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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대로 삽시다(시 119:25-32)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삶은 어떤 삶일까요?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일까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제일 아름답고 존귀한 삶은, 주의 말씀대로 사는 삶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이나, 또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주의 말씀대로 산 사람들입니다. 물론 주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주의 말씀은 어떤 경우에는 꿀처럼 달콤하지만, 또 쓴 뿌리처럼 쓸 때도 있고,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우리를 감싸고 어루만져 줄 때도 있지만, 비수처럼 날카롭게 우리를 찌르고, 우리 가슴을 후벼 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신앙은 병든 신앙일 뿐만 아니라, 그 병을 고칠 수도 없습니다. 또 성경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은 총회적으로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오늘 제목은 “주의 말씀대로 삽시다”입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요? “주의 말씀대로 삽시다”
주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가끔 설교를 하다보면, 열심히 설교를 들으면서도, 곁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분이 있습니다. 그 설교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곁에 있는 사람이, 듣고, 깨닫고, 회개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듣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은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라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은 다른 사람이 받아야 하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이 은혜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듣고 깨달아야 한다” 혹시 이러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모두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나는 지금 은혜 받아야 한다. 나는 지금 축복받아야 한다”
이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복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마트 시식코너에서, 지나가면서, 음식 하나 집어 맛보듯이, 말씀을 대충 맛보지 말고, 하나하나 직접 요리하여 먹고 소화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맛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한 자리에 앉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소화를 잘 해야,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고, 성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가서 살아야 할 땅에 대하여도 정확하게 그 위치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 계속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까? 여기 있으면 복 안 주십니까? 꼭 떠나야만 복 주실 것입니까? 아버지랑 함께 가면 안됩니까? 아버지가 함께 가야지 가겠습니다. 아니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때 떠나면 안되겠습니까?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왜 떠나야 하는지, 정확한 장소가 어디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떠나라는 말을 듣고, 정든 고향을 그대로 떠났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떠나라는 말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22:2절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준 모리아 땅으로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따랐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럴싸한 핑계를 대고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불순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왜 아들을 바쳐야 합니까? 건강한 소 열 마리 정도 바치면 안됩니까? 잘 생긴 종 바치면 안됩니까? 다른 것 바치라고 하면 쉽게 바치겠는데, 밤새도록 생각해 보았지만, 이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엄마인 사라 생각도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바치고 싶어도 엄마인 사라가 바치지 말라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네요. 내 마음 아시지요.”
아브라함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쉽게 따를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주의 말씀대로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그가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고, 그 후손이 번영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으며, 세계 민족 구원의 은총을 받았고,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비록 가난했지만, 항상 가정이 화목했고, 또 한 사람은 생활은 넉넉했으나, 늘 가정이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늘 가정 불화로 속이 상하던 사람이, 친구에게 가정 화목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집에 가서 가르쳐 주겠다”며, 그 친구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두 사람이 그 집에 도착하자, 아들, 며느리, 손자 모두 나와서 인사를 하는가 하면, 밥상을 차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아버지가 아들 내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얘야, 마당에 있는 송아지를 지붕 위로 올려라”고 하자, 온 가족이 총동원하여 사다리를 걸치고, 지붕 위로 올라가 멍석을 펴더니, 송아지를 끌어올렸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끌어내려라”고 하자, 온 가족은 다시 달라 붙어, 지붕에 올려 놓은 송아지를 끌어내렸습니다.
그 수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만, 어느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시 아버지가 “얘야, 엊그제 사온 소금 가마 있지 않느냐? 그것을 내어다가 냇가에 담가라”고 하자, 그 아들은 그 자리에서 지게에 지고, 냇가로 나가 담그고 돌아왔습니다.
그런 후에 그 친구는 “이것이 우리 집에 화목한 비결일세”라고 말했습니다.
따라갔던 친구가, 그 정도라면 자기 자식들도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친구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기침을 하고 들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녁 상을 억지고 차리게 해서, 먹고 난후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 “얘야, 마당에 있는 송아지를 지붕 위로 올려라”고 말하자, 온 식구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아직 노망들 나이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면서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었습니다.
기가 꺾인 아버지가, 그러면 그보다는 좀 쉬운 것을 해보라며 “엊그제 사 온 소금을 강에 내다 담가라”고 하자, “김장 소금으로 사 온 것을 미쳤다고 버리느냐, 소금 한 가마는 흙 퍼 주고 사는 줄 아느냐”면서 정신이 돌았다고, 마구 다그쳤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옛 이야기 속에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과 성공과 실패의 비결이 별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모 말씀대로 순종하는 집안은 잘되는 집안입니다. 어른 말씀을 존중하고 따르는 가문은 행복한 가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라디오의 다이얼이 맞지 않을 때, 잡음이 나고, 맞을 때 제 소리가 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다이얼을 정확하게 맞추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행복한 교회가 되고, 아름다움 신앙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사울왕입니다. 처음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였습니다. 보통 왕이 죽으면 그 아들이 자연스럽게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처음으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아무렇게나 뽑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서, 사울을 왕으로 뽑으셨을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까? 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그런데 왜 그 큰 사랑과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왕은 버림을 받게 되었을까요? 왜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게 되었을까요? 신중하게 고르고 골랐던 사울을 왜 하나님은 버리셔야만 했을까요?
사무엘상 15:23절을 보면,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왕을 버린 이유를 말씀해 주시는데, 사울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시고, 그의 아들도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받은 복을 계속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 때,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신명기 10:13절을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을 버리지 마시고, 언제나 주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주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책망하고, 우리를 억압하고자,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의 말씀대로 살면, 어떤 행복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첫째, 주의 말씀대로 살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2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아멘.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며칠간 먹지 못해, 배가 고프다 못해, 배 가죽이 달라 붙어 있는 사람이 뭔가 먹고 난 다음에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말이 아닙니까?
한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목이 마르고, 더 나아가 목이 타지 않습니까? 그때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게 되면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다”는 말이 아닙니까?
히브리서 4: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죽은 책이 아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활력이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수없이 많은 책들이 발행되어 왔지만, 대부분은 나왔다가 사라졌고, 알려지지 않고, 죽은 책들도 있습니다. 살아서 활력이 있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의 말씀이 아닙니다. 죽은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았던 성경의 위대한 사람들만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다시 태어났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습니다. 육적인 삶밖에 몰랐던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23절 말씀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변화 받는 것도 모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27살이 되었을 때, 신경쇠약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어,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낙담과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그의 병은 오히려 더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병으로 죽을 것을 생각하자, 겁이 났습니다.
그는 자신을 도와 줄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나가다가 요한복음 11:25-26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는 말씀을 읽고, 호흡을 하듯, 약을 먹듯, 그 말씀을 복창하며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정신병에서 서서히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회고하기를 “내가 성경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의 정신병에 대한 고통을 책으로 써서,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대의학이 치료할 수 없는 질병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귀신이 쫓겨갔습니다. 육체가 살아 났을 뿐만 아니라 영혼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한 놀라운 역사는 과거에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방송에서 간증하는 것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역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죽음 문턱에서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질병을 치유받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패하고 다시 일어설 수 없었는데,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믿고 순종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믿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믿고 순종하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대로 살면 어떤 행복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둘째, 주의 말씀대로 살면,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2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아멘.
“나를 세우소서”
“세운다”는 말은, “뿌리를 깊게 한다. 든든하게 한다. 흔들리지 않게 한다. 일하게 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되려면, 주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니다가 시험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3:5-6절을 보면,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했습니다.
밭에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싹이 나오기는 나왔지만, 해가 돋은 후에는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다고 했습니다.
왜 씨앗이 타 버리고 말았습니까? 뿌리가 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 다니다가 시험에 듭니까? 말씀에 뿌리를 깊게 내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단이 어떻게 접근합니까? 최근에 어떤 교회에서 편지 한 장이 왔습니다. 그 교회를 다녔던 여자 집사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신천지에 빠져서 도저히 회복불능 상태여서, 그 교회에서 “출교 정지”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법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벌이 무엇인줄 압니까? 출교정지입니다. 교회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즉 예수 믿고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러데 교회 나오지 말라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믿을 필요 없이 하늘나라 말고 다른 데 가라는 소리입니다. 한 마디로 지옥가라는 소리입니다. 도저히 예수님께 돌아올 가망이 없을 때, 큰 죄를 지어 회복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때, 출교정지를 시킵니다. 이러한 법이 교회법에 분명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교회에서 이 법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에 나오지 말고, 차라리 지옥이나 가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교회에서 출교정지를 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 가서는 그 교회 집사라고 하면서, 신천지 성경공부하러 가자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조심하라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여러분! 대부분 이단들이 성경공부 하는 대로 데리고 갑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성경 말씀 가르쳐 준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상한 책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성경책 들고 와서, 성경책 펴 보여주고, 성경책에 기록된 말씀 찾아가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뿌리가 깊게 내려 있지 않으면, 무너지고 맙니다. 이단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 성경공부는 어떠한 경우라 하더라도 본 교회에서 하여야 합니다. 다른 데 가서 성경공부 하자고 누군가 말한다면, 절대로 따라가지 마십시오. 혹시 그런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즉시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세워 줍니다.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이유는 세워 주는 그 사람도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의 말씀은 나를 세워 줍니다. 주의 말씀은 나를 사람답게 세워 주고, 나를 성도답게 세워 주고, 나를 주의 종답게 세워 줍니다.
베드로전서 5:10절을 보면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80%가 요통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허리가 아파서 길게 고생을 했든지, 아니면 잠깐 동안 아팠든지간에, 요통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통의 원인 중 60%가, 본인의 자세 때문이라고 합니다. 평상시 본인이 취하는 자세 때문에, 요통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방바닥이나 의자에 앉을 때, 정좌하지 않고, 비뚤어진 자세로 앉는다든지,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지, 옆으로 비스듬히 앉는 따위의 자세가, 반복되고 습관화되면서, 요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의학 상식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적인 자세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앙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마음의 자세라든지, 말씀을 먹는 영적인 자세가 비뚤어져 있으면, 요통환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은혜를 갈급해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어디 앞뒤가 안맞는 곳은 없나, 의심의 눈초리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비판의 눈초리로 뚫어지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비뚤어진 마음을 가지고 들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있습니까?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입니다. 말씀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모하는 마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깨닫고,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있는 집을 생각해 보십시오. 어머니가 정성껏 마련한 밥상 앞에 앉아서, 반찬 투정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밥 먹어가면서 꾸중 들을 것은 뻔한 이치 아닙니까? “그래 맛 없으면 먹지 마. 밥 먹지마” 엄마의 화난 목소리만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러나 반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 없이 잘 먹어 주면, 얼마나 고맙습니까? 맛있게 차려 주었는데, 반찬 투정하면, 성질 좋은 엄마라도, 나중에는 잘 안 차려 줍니다. “너가 알아서 차려 먹어”
그러나 없는 반찬에도 잘 먹어 주면, 부모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될 수 있으면, 더 잘 차려 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뭐 해 줄까? 뭐 먹을래. 말해. 다 해 줄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더하거나 빼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더하거나 뺄 계획도 없습니다. 2천년전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말씀 그대로 우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들었던 말씀 그대로 우리도 듣고 있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매주일 교회 강단에서, 설교자를 통하여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무 불평없이 잘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또 어떤 사람은 불평만 하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영적인 결핍에 더욱 더 심하게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든 사람일수록 잘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먹지 않고 계속 음식 투정만 한다면, 병은 더욱더 깊어만 갈 뿐입니다. 잘 먹어야 합니다. 음식을 잘 먹어야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도 잘 먹어야 영적 건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밥은 밥상에 차려 놓을 수는 있습니다. 병든 사람에게는 억지로 먹여 줄 수도 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억지로 먹일 수는 없습니다. 먹는 것은 각자 개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강제로 먹일 수도 없고, 내가 대신 먹어 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습니다. 억지로 먹여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은, 각자 개인이 할 일입니다. 밥상은 차려져 있습니다. 먹고 건강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먹지 않고 병든 삶을 살 것인가는, 밥상 앞에 앉은 각자 개인이 할 일입니다. 열심히 먹으면 있던 병도 사라지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으면, 은혜를 받게 되고, 날 향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깨닫게 되고, 날마다 믿음이 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들리거나 요동함이 없이 바르게 세워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여러분의 삶과 가정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 다시 든든하게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찾아오시며 다가오시는 하나님 아버지!
갈급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된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