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건 고3 딸 덕분이다. 학교에서 들은 강연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내용이라며 퉁퉁 부은 눈으로 리플릿을 건넸다.
동양인 최초로 시각장애를 딛고 영국 옥스퍼드 보건대학원에서 정형 척추 재활 치료 전공 석사과정 졸업이라는 쾌거를 이룬 MIDAS재활클리닉 해운대점 오성훈 원장. 그는 꿈의 목표가 선명하면 치명적 장애도, 형편없는 영어 실력과 지방대생이라는 핸디캡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청소년 대상 강의를 통해 “절망은 열망으로, 열망은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고 격려하는 그를 만나 꿈의 가속도를 높이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취재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eil.com 사진 전호성
봉사는 나의 운명 “재능기부예요. 돈을 벌려면 이렇게 멀리 오지 않죠. 여기서 봉사 활동을 한 지 벌써 몇 년째예요.”
체대 입시를 준비 중인 고3 학생들의 척추를 교정하러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수익 창출에 힘쓰는 줄 알았다. 한데 주요 활동 무대인 부산이 아닌 대전으로 약속 장소를 정한 이유를 물으니, 실기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학생들을 위한 봉사 일정이 잡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달 전 연락했을 때도 오성훈(32) 원장은 베트남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다. 청소년 대상 강연에 국내외 봉사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빡빡한 일정이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재학할 때 한국에 유학 온 베트남 친구와 친하게 지냈는데, 여름방학에 자기 나라에 다녀오자고 하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간 베트남 여행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죠.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며 장애인 재활 시설을 운영하는 친구 아버지를 만난 뒤 봉사가 제 운명이 됐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재활 치료를 받는 베트남 장애인들을 보면서 자신의 환경은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호사스럽다는 사실을 느낀 것. 시력 감퇴라는 치명적 장애가 있는 그가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개척하게 된 계기였다.
치료보다 마음의 치유를 선택한 엄마 오 원장은 엄마에게 시각장애를 물려받았다. 장애를 느낀 것은 초등학교 입학 직후다. 시력이 정상이었지만, 시야가 점점 좁아져 앞을 보려면 고개를 들고 시선을 아래로 향해야 했다. 놀림감이 되고 돌팔매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며 친구들을 멀리하기 시작했고, 초등 4학년 때 사회적 언어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시장에서 수족관을 운영하시던 부모님이 그에게 쥐어준 것은 마이크. 물고기를 팔고 상품을 안내하라고 미션을 준 것. 격려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엄마는 언어 치료보다 심리적 치유에 집중하셨어요. 하루빨리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바심 내기보다 마음의 치유를 선택해 인내심을 키워주셨죠. 저와 좀 더 많이 대화하려고 지금까지 집에 TV를 들인 적이 없어요. 그런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한국체대에 합격했지만 실명 위기에 처해 꿈이 무산됐을 때도 엄마는 아들을 다독였다. “뭐가 문제야? 성훈아,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라는 말로 힘을 보탰다. 엄마의 한결같은 믿음 덕분일까? ‘아세포종’이라는 암이 발병해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위기가 찾아왔지만 재활 의지를 불태웠고, 그런 모습을 인상 깊게 본 병원 관계자의 권유로 정형 척추 재활 전문가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정형 척추 재활 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를 만나러 영국에 갔죠.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고요? 옥스퍼드 보건대학원에 교환 연구원으로 들어갔고, 특허권 13개를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해보지 않은 아르바이트가 없고, 대학에서 받은 교환 연구원 초청장을 들고 기업에 찾아가 후원을 요청하는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 7부 능선을 넘고 한숨 돌리면 9부 능선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 인생이란 걸 일찌감치 깨달은 오 원장.
“꿈의 목표를 낮게 잡자고 결심했죠. 일단 수술해서 아세포종을 제거하고 시력을 찾자, 그다음엔 정형 척추 재활 치료 권위자의 연락처를 찾자,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꿈을 세분화하고 목표를 낮게 잡아 행동에 옮기니 가속도가 붙더라고요.”
“절망은 열망으로, 열망은 희망으로!”
오 원장이 강단에 서서 자주 하는 말이다. ‘인생이 어찌 마시멜로처럼 달콤하고 부드럽기만 하겠나, 절망이 열망의 불씨가 되고 열망이 희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 절망 중에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라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되고 싶다’고 말로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에요. 자기 발전을 위해 쉬지 않고 행동해야 절망과 열망이 희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