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영화는 음성이나 음향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무성의 활동사진의 개념이었다. 환등과 사진을 기초로 정지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변화시켜 시각의 잔상을 일으켜 영화는 시작되었다. 음성 영화, 즉 토키시대를 맞기 전까지 30년 동안은 무성영화의 전성시대였다.
소리를 갖지 못한 이 30년 동안에 영화는 눈에 호소하는 영상(映像)만의 예술, 순수한 시각적 예술이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카메라로 기록하여 이것을 스크린에 투영하는 움직이는 사진, 즉 활동사진에서 출발한 영화는 초보적인 기술과 화술(話術)을 발견하면서 각 나라에서 발달했다.
유럽 쪽에서는 이런 활동사진이 문학, 연극과 결부되어 문예영화가 발전하게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멜리에스가 발견한 트릭 촬영에 의한 황당무계한 희극 <달세계 탐험, 1902>과<기즈공의 암살,1903>, 그리고 뒤마•졸라•위고 등의 원작을 대본으로 한 <킨, 1910> <참살자, 1910> <레 미제라블, 1912> <제르미날, 1913> 등이 만들어졌고, 또한 극작가에게 각본을 쓰게 하는 등 영화의 <예술화>가 시도되어 사라 베르나르 주연의 <춘희椿姬, 1911> <엘리자베스 여왕, 1912>이 만들어졌다. 한편 이탈리아에서는 <쿠오 바디스, 1911>를 비롯하여, 로마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극의 영화화로 철저한 형태의 예술화가 시도되어, 역사 스펙타클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독일에서도 프랑스의 문예영화를 따라 문예 작품의 영화화가 시작되어 <실러의 돈 까를로스, 1910>, A. 슈니츨러의 <연애삼매戀愛三昧, 1912>, H.H. 에벨스의 <프라하의 대학생, 1913>, 바그너의 악극 <탄호이저, 1914> 등이 영화화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14년까지는 세계영화의 90%를 프랑스와 이탈리아영화가 차지하고 미국영화는 유럽영화의 뒤를 쫓고 있는 형국이었다. 미국영화는 그 때까지의 모든 오래된 예술과 확연히 구별되는 모션 픽쳐(motion picture)개념을 중심으로 영화가 발전되었다. 문학•연극과는 다른 시각과 액션 본위의 서부극과 연속 활극 등이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1910년대부터 20년대에 걸쳐 만들어진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는 영화의 독자적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논리적 연속성이 없이 그 장면만의 액션으로 끝나는 액션코믹으로, 영화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구현하여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영화에의 이해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세계의 급부상과 보조를 맞추어 미국영화가 세계영화를 주도하게 한다.
영화는 소리를 내지 못한 30년 동안에 영상만으로 순수하게 시각적인 무성영화라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완성해 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소리나 말 등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하나의 독립된 예술이었다. 미국 무성영화의 가장 중심에는 천재 영화인 찰리 채플린이 있다.
그는 영국 런던태생의 희극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1912년 미국 순회공연 때 키스턴영화사의 M. 세넷 감독에게 인정을 받아 미국 영화계에 진출했다. 14년 첫 작품 <성공 겨루기> 이후 <베니스 해안의 자동차 경주>를 촬영하면서 <콧수염, 큰 구두, 헐렁한 바지, 실크햇에 지팡이> 등을 이용한 거지 신사의 분장과 연기로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모던타임즈, 1936>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취입하기 전까지 그는 토키영화를 거부하며 예술로서의 무성영화를 추구하였다. <City Light>는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이며, 곧 순수예술로서 타협지 않으려는 그의 마지막 의지가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가난한 서민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한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간의 이중성, 순수한 인간애보다는 경제적 풍요로움에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의 영화 속에는 체제속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숨쉬고 있고 끊임없이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예술혼이 춤추고 있다. 이런 노력은 시대의 수구 세력들에 의해 평가절하되기도 하여 52년 <라임라이트>의 런던 개봉으로 영국에 갔을 때 미국 보수파가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미국 재입국이 거부되기도 하였다. 미국을 떠난 지 20년 만인 1972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인 <City Light>를 통해 찰리 채플린의 휴머니즘과 자유애를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