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차
희언, 말로 장난을 치자
2. 이상의 방법
이상(1910~1937)은 1930년 <조선>에 장편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31년에는 《조선과 건축》에 일문으로 된 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을 발표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1930년을 전후하여 세계를 풍미한 초현실주의 문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더니스트, 다다이스트, 초현실주의자, 경박한 유행이라는 다면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일상 언어로 심상의 조합을 통하여 시적 대상을 재구성하는 한국적 전통 서정시법을 파기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식적인 시적문장 체계를 배척하고 숫자나 도형을 시에 적극 수용하였습니다. 김춘수는 이러한 이상의 띄어쓰기와 구두점의 무시, 문자 대신 숫자를 사용한 것을 해사체(解辭體)라고 하여 통사체와 대립시켰습니다. 해사체란 이상이 시에서 보여준 일종의 형식적 자포자기의 현상으로 현대예술의 위기 또는 언어 위기의 징후를 기술한 것입니다.¹²⁰⁾
그는 「오감도」라는 시를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를 했는데, 우선 제목부터 언어유희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설계용어에서 사용하는 ‘조감도(鳥瞰圖)’를 ‘오감도(烏瞰圖)’로 일부러 틀리게 표기하면서 문자 장난을 통해 언어유희를 하고 있지요. 이러한 기성어법을 파괴하는 초현실주의적 기법¹²¹⁾은 시대의 현상을 유머감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시를 쓰는가가 문제가 되는데, 이는 근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를 전복하려는 자율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합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세운 인간의 사회 가치가 전쟁과 살육을 하는 등 별 볼 일이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원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인간의 사고를 반영하는 시 역시 비문법적이고 비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초현실주의의 성격이 예술체제에 다소 비판적이고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서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아니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오감도(烏瞰圖)-시 제1호」 전문
4연 23행의 위 시는 일단 제목에서도 ‘鳥瞰圖’(조감도)의 ‘鳥’조 : 새)를 비슷한 글자인 ‘烏’오: 까마귀로 바꾸어‘烏瞰圖’(오감도)로 일부러 잘못 표기한 재치, 단어와 단어를 띄우지 않는 비문법,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과 전체의 문맥, 의도성이 가미된 반복 등이 전통적인 시법과 매우 다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오감도」를 ‘시제1호’에서 ‘시 제15호’까지 15편을 연작으로 썼고, 다시 8편의 시를 더 썼습니다. 그런데 이들 시의 내용과 제목은 무관합니다. 전통적인 시라면 제목과 내용이 관계를 가지며 미적 효과를 드러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같은 어휘와 문장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면서 어떤 리듬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논리적인 내용이나 인과적 법칙이 표면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해 가능한 서사구조가 아닌, 이해 불가능한 자의적 도식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작위성, 인과성, 논리성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어휘와 통사구조의 반복, 그리고 숫자의 순차적 배열과 위반뿐입니다. 시는 서정적이고 은유적이며 상징적이고 등등 어떠해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합의된 시에 대한 기성적 가치체계를 언어의 유희를 통해 재치 있게 흔들어버리고만 것입니다.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그런데도나의아버지는나의아버지대로나의아버지인데어쩌자고나는자꾸나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나나는왜나의아버지를껑충뛰어넘어야하는지나는왜드디어나와나의아버지와나의아버지의아버지나의아버지의아버지노릇을한꺼번에하면서살아야하는것이냐
-이상, 「오감도시 제2호」 전문
화자가 자신의 아버지 곁에서 졸고 있을 때에는 화자 자신은 자신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계속 시간적으로 소급되어 간다는 것과, 말줄임표 이후에서는 아버지가 되고 나니 왜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고 살아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있습니다.
위 시의 특징은 단어와 단어 사이를 띄우지 않고 문장을 이어 쓰는 것과, ‘나의아버지’라는 어휘를 계속 반복하면서 변주하는 것입니다. 문장을 읽어가다 보면 ‘나’와 ‘아버지’와의 어떤 긴장관계가 일어날 것 같지만 결국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그냥 끝나버립니다. 실제 아무 내용도 없습니다. 일종의 언어희롱을 통한 기대배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상은 전통적이고 재래적인 시작법을 부정하거나 파괴하고 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언어유희로 해학적 감각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문표¹²²⁾는 나라는 존재가 시간의 복합성, 즉 현재의 나란 이미 가버린 무수한 아버지들의 총체적인 현현(顯現)이라는 과거와 현재의 동시성을 의미하며, 이러한 통시적 동시성에 자아를 인식하려고 시도한 것이 위 시의 시적 시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熱心)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爲)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이상, 「꽃나무」 전문
이 시를 아무리 읽고 또 읽고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려하여도 불가합니다. 그야말로 말장난의 시입니다. 그래서 시의 이해보다 시인이 의도한 말장난의 의미를 이해하라는 것이 이 시의 창작 목적입니다.
억지로 시를 뜯어보자면, 벌판 가운데 꽃나무가 서 있고, 꽃나무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홀로 서 있는 꽃나무가 연상이 됩니다. 그런데 그 꽃은 자신을 열심히 생각하며 꽃을 피워가지고 서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나 그 다음 문장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에게 갈 수 없’다는 것으로 바꾸어 문장을 만들어보면 실존적 사유 측면에서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다음 문장 “나는 막 달아났소.”도 자기 자신에게 도달할 수 없게 되자 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났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자신의 의도나 가치와 다른 삶을 살고 있거나 행위를 하는 심리가 이런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 문장은 화자 자신의 행동이 벌판에 서 있는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분 부분을 뜯어보면 관념적이고 형이상적이나마 막연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는 확실한 이야기 구성이 어렵습니다. 아마 자기분열이나 자기도착, 아니면 논리적 서사구성을 일부러 회피하려는 창작자의 의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를 읽었을 때 이것도 시가 되나? 하고 의심을 하는 것이 솔직한 독자의 감정이 되는 것입니다.
김준오¹²³⁾는 이러한 기법을 소외기법, 즉 낯설게 하기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낯설게 하기 개념은 러시아형식주의자들이 제기한 예술의 원칙입니다. 이 낯설게 하기의 개념은 미적 거리의 개념을 도입한 것인데 “일상언어, 규범문법의 파괴와 전통적 율격 및 전통적 미적규범을 파괴하면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이런 파괴의 산물이어야 하고, 여기서 시의 예술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상의 시가 그렇다는 것이지요.
김준오는 위 시 「꽃나무」를 실례로 들면서, 이상의 시는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낯설게 하기의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띄어쓰기가 없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논리성이 없으며, 꽃나무와 화자를 연결시킨 유추 등이 낯설게 하기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꽃나무와 화자의 관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상시의 낯설게 하기는 미적 거리를 극대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충격을 주지만, 그만큼 그의 시는 처음부터 난해하기 마련입니다.
낯설게 하기의 극단적인 형태는 모더니즘의 몽타주 수법입니다. 이질적인 심상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이 기법은 일종의 소외기법인 것입니다. 몽타주 수법은 서로 다른 심상들을 오려붙이거나 조립하여 새로운 효과를 내는 독특한 기법입니다. 전위적인 예술운동을 확산시킨 다다이즘의 기수 트리스탄 차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신문을 들어라
가위를 들어라
당신의 시에 알맞겠다고 생각되는 분량의 기사를 이 신문에서 골라내라
그 기사를 오려라
그 기사를 형성하는 모든 낱말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잘라서 포대 속에 넣어라
조용히 흔들어라
그 다음엔 자른 조각을 하나씩 꺼내어라
포대에서 나온 순서대로
정성들여 베껴라
그럼 시는 당신과 닮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무한히 독창적이며 매혹적인 감수성을 지닌, 그러면서 무지한 대중에겐 이해되지 않는 작가가 될 것이다¹²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다이즘의 시는 기존 전통적인 미학의 논리나 어법과 무관하게 사물들의 조각을 제멋대로 조립하여 다른 효과를 내는 것입니다. 다다이즘이 시도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몽타주 방식인데, 이상의 다음 시가 그렇습니다.
ELEVATER FOR AMERICA
○
세 마리의닭은蛇紋石의층계이다. 룸펜과毛布.
○
삘딩이토해내는신문배달부의무리, 도시계획의암시.
○
둘쨋번의정오싸이렌.
○
비누거품에씻기어가지고있는닭. 개아미집에모여서콩크리-트를먹고있다.
-이상, 「대낮-어느 ESQUISSE-」 전문¹²⁵⁾
위 시는 다섯 조각의 심상을 붙이고 있는 몽타주 수법입니다. 원래는 일본어로 쓴 시였으며, 영문과 우리말을 혼합하고, 전통적인 시의 어법이 무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상은 일본을 통하여 서양의 다다이즘을 받아들였으며, 다다이즘은 1차 세계대전의 사건이 일어나자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현장을 목격한 지성인들이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에 절망한 나머지 그 갈등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다이즘 기법 가운데 콜라주 수법이 있는데, 이는 미술의 화폭에 인쇄물, 쇠붙이, 나무조각, 헝겊, 인체의 머리카락 등을 붙여 새로운 조형을 창출하듯이 시에 그래프나 도면을 오려다 넣거나 신문기사를 삽입하는 등 이질적 재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표현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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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김준오, 75쪽 참조.
121) 초현실주의는 1917년 기욤 아폴리네르가 장 콕도의 무용극과 자신의 연극을 설명하면서 창안한 용어이나 오늘날 초현실주의의 의미와 무관하다. 1924년 이후 브르통과 수포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우리 친구들에게 전하길 갈망하는 새로운 표현형식에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선언하였다. 1927년 브로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이 운동이 상상력, 꿈, 혼상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을 신봉한다고 공표하였다. 이들은 2차 세계대전을 맞아, 그 계기로 흩어져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특정한 정치적 성격을 갖지 않았을지라도 혁명적 정치에 손을 대고, 공산당과 다양하게 제휴하고, 그들의 자유 개념을 정치 영역에서 전개할 방법을 찾았다. 초현실주의자들의 광범위하고 혁신적인 요구는 시민사회에 대한 깊은 회의에서 기인하며, 이는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시민제도, 현대문명의 소외현상, 그리고 모든 것을 논리의 지배와 오직 이성 중심적 현실 개념 밑에 두는 물질화된 사회적 합리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경직된 사회상황을 생생한 경험에 대하여 개방적이며 창조적 환상, 감정적 갈망, 그리고 주체의 충동욕구가 당연히 고려되는 현실로 해체하고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현대예술은 결정적으로 사실주의 개념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되는 가능성을 마련하였다.(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편, 『문학비평용어사전. 하』, 954~955쪽 참조)
122) 홍문표, 467쪽 참조.
123) 김준오,267-268쪽 참조.
124) 홍문표, 506쪽.
125) 임종국편, 이상전집』, 273쪽.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4. 4. 5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