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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고장 무안은 4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회산 백련지’가 10만여 평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우아하고 청청한 자태의 백련과 함께하면 마음속에 달라붙는 아집과 욕심은 씻은 듯 사라진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즈음, 잠시 복잡한 마음도 추스를 겸 남도로 떠나보자. 서울에서 자동차로 네 시간 반(기차는 5시간 소요)이 걸리는 무안 여행. 가는 길이 다소 멀어 흠이지만 일단 발을 딛게 되면 내내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된다. 연꽃 피는 고장, 무안을 얘기할 때 자연스레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 많은 꽃 중에서 유독 연꽃이 많은 이유는 무얼까? 그 궁금증은 잠시 미뤄두고 지금부터 소개하는 ‘회산 백련지’에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산과 바다가 그리운 계절에 웬 연꽃이냐고 의아해할 분도 있겠지만, 여름의 끝머리에서 무안, 그 중에서도 연꽃자생지를 택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연꽃 한 송이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주고자 함이다. 혹자는 연꽃에서 군자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다분히 철학적인 의미가 섞인 말이지만,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세상에 내놓고 그윽한 향기까지 내뿜는 그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무안군 일로읍 복용리 회산 저수지에는 올 여름도 어김없이 백련(하얀 연꽃)이 만발했다. 6월에서 9월까지 연못을 곱게 장식하는 연꽃은 한꺼번에 피지 않고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피고 진다. 긴 타원형에 암술과 수술, 꽃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꽃말이 재밌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연꽃을 보면 절로 마음이 순결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꽃이라던가. 일찍이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 주무숙은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이 비어 사심이 없고, 가지가 뻗지 않아 흔들림이 없다. 그 그윽한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그의 높은 품격은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 이 글을 제대로 음미한 이들이라면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잔잔한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연꽃은 이런 꽃이다. 온갖 갈등과 모순과 부조리로 엮어진 우리들의 삶을 돌아볼 때 연꽃이 들려주는 향기로운 가르침은 참으로 웅숭깊다. 흙탕물 속에서 함초롬히 피어나 더욱 고결해 뵈며 하늘을 향해 부챗살 같은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연꽃은 불가(佛家)에서 더욱 귀하게 여기는 꽃이다. 비록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그 우아하고 청청한 자태며 은은한 향기는 다른 꽃들이 따라올 수 없는 연꽃만의 매력이다. 불교에서 극락세계를 ‘연방’이라고 하는 것은 연꽃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회산 백련지’는 둘레가 3km, 면적은 10만여 평에 달한다. 연못을 한 바퀴 도는데 40분쯤 걸리지만 좀더 세밀하게 관찰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길게 이어진 백련교(白蓮橋)를 따라가며 연꽃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마음속에 달라붙은 아집과 욕심은 연꽃을 보는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런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무어 그리 어려운 일인지, 속세로 돌아간 사람들은 또 변덕을 부릴 것이다.
4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회산 백련지는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된 저수지이다.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저수지는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사실상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당시 저수지 옆 덕애부락에는 6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백련 12그루를 구해다가 우물 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심은 후 해마다 번식을 거듭해 지금처럼 규모가 커졌다.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연꽃은 씨주머니 속에 많은 씨앗을 담고 있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 그림이나 건축물, 의복, 자수 등에 연꽃 문양을 많이 새기는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연꽃의 고상한 기품은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연꽃 하면 으레 불교를 생각하게 되는데, 인간 세계의 고달픈 중생을 구원한 석가모니의 사상과 일맥 상통하기 때문이다. 법화경 ‘용출품’에 보면 연꽃이 진흙탕 물속에서 나도 그 진흙물에 물들지 않는 것과 같이 사람도 세상의 더러운 티끌에 오염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연꽃 무늬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 연화좌나 사찰 곳곳에서 볼 수 있으며 연등(燃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나 홍련이 대부분이며 백련은 희귀종이면서 꽃이 연잎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백련(白蓮)은 6월과 9월 사이에 하얀꽃을 피우는데 매우 귀한 꽃이라 그런지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백련은 홍련처럼 일시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여름 한 철 느닷없이 꽃을 피워 꽃과 향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가 좋다고 연꽃 예찬론자들은 조언한다.
회산 연꽃방죽에는 자취를 거의 감춘 가시연꽃도 자생하고 있다. 가시연꽃은 잎이 넓어서 ‘방석연꽃’이라고도 한다. 수련과의 한해살이풀로서, 몸에 가시가 있고, 잎은 둥근 방패꼴이며 앞면에 주름이 있다. 여름 동안 꽃이 피며 물열매를 맺는다. 연꽃방죽은 가시연꽃의 최대 군락지로 그 보존가치가 뛰어나다. 꽃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물론 사진작가들의 단골 순례지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연꽃의 자생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까지 충남 아산 지방에 서식하다가 멸종 위기에 놓였고, 경남 창녕 우포늪에 몇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연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유용한 식물이다. 꽃잎이 떨어지면 벌집 모양의 열매가 맺히는데, 그 속에는 타원형의 씨앗이 들어 있다. 연꽃이 지고 나면 생기는 열매를 연실(蓮實)이라 부르며, 집안을 치장하거나 약재로 사용한다. 또한 여러 개의 구멍이 나 있는 뿌리는 연근(蓮根)이라 하여 식용이나 약용으로 널리 쓰이며 잎은 음식을 싸서 찌는데 쓰거나 즙을 내어 연떡이나 연부침, 연국수 등을 해먹는다. 이와 함께 연잎으로 담근 연엽주(蓮葉酒)는 고유의 술로 각광받고 있으며 꽃봉오리에 녹차를 넣고 실로 묶어 만든 연향차(蓮香茶)도 있다. 연은 또한 오폐수 정화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옛날부터 사찰에서는 폐수를 버릴 때 연밭을 통과해서 개울로 흘러나가도록 하수구 시설을 만들었다. 연꽃의 정화 역할을 십분 이용한 지혜라 하겠다.
회산 연꽃방죽 안에 마련된 수생자연학습장에는 각종 희귀 수생식물이 가득 심어져 있다. 이곳에는 홍련, 가시연, 왜개연, 수련, 어리연, 물배추, 마름, 부들, 순채, 창포, 흑삼릉, 물양귀비, 부레옥잠, 물달개비 등 30여 종의 수생식물이 모여 있다. 무안읍에서 몽탄 방면으로 약 5km쯤 달리면 무안역 맞은편에 항공우주전시관이 보인다. 이곳은 몽탄면 사창리 출신으로 전 공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옥만호 장군께서 사재를 들여 건립한 교육 시설이다. 부지 3,218평에 실물항공기 11대가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에 전시된 항공기는 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군용기를 비롯하여 북한기 등 기종이 다양하며 직접 내부를 관찰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또한 전시관에는 미국의 NASA와 러시아 등 세계의 항공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청소년들의 학습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산 교육장이다. 무안은 또한 다성 초의선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초의선사는 조선 후기의 침체된 불교를 일으켰으며 걸음마 단계인 한국 다도를 정립시킨 분이다. 초의선사 탄생지에는 생가와 추모각이 복원되어 있고 기념전시관도 마련돼 있다. 무안읍 상동마을은 부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백로 번식지(천연기념물 제211호)이다. 해마다 4월경이면 동남아지역에서 월동한 백로와 왜가리가 찾아든다. 새들은 집단을 이루어 번식하고 10월에 다시 남하한다. 상동마을 전망대에 올라 한가롭게 노니는 백로와 왜가리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좋겠다.
무안은 맛의 고장이기도 하다. 1박 2일의 여정이라면 끼니마다 무안이 자랑하는 진미를 맛볼 수 있다. 무안 오미(五味)는 무안군이 선정한 토속 먹을거리다. 사창 돼지 짚불구이, 명산 민물장어, 양파 한우고기, 무안 세발낙지, 도리포 숭어회. 여기에다 무안 특산 양파로 만든 시원한 양파 김치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이겠다.
여행메모
교통안내 호남고속도로 광산IC를 빠져나와 국도 1호선으로 연결되는 송정-나주-학교를 지나 무안읍으로 간다. 무안읍에서 회산 백련지까지의 거리는 22km로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찾아가는 데 한결 수월하다. 목포, 광주터미널에서 무안행 버스 이용.
기차편 서울-무안, 일로(하루 7회), 부산-무안, 일로(하루 2회), KTX 서울-목포(하루 7회), 서울-목포(새마을호 하루 2회). 무안 백련대축제 관광열차가 7월 1일부터 9월 25일까지 용산역, 영등포역, 수원역, 평택역에서 출발한다. 자세한 내용은 무안군청 문화관광과(450-5224) 또는 무안역(453-7788), 일로역(281-7788), 무안터미널(453-2518)로 문의하면 된다.
글·사진 / 김 동 정(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