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옛길답사는 지난달에 이어 반월동방면으로 갑니다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에서 공을 세운 조경장군을 비롯하여 조선후기 대학자인 조익선생의 집안인 풍양조씨의 직동마을과 나급, 나만갑선생의 세장지인 나봉산을 둘러봅니다. 또한 수인산업도로 곁길을 따라 조선초 수양대군의 오른팔이었던 이흥상의 묘를 들러 건너편 숙종의 누이 명안공주 묘까지 걷는 행사입니다
일 시 : 2011년 10월 22일 오전10시
장 소 : 수인산업도로변 풍양조씨 동추공파 선영비 앞
(시내버스 반월동방향 22번 버스승차후 종점 동호상가앞 하차 도보 10분)
(수원행 707, 909 인정프린스앞 하차, 도보 5분) 지도참조
회 비 : 10,000원(점심식대)
<참고지도>

서해안고속도로 고가지나 오른쪽(사진 좌측아래)이 집합장소입니다.
버스하차는 반월동쪽 동호상가(좌측산단 노란동그라미)
또는 수원방향 인정프린스 앞(중간아랫부분 동그라미)에서 하차하십시오.

좌측 비석앞이 집합장소입니다. 시골길이라 주차할곳은 있습니다 현장까지 차로 오실분은 가급적 카풀로 오십시오
<참고자료>
조선조 세종시대 사헌부 장령, 남원도호부사를 지낸 문신인 조계평(趙季砰)을 입향조(入鄕祖)로 들목일대(현 매송면 야목리, 원리 일원)에 정착한 일족을 풍양조씨 평장사공파라 하는데, 그 분의 손자인 동지중추부사공(同知中樞府事公) 현범(賢範)을 비롯한 그 후손들의 묘역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매봉산(梅峰山)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속리산에서 분맥(分脈)하여 한남정맥(漢南正脈)과 금북정맥(錦北正脈)을 이루게 되는데 광교산과 청계산을 등지고 칠보산(七寶山)으로 와서 매송방향으로 내려오며, 다시 직동(直洞) 방향으로 이루는 산줄기에 동추공파 후손들의 세장지(世葬地)가 있다.
현재 이 곳에는 동추공 현범(同樞公 賢範), 은율현감공 언국(殷栗縣監公 彦國) 한풍군 안국(漢豐君 安國), 증좌찬성공 간(贈左贊成公 侃), 풍양군 경(豐壤君 儆), 도산공 내양(道山公 來陽), 생원공 현양(生員公 顯陽), 정랑공 지헌(正郞公 持憲), 해주목사공 지항(海州牧使公 持恒), 증참의공 명인(贈叅議公 命仁) 대사간공 한위(大司諫公 漢緯)를 비롯한 도산공과 생원공의 후손들의 세장지(世葬地)로 70여 구(丘)의 분묘(墳墓)가 모여 있는 곳이다. 1997년도에는 선영입구에 동추공종회(同樞公宗會)에서 사당(祠堂)을 건립하였으며, 풍결사(豐潔祠)라 명하였다.
안정나씨 가문이 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시조의 8대손인 나윤침과 그의 아들 후곡(後谷) 나급(羅級;輔德), 그리고 손자인 나만갑의 묘소를 건건동에 정하면서부터이다.
○ 나급(羅級) : 1552(명종 7)~1602(선조 35)
조선시대의 문신. 본관은 안정(安定). 자는 자승(子升). 호는 후곡(後谷). 할아버지는 적성현감 익(瀷)이고, 아버지는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 윤침(允忱)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별제(別提) 원기(元紀)의 딸이다.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고 천거를 통해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에 임명되면서 벼슬길에 나아갔다. 1585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면서 상의원직장(尙衣院直長), 한성부참군, 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그는 효성스럽고 우애가 깊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자 한 손가락을 잘라 약에 타서 올리자 끊어진 생명이 다시 소생하였고, 집이 가난하여 미투리가 구멍이 뚫려도 마음은 항상 낙천적이었다. 들에는 백 발자국의 땅이 없었고, 언덕 위에는 오두막집 한 칸 없이 비와 바람도 막지 못하는 쓸쓸한 셋집에서 죽었지만, 염하고 장례하는 일을 모두 지인들이 도와주었다. 묘는 상록구 건건동 나봉산(羅峰山) 아래에 있고, 묘지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찬(撰)했으며, 묘표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찬하고, 글씨는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또 신도비의 비문은 이정구(李廷龜)가 찬하고, 글씨는 박태유(朴泰維)가 썼다.
첫댓글 집안에 일이 있어 안동에 가게 되었습니다.좋은 답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루를 너무바쁘게 생활 하다보니 이제서야 카페 들어와 답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너무 아쉽습니다 참가하지 못해서...
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