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로베르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10 꼬르소 꼬모 서울 10층 특별전시장. 사진은 그가 찍은 세계적인 패션모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누드 작품이다. 제일모직 제공
《“기억은 필름에만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필름은 제 마음입니다.” 빛바랜 사진에는 추억이 흐른다. 필름에 새겨진 이미지는 각자의 기억 속에서 다르게 해석된다. 사진 속 피사체의 겉모습은 하나일 뿐이지만 그 피사체를 바라보는 마음은 제각각이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스티븐 마이젤, 피터 린드버그와 함께 세계 3대 패션사진 작가로 꼽히는 파울로 로베르시(64). 엘르, 보그 등의 명품 잡지는 물론 ‘크리스찬 디오르’ 같은 화장품 광고 사진으로도 유명한 그는 사진의 완벽함보다는 ‘모델과의 교감’과 ‘사실의 재해석’을 중시한다.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10 꼬르소 꼬모 서울’에서 만난 그는 “피사체인 모델과의 소통, 그들과의 추억과 새로운 현실의 발견이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사진전이 열리는 10 꼬르소 꼬모 서울 10층 특별전시장은 100여 점의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진은 흐릿했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과 색 바랜 듯한 사진도 보였다. 로베르시는 오래 보관하기도 어렵고 쉽게 흔들리는 단점이 있는데도 8×10인치 대형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고집스럽게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분명한 기록과 환상 사이 어디쯤에 있는 듯한 그의 인물사진은 몽환적인 느낌을 줬다.
첨단 사진기법이 등장하고 뛰어난 성능의 카메라가 속속 나오는데도 그가 폴라로이드를 선호하는 까닭은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다. 오랫동안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에겐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 파울로 로베르시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 그는 흐릿하고 불확실한 이미지에 매력을 느껴 30여년 전부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즐겨 사용한다. 제일모직 제공
실수도 마찬가지다. 색이 다르게 나오거나 흐릿한 사진이 뽑혀도 그는 ‘이건 잘못 됐어’라고 하기보다는 ‘왜 안 돼?(Why not?)’라고 받아들인다. 로베르시는 “사진은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현실을 재발견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라며 “폴라로이드는 사진을 현상하는 과정에서 가끔 예측하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 때가 있어 도전과 모험심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명확성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줘 1980년부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그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교감이다. 로베르시는 피사체의 겉모습이 아닌 심연을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패션사진도, 누드도 마찬가지다. 모델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작가에게 영감을 주고 사진에도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 패션사진을 찍는 자신을 ‘디자이너의 영감을 표현하는 연주자’라고 칭하는 그는 “(모델, 디자이너 등과의) 친밀한 감정 교류를 바탕으로 그들의 심연을 보여주는 사진은 현실을 반영하는 단순한 거울이 아닌 마법적인 거울”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누드 시리즈인 ‘누디(Nudi)’와 패션과 정물, 누드사진을 결합한 ‘리브레토(Libretto)’, 스튜디오 포트레이트 사진들로 구성된 ‘스튜디오(Studio)’로 이뤄졌다. 지난달 23일 시작해 5월 8일 끝난다. 누드 작품이 많아 19세 미만은 관람할 수 없다.
첫댓글 다른건 잘 모르겠고 그 "누드 모델과의 교감" 이란느 말이 마음에 드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