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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연자를 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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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로 연구위원
동양사상 중에 “정명(正名)”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이름에 걸맞아야 한다”는 말이다. 청소부는 청소를 깨끗이 잘 하면 되고, 학자는 열심히 연구하고 글을 쓰면 된다. 그리고 가수는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상 사람들은 자기의 이름값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듯하다. 가수면 어떻고 연예인이면 어떻고 음식점 사장이면 어떻고 모두 돈벌이를 위해 하는 것이지 아무러면 어떠랴 하는 식이다. 그러면 그 분야의 장인이 나올 수 없고, 한 사회의 문화적 역량이 쌓일 수 없다. 그러면 그 사회의 역사와 전통이 빛날 수 없는 것이다. 가수라는 이름을 얻었으면 노래를 잘 해야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하여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노래를 잘 불러야 가수다. 대중들도 그런 가수들을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저신뢰사회”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사람들이 서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각자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고 사는데 어찌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서로에 대한 신뢰는 자기 확신에서 나온다. 그 사회의 믿음은 “正名”에서 나오는 것이다.
일요일 할 일 없어 TV에서 “7080”이라는 프로를 봤다. 몇 번 봤지만, 별로 볼 게 없는 프로였다. 철 지난 가수들, 아니 대부분 7080 때 반짝하고는 사라졌던 퇴물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등장하는데, 그런 식으로는 우리에게 감흥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미사리나 문호리 주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2류들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할 수없이 90 가수들도 등장하는 경우도 많은데(김장훈, 신승훈 등) 이것 또한 “7080”과는 관계가 없이 시청률을 위해 하는 일이다. 7080을 기억하게 하는 대표적인 가수를 등장시키든지(조용필, 송창식, 산울림, 김수철 등) 최소한 가수로서 아직까지 활동을 지키고 있는 인물을 등장시켜야 할 것이다(인순이, 한대수, 김도향 등).
그런데 이번에 김연자가 등장하였다. 나도 이름은 잘 알지만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졌던 가수 김연자가 출연한 것이다. 물론 소식은 알고 있었다. 88년 올림픽 때 노래를 부르고는 일본에 건너가 거기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고. 당시 김연자는 이미자, 하춘화를 잇는 트로트계열의 이름난 가수였다. 단지 트로트계열이라는 이유로 포크를 선호했던 대학생층으로부터는 전혀 관심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도 그랬다. 대중들에게는 대단히 유명하고 노래도 잘 했지만, 7080은 김연자를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7080에 출연하여 김연자는 여러 곡을 불렀는데, 아쉽게도 자신의 노래는 부르질 않았다. 그러나 노래는 폭발적이었다. 역시 김연자다! 엄청난 가창력으로 무대와 관중을 한 번에 휩쓸어버렸다. 패티김과 김추자를 합쳐놓은 모양! 정말 대단했다.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역시 큰물에서 놀아본 인물은 달랐다. 그러나 아쉬웠다. 자신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으니. 7080이라는 프로가 주로 포크계열의 가수들이 출현해서일까. 22년만의 고국 무대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한 것일까. 다음 달 열리는 리사이틀에 와서 들으라는 것일까. 어쨌든 반갑고 기쁘다. 가수 같은 가수를 오랜만에 만나서일 것이다.
김연자는 28살에 일본에 건너가 50이 돼서 고국에 들렀다. 일본 최고의 엔카 가수로 이름을 날렸고 15번이나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김연자는 엔카 가수로 많은 해외공연도 했다. 쿠바, 브라질, 프랑스, 베트남 등에서 공연을 했다. 엔카, 스탠다드 팝, 성악, 판소리, 재즈 등 모든 종류의 노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더 높은 호응을 받았다. 가장 인상적인 해외 공연은 2번의 김정일위원장의 초청으로 평양에서의 공연이었다. 물론 이렇게 노래를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노력이다. 모두 연습의 결과이다. 본인의 얘기다. 가수라는 자기 “이름”을 지켰기 때문이다.
70이 넘은 패티김이 아직도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패티김이 대단한 가수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젊은 가수들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60이 넘은 조용필이 여전히 가왕이라 불린다. 조용필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 만큼 한국의 가요계가 한심한 것이다. 70이 넘은 신중현이 여전히 작곡을 하고 기타를 친다. 물론 당연한 것이다. 나이가 무슨 대수냐.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과의 공존이 문제다. 댄스음악 중심의 아이들만 존재하는 한국의 가요시장이 문제다. 그래서 김연자의 출현은 더더욱 사건인 것이다.
이제 한국도 근대라는 터널을 모두 지나온 발전된 후기대중사회다. 대중음악 역시 발전기, 중흥기를 거쳐 이제 완숙단계에 들어섰다. 트로트든, 포크든, 락이든, 힙이든 팝이든, 랩이든 어떠랴. 실험의 단계도 지나고 유행의 단계도 지났다. 문제는 장르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스타일의 가수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가수들이 필요한 것이다.
김연자도 시작은 무명이었을 것이다. 70년대 말 송대관이 ‘쨍하고 해뜰 날’ 녹음할 때 김연자는 뒤에서 코러스를 넣었다고 한다. 당시 송대관도 김연자도 완전 무명이었다. 훗날 송대관도 열심히 해 이름을 냈다(조금은 의심스러운 가수고, 여전히 노래는 한심하지만). 김연자는 더욱 노력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인정받을 만큼 열심히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노래 때문도 아니고 그 무슨 무슨 때문도 아니다. 그 사람의 인간적인 노력이다. 가수는 가수여야지 다른 무엇이 아니다. 7080이라는 아련한 추억과 향수에 기대어 막연히 프로를 제작하는 한, 그 프로는 몇 날 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추억과 향수도 필요하지만 단지 그 자체가 아니라, 정말 그 가수를 통해 추억하고 싶은 것이다. 이왕이면 너무 늦기 전에 가수 김추자도 돌아왔으면 한다.
“正名”이 사회에 안착되면 다스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수천년 전에도 인간들은 그런 지혜로운 생각을 했다. 각기 이름에 걸맞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가! 각자 자기를 확신하고 노력하는데 무슨 불만이 있을 것이고, 타인에 대한 괜한 눈치가 있을 것인가! 그러면 믿음이란 말도 필요없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니까. 그러면 다양성이나 개성이란 말도 필요없을 것이다. 이미 사태가 말을 넘어설 것이니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출처: DNI WEBZINE(제 88호. 2009.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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