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 浦
더 갈데가 없는 사람들이 와서
동백꽃 처럼 타오르다 슬프게 시들어 버리는 곳
항상 술을 마시고 싶은 곳이다.
잘못 살아온 반생이 생각나고
헤어진 사람이 생각나고
배신과 실패가 갑자기
나를 울고 싶게 만드는 곳
문득 휘파람을 불고 싶은 곳이다.
없어진 삼학도에 가서
동강난 산낙지 발가락 씹으며
싸구려 여자를 바라볼거나
소주 한 잔을 기울일 거나
목포를 생각하면 두고온 여인이 떠 오르 듯 문병란님의 싯귀가 떠 오른다.
일제시대 수탈의 역사를 지닌 서러운 항구이기 때문인지,
내 젊은 날 추억을 갯펄에 묻어두고 온 것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011.9.24(토) 점심을 거르고 목포로 향했다.
328㎞라고 조잘대는 그녀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면서 그렇게 여정은 시작되었다.
“마누라 두들겨 팬 날 장모 온다고”하필 문경에서 교육이 있어서 서방질 하고 아침에 여관을 나서는 여편내 처럼 마음만 바빴다.
마음은 벌써 가을과 함께 푸른 바다에 가 있는데 이 넘의 디젤차의 한계속도는 160㎞.
그래도 나의 IQ 숫자보다 두배 정도 높았지만 오른다리에 힘을 가했다.
상주->청원->경부->호남->서해안을 거쳐 부지런히 내 달리며 주린 배는 망각했다.
새로 생긴 압해대교를 STARBOARD에 두고 북항을 지나 좀 더 지나니 비릿한 갯내음이 차창으로 스며든다.
드디어. 도착
눈을 돌려 고하도를 바라보니 아마 화원반도로 향하지 싶은 BRIDGE는 아직 허리띠를 매지 못한 채 그렇게 눈 앞에 서 있었다.
담배한대 피워 물고 천천히 GANG WAY를 오르며 그 옛날 상륙 나갔다가 줄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르던 생각이 언뜻 스쳤다.
모두들 가을 뙤약볕이 강한 선미에서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레이더를 작동하고 1 키로바이트 정도되는 머리로 한 사람 한 사람 누구였던가? 하고 기억을 떠 올렸다.
어? 저 새끼 왔네. ㅋ
- 태어나서 기차 첨 타 봤다는 촌 넘
- 담배는 지가 가르쳐 놓고 지금은 안 피우는 넘
- 토요 스포츠 때마다 만나 쪽팔림을 무릅쓰고 홍교관 따까리 했던 넘
- 2리터 주전자에 물 받아 양치, 머리감고, 세수하고, 양말까지 빨던 넘
- 미팅때 여자 만나 선박에도 브레이크가 있다고 빡빡 우기던 넘
- 선배한테 게긴 죄로 분대보고 가서 같이 2박3일 동안 터지고 몇 대 더 맞았던 넘
- 과실점수 초과로 헌혈하고 선행점수 30점으로 땜빵하여 간신히 졸업했던 넘
- 가스나 꼬셔 한적한 절에가서 버스 끊겼다고 사기먼저, 사고나중 쳤던 넘
- 옴(전염병) 사건 때 솔잎으로 겨드랑이 쪼아서 귀가조치 받고 차안에서 만났던 넘
- 금방 앞에서 마주보고 식사했는데 10분 후에 또 앞자리에서 밥 먹고 있었던 넘
- 그럴듯한 제복에 007 가방안에 빤스만 가득 넣고 상륙하다 버스에서 가방 열린 넘
- 두명이 한꺼번에 면회와서 나 보고 한 여자 맡아 달라고 했던 넘
- 그해 초여름 휴교령 떨어져 우리집 가서 복실이만 두 마리 황천 보낸 넘
- 같이 실습하면서 처음 먹어본 바나나 맛에 반해 16개나 먹고 변비 걸렸던 넘
- 실습하면서 ANCHOR 자기가 잃어버려서 배상해야 한다고 애비한테 돈 타낸 넘
- 여관에서 CW(모르스 부호) 연습하다 간첩으로 몰려 경찰서 같다 온 넘
- 군대생활 중 어느 섬에서 만나 술마시다 함께 탈영하자고 꼬셨던 넘
- 우리나라에서 간첩선은 지가 다 잡았다고 뻥 치던 넘
- 파키스탄에서 술 가지고 가다 경비한테 걸려 감방에 갇혀 개 떡먹게 했던 넘
- 우연히 부산에서 만나 삐끼한테 걸려 함께 개털되어 아침에 같이 나왔던 넘
- 술집에서 선원수첩 보여주고 국제경찰이라고 공짜 술 먹은 넘
근데,
머리는 반백아니면 포경이고 이마는 밭고랑이고..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나 보다.
뱃사람의 인생을 풍파가 그렇게 만들었겠지.
각 테이블 마다 오른손을 마주잡고 소주 몇 잔에 우리는 금방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먼길도 아닌데 그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았나 보다.
처음보는 부인들도 공감대가 있기에 마음을 열고 함께 박수치는 모습을 보면서 만남은 세월을 초월하는 힘을 가졌음을 새삼 느껴보았다.
피땀으로 가꾼 흑미를 기꺼이 내어놓은 친구,
그리움을 홍어로 대신하던 친구,
밤을 새워 행사를 준비하던 친구,
바다를 건너 참석해준 친구,
강원도에서 대륙을 횡단하여 참석해준 친구,
아껴 모은 돈을 선뜻 내어주며 겸손해 하는 친구,
아내에게 옛날을 회상하며 눈물을 글썽이던 친구,
모두가 하나된 기쁨은 여명이 가까이 온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다음날.
이중식사가 유일한 소망이었던 그때를 회상하며 식사를 했다.
그리고 유달산.
헬렐레 고개를 너머 노적봉을 거쳐 1등 바위에서 내려다 본 다도해는 다시 중년을 설레임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산자락을 돌아 점심을 먹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짐을 준비했다.
친구!
건네는 담배 한 개피가 다음에 또 만나자는 무언의 약속임을 아네.
다시 악수를 나누며 눈빛을 교환하던 그 시간은 또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임을 알고 있네.
대반동 바닷가를 돌아나오는 길에 눈을 들어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면 그곳이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아니라 희망이었음을 깨달았다네
이제 50을 훌쩍 넘은 숫자로 살지라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함께 어깨 춤 추며 남은 여생 살아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라네. 우리 모두 건강하자.
이번에 세수대야 구경못한 친구들도 자주 만나자.
만나서 목포의 눈물을 함께 부르자. 뱃살 굵은 마누라 옆에 두고....
* 기삼이 부탁받고 급히 써놓고 싱가포르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