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대회, 유기농의 정신 가장 잘 드러낸 행사”
2011 슬로푸드대회 ‘테라 마드레 코리아’ 성공리에 개최
제17차 세계유기농대회와 함께 열린 ‘2011 슬로푸드대회 & 테라 마드레 코리아’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난 9월 28일부터 10월 2일까지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 슬로푸드 마당에 마련된 대회장은 5일 동안 만여 명의 관람객으로 성황을 이뤘다.
2009년, 2010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열린 이번 대회는 슬로시티로 지정된 남양주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슬로푸드문화원이 주관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아시아·오세아니아 14개국에서 온 국제 슬로푸드 전문가, 교수, NGO 활동가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식량 위기와 유기농 발전에 대해 토론한 『아시아·오세아니아 국제 컨퍼런스』, 한국의 슬로푸드와 전통식문화를 지키고 계승하는 방안을 논의한 『지역과 음식 컨퍼런스』, 청소년들이 연사로 나서 자신의 슬로푸드 체험을 당찬 목소리로 발표한 『슬로푸드 청소년 포럼』을 비롯해,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살린 약선 음식을 주제로 30가지 본선 진출작이 경연을 벌인 『슬로푸드 요리경연대회』, 한식 세계화로 유명한 선재스님을 비롯한 열 명의 음식 전문가가 직접 요리 시연과 함께 음식 이야기를 들려준 『맛있는 이야기마당』등이 선보였다.
이밖에 8개의 미각 체험방에서 각각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맛의 세계를 경험하고 음식 선택의 눈을 길러주는 『미각교육』, 세계의 소멸위기 음식으로 지정된 천 가지 음식 전시물을 관람하고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인 한국의 장(醬, 된장, 간장, 고추장) 또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세계 소멸위기 음식 1000+1』 전시회를 비롯해 슬로푸드 아트체험, 요리작품 전시회, 다문화 가정 음식 판매 부스, 약선 음료 판매 부스 등이 상설 전시로 운영돼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김원일 슬로푸드문화원 사무총장은 “이번 슬로푸드 대회는 세계 유기농 대회에서 열린 여러 행사들 중 하나였지만, 다른 어떤 행사들보다 유기농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말했다.
유기농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공생하자는 정신이다. 다른 대회들이 특별한 메시지 없이 유기농 상품 전시·판매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슬로푸드 대회는 음식의 소멸이 곧 농업의 위기이고 자연의 위기라는 메시지를 관람객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특히 이번 대회의 메인 행사였던 아시아·오세아니아 국제 컨퍼런스에 대해 “현재 아시아 전체가 서구식 식사와 가공 식품의 범람으로 음식다양성이 침해를 받고 있고, 이에 대해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면서 “한국이 향후 아시아의 식량 문제와 음식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는 리더십을 확보했고, 이는 지난 20년간의 생협 운동 등 한국의 먹거리 교육 운동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고 평가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슬로푸드’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우리 사회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한식이면 무조건 슬로푸드, 또는 막연히 된장이 슬로푸드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저 상업적인 목적으로,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반대로 슬로푸드라는 말이 너무 많이 사용되고 대중화되는 바람에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장애 요인이 된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 개막식 - 2011 테라 마드레 코리아(Terra Madre Korea)
9월 29일 오전 11시 반에 슬로푸드 마당 중앙 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은 아침부터 상당한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국제유기농업연맹(IFOAM) 캐서린 디마테오 회장을 비롯해 이석우 남양주 시장, 파올로 디 크로체 국제슬로푸드협회 사무총장, 이정애 남양주시의회 의장, 안종운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 김성훈 전 상지대 총장, 김종덕 경남대 교수 등 각계각층 백여 명의 인사가 참석해 2011 슬로푸드 대회 개막을 축하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특히 한국을 전 세계 아홉 번째 슬로푸드 국가대표부로 인정하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해, 앞으로 한국 슬로푸드 운동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파올로 디 크로체 국제슬로푸드협회 사무총장과 안종운 슬로푸드문화원 이사장은 각각 양해각서에 사인하고 굳은 악수를 나누며 상호 협력과 우의를 다짐했다.
◇ 맛있는 이야기마당(Taste Workshop)
국내 최고의 생산자, 요리사, 음식 전문가가 요리 시연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주는 ‘맛있는 이야기마당’이 9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슬로푸드 마당에서 열렸다.
각각 2~30명 이내의 사전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이야기 마당은 남양주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고종 쌈밥’(진행 신은정, 고종쌈밥 개발자), 선재스님의 ‘청소년 사찰요리 교실’(진행 선재스님), 간장의 숙성 연도별 맛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는 ‘빈티지 간장’(진행 박종숙, 요리연구가), 전통발효식초 오곡미초(진행 한동준, 초산정 대표), 전통주의 이해(진행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장) 등 열 가지의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었다.
특히 시식과 함께 진행된 지난해 요리경연대회 수상작 ‘강화젓국갈비’는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었다. 강화젓국갈비는 고려시대부터 대물림 되어온 강화고유의 음식으로, 음식궁합의 대표적인 식품으로 알려진 새우젓과 돼지갈비로 만들어져 젓국갈비라 불린다. 뽀얀 국물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고기맛과 강화특산물인 새우젓 맛, 집 두부의 고소한 맛까지 더해져 영양적으로도 손색이 없고 소화성도 높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강화 젓국갈비 요리법을 지키고 있는 음식전문가 김화선 님이 요리방법을 시연해보였다.
선재스님의 ‘청소년 사찰요리 교실’에 참여한 한옥희(주부, 경기도 여주시) 씨는 “채소로만 김밥을 만들었는데 햄이나 소시지, 단무지 없이도 이렇게 맛있는 김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선재스님의 강의도 좋았고, 집에서 아이에게 해주면 부담 없이 육식을 끊고 자연스레 채식으로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맛있는 사찰 음식을 배워서 일석이조였다”고 말했다.
◇ 미각체험관
슬로푸드대회 기간 동안 상설 전시로 열린 미각체험관은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 각각 다른 감각을 통해 맛의 세계를 경험하며 미각을 테스트해보는 체험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여덟 개의 테이블을 돌며 자신의 미각을 점검하고 기록지에 표시하는 미각 체험관은 특히 초등학교 이하의 어린이와 학부모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다섯 가지 맛을 수용액으로 구별해보고 실제 다섯 가지 자연 추출물을 맛본 후 비교 기록해보는 ‘오미(五味)의 세계’, 색깔만 서로 다른 떠먹는 요구르트의 맛의 차이를 느껴보는 ‘눈으로 맛보기', 통 안에 든 재료를 촉감으로만 맞혀보는 ‘촉감으로 맛보기’……. 기록지를 들고 체크해나가는 꼬마 친구들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하다.
교육의 내용이 알찬 만큼 미각체험관은 5일 내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아이들이 남긴 소감문도 인상적인 것이 많았다.
“같은 맛이라도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평소 인스턴트 음식을 잘 먹지 않고 생활해서 70% 이상 맞춘 것 같다.”
“처음 체험해보았는데 참 좋은 경험이었다. 내 자신의 미각에 대해, 먹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줄여야겠다.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져있는 입맛을 확인했다. 음식을 잘 먹어야 된다.”
윤유경 슬로푸드문화원 미각교육팀장은 “미각교육은 원래 이탈리아의 미식학대학(University of Gastronomic Sciences)에서 시작한 것이지만 우리는 생강, 참기름, 도라지 즙, 계피 등 우리 땅에서 난 것을 소재로 사용해 교육 과정을 되도록 우리식으로 바꾸어 진행했다”며 “참기름 냄새를 맡으면 어떤 음식이 떠오르는지, 생강을 맛보면 수정과에서 느꼈던 맛을 떠올릴 수 있도록 대화하고 유도하면서 아이들의 입맛을 환기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 세계의 소멸위기음식 1000+1, ‘한국의 장(醬)’
5일간의 대회 기간 동안 슬로푸드 마당 한쪽에서는 한국과 전 세계의 종 다양성 보호를 위한 ‘세계의 소멸위기음식 1000+1' 전시가 열렸다.
국제슬로푸드협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소멸위기에 놓인 음식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보호 방안을 모색하고자 ‘맛의 방주(Ark of Taste)' 사업을 벌이고 있다. 성경에서 멸종 위기 생물들이 노아의 방주에 탔던 것처럼, 멸종위기 음식을 맛의 방주(Ark of Taste)에 태워 보호하자는 것. 얼마 전 7월, 1000번째 위기 음식으로 아르메니아 살구가 등재되었다.
한국 슬로푸드문화원은 1001번째 위기 음식이 바로 한국의 된장, 간장, 고추장이라는 인식 하에 전시회의 제목을 ‘1000+1’로 정하고,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 장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했다.
전시장 바닥에는 멍석이 깔리고 한쪽에는 지게, 삼태기, 메주 등 우리의 전통 문화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이 놓여졌다. 전시장 입구에는 마트 등에서 시판되는 고추장과 된장, 간장 수십여 가지가 제조사별로 놓였고, 맞은편에는 사라져가는 우리 고유의 종자들이 종류별로 전시되어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전통 장의 명인들이 직접 장을 시연해보이고 관람객이 맛볼 수 있는 행사도 열렸다. 28일에는 충남 논산의 집장 전문가 남상란 선생이 먹을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집에서 담가먹던 우리네 전통 집장을, 29일에는 강원도 화천의 임락경 선생이 전통 간장을, 30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의 이순이 선생이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시연해보였다.
한국 음식의 기본이자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장(醬)'. 이번 전시회는 마트에서 공장식으로 제조된 간장, 된장, 고추장에만 익숙한 우리의 일상을 반성하고, 전통 음식과 문화를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한 의미 있는 행사로 평가되었다.
원문보기 : http://slowfoodkorea.tistory.com/entry/2011-슬로푸드대회-성공리에-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