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동학사(鷄龍山 東鶴寺)의 편액(扁額)
찾아간 때: 2016년 12월
위치: 충남 공주시 반포면
교통편: 대전역 앞에서 107번 버스 (소요시간: 70분)
낙관(落款)에 戊寅冬如初居士(무인동여초거사)라고 씌여있다.
如初 金膺顯(여초 김응현 1927 ~ 2007)선생이 61才 되던 무인년(1988년) 겨울에 쓴 글씨다.
戊寅年은 내가 처음으로 '作品'이랍시고 글씨를 쓰고, 낙관을 적은 해라서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절 사(寺) 字는 一中 선생의 글씨를 퍽 많이 닮았다.
입구의 조각물, '생각하는 女人像'
'자연과 인간, 계룡의 얼굴'
미타암(彌陀菴) -전(篆) 으로 쓴 보기 드물게 좋은 글씨이다.
癸酉佛誕日錄西疇鄭光溢(계유불탄일록서주정광일) 이라고 씌여있다.
-계유년(1993년) '부처님오신날'에 서주 정광일 쓰다-
洗塵亭,세진정(세진=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깨끗이 씻어 낸다는 뜻)
- 낙관에 동천 이기하(東泉 李冀夏) 라고 씌여있다. 사실, 샘 천(泉)자가 내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보여서 읽을 수 없다가
도서(圖署)에 새겨진 전(篆)을 보고서 샘 泉자인 줄 알았다.이렇게 한자를 '반흘림'으로 쓴 글씨를 행서(行書)체 라고 한다.
누각은 지은지 오래되어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데, 어찌하여 편액은 새 것이 걸렸네...
肅慕齊(숙모제) ← 이렇게 정자로 반듯하게 쓴 글씨를 해서(楷書)체 라고 한다.
壬申 仲陽 李公權 , 임신년(1932 또는 1872년) 중양절(음력9월9일)에 이공권 쓰다.
동계사 東雞祠 (雞 = 어찌해奚+새추隹) = 東鷄祠./ 雞=鷄 (같이 쓸 수 있는 글자)
그런데 왜 가운데 글씨를 왜 학(鶴)을 쓰지 않고... 학(鶴)만 못하다는 닭 계(雞) 字를 쓴데는 이유가 있을터...
楷-行(해-행)으로 쓴 참 좋은 글씨인데 낙관과 圖署(도서)가 멀어서 읽을 수가 없어 안타깝다.
三隱閣 (삼은각)/ 석촌 윤용구(石村, 石邨 尹用求·1853∼1937) 선생의 글씨
web을 뒤지니 조선조 부사를 지낸 윤회선(尹會善)의 아들로 문신이며 서화가이며
글씨와 그림에 두루 능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난죽(蘭竹)과 구양순(歐陽詢) 풍의 해서,
행서, 그리고 금석문(金石文)을 즐겨 썼다고 나온다.[웹에서]
안에는 포은, 목은, 야은 선생의 순으로 위패가 자리하고 있다.
'인재문'/ 석촌 윤용구(石村, 石邨 尹用求·1853∼1937) 글씨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주빈(周賓), 호는 석촌(石村) · 해관(海觀) · 수간(睡幹) · 장위산인(獐位山人).
남녕위 의선(宜善)의 아들이다. 1871년(고종 8) 직장(直長)으로서 문과에 등제하여 벼슬이 예조 ·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는 해서 · 행서를 많이 썼으며 그림은 난과 대를 잘 그렸다. 금석문으로 과천의 「문간공한장석신도비
(文簡公韓章錫神道碑)」와 광주(廣州)의 「선성군무생이공신도비(宣城君茂生李公神道碑)」가 있으며,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 입구의 강선루(降仙樓) 현판 등을 남겼다. [백과사전]
肅慕殿(숙모전): 역시 도서와 낙관이 없다.
東鶴寺(동학사)/ 창암 이삼만(蒼巖 李三晩 1770~1847)
창암은 호남 제일의 대서예가로서 충청도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눌인 조광진
(曺匡振 1772~1840)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명필로 꼽힌다.
창암의 서예관은 한마디로 ‘일운무적 득필천연(逸韻無跡 得筆天然)=빼어난 소리는 그 흔적이 없고
뛰어난 글씨는 천연 그대로이다‘라고 할 수 있다한다.
‘행운유수체(行雲流水體)’라고도 일컬어지는 그의 행·초서는 독창적인 서풍으로 한국의 자연과
어울리는 고유색을내함(內含)하고 있다.
‘유수체’라는 이름으로 일가를 이룬 ‘창암체(蒼巖體)’는 가슴 속 깊이 들어 있는 한(恨)을
뿜어내는 남도창(南道唱)과도 같다. [백과사전]
大雄殿(대웅전)/ 역시 印刻이 멀어서 읽을 수는 없으나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선생의 글씨가 아닌가 한다.
위의 편액과 아래의 주련(柱聯) 모두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 1927~2007) 선생의 글씨이다.
法雲光陰無遮會 (법운광음무차회): 부처님의 공덕은 오랜세월 온 세상을 골고루 비추고
慧日高懸有象天 (혜일고현유상천): 지혜의 빛은 유상천 높이 걸렸도다.
西方菉竹千年翠 (서방록죽천년취):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푸른 대(竹)는 천년을 푸르고
南海蓮花九品香 (남해연화구품향): 남해의 연꽃은 온갖 향으로 가득하네
永使蒼生離苦海 (영사창생이고해) : 모든 사람이 거친 바다에서 영원히 헤어나도록
常敎赤子有慈航(상교적자유자항): 어린 중생들에게 언제나 자애로운 뱃길을 가르쳐 주옵소서
- 해설: 文溪(문계) -
아래 6개 주련의 운필(運筆)은 그 골기(骨氣)가 마치 예기비(禮器碑)를 보는 듯하다.
대가들이 젊은시절 법첩(法帖)으로 얼마나 철저한 연마와 수련을 했는지 알 수 있다.
法雲光陰無遮會 (법운광음무차회)
慧日高懸有象天(혜일고현유상천)
서방록죽천년취(西方菉竹千年翠)
南海蓮花九品香 (남해연화구품향)
永使蒼生離苦海 (영사창생이고해)
상교적자유자항 (常敎赤子有慈航)
己卯春分如初居士 -기묘년(1999년)춘분절에 여초거사 쓰다-
三聖閣(삼성각), 李又春/ 삼성각은 왼쪽으로부터 산신(山神),독성(獨聖),칠성(七星)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祖師殿(조사전)/ 역시 도서(圖書)가 없다. 이 글씨도 일중선생의 필적이 아닌가 한다.
스승사(師)字가 김천 직지사의 藥師殿의 師와 거의 많이 닮았다.
香積室(향적실)/ 누가 쓴 글씨일까.. 도서(圖署)인각을 읽을 수가 없네.
옛 글씨는 아니고 현대 서예인의 글씨인 듯.
(역광도 아닌데 갑자기 사진이 어찌 이렇게... '폰카'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
梵鐘樓(범종루)/ 辛亥孟秋(신해맹추)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이라고 적혀 있다.
맹추는 음력 7월. 신해년은 1971년 이니까 선생의 50才 되던 초가을에 쓴 글씨이다.
秋史體(추사체)로 쓴 '吉祥庵(길상암)'/ 연파 최정수(蓮坡 崔正秀)의 글씨
연파 선생은 추사체 연구와 보급에 힘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절집 당호의 편액이라기 보다는 동학사 부속건물의 간판이다.
누가 쓴 글씨인가- 낙관에 새겨진 도서 전각(圖署 篆刻)을 내 실력으로 읽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서 인각 부분 만을 줌(zoom)으로 당겼더니 많이 흔들렸다. (아래 사진)
음-양각으로 새겨진 성명과 아호 5 글자에서 말 두斗만 말고 4자를 어렵게 읽을 수 있었다.
위의 것은 성명(음각,陰刻으로 새긴다)/ 아랫것은 아호(양각,陽刻으로 새긴다)이다.
전각(篆刻=도장을 새기는 일)도 서예의 한 장르(genre) 이다.
장산 김두한(藏山 金斗漢)- 현재, 대전미술협회 부이사장, 동학사승가대학, 원광대 서예과 출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