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과 귀소에 대한 둔주곡
- 박병두, 『해남가는 길』(고요아침,2013)
김윤환
문명은 사람을 방랑자 혹은 순례자로 만들었다. 시는 그 방랑과 순례의 발자국이거나 휘파람 같으리라. 시인은 어디론가 떠났고 또한 돌아오려는 인생들의 그리움을 기록하는 사초(史草)와 같다. 세상의 모든 디아스포라에게는 돌아가고픈 본향이 있다. 그 본향의 가장 선명한 흔적이 바로 어머니가 아니던가.
10여년 만에 펴낸 박병두시인의 시집 『해남 가는 길』의 전편에는 세상이라는 염전에 피어난 소금꽃 같은 어머니의 젖가슴이 보이고, 낙타등 같은 굴곡 많은 가족사가 머언 길처럼 펼쳐져 있다. 시인의 푸른 마음이 붉은 꽃으로 피어나는 데는 어쩌면 못 다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걸어왔던 목마른 시간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해남 가는 길이 어찌 시인 한 사람만의 고향길이겠는가?
시인의 고향 해남은 돌아가지 못한 회환의 고향이요, 맘껏 품에 안기지 못한 모성에 대한 슬픈 둔주곡(遁走曲)이다. 시인이 고백한 대로 시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이자 독자 자신이 될 것이다.
교향악의 한 장르인 둔주곡(fugue)은 하나의 주제가 각 성부 혹은 각 악기에 장기적이며 규율적인 반복을 행하면서 특정된 조적(調的) 법칙을 지켜서 이루어지는 악곡형식이다. 흔히 성악합창곡이나 기악합주곡으로 만들어지는데 하나의 조를 기반으로 해서 그것의 근친관계가 그 원조를 수식하면서 커다란 조적 마침꼴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둔주곡이 갖는 선율적 요소는 주제와 응답의 반복으로 대주제 종결의 연장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둔주곡의 비유로 볼 때 박병두의 이번 시집은 고향과 어머니, 타향살이와 자신을 노래하지만 그 것은 결국 본향에 대한 귀소의 서정이 대주제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남에 가면서 / 해남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그를 추억한다. / 단숨에 청춘을 마셔버리고 / 낡은 지느러미를 푸덕이며 / 내가 말없이 거리를 박차고 떠난 날에는 / 첫눈이 이념같이 끝없이 내렸다 // (중략) // 거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같이 / 너처럼 가뿐 숨을 몰아쉬고 해 남 찾아가는 길 / 끝없이 비내리고 있다는 해남에는 / 저녁밥 짓는 연기가 자욱하겠다.
- 「연어」부분
연어의 귀소(歸巢)는 생사를 초월하여 생명을 이어가는 기억에 대한 순종의 습성이다. 사람은 더러 숙제처럼 고향을 찾지만 그곳에 머물 수없는 방랑벽에 다시 떠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아프게 추억하게 된다. 문득 청춘을 다 마셔버리고 제 뜻대로만 유영했던 삶의 지느러미도 낡아 갈 무렵 인생들도 연어처럼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해남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 시는 우리가 영혼과 몸이 함께 본향을 찾아갈 때 비로소 눈은 녹아 비로 내리고 고향집 따뜻한 저녁 온기를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익숙한 길을 잃어 버렸다, 내 동무들과 뛰 놀던 길’을 잃어버린 자괴심과 ‘찾으려 해도 찾으려 해도/ 잡초들이 길을 막아서고 열어주지 않았다 ’고 도무지 돌이켜지지 않는 본향 길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다.
그 갈구는 고향의 또 다른 이름 어머니에 대한 노래로 다시 그려지고 있다.
밤새워 포장한 일들이 / 눈물로 채워졌다 / 월급 한 푼 두 푼 모아두었다가 / 남들은 집도 장만하고 / 승용차도 장만했건만 / 나는 병중이신 / 내 어머니께 드릴 / 허기진 내의 한 벌 준비했다. / 언제나 갈 수 있을까? // (중략) // 매일 출근 하던 날 / 우체국 앞으로 왜 못 갔을까 / 어머님을 곱게 포장한 관이 / 수취인 불명의 깊은 지하로 어둡게 내려갔다
- 「부치지 못한 소포」 부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저 마음뿐이 아니라 내 몸을 보여드리는 일인 것을 모르는 자식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결국 다 보여드리지 못했던 회한(悔恨)과 그리움으로 머무르고 말았다, 눈물로 채워진 마지막 소포는 다름 아닌 시인이 준비한 허기진 내의 한 벌이었다. 내의 한 벌의 이미지는 어머니의 가슴과 자궁을 대신 느끼고픈 혹은 그리움의 원천을 보호하려는 서정이 시속에 녹아있다. 그러나 그 소포는 불귀의 사모곡이 되어 버린 수취인 불명의 아픔이 되어 버렸다. 부치지 못한 사랑, 그 작은 소포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시인의 내면에 아프고도 따뜻한 고향노래로 남게 된 것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자신의 시는 사실 한 인물에게서 베껴 왔노라 고백했다. 그가 자신의 시원으로 꼽은 인물은, 바로 김시인의 어머니 ‘양글이 양반’이다, 작년엔가 김용택시인은 어머니를 노래하는 시집을 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사실 모든 시인의 서정과 상상력의 원천은 어머니가 아니던가.
가을바다는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고 / 풍요로운 밥상이 식탁에 오른다 / 내 몸 어딘가에 통증이 되살아나고 / 어머니는 먼 바다에서 깊게 잠들어 계신다
- 「어머니의 바다」 일부
자식이 떠난 고향 쓸쓸한 가을바다는 자식을 위해 찬 바다에 들어가셨으며, 햇살 든 가을마당에 고추를 널며,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던 서정의 본향인 어머니는 이제 그리움과 한(恨)으로 남아 시인의 가슴에 그치지 않는 파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가 훌쩍 떠나신 것처럼 우리 모든 자식들은 자식을 위해 한없이 작아져가다 마침내 촛불처럼 꺼져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아 계신 때 보다 훨씬 더 많이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표제시 「해남 가는 길」은 바로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귀소의 목마름이 대주제가 되어 이 시집의 수맥임을 날 드러나고 있다.
해남은 해외 남쪽인가 / 해남 가는 길 / 푸르던 내 마음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 아니면 바다의 남쪽인가 / 해남 가는 길 / 소금꽃 끝없이 피어나는 가슴 / 낙타등 같은 하루를 두드리며 / 해남 가는 길 / 발바닥에 물집 잡히듯 잡히는 그리움 / 해남 가는 길 / 가면 갈수록 끝없이 목마른 그 길
- 「해남 가는 길」전부
땅끝마을 해남, 누구나 마음의 끝자락에는 어머니와 고향이 자리하고 있다. 시인의 고향길인 ‘해남 가는 길’은 닿을 듯 닿지 않는 끝이며, 피어난 듯 다 피지 못한 화원이었고, 그리움이 만든 아물지 않는 물집이기도 하다.
‘해남가는 길’에서 시인은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사랑과 아픔이 마치 우리 모두의 일기장처럼 아프게 전이(轉移)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픔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따뜻한 슬픔을 만나게 된다. 마치 긴 여행을 떠났던 순례자가 문득 자신의 본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귀소의 시간 속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은 신음을 음표로 삼아 / 침묵의 노래를 부르고 있네요 / 지쳐버린 나날들에 / 숨이 막혀 / 병든 노랫가락마저 / 침묵하고 있네요 //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 초라한 음악처럼 잠잠한 / 당신의 모습, / 생명의 음계를 일으켜 세워 / 다시 부를 그날을 / 나 이렇게 기다리고 있네요
- 「나의 노래」 전부
시인의 노래는 모성과 귀소의 둔주곡이 되어 시집 전편에는 어머니의 ‘독수공방’과 ‘이방인’이 되어버린 시인과 ‘봄날의 이별’이 ‘흐르고 또 흘러’ ‘그리운 이름 하나’ 해남으로 가는 길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아프지만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그 길이.
김윤환_1989년 협성대 신학대학원(신학석사) 및 단국대 대학원 문창과 졸(문학박사). 『실천문학』등단, 시집『그릇에 대한 기억』,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등 논저『한국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연구』,『박목월시에 모성하나님』등, 현 시흥은강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