집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저 기억하세요?”
“지나가는 손님이 한둘이 아닌데 지가 어떻게 압니꺼?
“지난 가을철에 와서 추어탕 먹었잖아요?”
“아, 그랬어요?”
“지난 번에 추어탕이 정말 맛있어서 다시 왔어요.”
“정말입니꺼. 감사합니더.”
아줌마는 추어탕을 뚝배기에 한 그릇 가득 내오고, 난 그걸 한 방울도 안남기고 맛있게 다 먹었다. 값도 싸다. 5천원이다. 난 서울에서 인기가 좋은 국물이 걸죽한 남원식보다는 청도나 거창식 추어탕을 더 좋아한다. 국물이 맑고, 맛이 담백하고, 뒷맛이 깔끔하기 때문이다. 밑반찬도 깔끔한 게 맛깔스러웠다. 나는 이 집 때문에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선입감을 떨쳐버리게 되었다.
트레킹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택시를 탔다. 지난 번에 여행을 마친 마리까지 다시 나간 것이다. 버스도 있는데 일요일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택시를 탄 것이다. 거리도 9킬로미터 정도로 가까운 편이니까. 트레킹을 하면서 서울 가는 교통편이 연결되지 않은 중간에서 여행을 마치면 이런 점이 불편하고 비용이 이중으로 더 든다.
택시기사님이 안의까지 지름길이 있다고 가르쳐주신다. 지금 공사 중인 미개통 도로로 가면 더 가깝다는 것이다. 안의에서 마리까지 달리는 3번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도로였다. 포장까지 다 끝내고 표지판 등 마무리 시설만 남겨두고 있었다. 그 길은 거리도 가깝고 차도 안다녀서 좋았지만 여행 맛은 나지 않았다. 마을과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영 걷는 맛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5킬로미터 쯤 가다가 옛날 길로 내려와서 걸었다. 지나다니는 차에 신경이 쓰이지만 길 가에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과 사람의 흔적으로 볼 수 있어서 훨씬 더 좋다. 역시 여행의 본질은 사람(현지인)과 사람(방문객)의 만남이다.
길 가에 작은 사과과수원이 하나 있다. 과일을 모두 따내고 나뭇잎이 떨어진 사과나무가 앙상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죽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떤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 내면에 감추어진 어떤 강인한 힘. 단단한 실속.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랄까. 아무튼 우연히 발견한 ‘겨울나무의 진실’ 같은 것이었다. 여기 거기에 딱 들어맞은 시 한 수 감상하고 가자.
겨울나무의 진실 - 정대구
겨울나무의 진실은
남성적이다.
여자야 어디 견디겠느냐.
사내대장부인 나의 참뜻을 알려거든
설한풍에도 빳빳하게 서있는
겨울나무를 보아라.
일체의 장식을 떨구어 버리고
가슴팍을 가는 칼질 소리
선명하게 드러내 놓고
버티어 버티어서는 골격
겨울나무의 진실을 보아라.
절제를 보아라.
그 이상 사나이가 무슨 가식이 필요한가.
여자야, 견디겠느냐.
최소한의 표현으로
나는 너에게
살 한 점 붙지 않은
순 뼈로서 말 할 뿐이다.
마리에서부터 10킬로미터를 걸어 안의마을에 닿았다. 유홍준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애정 어린 관심을 가졌는지 알 거 같다. 멀리서 안의면 소재지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크게 실망을 했다. 멀리서 아파트 두 동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시골에 웬 아파트? 더구나 안의마을에? 이런 실망감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 아파트는 새로 난 외곽도로에 있었고, 옛날 안의마을은 정말 운치가 있었다. 나는 교동마을로 접근했는데 마을 앞에 큰 냇물(지우천과 안의천)이 그렇게 멋지게 흐르는 마을은 처음 보았다. 갈대가 하늘거리는 얼은 강물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수 백 년 된 고목 버드나무들은 강 양쪽으로 서서 흐르는 강물을 말없이 지켜보고 서있었다. 수 백 년 동안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 안의현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도 저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내가 강가에 난 작은 길을 따라 내려왔기 때문에 이런 멋진 경치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새로 난 외관도로를 따라 면소재지로 들어왔더라면 이런 장면을 놓쳤을 것이다.
‘허삼둘가옥’에 들렀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그 집의 공식명칭(안의 금천리 윤씨 고가) 밑에 작은 글씨로 ‘허삼둘가옥’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문화답사기’를 서너 번 정도 읽었기 때문에 그 책의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모르지만 허삼둘가옥이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옥은 안의성당 옆에 있었다. 그런데 골목길에서 보기에도 전혀 관리를 안한 폐허처럼 보였다. 대문을 지나 안채로 들어가 보았더니, 대여섯 개의 건물 중에 안채와 제일 큰 바깥채가 불에 거슬려 있었다. 완전히 타버린 것은 아니고 기둥과 서까래가 까맣게 거슬려 있었다. 이런 귀한 집을 누가 불태우려 했을까? 나오는 길에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에게 내가 “집이 불에 탔네요” 했더니 “불 나서 배러버렀어”라고 말씀하시면서 혀를 차신다.
그 바로 옆집이 안의성당이다. 나는 천주교신자이지만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마당 한 켠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상이 내 발길을 잡아 끌었다. 짙은 회색빛이 나는 큰 돌 조각을 이어 붙여서 직사각형을 만들고, 그 안에 하얀 마리아상을 모셔놓았다. 저렇게 모신 성모상은 처음 보았다. 신기하고 참 이쁘다. 나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밥 먹을 때도 안 그어서 우리 딸과 마누라에게 맨 날 구박받는 사람이.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왜 저렇게 돌로 둘러 쌌을까? 그런데 이틀 동안 걸으면서 그 의문이 자동으로 풀렸다. 함양군 도로변에는 많은 비석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한결같이 비석을 돌로 쌓고 있었다. 아마도 함양지방에서는 비석을 만들 때 그 테두리를 돌로 둘러싸는 풍습이 있는 것 같았다. 포교할 때 토착화 현상이 강한 천주교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성모상을 세울 때도 돌로 그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성모상을 넣어 놓은 것이다. 아무튼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성모상으로 안의마을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의마을에는 특이한 건물이 또 하나 있다. 면사무소 건너편에 있는 안의면 보건소. 옛날 한옥이다. 그것도 새로 지은 집이 아니라 오래된 집을 개끗하게 단장해서 입주한 것처럼 보였다. 난 건물을 보는 순간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비녀를 꽂고, 하얀 모시저고리에 까만 치마를 받쳐 입은 원불교 정녀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산업화 이전의 시골 가계들이 생각났다. 아쉬운 점은 내가 좋아하는 연암 박지원이 1792년부터 5년간 현감으로 근무했던 안의현청 자리 그러니까 안의초등학교에 서있는 박지원사적비를 코 앞에 두고도 깜빡 잊어버리고 그냥 와버린 것이다.
허삼둘가옥에서 나오는 길에 안의면 농협 앞에서 붕어빵을 사먹으려고 포장마차 앞에 섰다. 그런데 주인이 없다. 내가 아까 들어갈 때 분명히 어떤 아가씨가 빵을 굽고 있었는데. 오댕국물과 함께 파는 포장마차였다. 화장실에 갔나? 에라 모르겠다, 일단 먹고 보자. 진열장 안에는 붕어 다섯 마리가 옆으로 헤엄치는 것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주인도 없는 포장마차에서 손을 안으로 집어 넣어 붕어 한 마리를 잡아 먹었다. 또 한 마리를 잡아 먹고 있는데 머리가 덥수룩한 총각이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머리가 길어서 내가 여자로 착각했나 보다. 천원에 네 마리나 준다. 서울은 두 마리인데.
길을 나서는데, 날씨가 차다. 하늘은 파랗게 맑은데, 차가운 바람이 볼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등산복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쓴다. 경남 쪽은 지자체가 부자라서 그런지 갓길이 참 잘 되어 있다. 24번 도로는 어떤 곳은 갓길이 1미터는 족히 된다. 다른 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갓길이다. 당연히 걷는 사람들에게는 좋다. 싸이클을 즐기는 사람들도 좋을 것이다. 이 정도면 싸이클링에도 전혀 문제가 없겠다.
안의와 지곡 구간 도로에는 드문 드문 사과를 파는 마을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시목리에서 3명의 할머니가 길가에 간이가게를 만들어 놓고 사과를 팔고 있었다. 한 할머니가 사과를 맛보고 가란다. 바쁘다고 그냥 지나치는데, 다음 할머니가 또 잡는다. 그 자리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쓱쓱 깍아서 먹으라고 준다. 걸으면서 힘내라고 격려해주시면서. 돈을 드리려고 하니까 손사레를 치면서 그냥 먹으란다. 후한 인심이다. 그런데 사과가 정말 달다. 꿀사과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추운 날에 걸으면서 먹는 사과 맛이 참 좋았다. 서울 가면 한 박스 주문하려고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를 적어 왔다. 010 - 9562 - 0818. 할머니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다.
한참을 더 가다가 엉뚱한 짓을 했다. 15킬로쯤 걷자 몸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엔돌핀이 막 분비되는 모양이다. 보통은 10킬로쯤 걸으면 흥분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라톤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많이 걸었으니까 뛰는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에 참가했던 오지여행가 유지성씨가 내 다리를 보더니 딱 말아톤 다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마라톤 연습 삼아 뛰기 시작했다. 한 2킬로를 그렇게 뛰었나보다. 심장은 전혀 괜찮은데, 다리에 무리가 올까봐 그만두었다. 내일 모래까지 걸어야 하니까 오버하면 안된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지곡면사무소 앞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시간은 6시가 다 되는데 7킬로나 남아서 도저히 함양까지 걸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여름에는 무리를 해도 되는데, 겨울에는 해가 지면 금방 어두워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지곡면사무소도 2층 한옥이다. 그런데 이건 뽕짝 한옥이다. 콘크리트 건물이라서 하나도 이쁘지 않다.
함양읍내로 들어와서 모텔을 잡았다. 이름도 현대식이다. 디오르모텔. 지난 번 인월에서도 그랬는데 이쪽 모텔들이 참 깨끗하고 따뜻해서 좋다. 온수도 콸콸 쏟아진다. 특히 발과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마사지를 정성들여 했다. 내일도 하루 종일 걸어야 하니까. 오늘 반나절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걸어준 걸 고마워하면서. 욕실에서 뜨거운 물로 온몸을 지지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추어탕 집을 찾으려는데 도무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물메기를 먹으러 매운탕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복지리를 먹으란다. 물메기가 없다고. 나와서 갈비탕을 먹으려고 온달성이라는 고기집에 들어갔는데 또 갈비탕이 없단다. 여기서는 묶은지찌개를 먹으란다. 또 나오기도 뭐해서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반찬이 나오자 내 눈을 의심했다. 경상도 음식이 이렇게 깔끔하고 맛있었나? 찌개도 맛있고, 반찬도 모두 맛깔스러웠다. 이 집과 거창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는 동남음식점 땜에 경상도 음식에 대한 내 선입견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여관을 나와 버스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잡았다. 어제 여행을 마치고 버스를 탄 지곡면사무소 앞으로 가기 위해서다. 일요일 아침이라 버스가 언제 올 지도 모르는데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오늘은 좀 많이 걸어야 한다. 마천까지는 가야 한다. 한 30킬로미터쯤 될까? 면사무소에 들어가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에서 일을 보았다. 어제 뽕짝기가 있는 건물이라고 비웃고선 정작 그 신세를 지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일요일인데도 직원이 3명이나 나와 있었다. 9시 반에 출발했다. 함양까지는 7킬로미터.
11시 반에 함양에 도착했다. 인월로 가는 외곽도로를 선택했는데, 그 길이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가는 코스다. 점심을 먹고 가려고 식당을 물색했다. 수많은 음식점 중에서 마침 추어탕을 파는 집이 하나 있다. 나는 청도추어탕과 거창추어탕, 인월(남원)추어탕 그리고 함양추어팅을 비교해보기 위해 일부러 추어탕을 선택한 것이다.
송월식당. 조명준 할머니가 주인이다. 딸을 계속 낳아서 아버지가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어주었단다. 내가 식당 문을 열거 들어가서 몇 번이나 주인장을 부를 때까지 할머니는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할머니는 자기 추어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추어탕은 맛이 있었다. 거창과 좀 다른 건 지피가루 외에도 방아잎을 넣는 것이었다. 겨울엔 방아가 비싸서 요즘은 비닐하우스로 재배를 한단다.
그런데 요리법이 약간 차이가 있었다. 청도나 거창(경상도식)과 인월(전라도 남원식) 중간 맛이었다. 함양은 거창과 인월 중간 쯤에 위치한다. 그러니까 문화와 마찬가지로 음식도 서로 영행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제 나는 네 지역의 추어탕 만드는 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서울사람들이 좋아하는 남원식은 전분가루와 들깨를 넣어 국물이 걸쭉하다. 지피가루나 방아잎도 넣지 않는다. 청도나 거창식은 전분가루와 들깨를 넣지 않기 때문에 국물이 맑고 시원하다. 대신 지피가루나 방아잎을 넣어 향을 돋군다.
누군가 말했듯이 음식은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을 생산하는 자연과 풍토, 그 재료를 다루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음식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맛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구룡리 입구에서 콩잎곰국을 내는 청학산(靑鶴山)이라는 음식점을 만났다. 건물이 예사롭지가 않아서 들어가 보았다. 차와 식사를 판다고 간판에 씌여 있어서 차나 한잔 마시려고 들어가 보았다. 식사 시간이라서 차는 하지 않는단다. 나는 점심을 함양에서 먹고 오는 길이라 식사는 할 수 없었다. 본관이 한옥으로 아주 아담하고 단아했다. 지금껏 저런 규모에 저렇게 단아한 한옥을 본 적이 없다. 집에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야외 화장실도 절집처럼 깔끔하면서도 운치있게 만들어 놓았다. 밖에서 드나드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대나무로 발을 만들어서 앞을 적당하게 가려놓았다. 저렇게 사려깊게 손님을 배려하는 마음씀씀이라니. 주인장을 안보아도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음식점의 외양만 보고 기분이 좋아지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차를 못 마시고 나와서 서운하기는 하지만. 샘물도 돌확 세 개를 서로 높이가 다르게 배열해 놓고 대나무통으로 낮은 곳으로 물이 떨어지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더 멋진 건 그 샘물가 건물 대들보에 옥수수를 하나를 댕그러니 매달아 놓았다. 나오면서 명함을 하나 들고 나왔는데, (구) 할개미밥집으로 되어 있고, 주인은 해인이라는 분이다. 다음에 올 때는 음식을 한번 맛보고 싶다.
청학산을 나와 고민이 생겼다. 인월로 가는 24번 도로와 지리산조망공원을 거처 마천으로 빠지는 1023번 도로가 갈라지는 구룡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정은 원래 인월로 해서 산내까지 가는 코스였다. 그런데 삼거리에 있는 간판에 ‘지리산 가는 길’이라고 되어있고, 이 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바뀌어 코스를 바꾸게 된 것이다. 어제 집을 나오면서 5만분의 1 지도가 안보여서 그냥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내가 가지고 온 25만분의 1 지도에는 그 도로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집에 와서 이 글을 쓰면서 보니까 5만분의 1 지도에는 1023번 도로가 정말 자세하게 잘 나와 있었다. 지안치를 넘어, 오도재(해발 773미터, 지리산 제1관문)까지 계속 고개를 올라가다 오도재부터 마천까지는 줄곧 고개를 내려가는 15킬로미터 쯤 되는 길이다. 삼거리에 서서 이리갈까 저리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이 길을 택하게 되었다. 이 때가 오후 2시다.
지안치를 넘는데 S자 커브길이 나온다. 정면에 정상이 있고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S자로 올라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믄 길이다. 지안치를 넘어 휴천으로 빠지는 삼거리에서 다시 한번 돌아갈까 망설였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천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치하이킹을 시도 했으나 차가 몇 대나 그냥 지나친다. 할 수 없이 계속 올라가기로 했다. 살구장이부터 오도재 정상 까지는 상당히 가팔랐다. 길은 포장되어 있었지만, 눈을 녹이느라 뿌려놓은 모래가 길가에 수북히 쌓여 있어서 차가 지나갈 때마다 먼지를 폴폴 날렸다. 발도 미끄러지고. 정말 걷기에 기분 나쁜 길이었다. 그렇다고 무슨 특별히 뛰어난 경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길을 무슨 이유로 아름다운 길로 선정했지? 이렇게 투덜대면서 계속 올라갔다. 막판에는 정말 힘들었다. 가다 쉬다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너무 목이 말라 물이나 차 좀 마시려고 들르는 집마다 모두 비어 있고 개들만 짖어대고 있었다. 겨울철이라 산을 찾는 손님이 별로 없어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살구장이 부근에서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었다. 그 앞에 있는 간이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무덤까지는 내가 서있는 길에서 불과 200미터 거리다.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거기까지 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구룡삼거리 입구에 서있는 이정표를 보았을 때는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내 몸이 힘드니까 만사가 귀찮아지는 것이다. 도보여행의 한계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초라한 무덤 두 개와 뽕짝기가 있는 변강쇠와 옹녀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그걸 보고 그리 큰 아쉬움은 없었다. (이번 여름에 아내와 함께 500미터 쯤 올라가서 변강쇠와 옹녀의 무덤을 확인했다.)
오도령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올라와 있었다. 오도령은 옛날에 삼봉산과 법화산을 잇는 준령으로 고개를 넘나드는 행인들이 멈춰 소원을 빌었던 성황당이 있던 곳이란다. 또한 하동 남원 함양 산청지방의 물산이 서로 넘나들던 교통과 상거래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어떤 산악회 회원들은 30-40명이 모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문경새재에 있는 제3관문을 본떠서 ‘지리산제1관문’이라는 현판을 단 우람한 문이 하나 떡 버티고 있다. 지은 지 얼마 안되었는지 문 색깔이 생경해 보였다. 그런데 내 관심을 끄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라 매점 아줌마였다. 정말 미인이었던 것이다. 이런 첩첩산중에. 지난 겨울 운두령 정상에 있는 매점에도 이런 미인이 둘씩이나 나를 반겨주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왜 고개 정상에는 미인들이 많지? 민박을 물으니 자기 집에서도 민박을 한단다. 그런 아줌마네 집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아직 4시 밖에 안되었고, 내일 마천에서 음정까지 들어갔다가 서울로 돌아가려면 아무래도 마천까지는 내려가야 할 것 같았다. 아쉽지만 민박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했다.
오도재에서 1킬로미터 쯤 내려오자 지리산조망공원이 보인다. 조망대에 서서 앞을 바라보니 천왕봉부터 반야봉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 봉우리들을 어떻게 다 아느냐고? 조망대 앞에 전체 조망도를 그려 놓아서 그림과 실제 전경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왼쪽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하봉, 중봉, 천왕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촛대봉, 영신봉, 칠선봉, 덕평봉, 벽소령,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삼도봉, 반야봉까지 그려져 있다. 장관이다. 장엄하다. 신비롭다. 왜 관광공사에서 이 ‘지리산 가는 길’을 ‘한국의 걷고 싶은 길 100선’에 포함시켰는지 이제 알 거 같다. 내내 불평하면서 고개를 올라왔던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길이다.
지리산 전경을 보면서 느낀 것은 블루마운틴(Blue Mountains)이라는 산 이름에 대한 기원이다. 시드니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블루마운티이라는 산이 있다.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관광명소이다. 그 산은 멀리서 보면 푸르스름하게 보인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개척시대에 멀리 산이 보이면 그냥 블루마운틴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내가 본 석양의 지리산 모습도 푸르스름한 블루마운틴이었다. 그 산에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움에 나는 그저 “정말 멋지다” “참 좋다”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처럼 지리산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의 경이로운 모습을 등산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오도재와 조망대에는 조선시대 때 지리산을 찾았던 명사들의 시비를 만들어 옛사람들의 지리산 방문소감을 일깨워 주었다. 김종직, 김일손, 유호인, 강희맹, 신숙주 등 열대여섯 개의 시비가 여기저기 서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모두 읽어보고 싶었으나 김종직과 유호인, 강희맹, 신숙주, 최익현 등의 시만 읽어본 것이 안타깝다. 그 중 강희맹의 글에 정이 간다.
내 고향 - 강희맹
지리산 높이 솟아 올라
만길이나 거대한데
그 산속에 묻힌 옛고을
함양이라 이르네.
화잠사 옛 절터 지나서
엄천으로 가는 길에
푸른 대밭 띠집 있는 곳
거기가 내 고향일세.
마천까지는 계속 신나는 내리막이다. 천왕봉을 눈 앞에 두고서 걷는 정말 아름다운 길이다. 촉동과 등구마을을 거쳐 고개를 내려오다가 창원에서 내 나이 가량의 중년 부부를 만났다. 길 가에 사는 토박이 주민이다. 1023번 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사람들만 다니는 소로길이 구룡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마을 사람들은 함양읍내 장터까지 걸어서 다녔는데 왕복 60리길이었다고 한다. 새벽에 집을 나서서 함양 우시장에서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몰고 집에 돌아오면 캄캄한 밤이 되었다고 한다. 달이 떠있을 때는 달빛을 벗삼아 밤길을 걷기도 하고. 두 부부와의 대화를 뒤로 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엄천강가에 있는 금계에 이르자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이제 2.6킬로미터만 더 가면 마천에 닿는다. 그런데 어둠이 시작되기 직전에 이상한 경험을 했다. 누렁이 한 마리가 내 길을 안내하고 나섰다. ‘전설의 고향’에 보면 어떤 백여우가 길가는 나그네를 유인해서 잡아먹는다는 내용이 많은데, 꼭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잡아먹히는 스토리가 아니고 어떤 절대자가 아니면 산신령이 이렇게 밤길을 걷는 나를 가상히 여겨서 안내자를 하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누렁이는 나를 처음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면서 반갑게 내 주위를 맴돌았다.
통일전망대에서 여기까지 수백 마리의 개를 만났지만 한 번도 나를 반겨주는 개는 없었다. 산골마을에서는 대개 집을 지키기 위해서 개를 기르기 때문에 길손이 지나가면 큰 개 작은 개 할 것 없이 온통 무섭게 짖어대는 것이 보통이다. 나는 개를 키우기 때문에 개들이 사람에게 보이는 호의적인 동작과 공격적인 동작을 구분할 줄 안다. 또 생김새가 털빛이 윤기가 나고 살이 토실토실하게 붙은 걸로 봐서 집에서 기르는 놈이었다. 몸집도 크고 잘생긴 놈으로 사람으로 치면 얼짱 몸짱이었다.
이 놈은 내가 아무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쳐도 말을 듣지 않고, 내 앞에 서서 나를 인도했다. 이 놈이 길을 이쪽 저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가기 때문에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차들에게 치일 뻔한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운전사들은 개를 묶지도 않고 다닌다고 나를 욕했을 것이다. 마침 내 뒤에는 어떤 중년 사내가 금계부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이에게 개주인이냐고 물어 보았다. 아니란다. 그 놈은 금계에서 마천까지 그렇게 나를 안내했다.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내일 동서울행 버스표를 예매하기 위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일을 마치고 나오니 그 누렁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이 잡아먹으면 어떻게 하지? 이 추운 겨울밤에 잠은 어디에서 잘까? 온갖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어찌하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을.
사진도 찍어두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캄캄한 사진 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서 노출이 부족해서 사진이 아예 찍히지 않은 것이다. 어둡기는 해도 개가 어느 정도 보일 때 찍었는데도 이렇게 새카맣게 나오나? 내가 카메라를 수동으로 찍는 바람에 후레쉬도 터지지 않은 것이다. 이건 집에 와서 사진을 저장하면서 생각난 것이다. 증거가 없어진 셈이다.
누렁이를 앞세우고 가는 길은 혼자 걷는 길보다 훨씬 덜 외로웠다. 까맣게 보이는 앞 산 위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초승달 중에서도 저렇게 가늘고 이쁜 달은 정말 드물게 본다. 양귀비의 아미(눈썹)가 저렇게 가늘고 아름다웠을까? 그 초승달 약간 왼쪽 위에 밝은 별 하나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주위에 다른 별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정말 초승달이 찍혔다. 새까만 산등성이 위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걸려 있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그 별은 금성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터키와 파키스탄 국기에도 초승달과 별 하나가 그려진 거 같다.
그런데 그 초승달을 찍다가 이상한 사진을 건지게 되었다. 사실 별이나 달 등을 야간에 찍으려면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노출시간을 길게 주어야 한다. 하지만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야경을 찍다보니까 카메라가 흔들려 산 아래 동네에서 비치는 불빛들이 산불이 나서 산을 타고 번지는 것처럼 신기한 사진이 나오게 된 것이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위아래로 비스듬히 움직이면서 마치 불꽃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긴 사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실수를 한 사진이 오히려 초현실적인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 셈이다.
6시 반에 마천에 도착했다. 다리가 너무 아파 더 걸을 수도 없다. 이번 여행에는 유난히 다리가 많이 아프다. 마천에서 저녁을 먹고 강 건너 ‘다리목여관’에 짐을 풀었다. 앞에 엄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어 그런 이름을 붙였나보다. 내 고향인 정읍지방에서도 다리를 다리목이라고 부른다. 방은 뜨끈뜨끈했다. 온수도 잘 나왔다. 방이 너무 뜨거워서 자다가 잠을 깼다. 신혼 첫날밤이 생각난다. 우린 신혼여행 때 오색약수터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민박집 주인장이 날씨가 춥다고 장작불을 얼마나 때댔는지 앉아있지도 못할 정도로 방이 뜨거웠다. 이런 방에서 첫날밤을 치르다가는 마누라 엉덩이가 다 익어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첫날밤을 그냥 보내기는 너무 억울해서 솜이불을 두 겹으로 펴놓고 우린 첫날밤을 즐겼다.
목이 말라 캔 커피를 마셨는데 그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텔레비전을 켜니 앙코르 TV문학관으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상영 중이다. 허생원과 조선달의 대화 중에 허생원이 이런 말을 한다. “사시사철 뚜벅뚜벅 걷는 게 이젠 지쳤어.” 나도 언젠가는 걷는 게 지쳐서 이 트레킹을 그만두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8시 반이다. 서둘러서 여관을 나왔다. 지난 번에 트레킹을 시작했던 음정까지 들어갔다 오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음정마을까지는 약 6킬로미터로 천천히 걸으면 두 시간 거리다. 마침 지난 번에 라면을 끓여준 차영임씨가 집에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곶감 한접(100개)을 3만원에 샀다. 지난 번에 정보화센터에서 우리 부부가 몰래 일을 보고 나온 죄값을 치르는 것이다.
12시 20분에 버스를 타고 마천으로 다시 나왔다. 어제 저녁을 먹은 마천흙돼지집에서 돼지고기국밥을 다시 먹었다. 그런데 여기는 국밥에 김치와 콩나물을 넣는다. 생소한 스타일이지만 맛있게 먹었다. 지리산 기슭에 있는 집에서 직접 기르는 돼지라고 해서 그 식당에서 삼겹살과 찌개거리로 3킬로를 5만 7천원에 사왔는데 고기 품질이 형편없다. 공정여행이라고 해서 가능하면 현지인에게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또는 자연환경적으로 도움을 주는 여행을 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나 또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웬지 속은 거 같아서 기분이 씁쓸해진다.
오후 1시 반 차를 타고 인월, 함양을 거쳐 동서울에 5시 50분에 도착했다. 지난 번에 벽소령을 넘어 지리산을 통과 했어도 아직 미답구간이 남아 있어서 항상 찝찝했었는데 이번에 모두 답사를 마쳐 속이 다 시원하다. 인월에서 함양 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어린아이의 맑은 눈망울이 가슴에 남는다. (2010년 1월 16일 - 18일까지)
교통
동서울터미널에서 거창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9회 운행되며, 첫차는 08:30, 막차는 22:10.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걸린다. 남부터미널 거창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13회 운행되며, 첫차는 08:40, 막차는 23:00. 마천(백무동 출발 함양 경유)에서 동서울 가는 버스는 하루 7회 운행되며, 첫차는 08:20, 막차는 24:00. 소요시간은 4시간 걸린다.
숙박
거창 마리에서 함양 구간은 안의, 지곡 등 지방 소도시를 거치기 때문에 숙박업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함양부터 마천까지는 유명 관광지이기 때문에 민박, 팬션 등 다양한 숙박업소가 많지만, 동절기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업소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중간인 오도재와 바로 그 아래에 있는 지리산조망대에서는 동절기에도 민박이 가능하다.
식당
이 코스에서는 박지원이 현감으로 근무했던 안의에 있는 안의갈비탕이 유명하다. 30~4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안의 갈비탕촌에는 10여 군데의 식당이 맥을 이어오고 있다. 안의갈비탕은 끓이는 과정과 양념에 그 비결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선 도가니에 1년간 삭힌 된장고추에 잘 익힌 콩비지장과 청국장을 맛볼 수 있으며, 여기에 삭힌 콩잎과 장아찌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특히 알맞게 숙성시킨 깍두기와 시원한 국물김치는 갈비탕과 함께 안의를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안의원조갈비집(055-962-0666)이 유명하다. 함양에서는 연잎밥도 맛볼 만하다. 옥연가 함양점(055-963-0170)과 고속도로 함양휴게소점(055-963-8001)이 유명하다. 시외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송월식당의 추어탕도 맛이 좋다. 함양 구룡리에 있는 청학산 식당의 콩잎곰국도 별미로 인기가 좋다.
주변 관광지
이 코스에서는 지리산국립공원과 지리산조망대, 함양상림, 농월정관광지, 안의마을이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