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최초의 교육기관이다(엡6:1~17)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진리요, 부동(不動)의 법칙(法則)입니다. 행복의 기준과 척도는 가정이 얼마나 바로 서 있느냐, 가족 간의 사랑이 얼마나 돈독하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단체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독처하는 아담에게 하와를 주셔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심히 기뻐하셨지요.
그러나 악한 마귀는 이 가정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을 탐하고 추구하게 하여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지금도 악한 마귀는 가정을 깨뜨리려고 유혹합니다. 행복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여 가족을 흩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반석 위에 가정을 세워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반석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는 행복한 가정의 필요조건들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먼저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가정이 바로 섭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
그렇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이 세상에서 잘 됩니다. 거짓말을 못하시는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잡고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려할 때, 이삭은 충분히 도망할 수 있는 힘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수양을 준비하사 이삭을 건져줬을 뿐 아니라 어디를 가나 백배나 더 좋은 것으로 주셔서 그의 생애를 순탄케 하셨고, 리브가 같은 좋은 아내도 주셨습니다.
요셉도 효자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멀리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까지 심부름을 했습니다. 아직은 그것이 힘에 겨운 나이였지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한 것입니다. 비록 형들에 의해 팔려 어려운 세월을 살았지만 원수 같은 형제들을 용서한 것뿐 아니라 잘 공궤하고 조카들까지 챙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그런 요셉이 받은 복은 헤아릴 수 없지요.
룻을 보십시오. 그는 이방여인으로 유다지파인 나오미의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자 나오미를 따라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아스라는 남편을 주었고, 다윗의 선조요,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은 자신의 뜻을 접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거든 그리 하옵소서’ 라고 고백하고 십자가를 지셨고, 또 돌아가시기 전에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리아와 평생 동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제자 중 가장 오래 살아 요한계시록까지 쓰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 중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먼저 된 계명이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디 그렇습니까? 부모를 집이나 지키는 개처럼 대접하는 자식들이 많습니다. 지네들은 휴가라고 떠나면서 부모는 집이나 지키라고 합니다. 개는 안 입어도 되는 옷을 이것저것 사서 입히면서 부모에게는 얄짤없습니다. 심지어 부모를 때리고 현대판 고려장까지 치르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런 놈들이 잘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거지요.
형편이 안 돼서 효도를 못한다고요? 다 핑계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 효도입니다. 조금 있다 잘 하겠다고요? 여러분, 나무가 가만있으려고 하나 바람이 가만 놔두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려고 하나 세월이 부모를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부모 계실 때 효도하세요.
저는 효자동의 유래에 대해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동네 어느 집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린 손자를 베고 자다가 그만 아이가 죽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가 손자를 죽였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자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인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자책하며 얼마나 괴로워하실까 생각하여 몰래 죽은 아이를 안고 나와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죽은 아들의 엉덩이를 호되게 때리며 “이 자식아, 너는 왜 죽어서 할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 너 때문에 이 아비가 네 할아버지께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으니 어떡하면 좋으냐?”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러자 죽었던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살아났답니다. 이 일이 동네에 퍼지고 임금님 귀에까지 들어가 그 동네 이름이 ‘효자동(孝子洞)’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효도까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자주 전화라도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용돈 드리고 하세요. 가르치려 들지 말고, 집 보는 개 취급하지 말고 잘 살펴드리세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부귀와 장수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둘째, 자녀는 사육하지 말고 양육해야 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자식은 기업입니다(시127:3). 기업의 성패가 기업경영에 있듯 자식도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 곧은 거목이냐, 잡목이냐, 아니면 땔감이냐 결정되는 것입니다. 바르고, 참되고, 머리가 된 자녀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상고하게 하십시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7).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하며, 학식을 더하게 하며, 모략을 얻게 하므로 이보다 더 좋은 교육지침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국인이 역사 이래로 가장 존경한다는 ‘에이브러험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오늘의 나는 내 손에 성경을 쥐어준 어머니 덕분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링컨의 나이 9살에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어린 링컨의 손에 성경을 쥐어주며 ‘이 한 권의 책이 너를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 것’이라고 말해주었고, 그 말씀을 늘 읽었던 링컨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초달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어느 목사님이 심방을 가서 예배를 인도하려는데 그 집 어린 아들이 불쑥 나오더니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하더랍니다. 엄마가 지금은 예배 중이니 이따 주겠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엄마의 뺨을 때리고 나가더랍니다.
너무 놀라 어리둥절해있는 목사님에게 그 어미가 민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목사님, 그래도 저 애가 학교에서 1등하는 우등생이랍니다.” 이 말에 목사님은 기가 막혀서 “아니, 집사님. 1등 아니라 그 할아비라도 그런 자식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자녀 교육 단단히 시키세요.” 라고 말씀하고는 돌아서 나왔답니다. 정말 심각한 이야기 아닙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잠29:15). 자녀들이 잘못했을 때는 체벌을 해야 합니다. 채찍이 천대(千代)를 기르는 법이거든요.
그러나 아이를 무조건 억압하거나 부모 감정대로 때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인 중에 한 집사가 화가 난 상태로 아이를 때렸다가 다리를 못 쓰게 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그 집사에게 회개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았더니 아이가 그 자리에게 다리에 힘이 돌아와 걷고 뛰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빈 그릇과 같습니다.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들이 귀히 여겨질 것인가, 천해질 것인가 구별될 것입니다. 그 그릇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워 보배로운 자가 되게 하십시오. 신명기 6장의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가족은 가정 중심으로 살고, 가정은 예수중심으로 살 때 행복이 넘치고, 그 가정들이 모여 아름다운 사회, 국가를 건설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돈으로 집은 짓지만 가정은 세울 수 없다
행복에는 커트라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