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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앞길
김 동 리
오늘도 역시 좋은 날씨연만 선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뜰은 아침에 갓 쓸어 놓은 그대로 깨끗하고 장독 곁 감나무에서는 이따금씩 하얀 감꽃이 하나씩 내려와 장독을 때리고는 뜰로 굴러 떨어진다.
순녀는 따뜻한 툇마루에서 어린것에 젖을 먹여 재워 놓고 아까부터 씻다 둔 고무신짝을 다시 씻기 시작하였다. 씻어 보니 의외로 많이 낡아졌으나 그래도 친정 어머니나 올케들이 사뭇 맨발로 지낼 것을 생각하니 그나마 깨끗이 씻어 아껴 신고, 그리고 며칠 전에 사다 준 새 신은 이번 친정 갈 때나 가져가고 싶다.
오늘이 오월 초하루라 인제 보름만 지나면 바로 친정 어머니 생신날이다. 그 때엔 이웃집 옥남이에게 어린놈을 업히고 자기는 닭을 안고 어머니를 보러 갈 것을 생각하니 순녀는 시방도 곧 가슴이 두근거린다.
생각하면 그 동안이 어느덧 칠 년, 한 해를 삼백예순 날씩으로만 잡아도 이 천 하고 오백 날에, 순녀가 진정으로 살아 본 성싶은 날은 그나마 그 한 이레뿐이었다고 생각된다. 한 해에 한 번 씩밖에 오지 않는 어머니의 생신이다. 순녀에게 있어서는 일 년 삼백예순 날이 모두 이 하루를 위해서 있는 겐지 모른다. 게다가 올해엔 또 어린놈까지 옥남이에게 업혀서 갈 것을 생각하니 사뭇 즐겁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무어 순녀가 이번 첨으로 아이를 낳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살림이라고 든 지 칠 년 만에 그 새 아들만 연달아 셋을 빼낳았다. 사십 줄에 들도록 아들 구경을 못 해서 잔뜩 기갈이 들었던 참에 갑자기 이런 복덩 이들이 셋이나 잇달아 쏟아졌으매 영감님께서도 인젠 그 아들 기갈이 반이나 돌린 셈인지 이번엔 어째 백날이 다 가도록 업어 가는 둥 져가는 둥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다.
그 날 영감이 흰 고무신 한 켤레와 시방 저 감나무 밑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수탉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와서 신은 네 신이다. 어디 발에 맞느냐, 닭은 이번 보름날 가져갈 게다. 그 동안 어디 얼마나 더 키워서 가는가 보자는 둥 하며 제법 흐뭇한 눈치이길래, 그래 이 짬을 타서 순녀도 영감의 복장(가슴의 한 복판, 속에 품고 있는 마음씨)을 좀 다뤄 볼밖에 없어,
“나도 늘 혼자서 너무 심심코 하니 이번 아일랑은 그만 여기서 기뤄 볼란요.”
여러 번 두고 벼르던 걸 한 번 이렇게 넌지시 물어 본즉,
“…….”
영감은 그냥 못 들은 체하고 궐련만 빨고 있었다.
이러고 보매 순녀도 한 번은 더 다잡을밖에 없으므로,
“큰댁엔 그렇게 아이들이 둘이나 있고 하니, 마누라님도 늙마에 그것들 길르느라고 매양 그렇게 애쓸 것 없이 여기선 이렇게 젖도 넘고, 나도 늘 혼자서 너무 서운코 하니…….”
한즉, 영감은 그제야,
“그렇게 늘 심심커든 밖에 나가 자꾸 일이나 하지.”
하는 것이다.
순녀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리려다 어느덧 속으로 뾰로통한 설움이 솟아올라,
“허기야 머 늘 노는 줄만 아십네까, 저 앞 밭에 한번 나가 보겠이먼 그 보리랑 감자랑 마늘이랑 목화랑 모두 뉘 손으로 그렇게 가꿔 났게요. 것두 낮뿐이면야 무슨 짓을 한들 무에 그리 갑갑할 겝네까. 사철 자나 새나 한 번 들여다볼 아이 하나 없고 하니 그런 게지.”
아까부터 옷고름은 눈에 갖다 대이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저 그런 습관뿐이요 눈물은 노상 방바닥으로만 쏟는다.
“…….”
영감은 담배만 피우고 앉아 있으면 그만인 것이었다.
순녀도 이번엔 한사코 한번 해보고 말 참이니, 이번조차 그렇게 앗아간다면 사실 그는 세상에 살 맛이 조그만큼도 없다. 본래가 부모 형제를 위하여 거의 팔려 오다시피 된 몸이라고는 할망정 이미 아들을 둘이나 앗아갔으면 그만이지 이 위에 또다시 은혜를 더 갚아야 하는 겐가. 또 은혜래야 실상 별것이나 있나, 그때 논 다섯 마지기 얻어 붙이게 된 것뿐인 걸 그걸 가지고 무어 그리 두드러진 은혜라고들 하는가.
맥 모르는 이웃 사람들은 언필칭(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인사라고,
“그렇게 편하구두 왜 이리 말르누?”
고들 하지만 그러게 사람이란 본래 남의 속 모른다는 게지. 사람이 마음속이 편해야 편한 게지 옷 밥 굶주리지 않는다고 마르지 않을까. 누구나 자식 낳아 기르지만 제 속으로 난 자식 남에게 앗기고도 먹는 것이 참으로 살로 갈까. 그것도 십 년이나 이십 년쯤 지낸 뒤엘지라도 도로 제 에미라 찾아나 줄 게라면, 그만큼 철이나마 든 것이라면 그래도 그 때를 바라보고나 살아 본다지만, 이건 행여 제 에미 낯이나마 익을까 봐 채 인줄도 걷기 전에 들싸안고 가버렸으니 이것이 큰집 마누라의 하는 꼴이란 이건 일껏 아들을 낳아 주어도, 아니 그럴수록에 원수로 친다. 본디 제 복에 없던 아들이 셋이나 늘어져 놓고 보니 인제 순녀는 갈 데 없이 마누라의 혹이 된 셈이다. 그러니까, 먼저 아직 이 셋째 놈이 나기 전에만 해도 마누라는 허줄한 논이나 댓 마지기 제 앞으로 떼어주어서 아주 손을 끊어 버리라고 영감을 들쑤시더란 소문은 이제 온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마는, 그 때 영감이 그저 그만 하고 있는 것은 무어 마누라보다 그가 순녀를 그리 끔찍이 더 생각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허줄한 논이라고는 할망정 한 참에 논을 다섯 마지기나 떼어 내주기란 참말이지 아까워서 못 할 노릇이었을 게라고도 또한 이웃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그대로다.
속 모르는 친정 오라버니만 공연히 어리석은 헛욕심에 들떠서 제발 영감님이 그러라고만 하거든 두말 말고 선선히 그러란 부탁이다. 하나 이건 남의 속을 몰라주어도 분수가 있지 그까짓 논 댓 마지기에 속아 떨어질 순년 줄 아는가 보다. 이젠 친정도 영감도 아무것도 대수롭질 않다. 제 속으로 난 자식을 셋이나 두고 왜 남이 된단 말인가. 그까짓 친정 오라버니야 목이 달든 말든, 그리고 영감이야 돌아보든 말든, 순녀는 인제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갈 참이니 열 번 죽더라도 찰거머리가 아니 될 수 없다.
순녀도 처음부터 아주 이렇게만 생각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첨으로 순녀가 이 살림을 들기로 한 것은 말하자면 순전히 친정을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이제 겨우 한 오십밖에 안 된 이가 벌써 여러 해째 천만으로 드러누워 주야로 들볶느니 약타령뿐이요. 집안일이라곤 손 하나 까딱할 줄 모르는 형편이고, 그 중에 보통 학교 졸업이라도 했다는 둘째 아들은 만준가 ‘대국’인가로 가버린 채 그 뒤 소식도 없고, 그 밖에 들끓는 건 모두 입 벌리고 먹으려고나 하는 어린 조카와 동생들뿐, 맏오라비 혼자 손으로 남의 논 서너 마지기 부치는 걸 가지고 그 많은 식구들이 어떻게 다 입에 풀칠인들 할 수 있겠는가, 이 짬을 넘겨다보고 윗마을 양 주사 영감이 사이에 사람을 넣어서 순녀를 달란다고 하였다.
윗마을 양 주사라면 첫째 돈 많고 토지 많은 사람인 줄 이 근처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가 또 여태껏 아직 아들 없는 사람인 줄도 다 안다. 그 때 그 중매를 들러 온 하 생원의 말을 들으면 누구든지 거기 살림만 들게 되면 제 하나 호강은 다시 말할 것도 없고 저희 친정 한 권속까지 농사 한 가지는 으레 실컷 얻어 부치는 게고 게다가 아들자식 하나만 낳고 보면 그 많은 살림이 모두 뉘 것이 될까 보냐고, 골골골 목구멍에 해소를 끓이며 귓속말로 일러 주던 것이다. 순녀라고 그 말을 그대로 다 믿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중에 어쨌든 천정에서 농사 한 가지라도 실컷 부치리라고 믿지 않았더면 당초 그의 소실을 들려고는 안 했을 것이었다.
과연 그 뒤 동네 사람들이 쑥덕이는 것처럼 그렇게 친정 형편이 정말 제법 늘어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숨 돌리기가 좀 나아졌다고는 그 어머 니나 오빠로부터도 듣는 바이다.
그러나 이제 와 순녀에게 있어 제일 목마른 문제는 친정도 아니요 살림도 아니요 다만 한 가지 제가 낳은 자식 셋뿐이다. 어떻게 하면 제가 낳은 자식을 제 자식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자식들을 위하여 마음껏 어머니 노릇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라기보다도 우선 어떻게 해야 그 그리운 자식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 볼 수 있을까가 더 적실한 소원이다. 그는 시방도 이렇게 따뜻한 툇마루에다 어린것을 재워 놓고 바로 그 곁에 앉아 고무신을 씻느란 둥 하는 것도 무어 저 감나무 밑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새빨간 수탉을 곧장 지켜 보련 것도 아니요, 그냥 햇볕을 흡씬 쬐어 보련 것도 아니고, 실상은 저어쪽 묵은 성(城)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개천을 끼고 들어오고 있는 선이를 기다리는 터이다. 아니, 선이를 기다린다기보다 그 선이에게 이끌리어 올 자기의 맏아들 영준이나 혹은 선이의 등에 업혀서 올 기준이를 맞고자 함이다. 순녀는 선이를 시켜 아이들을 꾀어 오게 하는 데 지금껏 갖은 애를 다 썼다. 그것도 선이로 보더라도 어른들의 눈을 속이고서 아이들을 꾀어 내오기란 여간 큰 ‘모험’이 아니다. 한 번 들키기만 하는 날이면 그 날로 당장 쫓겨나기는 물론이지만 우선 그 매를 어찌 다 맞아 내겠는가. 그러매 밥도 주고, 떡도 주고, 혹 엿도 사주고, 꽃주머니도 채워 주고 하여 보는 족족 꾀이고 달래었다.
나중에는 저희 어머니에게까지 청을 넣고 애원을 하여 마침내 선이도 그 모험을 승낙했던 것이다.
달포 전에 선이는 이 모험에 한 번 성공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선이는 작은 놈인 기준이만 업고 왔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선이는 순녀로부터 충분히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또 순녀 자신으로는 오래 두고 가슴에 새긴 설움을 이에 눈물로 풀기에 족하였던 것이다.
선이를 달래어 어른들의 눈을 속이게 하는 것이 결코 떳떳하지 못한 일인 줄은 순녀도 모르는 배 아니나, 하지만, 남의 자식을 낳는 대로 번번이 앗아가서는 여러 해가 되도록 아이들의 코빼기도 보여 주지 않는 것은 대체 떳떳한 일인가. 그것도 몇 천 리 먼 곳에 떠나가기나 한 것이라면 또 모를 일이지만 바로 동네 하나 사이에 두고 이렇게 몇 해 동안이나 한 번 보기도 어려우니 이 어찌 답답할 노릇이 아닌가.
감나무 그늘 밑에 웅크리고 누워 있던 새빨간 수탉이 활개를 털고 일어나 제법 늘어지게 낮 울음을 세 번이나 울었다. 저쪽 묵은 성 모퉁이를 돌아 이쪽으로 개천을 끼고 돌아 들어 올 선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동향 채 집 그늘이 뜰로 서 발(두 팔을 잔뜩 벌린 길이)도 더 내려와 순녀가 그제야 점심을 마악 들고 앉으려 할 때에 토닥토닥 이들의 발소리가 나기에 가슴이 덜렁하여 눈을 들어 보니 이윽고 문에 들어서느니 선이요, 선이 등에 업힌 기준이요, 선이에게 손목을 잡힌 영준이 들이다.
순녀는 처음 아이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서서 등신처럼 비죽이 웃고 있었다. 다음 순갑 문득 그는 미친 것처럼 뛰어들어 영준이를 덥석 품에 안았다.
―영준아…… 영준아…… 그러나 그 소리는 그의 목구멍 밖에 들리지 않고 영준이의 등 너머로 수그린 그의 낯에서는 눈물만이 쏟아져 내렸다.
선이는 순녀의 형편을 잘 알고 있는 터이지만 같이 덩달아 눈물을 흘리기도 쑥스런 노릇이고 그렇다고 그것을 빤히 쳐다보고 구경을 한단 수도 없어서 툇마루 난간에 주둥이를 대고 비스듬히 선 채 고개만 수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중 놀란 것은 영준이다. 암만 봐야 낯선 사람인데 왜 이렇게 저를 꼭 부둥켜 안고는 놓아 주질 않는 것일까. 게다가 이 낯선 사람은 눈물까지 흘리는 눈치가 아닌가.
“영준아!”
낯선 사람은 상기 눈에 눈물을 담은 채 이렇게 부른다. 가뜩이나 울 짬만 엿보고 있던 참이라 이 판에 그만,
“응 애애!”
하고 울음보를 터놓았다.
“왜 울어? 울지 마, 울지 마, 응 아가.”
순녀는 일어나 벽장문을 열고 준비해 두었던 백설기와 사탕가루와 엿과 과자를 내놓았다.
“자, 이거 먹고 울지 마, 자아, 자아, 그래야 착하지.”
순녀는 백설기를 집어 영준이의 손에 쥐어 주었으나 영준이는 기어이 주먹을 쥔 채 그것을 밀어내 버렸다.
선이가 그것을 보고 딱했던지,
“영준아 받아라. 엄마다.”
한즉, 영준은 잠깐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선이를 뻔히 바라본다.
“받아라 응 받아라.”
이번엔 선이가 손수 그것을 집어 영준이의 손에 들려 주려니까 그제야 슬그머니 손을 편다.
순녀는,
“옳지 그래야 착하지, 참 예쁘지…….”
이렇게 입은 놀리면서도 문득 눈물이 펑 쏟아졌다:
순녀는 아이들이 보지 않게 얼른 눈물을 닦고 나서,
“영준아 내가 뉘고? 어디 한번 알아맞혀 보렴, 맞히면 내 참 존거 주지.”
“…….”
“자아, 어디 내가 누구?”
그러나 영준이는 어리뚱한 눈으로 순녀의 낯을 멍 하니 바라볼 뿐이다.
“영준아 엄마다 엄마.”
선이가 곁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일러 주어도 역시 곧이 들리지 않는 눈치다.
그래 순녀가,
“너이 엄만 집에서 머하던?”
이렇게 물어 본즉, 그제야,
“엄마 잔다.”
하고 입을 뗀다.
“왜 아파서?”
“응.”
“어디가?”
“머리가.”
“어디 머리가 아파? 아이도 거짓말은…….”
하고 선이가 참견을 한즉,
“그 때 아팠거던 그 때…….”
영준이는 선이를 향해서만 대꾸를 한다.
순녀가,
“기래 너이 엄마 참 좋든?”
한즉,
“…….”
영준이는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선이는 등에 업고 있던 기준이를 끌러 순녀에게 주고 뜰로 내려가 감꽃을 주웠다. 영준이도 따라 내려갔다.
순녀는 기준이를 받아 안고 젖을 먹이었다. 영준이가 감꽃을 주워서 좋아라고 뛰어오는 것을 보고,
“영준아 앤 뉘고?”
하고 또 물어 본즉,
“우리 기준이.”
“기준이 네 동생이지?”
“그럼.”
“그러면 저 앤 뉘고?”
방에 누운 성준이를 가리켰다.
“…….”
영준이는 그냥 생긋이 웃었으나 그건 무어 영문을 알아서가 아니라 아이들이 저보다 더 어린애를 보면 으레 잘 웃는 그러한 웃음일 따름이었다.
선이가 있다,
“영준아 네 동생이다, 동생.”
하고 가르쳐 준즉,
“거짓말.”
한다. 순녀는 영준이의 대답이 으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은 미리부터 들었으나 홧홧 달아오르는 그 어떤 목마름에 쫓기듯 하며 그래도 행여나 싶어서,
“영준아, 너 날 모르겠나? 정말 내가 누군 줄 모르겠나?”
다시 한 번 이렇게 물어 본즉 영준이는 곧,
“선이 늬 엄마.”
하였다. 선이 엄마란 뜻이었다.
순녀는 갑자기 달아나듯 부엌으로 펄쩍 뛰어가 사발로 냉수를 퍼 먹었다.
그 날 밤으로 큰댁 마누라가 얼굴이 파랗게 되어서 뛰어왔다. 참 할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었다.
돌아가는 길, 집에 가서 암말 말라고 선이가 그렇게 당부를 하고 영준이 제 쪽에서도 이에 응하여 약속까지 했건마는 그놈의 백설기랑 감꽃이랑 하는 이야기 통에 그만 선이와의 약속은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에 눈치를 챈 마누라는 온갖 음식과 노리개로 꾀어서 별별 거짓말까지 다 보태 듣고 나서 이번엔 매를 들고 선이를 닥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 어린것 둘을 비록 제 몸으로 낳지는 못했을 망정 제 자신이 낳은 거나 다름없이 할 양으로 제 어미의 뱃속에서 떨어지는 대로 곧 가져다 유모를 데려 길러 오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유모와 이웃 사람들과 온 동네 사람들에게까지도 이것을 부탁하여 행여 눈치나 챌까 봐 주야로 쉬쉬 하고 다닌 보람도 없지 않아, 사실 아이들은 마누라의 계획대로 저희 생모가 달리 있으려니 하는 빛은 보이지도 않던 터이었다. 혹 이웃집 마누라쟁이들이,
“아이고 영준네야, 그것들이 질내 그렇기나 하면사…….”
할 양이면, 그도,
“아이고 말도 마라. 괭이새끼 호랭이 되겠나…… 그저 우선 사람 욕심에 그러는 게지…….”
하며, 추창(실망하여 슬퍼함)한 낯빛을 짓곤 하던 것이었다. 그러니만큼 처음으로
자기의 지금까지의 모든 계획과 노력과 희망이 수포로 돌아간 사실이 발생한 데 대하여는 한층 더 분하고 억울하고 괘씸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본디 아이 못 낳는 사람에 대개 차고 모진 이가 많아 이 마누라 역시 그러한 축의 한 사람으로 그 가무파리한 낯빛부터 찬 바람이 일 듯한 서슬이 느껴진다. 워낙이 키는 작은 편이나 광대뼈에서 어깨통, 엉덩판 이렇게 모두 딱딱 바라지게 생긴 체격인데다 여러 해 동안 무슨 아이 낳는 약이다 속 편한 약이다 하고 별별 가지 좋은 약만을 사철 대고 연복을 하고 보니 가뜩이나 늙마에 너무 편한 몸인지라 곧장 살이 찔밖에 없어 이건 속담 그대로 아래 위가 틈박한 절구통이 되었다.
마누라는 선돌 위에 신을 벗고,
“에헴.”
하며 툇마루로 콩 하고 올라서자 마침 기미를 알아채고 반색을 하며 미닫이를 여는 순녀의 앙가슴(두 젓 사이의 가슴)을 향해 절구통은 그냥 철환이 되어 튄다.
“아이구머니이!”
순녀는 고대 뒤로 휘딱 자빠졌는데,
“허억, 끄륵! 끄륵!”
하고 혀가 목구멍 속으로 당겨 들어가고 얼굴이 금세 흙빛이었다.
“흥! 이년! 누구 앞에 엄살이야! 엄살이…….”
그래 이번엔 집에서 일껏 벼르고 온 대로, 즉 손에 머리채를 회회 감아 쥐는 것이었다.
“이녀언! 네 이년!”
마누라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이 차서 떨리는 목소리다.
“이녀언! 네 이년! 네 죄 네 알지, 네 이년 네가 누굴 악담해 네 이년, 목을 천 동강을 내어도 죈 죄대로 남을 년, 네 이년아! 네년의 간을 다 내어 씹어도 원술 못 갚겠다. 간을 씹어도…… 간을…… 네 이년아, 네가 날 죽으라 밤마다 축제 지내고 축수하지, 네 이년! 이년아! 간을 내어 씹어도 쥔 죄대로 남을 네 이년아!”
마누라는 몇 번이나 거듭 이렇게 외치곤 하면서 손에 감아 죈 머리채로 골이 부서져라고 방바닥에 짓찧고 또 온 낯과 가슴과 젖통을 닿는 대로 물어뜯어서 제 낯과 순녀의 상반신을 온통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이웃 사람들이 와서 말리려고 집적 거려 보다가 모조리 모진 매만 한 번씩 얻어맞고는 다 물러섰다. 말리는 사람이라고 사정을 두는 일도 없다. 닥치는 대로 물어떼고 머리채를 잡아낚고 이 모양으로 두 눈에 불을 켜서 덤비는 데야 바로 제 형제나 제 부모 아니고는 굳이 항거해 볼 사람 없다.
그러나 마누라의 분통은 역시 절반도 풀린 것이 아니다.
순녀의 상반신이 이제 아주 피투성이가 되자 이번엔 그 치마와 속곳을 입으로 뜯고 손으로 찢고 그러고는 거기 나타난 허연 배와 두 다리 위에 마악 엎드러져 입질을 시작하려 할 무렵, 진작부터 이웃 사람들의 기별을 받고 그러고도 그냥 드러누워 한참이나 담배를 피우고 나온 그네 영감이 그 때야 비로소 이 방문을 열었던 것이다.
“아아니 이거 웬일들이여! 응? 웬일로 이렇게 야단들이여! 응?”
영감은 방 안에 들어서자 얼굴이 시뻘개져서 방 안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마누라는 또 한 번 목청을 돋우어,
“이녀언 네에! 이년, 순녀야! 이년 네가 날 죽으라 축수한 년 아니가! 네 이녀언! 간을 내어 씹어도 죈 죄대로 남을 네 이년, 네 죽고 나 죽자! 네에 이년아!”
이렇게 외치며 또다시 그 하얀 이를 악물고 두 다리 위에 엎드러졌다.
보니,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다시피 된 순녀는 아무런 방항도 못 할 뿐 아니라 아주 숨기도 멎은 모양이다.
그제야 영감도 가슴이 덜렁하여 황망히 마누라의 덜미를 잡아 뒤로 낚아 놓은 다음에 곧 사람을 시켜 의사를 부르게 하였다.
뒤로 한 번 자빠졌던 마누라는 곧 벌떡 일어나 앉아 입에 게거품을 물고,
“네에 이년, 순녀야, 이년, 너는 서방 있구나, 나는 서방 없단다. 너는 자식 있구나, 나는 자식 없단다. 나는 내 혼자뿐이다! 네에 이년 순녀야 일어나거라! 너는 서방 있고 자식 있는 년이구나, 나는 서방도 자식도 없는 년이다! 네에 이년 일어나거라!”
이렇게 시작한 넋두리는 거의 한 시간이나 계속하여, 의사가 들어온 뒤 여러 사람들이 억지로 떠밀고 나가기까지 그치지 않았다. 여자는 제 손으로 제 머리를 다 뜯고 제 옷을 다 찢고 제 손등을 다 물어떼고, 그리고 그 주먹으로 제 가슴을 마치 방망이질이나 하듯 두드리며 몸부림을 치다가는 다시 일어나 이를 갈고 또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다.
“오냐, 오냐, 이년아 순녀야 너는 아들 낳았다. 자식 낳았다. 오냐 그래 늙은 년 괄시 마라, 오냐, 오냐, 이년아 서방 있고 자식있다. 불쌍한 년 괄시 마라, 나 같은 년 괄시 마라…… 어떤 년은 팔자가 좋아서 아들 낳고 서방 빼앗노. 아이고, 아이고 내 팔자야 분해라 억울해라 엉이 엉이, 내 팔자야 내 팔자야 아이고 원통해라. 절통해라, 엉이 엉이 엉이 엉이…….”
상기 주먹으로 가슴이 터져라고 두드리며 입을 벌리고 울어대는 것이다.
이 때 옥남 할머니가 또 밖에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추창한 듯이 혀까지 끌끌 차고 한 것은 그새 무슨 순녀의 분하고 원통함을 깜박 잊은 바는 아니나 마누라의 넋두리에 문득 자기의 맏딸을 생각하고, 자기의 맏딸도 아직 딸만 둘을 낳고 아들은 하나도 없음을 깨닫고 그래 그 맏딸의 신세를 서러워한 것이 었다.
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은 지 얼추 한 시간이나 지난 뒤 순녀는 그 동안의 혼수상태에서 다시 한 번 이 사바의 세계로 눈을 뜨지 아니하지 못했다.
그 날 밤 의사가 돌아가고 온 동네 수탉들이 홰를 칠 무렵까지 동구 앞길에선 마누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튿날 역시 아직 기진하여 누워 있는 순녀의 귀에,
“어차피 낼 모렌 데려갈 아이니까…… 젖이…… 보채고…….”
하는, 영감님 의 목소리가 꿈결같이 어렴풋이 들리었다.
그런 지 한 보름이나 지난 뒤다.
푸른 버들(숭양)가지는 아침 햇볕에 젖어 흐르고 제비들은 서로 부르며 어지러이 나는 동구 앞길 위에, 역시 그 낡은 흰 고무신에 새빨간 수탉을 안고 가는 것은 한 보름 전보다 좀더 해쓱해진 순녀의 얼굴이다.
다만 성준이를 업고 그 뒤에 따라야 할 옥남이만은 보이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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