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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 명장 엄태조 |
40년 나무인생이 안겨준 기능 3관왕 |
14세 때 나무와 인연을 맺어온 지 40년, 그는 지금 최고의 기능을 입증하는 ‘명장’이라는 타이틀 외에 ‘전통기능전승자’, ‘무형문화재’라는 칭호를 한 몸에 지닌 이 시대의 걸출한 장인이 되었다. 명장은 20년 이상 한 직종에 종사해야 하는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하는 장인이다. 전통기능전승자는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며 기능인을 양성하고 발굴해 나가야 하는 책임이 뒤따른다. 또 무형문화재는 맥을 이어가는 족보가 있어야 한다. 3대가 한 업종에 종사하든지 무형문화재로부터 기능을 이수해야만 한다. 이 세 조건을 모두 갖춘 소목 장인이 엄태조씨다. 소목(小木)이란 장롱, 궤, 함을 비롯하여 문방구 등의 세간과 때로는 나무로 된 각종 물건, 가마, 수레, 농기구, 기타 도구류 등을 포함하며, 건축을 주로 하는 대목(大木)에 대칭되는 용어이다. 목재로 세간을 만드는 기능보유자 엄태조 소목장은 나무의 선별과 오랜 건조기간, 정밀한 사개짜임, 연귀짜임, 마대짜임장식조작, 상감기법, 옻칠 등 전통가구의 기법을 잘 반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하나도 힘든 타이틀을 세 개씩 가진 그이지만, 그는 늘 일에 있어 긴장을 늦추지 않는 천생의 장인정신을 잊지 않고 산다. 엄태조 명장은 대구시 동구 불로동에서 세인공방(053-981-1917)을 운영하며 전통 소목공예의 맥을 묵묵히 이어오고 있다. 공방의 외형은 현대식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높다랗게 쌓인 나무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크고 작은 나무로 작업에 열중인 그의 제자들 사이를 오가며 엄 명장은 이것저것 이른다. 손으로 직접 다듬고 끼우며 칠을 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전통을 잇겠다는 각오로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엄태조 명장의 나무에 대한 혜안은 남다르다.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눈으로 나무를 보고, 잠자던 나무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그는 우리나라의 춘양목이 송진이 많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가구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나무라며 극찬한다. 공방에 쌓여 있는 각양각색의 나무들은 모두가 10년 이상씩 쌓아 놓고 자연건조 시킨 나무다. 최고의 나무가 최고의 가구를 만든다고 믿는 엄태조 명장. 시골의 고사목 뿐 아니라 고가(古家)가 헐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가 사들인 고가의 기둥이며 집을 이루고 있던 나무를 갈무리해 두었다. 기교 없는 순수 미에 반한 전통공예 달인 엄태조씨는 1944년 경북 군위군 의흥의 빈농 집안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58년 친척 형님과 무작정 상경해 서울 남가좌동 모래내의 가구공장에 취업, 가구와 인연을 맺어 서양가구도 제작하고 고가구 수리도 했다. 18세 되던 196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55호 강대규 선생 문하로 들어가 열심히 배우고 익혀 스승의 인정을 받기에 이른다. 고가구 수리부터 시작하여 전통가구의 분해와 조립까지 직접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전통가구의 기교 없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기법에 매료된 엄씨는 1973년 대구의 한 골동품 가게에 취직하여 골동품 수리과정에서 전통공예품의 수공업적인 기능을 익히게 되었다. “서양가구는 분해하면 다시 결합하기가 어렵지만, 이조가구는 완전 분해해서 수리를 해도 복원이 가능한 세계 최고의 가구입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구를 만들어 볼 각오로 1978년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 세인공예점을 열고, 순수 우리 가구만을 제작하게 된다. 전승공예대전 9회 수상, 대통령 표창, 대구시 공예품 경진대회 대상 등의 수상경력과 8회에 걸친 개인 및 회원전은 그가 완벽한 가구를 후세에 남겨보자는 일념과 전통의 맥을 찾기 위해 전념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준다 .1991년 명장으로 선정된 엄태조씨는 스승인 강대규 선생이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199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55호 이수자로 지정을 받고, 1995년에 국가 지정 전통기능전승자로, 그리고 같은 해에 대구광역시 지정 소목장분야 무형문화재 10호로 지정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세 부분의 일인자가 된 것이다. “전통은 윗대에서부터 전해오는 것” 윗대의 좋은 점을 후대에 알려주는 것이 전통이라고 말하는 엄 명장은 이조가구의 바탕 위에 독창적인 방식으로 작품마다에 조상들의 고고한 숨결을 수놓는다.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작품 완성에 이르기까지 옛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공예를 창작할 수는 없는 거지요. 전통으로 내려온 것을 원래에 가깝도록 모방하는 것이 전통공예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통가구에 몇 가지 기본 원칙을 두고 있다. ‘먼저 우리 나무로 만들고 우리 기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채색도 옻과 같은 자연물감으로 해야 한다. 또한 나무의 안팎을 구별할 수 있어야하고, 상하좌우가 구별되도록 해야 한다. 음양에 의한 대칭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가구는 나무의 문양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의 문양만을 위해 나머지 부분을 그대로 버려야 하므로 나무가 많이 소요된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리고 전통방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또 우리 가구는 서양가구보다 질 좋은 나무가 3배 이상 들어가기 때문에 값도 높은 편이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제작기간 역시 상당하다. 보통 상감무늬 3층장을 만드는데 4개월 정도 걸린다. 엄태조 명장은 주문에 의해 작품을 제작하며, 대를 이어가고 있는 아들 엄동환(34세, 무형문화재10호 전수 장학생)에게 웬만한 일은 거의 맡기곤 한다.요즘 그는 문화재 보수를 많이 하고 있다. 국보32호이며 세계문화유산 제264호인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동·서사간전 판가 및 팔만대장경판 보수를 수년째 해오고 있으며, 보물684호인 경북 예천 용문사 윤장대 보수, 보물286호인 경북 영천 은해사 백홍암 극락전 수미단 부분 보수, 서울대학교 규장각 등 국보나 보물을 보수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을 수리하다보면 670년 전 못이 지금 뽑아 봐도 반짝반짝 빛이 난단다. 대장간에서 직접 친 못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못이 박혔던 나무도 부식이 되지 않는다고. 엄 명장은 문화재를 보수하면서 이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 일지를 쓴다. 우리의 전통기법을 기록하여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현장에서 체험한 것들 곧 ‘현장 과학’을 꼼꼼히 기록한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그가 전통의 맥을 이어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IT · ET가 꽃이라면 전통은 뿌리” 97년부터 팔만대장경을 보수하고 있는 엄태조 명장은 팔만대장경을 수리하여 관광 상품으로 하면 적은 비용으로 큰 관광수익을 내게 될 것이라 했다. 새로운 것만 좇는 현실에서 IT(정보기술)나 ET(환경기술)같은 첨단산업기술은 어느 시점에서 또 다른 첨단에 자리를 내 주어야 하지만, 전통문화는 자손만대까지 그 가치를 떨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통분야가 소외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는 ‘전통은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 첨단산업은 피어나는 꽃이며 이파리로 보기에 아름다우나 뿌리 없는 나무 없다’며 보다 많은 관심을 호소한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비용 들이지 않고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전통문화를 살리는 길 밖에 없다며 전통은 개발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엄태조 명장은 날로 쇠퇴하는 대구지방의 목공예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동료 및 후배들과 함께 대구동구목공예사업협동조합을 설립하여 이사장직을 맡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 전국 목공예 산업의 60-70%를 차지하던 대구 · 경북 지역의 소목공예가 옛 영화를 되찾기를 바라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고 있다.목공예 산업기능 명장으로서 전통을 기본으로 깔고 현대에 맞는 디자인을 개발하여 전통에 현대를 접목, 수출 가능한 작품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엄태조 명장.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대구시 동구 80여 업체의 장인들에게 전시공간을 만들어 주고, 공방을 통해 작업과정을 직접 시연해, 일반인은 물론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통문화를 알리고 ‘실제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 갖도록 하려하고 있다. 또한 산 · 학이 협동하여 장인들과 후학들이 한자리에 모여 작업하며 기술을 전수, 습득하면 기술 발전과 디자인개발이 활발해 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조합에서 학생들에게 실기교육을 시켜, 현장에 투입돼도 곧바로 작업이 가능한 기능인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제재소에서 직접 나무를 켜며 기본부터 가르치게 되면 열 시간 걸릴 것을 한 시간 만에 터득케 할 수 있단다. 명장이나 장인들은 후배들을 교육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며, 조합은 위탁교육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엄태조 목공예사업협동조합 이사장. “내 개인이 아닌 40~50개 업체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현실에서 기능인들이 제대로 일할 여건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통의 맥도 이어지고 대외홍보도 이루어져야’한다며 초대 이사장으로서 동분서주하는 엄태조 명장. 내년 가을 쯤 전국 순회전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조합 일에 정신이 없단다. 소목장 엄태조―그는 우리 민족의 삶을 묵묵히 지켜오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치를 발하는 전통가구에 장인 혼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함께 아우르는 삶을 살아가는 소목계의 거장이다. |
첫댓글 관세음보살 _()_
감사 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