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붙들고 있으려 한다.
잡고 놓질 않는다.
이미지를 느끼려 하고 쾌감을 얻으려 한다.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의 고통이 그런 습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 고통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듯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진통제가 갈수록 말을 듣지 않듯이
고통을 줄이고자 시도했던 강박행위들도
갈수록 고통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고통을 낳는다.
더 강한 진통제를 쓸수록 고통은 결국 더 커질뿐이다.
진통제가 고통을 없애는 해결책이 아니듯이
강박행위가 고통을 없애는 해결책이 아니다.
강박행위는 병의 증상이기도 하면서
고통을 없애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통제와 달리
강박행위는 세상사람들의 눈에 기묘한 행위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행위자체가 병이라고 규정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머리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강박행위(사고)는
남들이 보기에 민망할 것은 없으나
스스로가 한가지 생각에 얽매어 있으니
정작 해야할 생각이나 일들은 하지 못해서 괴롭고
한가지 생각에 얽매인 그 자체만으로도 괴롭다.
오히려 몸으로 하는 강박행위는
스트레스가 외부로 분산 표출되는 부분이 있어
내부에서만 맴도는 강박사고보다 덜 괴로운 면이 있다.
강박행위나 강박사고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시적인 감소는 있을수 있으나
진통제와 같이 점점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할 뿐이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쓰게 된
손쉬운 자구책이 습관화된 것이 강박증이다.
위의 이야기들은 강박신경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소위 강박정신증이라 말할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진리라고 할수 있는 평범한 사실에 대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다.
강박신경증은 그런 사실 자체에 대한 혼란은 없다.
느낌과 감각이 불만족스러워 불편함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만족을 느끼려 애쓰게 되는 것이다.
강박정신증은 당연한 사실을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해서
그것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단순히 퀴즈문제 하나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뇌리에 박혀 있지는 않는다.
삶과 존재의 틀을 이루는 중요하고 평범한 진리에 대한 혼란이 오면
그것은 뇌리에 박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자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 스트레스와 고통은 세상 그 무엇보다 큰 것이어서
강박정신증은 곧 강박신경증을 유발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할수 있다.
평범한 진리에 대한 혼란은 진정한 자아의 확립을 통해 잠재울수 있다.
거기엔 지혜가 필요하고 세상이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엔 소소한 깨달음들이 필요하다.
'내가 누군가를 해치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 생각인가.
기억상실증에 걸린것도 아니고, 자신이 한짓을 모른단 말인가.
당연한 사실에 대한 의심이 극에 달한 경우이다. 망상이다.
이것은 뇌의 어디가 이상이 있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뇌가 어디가 어떻게 이상이 있으면 그렇게 된단 말인가.
뇌는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연산을 하는 하나의 장기이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의심을 뇌가 창조하지는 않는다.
뇌는 인간에게 도구와 같은 것이지 창조성 그자체는 아니다.
뇌가 부정성을 창조하진 않지만,
부정적인 에너지, 부정적인 의식은 뇌에 그만큼의 데미지를 준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긍정적인 생각은 뇌 이전의 근원적인 의식에 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부정적인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엔 어떠한 의학적 지식도 통하지 않는다.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 이 두 에너지중에 어떤 것을 키우느냐는
전적으로 스스로의 의지에 달려 있다.
스스로 마음을 돌려서 긍정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것을 대신해줄 수 없다.
무엇이든 한순간에 바로 되는 것은 없다.
옷에 묻은 얼룩을 빼려면 몇번에 걸쳐서 빨고 행궈야 서서히 그 얼룩이 사라진다.
그 과정이 힘들다고 불평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줄수는 없다.
첫댓글 조은글 감사합니다^^
조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