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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별로 뽑아 본 역대 최고가 될 '뻔' 했던 선수들...
항상 보면 nycmania님이 어떤 All-time first team을 하나 만들어 놓고, 저보고 2nd team 만들라고 요청을 하시곤 했는데, 오늘은 낮에 시간도 나고 해서, 제가 그냥 임의로 All-time team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먼저 선수를 치니까 기분이 좋네요.^^
SF - Len Bias (렌 바이어스)
생년월일: 1963년 11월 18일 사망: 1986년 6월 19일 신장: 6-8, 203cm 경력: 1986년 드래프트에서 보스턴에 의해 전체 순위 2위로 뽑힘. ACC 최우수 남자 선수상 아마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이름이냐고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렌 바이어스는 당시의 NBA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가 80년대 왕조건설을 위해 영입을 결정했던, 대학 최고의 수퍼스타였고, 2년전 프로에 먼저 입문한 마이클 조던에 자주 비교되던 걸출한 인물이었습니다.
셀틱스가 래리 버드 이후에 팀을 끌고나갈 선수로 이 선수를 지목했고, 그래서 그를 드래프트 No.2픽을 사용해 뽑았던 겁니다.당시의 영상이 있으면 한 번 찾아 보십시오. 그를 드래프트한 날, 레드 아워백을 비롯, 빌 러셀, KC 존스 감독, 심지어 버드까지 얼마나 그의 영입을 반겨 했었는지. 드래프트 이틀 후........ 그는 그의 대학 기숙사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약물과다복용..... 코카인이 사망원인이었습니다. 당시에 AFKN 뉴스는 스포츠 뉴스가 아닌 일반 뉴스시간에 이 소식을 탑뉴스로 다뤘습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바이어스의 대학시절 하일라이트와 사망했을 때 당시의 뉴스등을 접하실 수 있습니다. 80년대에 이미 3번을 우승한 셀틱스팀이 지목한 왕조의 미래. 110cm의 서전트 점프. 2번부터 4번까지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올라운더. 미드레인지 점퍼, 속공가담 능력, 드리블, 패스, 리바운드, 수비, 승부근성, 탁월한 기본기. 단점이 전혀 없었던 선수. 이런 선수가 드래프트 이틀 후, 시체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1986년 이후로 보스턴은 우승을 못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보스턴 구단이 아직도 그때의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도 얘기를 합니다. 1987년 레이커스와의 파이널에서의 패인도, 제임스 워디의 스피드를 당해 낼 선수가 셀틱스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렌 바이어스만 건재했다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이 선수가 케빈 맥헤일, 래리 버드, 데니스 존슨을 백업하며 농구를 배워 익히고, 90년대부터 팀을 이끄는 선봉장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셀틱스가 팀의 리빌딩에 성공했더라면, 90년대의 NBA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PF - Ralph Sampson (랄프 샘슨) 신장: 7-4, 224cm 경력: 1983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에 의해 전체 순위 1위로 뽑힘. 대학 최우수 선수상 3회 (다른 3회 수상자는 빌 월튼과 레지 밀러의 누나인 셰릴 밀러뿐입니다) NBA 신인왕 NBA 올스타 3회 (84, 85, 86) 이미 많은 분들께서 잘 알고계실 만한 선수죠. 7-4의 뛰는 빅맨, 랄프 샘슨.
상대선수의 슛을 블락하려고 점프했다가 림에 머리를 꼬나박고 실려나간 적도 있었죠. 아마도 이런 운동능력을 가진 7 footer는 앞으로도 안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데이비드 로빈슨처럼 잘 뛰면서도, 드리블을 기가 막히게 잘했습니다. 자세를 낮추고 재빠르게 코트를 질주하는데 상대방 포인트가드가 못 쫓아갑니다. 앞에 수비수가 가로막고 있으면 Behind the back 드리블로 돌파해 덩크를 꽂습니다. 이 거인의 이러한 말도 안되는 능력은 대학이나 루키시절 경기들에 많이 나옵니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왜 휴스턴이 또 다시 올라주원이란 센터를 뽑았을까요? 바로 랄프 샘슨의 운동능력때문이었습니다. 외곽슛이 좋고, 페이스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속공가담능력까지 좋은 선수를 굳이 페인트존에 묶어놓기가 아쉬웠던 거죠. 당시에 휴스턴의 속공을 보면 입이 안 다물어집니다. 올라주원이 공을 잡아 가드에게 주면, 스피드가 좋은 로드니 맥크레이와 샘슨이 코트 양 사이드로 빠지면서 달려 나갑니다. 샘슨이 얼마나 빨랐는지, 상대방 가드나 스몰포워드가 쫓아가지를 못하더군요. 어느 전문가는 그랬습니다. 이 잘 달리는 스피드가 결국 샘슨을 포워드로 전향시켰고, 그 포워드 자리에서 항상 “뛰는” 플레이를 하다보니 무릎에 이상이 빨리 온 것이라고. 축복이 저주가 되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NBA 4년차였던 1987년부터 시작된 무릎부상은 그를 커리어 내내 괴롭혔고, 결국, 샘슨은 골든 스테이트, 새크라멘토, 워싱턴을 벤치멤버로 전전하다가 1992년에 조기은퇴를 하게 됩니다. 이 선수가 뛰는 파워포워드가 아닌 다재다능한 센터로 컸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만약, 휴스턴이 올라주원이 아닌 마이클 조던을 뽑았다면 90년대의 농구가 어떻게 변했을까도 생각 안 해볼 수가 없네요. 90년대는 5대 센터의 시대가 되었을 수도......... SG – David “Skywalker” Thompson (데이비드 톰슨)
생년월일: 1954년 7월 13일 신장: 6-4, 193cm 경력: 1974년 대학농구 우승 (North Carolina State) 1975년 대학 최우수 선수 1975년 ABA 와 NBA 양 리그가 동시에 드래프트 1번으로 지목 1976년 ABA 신인왕 All-NBA First Team (1977, 1978) NBA 한 경기 73점 득점 기록 (1978년 4월 9일) NBA All Star 4회 ABA 와 NBA 양리그 올스타게임에서 모두 MVP를 탄 유일한 선수 다들 아실만한 인물입니다. 별명으로 “Jumping Jack”과 “Skywalker”가 있죠? 프로 입단할 때의 공식 서전트 점프가 1m 21cm (48인치)였던 괴물입니다. ABA의 덴버 너겟츠에 입단하자마자, ABA의 레전드라 불리웠던 줄리어스 어빙과 맞장을 뜨며 리그를 강타했던 선수입니다. 1974년 대학농구 토너먼트에서는 빌 월튼의 UCLA를 누르고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에 우승을 안겨 주기도 했던 대학농구 수퍼스타였기도 하지요. 마이클 조던이 “He was my inspiration (나에게 농구에 대한 영감을 심어준 선수)”라고 표현했던 데이비드 톰슨. ABA와 NBA가 병합된 1976년 이후 3년동안, 정말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도 힘든 공중쇼를 보여준 선수입니다. 키가 193cm이고 손이 크지도 않지만, 앞에 수비수를 가리지 않고 인유어 페이스를 먹여줬던 슈팅가드였습니다. 득점에 관한 한은 도가 터서, 속공, 외곽슛, 페네트레이션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상대팀 수비수들을 애먹이기도 했지요. 이런 유능한 선수가 넘지 못할 벽이 있었으니.... 바로 무릎부상이었습니다. 1979~80 시즌을 앞두고 생긴 무릎부상... 다시는 전처럼 점프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톰슨은 절망에 빠졌고, 그 때부터, 술과 마약으로 자신의 삶을 망치기 시작합니다. 계속되는 부상, 재활, 경고, 재기.... 하지만 다시는 70년대와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채 조기은퇴를 해버립니다. 후에 기독교에 귀의하며 개과천선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팬들에게 많은 실망을 안겨줬죠. 본인도 그랬고, 모든 농구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그 부상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재활에 성공해 농구에만 전념했다면, 톰슨으로 인해 80년대 농구역사가 다시 쓰여졌을 법 했다는 사실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선수가 얼마나 위대했는 지, 70년대 게임들을 구해서 한 번 보십시오. 제가 클박에 올린 게임만 6~7 게임 됩니다. (특히 1976년 ABA Final 6차전과 1978년, 79년 올스타게임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PG – Michael “Sugar” Ray Richardson (마이클 레이 리차드슨) 신장: 6-5, 195cm 경력: 1978년 NBA 드래프트 4번 픽 1979~80 시즌 리그 어시스트왕과 스틸왕 (역사상 처음 있었던 일) NBA All Star 4회 이름부터 생소하실만한 인물입니다. 매직 존슨이 다음과 같이 표현한 선수입니다. “나의 신장과 능력으로 NBA에서 어떤 스타일의 농구를 해야 하는 지를 보여준 선수.” 결국 매직 존슨이 포인트 가드로서 뛸 결심을 하게 해준 선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매직 존슨은 대학시절, 그리고 프로에 들어와서도 2년차가 될 때까지 어정쩡한 포지션이었습니다. 포인트 가드는 물론 아니었고요. 그냥 혼자 공을 주로 독차지하고 게임의 완급을 조절하던 올어라운더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던 매직과 레이커스 코칭스태프에게 어떤 “영감”을 제공한 선수가 리차드슨이었습니다. 리차드슨은 일단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많았습니다. 리바운드, 외곽슛, 페네트레이션, 수비능력, 특히 스틸은 역대 최고였다는 말을 듣지요. 특히 이 선수의 장기라면, 본인의 리바운드에 이은 coast-to-coast 능력입니다. 매직 존슨처럼 1人속공이 가능했던 선수였고, 큰 신장임에도 불구, 그 스피드가 엄청났죠. 1984년 플레이옾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필라델피아를 업셋시키는 큰 활약을 했습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24득점과 7개의 스틸로 식서스의 백투백 꿈을 좌절시켜 버렸습니다. 이 선수는 또한 매직 존슨을 일대일로 수비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매직 존슨이 이 선수만 만나면 이상하게 맥을 못 추곤 했으니까요. 이 선수의 발목을 붙잡은 것도, 무릎부상과 마약입니다. 1984~85년 시즌에 입은 무릎부상을 기점으로, 이 선수는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계속되는 징계와 경고를 무시하자, 1986년 데이빗 스턴 회장은 큰 용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리처드슨에게 ‘종신형’을 내리죠. 다시는 NBA에서 못 뛰도록 영구추방명령을 내립니다. 당시에 미국정부가 내걸은 마약과의 “백색전쟁”과 시기가 맞물려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7년여에 걸친 그의 화려하고도 짧은 NBA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되고, 그 이후 CBA와 USBL, 그리고 이탤리 리그등을 전전하다가 쓸쓸히 은퇴를 하게 됩니다. 현재는 CBA의 Albany 팀 감독이고, 전국을 다니며 마약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195cm의 키에 180cm의 스피드를 갖고 있었던 선수. 90년대 중반의 페니 하더웨이와 같은 포스를 7년간 유지했던 선수. 마이클 조던이 자신을 가장 터프하게 수비했던 선수라고 극찬했던 리차드슨. 타고난 운동신경, 클럿치 해결능력, 이타적인 농구, 빼어난 드리블과 패싱, 스틸 능력. 이 모든 능력이 잠깐밖에는 빛을 못 발했기에, 이 선수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C – Arvydas “Sabas” Sabonis (아비다스 사보니스)
신장: 7-4, 223cm 경력: 1982년 세계농구 선수권 우승 (구소련) 1986년 세계농구 선수권 준우승 (구소련) 1988년 올림픽 금메달 (구소련) 1992년, 96년 올림픽 동메달 (리투아니아) 1995년 유로리그 우승 (레알 마드리드) 유럽 최우수 선수상 6회 (84, 85, 88, 95, 97, 99) 몸빵 좋고, 패싱력이 좋은 Vlade Divac 같은 종류의 센터로만 기억하실 분들이 많겠죠? 80년대 초, 전 유럽대륙은 한 농구선수에게 매료되어서 NBA에조차 관심이 없었다 합니다. 그 한 선수가 17세의 천재 농구센터, 아비다스 사보니스였습니다. 고 레드 아워백옹은 1986년 당시의 사보니스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Sabonis is one of top three or four players in the world including the NBA”. 1982년 구소련팀의 미국대학 원정경기때, 사보니스는 당시에 대학농구 최고라고 했던 랄프 샘슨을 두 경기 연속 제압해 버립니다. 전 미국대륙이 쇼크를 먹었던 사건이었고, 이 경기들은 AFKN을 통해 녹화중계 됐었습니다. 저도 이 경기들을 녹화해 놓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수십번을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샘슨을 앞에 놓고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넣어주는 킬패스. 한손으로 공을 잡고 페인트 동작으로 샘슨의 혼을 빼는 기술. 샘슨의 스피드를 이용한 속공을 같은 속도로 쫓아와 그의 덩크를 블락해버리는 능력. 한마디로, 사보니스가 샘슨의 스피드, 기술, 공중장악력을 모두 압도했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의 나이 23세였던 1986년 세계선수권에서 전세계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던 사보니스는 그 대회 직후, 발목부상을 당합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워낙 거구의 몸이어서 더 이상 전처럼 뛰고 점프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다가올 불행의 시작이었죠. 그리고 1987년,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입은 치명적인 사고로 인해 양쪽 아킬레스근을 모두 다치는 사보니스. 회복 불가능 진단을 받은 그는 농구생명을 끝내야 하는 상황까지 옵니다. 허나 그를 드래프트한 포틀랜드팀이,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매국노’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그를 데려다가 성심껏 치료해서 그나마 선수생활은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지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온 사보니스는 더 이상 뛰지도 못하고 점프는 아예 불가능한 반쪽짜리 선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자원봉사자로 잠실체육관 농구선수들의 뒷치닥거리를 담당했었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사용하는 선수들과의 통역도 담당했었습니다. 그래서 쿠코치나 페트로비치, 사보니스같은 선수들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미국선수들은 경비가 너무 심해서 가까이 가보지도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1982년부터 그의 플레이를 알고 봐 왔던 저로서는, 뒤뚱거리던 사보니스에게 적지않은 실망감을 갖게 됐었습니다. 사보니스는 결국,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해 전성기를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 한채, 농구인생을 마감한 것이죠. 그 이후로도 그는 "그 반쪽짜리 몸"으로 유럽농구만큼은 평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을 봤던 팬들에게는 성이 찰 수가 없는 경기력이었죠. 1981년 17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합류한 이후로, 23세에 발목부상을 당하기 전까지의 실력과 운동능력과 게임장악력만으로 평가해 볼 수 밖에 없는 선수가 된 것입니다. 90년대 4대 센터와의 비교는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가 부상전인 1986년에 NBA에 들어와서 1급 몸관리를 받으며 농구를 했다면, 최소한 5대 센터 소리는 들었지 않겠나 싶습니다. (샘슨은 이미 파워포워드로 전향했으니까요) 이 선수가 어떤 스타일의 선수로 성장했을 지에 관해서는 전문가의 의견이 거의 같았습니다. 빌 러셀의 말을 빌어보면, 사보니스는 이러한 선수로 컸을 겁니다. “Sabonis is a 7-4 Bill Walton. He is taller, faster, stronger than Bill, and on top of that he has a three point shooting range”. 빌 월튼의 70년대 전성기적 게임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대단한 백인 센터였습니다. 운동능력, 리바운드와 블라킹, 특히 패싱력에 있어서 최고였던 매력적인 빅맨이었습니다. 20점을 득점 안하고도 리바운드와 패스, 수비력만으로 게임을 장악할 수 있었던 선수였으니까요. 이 월튼도 결국 부상때문에 전성기가 짧아진 선수였지만, 타고난 실력을 인정 받아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습니다. 사보니스는 이런 빌 월튼의 모든 면에서의 업그레이드 형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 월튼의 업그레이드형 센터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 한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글: Doctor J
집필후기: 물론 이외에도 부상이나 마약등 여러가지 이유로 꽃피워 보지 못한 선수들이 많습니다. 80년대 중후반, 케빈 맥헤일과 올라주원의 천적이었던 놀라운 센터, Roy Tarpley (로이 타플리 - 마약). 어빙 이전에 한 손으로 공을 휘저으며 공중곡예를 하던 플레이그라운드의 레전드, Connie Hawkins (코니 호킨스 - 도박). 전성기로 들어가던 찰나에 무릎부상으로 5시즌을 날려버린 Bernard King (버나드 킹 - 마약, 무릎부상). 유럽파에 대한 텃세만 없었다면 레지 밀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했던 Drazen Petrovic (페트로비치 - 교통사고 사망).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그랜트 힐과 페니 하더웨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선수들로 2nd 팀을 만들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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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누구보다 랜바이어스 정말 안타깝네요. 동갑내기 대학스타였던 한선수는 역대최고의 선수가 되었는데 꽃도 피우지못하고 고인이 됐다니요 신체조건도 좋고 운동능력도 좋고 리그에 왔었다면 분명 조던의훌륭한 경쟁자가 되었을겁니다. 글 정말 재미있게 잘쓰셨네요..잘봤습니다!!
1984년으로 기억됩니다. ESPN의 전설적인 농구평론가인 딕 비테일씨가 NBA에서 "반드시 대성할 대학선수 5명"을 다음과 같이 뽑았습니다. 유잉-올라주원-샘슨-조던-바이어스. 이 중, 조던, 유잉, 올라주원은 더 설명이 필요없는 레전드가 되었고, 샘슨도 첫 4시즌 동안에, 부상만 아니었다면 어떠한 선수가 되었을지를 확실히 보여줬죠. 그런 면에서 볼 때에, 렌 바이어스도 분명히 역대최고 레전드급 스몰포워드가 될 수 있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농구 팬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Doctor J님이 이글을 또 보시려나 모르겠지만, 다음번엔 마크 프라이스, 브래드 도허티, 래리 낸스, 론 하퍼가 이끌던 80년대 클리블랜드를 좀 소개해줄순 없나요? 제가 르브론 팬이다 보니 예전 클블에 대해 좀 알고 싶네요^^
네, 요청글로써 접수했습니다.^^ 80년대 중후반의 클리블랜드는 개인적으로도 제가 좋아했던 매력적인 팀이었습니다. 위에 열거하신 선수들 외에도, 루키시즌에 플옵 한 경기에서 래리 버드의 점퍼를 3번이나 블락했었던 괴물 디펜더, 로이 힌슨 (Roy Hinson)이 있었고, 대학 최고의 센세이션 파워포워드 키이쓰 리 (Keith Lee)가 있었던 팀입니다. 시간이 허락되는대로 'Cleveland Cavaliers All-Time Team'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와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최고의 칼럼 입니다.
그때 우리 이야기했었던 Might-have-been-a-superstar Team 드디어 올리셨군요. ㅎㅎ 제가 지금까지 봤던 최고의 칼럼 중 하나입니다. Two Thumbs up! 전 감히 세컨팀을 만들 엄두도 안 나는걸요. ;;
그런데 사보니스 처음 부분에서 "17세의 천재 농구센터" 가 아니라 "17세의 농구천재 센터" 아닌가요? ^^;;
제가 "정확하게" 그 부분을 수정하려고 했는데, 이 글이 현재 수정이 안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첨부할 수 있는 이미지 개수가 초과했다'는 말만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미지 개수가 초과하지도 않았거니와, 어제까지만 해도 수정작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인데, 해결방법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
사보니스 동영상은 첨봤는데 패싱센스가 상당하군요 그리고 포틀랜드시절이 부상이후라니 정말 대단하네요 저런 선수가 전성기때 nba왔다면... 정말... 사보니스는 시대가 죽인 선수네요...
80년대 중반에 애틀란타가 처음으로 드래프트했는데, 그 때는 외국선수가 NBA에 들어올 수 있는 나이제한제에 걸려서 못 들어왔고, 그 후에 드래프트권이 포틀랜드로 넘어간 1986년에는 구소련이 자국선수들을 NBA에 못 가도록 막는 바람에 못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양쪽 발목을 크게 다치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끝났을 때는 포틀랜드가 정말 간절히 원했는데도, 본인이 고사를 했습니다. 뛰지도 못하는데 NBA에 가서 뭐하겠냐고 그러면서 말이죠. 하지만 1995년에 유로리그 우승을 하면서 NBA 밖에서 받을 수 있는 영예와 우승을 모두 다 경험해 보게 되자, 마지막으로 NBA에서 뛰어보기라도 하고 은퇴할 생각으로 들어온 것이었죠.
잘 읽었습니다^^
이제는 제목만 딱 봐도 닥터제이님이라는 걸 알겠는데요^^ 항상 제가 보기 이전의 글들을 올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보라색을 좋아하여 항상 제목을 보라색으로 쓰듯이 Doctor J님도 항상 제목으로 하늘색을 쓰시더라구요. ^^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사실 보라색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인데, 알럽에서 활동을 시작해보니, 공교롭게도 보라색이 뉴욕시매니아님의 전매특허 색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파란색을 택한 것입니다. 보라색 다음으로 선호했을만한 색은 자주색인데, 이 색은 '리오그란데'님이 항상 쓰시더군요. 사실 제목에 특정색을 넣는 것에는 별 의미를 안 두고요... 다만 검은색은 너무 무미건조한 듯하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아래쪽에 있는 1027번 John Wooden 관련글은 글제목을 핑크색으로 하지 않았습니까? ^^
잘 봤습니다.. 랜 바이어스 선수는 점퍼가 정확했군요.. :)
순간적인 수직점프에서 터지는 타점높고 정확한 미드레인지 점퍼는 수비가 불가능한 슛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잘읽었습니다. 무릎부상으로 스러져간 선수들을 볼때마다 참 가슴이 아프네요. 어찌보면 부상을 잘 당하지않는것이 최고의 재능이 아닌가 싶은생각조차 듭니다...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사보니스는 미국이 왜 그선수 때문에 드림팀을 만들수 밖에 없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거 같아요,,, 옛날에 우리나라 농구 해설위원이었던 유희영씨가 사보니스에 대해 엄청난 칭찬을 하곤 했었는데 포틀랜드에서 뛸때 왜 그런지 알게되었죠..더 놀라웠던건 부상등으로 기량이 쇠퇴하면서도 더블더블에 비하인드, 픽앤롤등의 능수능란한 패스웍까지 보여줬다는겁니당..ㅎㅎ
랄프샘슨이 파포역할을 했군요.. 전 샘슨이 올라주원보다 키가 더 커서 올라주원이 파포 역할을 한줄 알았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80년대 당시에 게임을 안 보신 분들은 그렇게들 많이 생각하시더군요.^^;)
우와... 참 멋지다는 말밖에는...
잘 보았습니다. 정말 두고두고 아쉬운 선수들이네요...
제이윌리암스도 나올줄 알았는데 전 시대 선수중에 아쉬운 선수들이 많아 이름도 못끼었네요.ㅋㅋㅋㅋ
정말 대단한 글이네요. 새로운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