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풍기(豊基)는 경상북도 북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영주시에 속해있다. 신라 때에는 기목진(基木鎭)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기주(基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안동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면서 독립하였으며, 1390년(공양왕 1) 은풍현(殷豊縣)을 병합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기천현(基川縣)으로 개칭하여 오다가 1450년(세종 32) 은풍(殷豊)과 기천(基川)을 합하여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1451년(문종 1) 문종의 태(胎)를 은풍현(殷豊縣)에 봉안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안동부 풍기군이 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 풍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풍기군이 영주군에 통합되었다. 1980년 영주시를 분리하면서 영풍군으로 개편되었고, 1995년 영풍군이 영주시에 통합되었다.
성씨의 역사
진씨(秦氏)는 중국 성씨로 황제(黃帝)의 후손인 고신씨(高辛氏)의 아들 계중(季仲)의 증손인 미(靡)의 16세손 희자(熙子)가 주(周)나라 선왕을 섬기면서 많은 공을 세워 웅주(雄州)를 받았고 진씨를 사성(賜姓)을 받았다고 한다.
풍기진씨(豊基秦氏) 시조 진필명(秦弼明)은 《풍기진씨족보(豊基秦氏族譜)》에 의하면 당나라 고종 때 병부시랑(兵部侍郞)에 올랐으며, 660년(태종무열왕 7)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소정방(蘇定方) 등과 함께 나당(羅唐) 연합군의 장수로 참전하여 백제를 멸망시킨 뒤 돌아가지 않고 신라에 귀화하여 태원백(太原伯)에 봉해졌다고 한다. 그의 15세손 진질명(秦礩溟)은 고려 의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으로 정중부(鄭仲夫)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 기주는 풍기의 옛지명)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진필명을 시조로 하고 풍기(豊基)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진질명의 형 진질직(秦礩直)과 진질황(秦礩晃)의 후대에서 삼척파(三陟派)과 영춘파(永春派)로 분적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선계랑공파(宣啓郞公派), 순천공파(順天公派), 산음공파(山陰公派), 감사공파(監司公派), 감정공파(監正公派), 제학공파(提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참찬공파(參贊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경상북도 예천군 하리면 송월리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리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일원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풍기진씨는 3,475가구 총 11,046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