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나’ The Actor's 'Me'
연기란 만들어 완성된 그 무엇을 보여주는 직업이 아니다. ‘나’와, 내가 연기하는 역할 사이, 나도 모르게 내 속에서 반응하는 체계를 통하여 불확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과정 그 자체가 연기인 것이다. 즉, 내가 그 역으로 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역과 내가 분리될 수도 없는, 나와 내 속의 중심, 나와 내가 연기하는 역할 사이의 끊임없이 지속되는 떨림이 곧 연기현상인 것이다. 내 속의 기운을, 마음을 사방으로 고르게 펼칠 때 소롯이 잡히는 중심, 나와 내가 연기하는 역할 사이의 끊임없는 진동에 의해 매순간 잡히는 중심. 그것의 연속이 곧 연기의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연기를 훈련한다는 것은 그 무엇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을 반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연기연습 또한 나와 ‘나’, 나와 상대 배우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 떨림을 감지하고 유발시키고 조정하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이미 고착된 것을 익숙하게 하기 위한 반복훈련은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연기란 우연적이고 불확정적인 현상이다. ‘나’와 ‘나 아닌 것도 아닌’, 즉, ‘또 다른 나’와의 사이에 순간순간 발생하는 진동인 것이다.
최근 서구의 학자들은 연기과정에서의 이러한 현상에 주목, 연극인류학을 중심으로 일련의 독창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다. 국제연극인류학교를 창설한 에우제니오 바르바는 이를 ‘표현 전 단계’의 ‘깨어있음’, ‘초일상적인 균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상태는 내 속의 역(逆)의 힘과 대립적인 에너지의 학장으로 유발되는데, 바르바는 동양의 전통무술에서 이러한 요소를 발굴하여 그의 연기론을 정립하고 있다. 필립 자릴리 또한 이를 ‘중립적 가면’, 또는 ‘표현적 정지’, 즉 우리 귀에 익숙한 ‘정중동’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를 통해 표현되는 것은 일상적이고 친숙한 그 무엇이나, 그것이 표현되기 전까지의 연기과정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러한 복합적인 메카니즘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메카니즘의 인지와 운용은 ‘몸 연기’(몸감각 연기) 훈련을 통해 가장 효율적으로 발전 시킬 수 있다. 내 몸 안의 기운을 발견하고 이를 임의적으로 운용해 봄으로써 내 몸은 머리,가슴,몸이 긴밀하게 연결된 물리적인 유기체임을 깨닫고 상대와의 교류를 통해 호흡,리듬,순발력등 연기의 기본 메카니즘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2005년 KBS에서 방송을 통해 만나뵙게된 이영란 교수님의 연기이론을 소개해볼까 한다.
처음 뵈었을때 느껴지는 포스는 강했지만, 매우 겸손하면서 자신의 연기관이나 인생관이 뚜렷한 분으로 기억한다.
2006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우연히도 다시 만나뵙게 되었는데 역시 본인의 연기관은 유연하면서도 중심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매니저들도 연기에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요구된다.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영란 Lee Young-lan
미국 뉴욕대학교 대학원 공연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희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재직중
1978년 연극 데뷔작<장난꾸러기 유령>으로 제14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바 있으며 <자기만의 방>,<즐거운 이혼> 등 연극배우로 유명한 이영란 교수는 현재 극단 목토의 대표이며 <꽃잎>,<정사>,<연풍연가> 등 여러 편의 영화에도 출연했다.
영화 데뷔작 <꽃잎>으로 제41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단편영화 <세라진>에서는 주인공인 늙은 매춘부를 연기하여 2005년 베를린영화제 단편파노라마 부문 심사위원들의 ‘특별언급’을 받았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어머니’역으로 낯익은 배우이기도 하다. 2006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최민식 세션의 진행을 담당하며 연기에 대한 특별강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