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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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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12:00정각 자정을 넘기고있었다
엄청난 강행군인것은 발바닥이 후꾼거리고 22,641보의 보행기록을 세운것은 무리한것임은
등산화가 아닌 구두를 신었던것이다
제천에서 일찌감치 천안시내에가서 잠을 자고 새벽 07:07천안의 여객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일찍 독립기념관을 향해약30분 걸린07:30분에 독립기념관에 도착하였다
아침햇볕이 서광처럼 아름답고도 위엄을 들어내어 만상을 압도하였다
대학생인듯 가족인듯 몇몇 청년남녀들이 내앞을 부지런히 왕래하면서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이곳 기운을 받아챙기려는듯 거룩하고 엄청난 마음을 이어받아서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려는 갸륵한 마음으로 자기들의 얼굴들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어대는것이었다
나에게 스마트폰을 넘기면서 모두의 빠짐없는 단합된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뜻을 새기려 하는것이었다
흔쾌한 마음으로 그들의 아침행보를 돋보이게해주었더니 금방 바쁜생활의 오늘을 새출발하는마음들로 총총히 사라져 버리었다
"독립기념관"현판좌우엔 민족의 기상을 드높이는 우람한 석상이 하늘을 향하여 비상(비翔=나라오름)하는 민족의 웅지를 들어내고 동서양벽면에는 대한민국을 표징하는 태극기와 국운의 무궁한 발전을 화려하게 펼쳐보이는 무궁화꽃이
아름답게 수놓여있었다
차츰차츰 떠오르는 태양!
하늘의 중천은 아직 요원한듯 이제 모두의 새출발의 준비처럼 독립기념관 소속직원들의 일과는
깨끗한 출발의 시발점을 아주 깨끗하게 시작하려는 일념으로 각종 기물들을 진열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질서있게 드르륵드르륵 개시하는 것이었다
일행과의 연락을 위한 시간은 아직도 한시간 이상이나 남은여유로운 시간을 그냥 허비할 문제가 아니다
오른편으로 수회왈당(水廻曰堂)의 연당이 볼만하였고 산개왈명(山開曰明)의 멀리 주산꼭지에 방송국 안테나의 중심지아래 아늑하면서도 마치 복식호흡의 위력을 나타내는 배꼽같은핵심점에 위치한 지점을향하여 강열한 아침햇볕을 등뒤로 받으면서 백오인의 층계를 한다름에 올라가니 이곳전체를 내려다보면서 좌우전체를 관망하는 계레의 명당을 느끼게하는 그자리에 서게되었다
대한민국을 지켜오고 또 무궁한발전을 기원하는 기도의 향불을피우는 바로 추모의자리그곳이었다
스스로 경건한 마음과 이나라 오쳔년역사의 시련과 영광을 상징하는표상들로 청용맥박을 뛰게하는 오른편으로 내려오면서 선열들의 표상과 불휴의 말씀들을 읽어보게하는 시간으로 아침 이슬을 녹여버린 그 잔듸위의 세원진 교훈들을 가슴으로 새기며 내려오게되었다
韓溪李昇熙先生遺訓
爲父母立身 爲天地立心 位吾生立道 爲斯民立極 爲萬世立範
한계이승희선생유훈
부모를 위해입신하고 천지를 위해마음을 세우고 나의 삶을 위해 도를세우고 이 백성을 위해 표를 세우며 만세를 위하여 본을세우라
아침햇살을 한껏받은 이우람한 석상표적을 시작으로 중심지 한복판엔
朝鮮獨立領이란 커다란 돌입상을 중심으로
東岩車理錫先生의 完全自主獨立主張을 끝으로 그옆 네모판烏石(오석)에 새겨진
韓國魂
우리겨레가 망한것은 사람의 마음이 죽음으로써이다
우리의 마음이 아직 죽어버리지 않었다면 비록 지도가 그
색깔을 달리하고 역사가 그 칭호를 바꾸어 우리 대한이 망
하였다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스스로 하나의 대한이
있는것이니 우리들의 마음은 곧 대한의 혼이다
예觀 申奎圭植先生 遺著 "韓國魂"에서
를 끝으로
윤봉길의사의丈夫出家死不還이라는 비장한 위국충정을 새겨낸 필적이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어주었으며
그 아래 의 초입좌측에 올라가면서는 오른쪽에 우리역사상 가장큰 국토를 자랑하면서 저 중국대륙을 호령하였던 세계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光開土大王碑가 우람하게 서있었다
만나기로 약속한 10시가 가까워옴으로
섭외부장
최기성님께 전화연락을 취하니 기념관 입성 좌측에 첫번째로 위치한 겨례의 뿌리 회관에서 해설사와 함께 무악김진성씨가 있다는 말에 오늘의 독점안내책임자인 그를 알아보기엔 너무도 생소하였으나 성운사공선생을 알아본것이 다행으로 다방면으로 찾아내는데 성공하였으며 본격적인 해설이 시작되었는데 그 해설을 듣기에 합류하는데 큰 지장이없었다
을사오적에 의하여 나라가 넘어가는 고종황제의 민망스럽고 애통한 형태는 한밤중에 러시아공관으로 어린자식 순종을데리고 궁녀의 타는 가마에 숨어서 새벽미명에 왜놈의 감시를 뚫고 목슴을 탈출하는 그 통절한 마음을 어찌 다 필설로 표현할수있겠는가?
그 다음에 황제라는 허울좋은 대한제국의 입성은 다시금 그 휘황찬란한 가슴에 가득한 훈장을 주렁주렁매달고 2천만 동포의 시범을 보이겠다고 왜놈의 강요에 의하여 중의 까까머리로 삭발을 실천한 단발령은 오두(吾頭)는 가단(可斷)이언정 오발(吾髮)은 불가단(不可斷)이라는 최익현의 강력한 반발로 삼천리강산에 의병이 봉기하여 순국선열의 나라사랑을 표징하였으나 결국36년간의 국권을 상실한 민족의 시련은 오늘까지 그 영향으로 반복되는 왜놈의 발호에 초긴장 위란의 세월이 점철되고있다할것이다
유관순 안중근 윤봉창 순국의사는 물론 김구 이승만해방정국에이르기까지 독립선열들의 피흘린투쟁을 두루살피고
아산의 외암민속마을로 옮기었다
이간의 예안이씨 집성촌의 유래와 내용은 오늘의 점심을 약속한 민속길초입의 식당 벽에 계첨된 서예글씨에 잘 나타나있었다
광덕계류잔잔거
심산유곡백화향
설화산봉정기회
배산임수외암촌
廣德溪流潺孱去
深山幽谷百花香
雪華山峰精氣廻
背山臨水巍巖村
가을단풍이 익어가는 아늑한 촌락엔 전국각지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으로 붐비는 볼거리를 제공하기위한 물레방아 떡메치기는 물론 마을입구쪽에 600년느티나무 거목에는 그네뛰기가 한창이었다
푸짐한 점심식사가 끝난후에는 요지음 한창 징비록에 그 위대한 품성과 위국충정을 만고에 들어내어 만고유방 명불허전
萬古流芳
名不虛傳
재생시간1분 34초동영상 바로보기동영상 보러가기
의 이순신장군의 삶의 터전이었던 아산 현충사로 우리일행을 실은 관광버스는 옮겨갔다
다음 동영상
특별히 마을입구주변 도로는 은행나무가로수가 가을 단풍과함께 특색을 이루었다
특별히 오늘 이곳의 해설하시는 젊은분은 이순신장군의 직손으로 남다른 감회와 열성으로 현재 문화재관리청에 소속된 공무원으로써 더욱 큰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소상하면서도 감명깊은 해설을 해주었다자동재생 자동재생을 사용하도록 설정하면 추천 동영상이 자동으로 이어서 재생됩니다. <input id="autoplay-checkbox" type="checkbox" checked="" />
짧은 가을햇볕이 쉽게 석양을 재촉하는지라 아직도 보아야할곳에서 해설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서둘러야 한다는 섭외부장박기성님의 다구침에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추사김정희 고택을 가보게되었다
잘 다듬고 가꾸어진 고택앞의 추사체험관마당의 푸른봉우리같은 향나무는 국보급이었다 그곳은 아예 들어가볼겨를이 없었고
생가구조를 해설받는것으로 만족하였으며 추사의 세한도는 검은 네모장방형오석(烏石)에 새겨져있었고
거택기둥엔 산듯한 청남색글씨로 한글해설을 아랫쪽에 깨끗이 써넣어 한글세대의 의문점을 다소간 해결해주는것이었으며 정면엔
천하일등인충효
세간양건사경독
天下一等人忠孝
世間兩件事耕讀
이라는 인성의 목표와 생활의 기본을 요약해놓았다
해가 벌써 넘어가고있으니 저녁만찬이 또한 바쁜터인데 오늘의 식당은 우리나라최고의 요리사가 만든 요리솜씨를 음미해볼수가 있었으니 신암가든의 주인장 영업이력이
*청와대조리실장과 먼친척
*SBS생활의 달인 직장동료로 출연
*TVN한식대첩예선신청
*신라호텔총주방장과 면접후 탈락
이라는 선전간판이 식당간판을 압도하는것으로 오늘메뉴는 육계장이었다
날이 어두워 모두 집으로갈 귀소의식에 젖어있었으나 나의 마음은 집으로 돌아갈 차편형편이 여의치않았다
그곳에서 여섯명이 승용차로 떠나고
중간의 죽암휴계소에서 세사람이 하차한 다음 오늘 일행 총28명가운데서 아침에 떠났다는 사당역앞까지는 십구명뿐이었다
나는 조금은 외로운 생각이 들었다
중간필요한 역에서 내렸으면 좋겠고 더구나 서울까지 간다해도 청량리역부근에 내려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운전기사에게 부탁하는것은 아예 생나무장작처럼 뻐득하기만하였다
그냥 마음놓고 사당역까지 간것이었는데 거기에서 청량리로 일찍 오지못하면 또 하룻밤을 새워야할판이었다
사당역부근에서 내린것이 여러사람들과 인사할틈도없이 뿔뿔이 헤어졌는데
타들어가는 마음에
십년대한에 봉감우인양 귀인이 래조한것은 일행중에 한분인 임광정님을 만난것이 청량리까지 어려운 코스의 갈아타기와 특별히 10시10분 태택선으로 출발하는 역구내까지 친절한 배웅을 받아서 얼마나 아름다운 인정을 베푸러주는것인지 감동 그 자체이었다
이렇게 제천역에서 내려 택시로 집에까지 당도하니 딱 맞아떨어지는 자정(밤열두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