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 골방에선 언제나 화가 석창우씨(사진. 49)의 낡고 오래된 붓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나신인 여인의 모습을 가늘고 굵은 선으로 이어가며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 시킨다.
끊길듯 이어진 그의 '누드크로키'의 검은 선율은 삶의 번뇌에서 표출된 율동과 가날픈 선, 그리고 절제된 힘이 돋보인다.
어찌보면 마구 쓴 초서 같기도 하고, 또 시안을 달리해 보면 그저 몇개의 선을 그어 놓은 추상화 같기도 한 그림이 보면 볼수록 여간 범상치 않아 보인다.
어느듯 화선지에 갇힌 세 뼘 남짓, 여체는 금새라도 보는이의 목덜미를 움켜 잡을 듯이 요동치기 시작하고, 때론 그림속 여체가 구애의 몸짓을 보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
감전사로 두 팔 잃어
석씨는 삽십대 초반 고압전류에 감전되어(1984년 10월) 두 팔과 왼쪽 발가락 두개를 잃어야만 했던 가슴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석씨는 평생을 엔지니어로 살다가 순간의 사고로 두팔을 잃어버린 그때서야 비로써 '몸은 도구일 뿐'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직관으로 열리는 새로운 세상도 그때부터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었다면 비관과 절망으로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한 두번 쯤은 세상과 등질 마음을 갖게 될 법도 하지만 그는 현실속 절망을 이겨내고 화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도 한다.
무엇보다도 석씨에겐 그림과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붓을 잡게 된 계기도 우연한 일로 시작된다.
사고로 투병생활을 하던 중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본 처형이 그림 그려 볼 것을 적극 권유한 것이 화가로서의 입문이었다고 말했다.
퇴원 후 석씨는 전주에 내려가 서예수업 받기 시작했고, 그러길 수년 '문자추상화'란 새로운 장르의 서예크로키를 그려낸다.
그의 작업이 먹과 붓을 사용하는 서예크로키인 만큼 그냥 붓으로 연습 할 수 있었는데, 석씨는 굳이 쉽지 않은 누드크로키를 선택했고, 그것이 지금 단계까지 오르는 기반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의 수상을 하면서 명성과 인지도도 쌓게된다. 대표적인 것이 '전라북도 서예대전 입선3회. 특선1회(91-96)',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4회(92-96)', '대한민국 현대서예대전 입선 1회, 특선1회, 우수상(92-94)', 서울시 서예공모대전 입선1회, 특선2회(96-98)', '자랑스런 명지인 상 수상(99)' 등이다.
벌써 13번의 국내외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니 그의 그림에 대한 진념을 엿볼 수 있다. 5년에 한번도 열기 힘들다는 작품 전시회를 수 차례나 열었을 정도로 석씨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남 다르다.
장애자라는 현실의 좌절을 딛고 신체적 장애를 예술적 가능성으로 승화 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더이상 그에게 신체 불구는 불편의 대상은 아닌듯 싶다.
대인 관계에서 가리고 숨기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벗어 던지고 어린애와 같은 티없이 밝은 표정으로 스스럼없이 대하는 그에게서 영혼의 순수를 느낄 수 정도다.
웬만한 일에 조급함도 없고, 얽매임도 없이 모든일에 넉넉하고 초연한 삶을 사는 그다. 이 모든 것이 삶의 절망에서 일어나 세상을 이겨낸 힘이 아닐까.....
.........'생활에 있어서 힘들지 몰라도 석씨는 자유인이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것을 변화 시키고 상처를 치유하는 그는, 희망으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