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의 적벽 대전(赤壁大戰)은 중국의 삼국 시대, 조조가 통일의 야심을 드러내자,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그에 대항해 싸운 큰 전투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실제로는 주유와 제갈량이 두 나라의 군대를 지도했다고 나오지만, 정사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은 외교관으로 활약했을 뿐 군사 작전은 참여하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주유는 제갈량을 오로 데려와 공격할 방법을 상의했다가 나중에는 제갈량을 자주 죽이려고도 하였다. 오와 유비 진영은 교육계를 써 조조를 방심시키고, 208년 초겨울 밤에 동남쪽 바람을 타고 화공을 써 20만이 넘었던 조조의 대군을 참패시키고 크게 이겼다. 출전 위키백과 |
삼국지 적벽대전의 현장
제갈량은 오나라 도독 주유(周瑜)와 함께 조조의 배를 묶어두는 연환계(連環計), 황개를 거짓 항복을 시켜 조조를 안심시키는 고육계(苦肉計) 등으로 조조를 속이고 동남풍을 빌어 화공을 가함으로써 조조의 백만대군을 하루밤사이에 격파했으니 그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에는 소설적인 과장이 많고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도 적지 않지만, 손권, 주유와 제갈량이 구강지역에서 적벽대전을 준비했음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손권은 현재의 구강 지역인 시상(柴桑)에 주둔하여 조조와 대치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단신으로 시상에 건너가 손권을 만나 동맹을 맺었고,
주유는 여산 동쪽에 있는 파양호에서 수군(水軍)를 훈련시켰다.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제갈량과 주유가 치열한 머리싸움을 하는 한편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칠 준비를 한 곳이 바로 이 지역이었던 것이다.
여산 동남쪽 성자현(星子縣)에는 당시 주유가 군사들을 점고하던 점장대(點將臺)가 남아있다.
파양호로 뻗은 조그만 반도에 위치한 점장대에 오르면 파양호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파양호의 점장대는 송대와 명대를 거치며 계속 증축되었는데, 구강시 옆에 있는 감당호(甘棠湖)에서도 주유가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하여 근래에 주유점장대를 만들었다.

장강

주유상


적벽

적벽

적벽대전의 현장

익강정

적벽대전 진열관

적벽산 바로 옆 봉우리인 남병산에는 제갈량이 대전을 앞두고 동남풍을 빌었다는 배풍대(拜風臺)

이백의 적벽시

전출사표 송 악비서
出師表 [蜀漢, 諸葛亮]
臣亮言 先帝創業 未半而中道崩殂 今天下三分 益州罷弊 此誠危急存亡之秋也
然侍衛之臣 不懈於内 忠志之士 亡身於外 者葢追先帝之遇 欲報之於陛下也
誠宜開張聖聽 以光先帝遺德 恢志士之氣 不宜妄自菲薄 引喩失義 以塞忠諫之路也
宫中府中 俱爲一體 陟罰臧否 不宜異同 若有作姦犯科及爲忠善者宜付有司論其刑賞以昭陛下平明之治不宜偏私使内外異法也侍中侍郎郭攸之費禕董允等此皆良實志慮忠純是以先帝簡㧞以遺陛下愚以爲宫中之事事無大小悉以咨之然後施行必能禆補闕漏有所廣益也將軍向寵性行淑均曉暢軍事試用於昔日先帝稱之曰能是以衆議舉寵爲督愚以爲營中之事悉以咨之必能使行陣和穆優劣得所也親賢臣逺小人此先漢所以興隆也親小人逺賢士此後漢所以傾頽也先帝在時每與臣論此事未嘗不歎息痛恨於桓靈也侍中尚書長史參軍此悉貞亮死節之臣也願陛下親之信之則漢室之隆可計日而待也臣本布衣躬耕於南陽茍全性命於亂世不求聞達於諸侯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由是感激遂許先帝以驅馳後值傾覆受任於敗軍之際奉命於危難之間爾來二十有一年矣先帝知臣謹慎故臨崩寄臣以大事也受命以來夙夜憂歎恐託付不效以傷先帝之明故五月渡瀘深入不毛今南方已定兵甲已足當奬帥三軍北定中原庶竭駑鈍攘除姦凶興復漢室還於舊都此臣之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至於斟酌䂓益進盡忠言則攸之禕允之任也願陛下託臣以討賊興復之效不效則治臣之罪以告先帝之靈若無興德之言則戮允等以彰其慢陛下亦宜自謀以咨諏善道察納雅言深追先帝遺詔臣不勝受恩感激今當逺離臨表涕泣不知所云
해석 전출사표
선제께서 창업하신 지 미쳐 반도 안되어 중도에 돌아가시고 지금 천하가 삼분에 익주는 피폐하니,
이는 진실로 위급하고 존망의 기로입니다. 그러나 시위지신이 안에서 게으르지 않고,
충지지사는 밖에서 자가 몸을 잊음은 이 모두 선제의 특별한 입음을 추모하여, 폐하에게 보답하고자 함입니다.
진실로 의당 성스러운 들음을 열고 베풀어 선제의 유덕을 빛내고, 지사의 기를 넓히며,
망령되게 스스로 천박하다고 비유 하고 의를 잃어
충성스런 간언의 길을 막으면 아니 되옵니다.
궁중과 부중이 모두 한 몸이 되어 상주고 벌함에 다르고 같음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 작간범과와 충선자를 위함이 있으면 사에 보내어 그 형과 상을 논하여
이로써 폐하의 평명한 다스림을 밝혀야 합니다.
사적으로 치우쳐서 안과 밖에 다른 법을 만들면 아니 되옵니다.
시중, 시랑, 곽유지 비위 동윤등은 이 모두 양실하고 지려가 충순하여 이로써 선제가 뽑아서 폐하에게 내렸으니,
저들로써 궁중지사를 함에 일이 크건 작건 간에 모두 문의하신 연 후 시행하시면
반드시 궐루를 보충하고 이익을 넓히겠습니다.
장군 향총은 성행이 숙균하고 군사에 밝아 옛날에 시험하여 썼을 적 선제께서 칭하시기를 '능'이라 하셨으니,
이로써 중의가 총을 받들어 독을 삼았습니다.
그에게 영중지사는 크건 작건 간에 모두 문의하시면 반듯이 행진이 화목하고 우열이 제 자리를 얻을 것입니다.
현신을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 함은 이는 선한이 써 흥륭했던 바이요,
소인을 가까이 하고 현신을 멀리 했음을 후한이 써 기울어 진 바입니다.
선제 계실 적에 매번 신과 더불어 이 일을 논하실 적 일찍이 환제와 영제에게 탄식하고 통한하지 않으 실적이 없었습니다.
시중, 상서, 장사, 참군은 모두 정량사절지신이오니 원컨대 폐하는 가까이 하고 믿으시면
한실의 융을 가히 날자를 세어서 기다리실 수 있습니다.
신은 본시 포의로 궁하게 남양에서 밭을 갈고 구차히 난세에 성명을 온전히 하고자 할뿐
제후로부터 영달을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선제께서 써 신이 낮다고 하지 않으시고 세 번 초려로 찾아오시어 신에게 당세의 일을 물으시니
이로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로 하여금 부리도록 하였습니다.
그 후 뒤집힘을 만나서 임무를 패군의 시기에 받고 명을 위란의 사이에 받들기 이래 이십일 년이 되었습니다.
선제께서는 신이 근신함을 아시기에 붕하심에 임하여 신에게 대사를 맡기시었습니다.
명을 받은 이래로 밤낮으로 근심하여 부탁함이 효과가 없어서 선제의 밝음을 상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오월에 노를 건너 불모지에 깊이 들어갔습니다.
이제 남방이 정하고 갑병이 이미 족하니 응당 삼군을 이끌고 북으로 중원을 정벌하여
느리고 미련함을 다하여 간흉을 없애고
한실을 부흥하여 옛 서울로 돌아감입니다.
이것이 신이 선제에게 보답하고 폐하에게 충성할 직분이옵니다.
손과 익을 짐작하고 충언을 올림은 유지, 비, 윤등의 임무입니다.
원컨대 폐하는 신에게 적을 토벌하여 흥북지사의 효를 명하시어
효과가 없으면 신의 죄를 다스리시고 써 선제의 영에 고하십시오.
만일 흥복지언이 없으면 유지, 위, 비윤등의 허물을 책하시고 써 그들의 게으름을 들쳐 내십시오.
폐하도 역시 스스로 도모하여 써 선도를 묻고 찾으며 오른 말을 살피어 찾아서 깊이 선제의 유조를 따르소서.
신은 은혜를 받아 감격을 이길 수 없어 지금 멀리 떠남에 표를 올림에 임하여 눈물이 흘러 말 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後出師表 先帝慮漢賊不兩立王業不偏安故託臣以討賊也以先帝之明量臣之才故知臣伐賊才弱敵彊也然不伐賊王業亦亡惟坐待亡孰與伐之是故託臣而弗疑也臣受命之日寢不安席食不甘味思惟北征宜先入南故五月渡瀘深入不毛并日而食臣非不自惜也顧王業不可得偏安於蜀都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也而議者謂爲非計今賊適疲於西又務於東兵法乗勞此進趨之時也謹陳其事如左髙帝明並日月謀臣淵深然涉險被創危然後安今陛下未及髙帝謀臣不如良平而欲以長計取勝坐定天下此臣之未觧一也劉繇王朗各據州郡論安言計動引聖人羣疑滿腹衆難塞胸今嵗不戰明年不征使孫䇿坐大遂并江東此臣之未觧二也曹操智計殊絶於人其用兵也髣髴孫吳然困於南陽險於烏巢危於祁連逼於黎陽幾敗北山殆死潼闗然後僞定一時耳况臣才弱而欲以不危而定之此臣之未解三也曹操五攻昌霸不下四越巢湖不成任用李服而李服圖之委夏侯而夏侯敗亡先帝每稱操爲能猶有此失况臣駑下何能必勝此臣之未解四也自臣到漢中中間期年耳然喪趙雲陽羣馬玉閻芝丁立白壽劉郃鄧銅等及曲長屯將七十餘人突將無前寳叟青羌散騎武騎一千餘人此皆數十年之内所紏合四方之精鋭非一州之所有若復數年則損三分之二也當何以圖敵此臣之未解五也今民窮兵疲而事不可息事不可息則住與行勞費正等而不及今圖之欲以一州之地與賊持久此臣之未解六也夫難平者事也昔先帝敗軍於楚當此時曹操拊手謂天下已定然後先帝東連吳越西取巴蜀舉兵北征夏侯授首此操之失計而漢事將成也然後吳更違盟闗侯毁敗秭歸蹉跌曹丕稱帝凡事如是難可逆見臣鞠躬盡力死而後已至於成敗利鈍非臣之明所能逆覩也
해석 후출사표
선제께서 생각하시기를 한과 적이 양립하고 왕업이 치우쳐서 안전할 수 없음이라, 이리하여
신에게 탁하여 적을 토벌하라 하셨습니다. 선제의 밝음으로 신의 재를 측량하건대 참으로
신이 적을 벌함이 재주는 약하고 적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적을 벌하지 않으면 왕업이 역시
망합니다. 오로지 앉아서 망함을 기다림은 어찌 정벌하리 오? 이리하여 신에게 맡기어 의심치 않으셨습니다. 신은 명을 받은 날 자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달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북정을 생각하면 마땅히 먼저 남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오월에 노를 건너고 불모에 깊이 들어가서 날과 아울러 먹었으니 신이 스스로 아끼지 않음이 아니었지만
왕업을 돌아 볼 때 촉도에 치우쳐 안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위난을 무릅쓰고 선제의 유의를 받들었습니다. 이에 의론하는 자는 계가 아니라 합니다. 지금 적은 서쪽에서 피로함을 만났고, 또 동에서 바쁘니 병법에 피로함을 타라 하였습니다. 이는 전진할 때입니다.
삼가 그 일을 아래와 같이 올립니다.
고제는 일월과 더불어 밝으시고 도모하는 신하가 못과 같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딛고 상처를 입고 위태한 연후에 편안하였습니다. 지금 폐하는 고제에 미치치 못하시고, 모신은 장량, 진평 같지 못하건만 긴 계획으로 이겨 앉아서 천하를 정하려고 하니 이는 신의 미
해 일입니다.
유유, 왕량은 각기 주군에 웅거하여 안을 논하고 계를 말함에 성인까지 움직이건만 무리의 의심은 배에 가득하고 뭇난이 가슴을 막어서 금년에 싸우지 않고 명년에 정벌하지 않다가 손책으로 하여금 앉아서 크게되어 마침내 강동을 병탄하게 되니 이는 신의 미해 이입니다.
조조의 지혜와 계교는 사람에서 빼어나서 손자 오자와 방불합니다. 그러나 남양에서 곤하고 오소에서 위험하고 기련에서 위험하고 여양에서 핍박을 당하고 북산에서 패하고 동관에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후 거짓 일시안정이 되었던 바 하물며 신은 재가 약하고 위험하지 않고 정하려 하니 이는 신의 미해 삼입니다.
조조는 창패를 다섯 번 공격하고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호를 건너다가 이루지 못하고이복을 맡기어 썼던 바 이복이 도모하고 하후에게 위임했던 바 하후가 패망하였습니다. 선제께서 항상 조가 능하다 하셨던 바 오히려 이런 실수가 있었던 바 하물며 신이 둔하고 아래이니 어찌 반드시 이기리오? 이는 신의 미해 사입니다.
신이 한중에 이른 이래 중간에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이리하여 잃은 바 조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등 기타 고장 둔장 칠십여인과 돌장 부전, 총수h, 청강, 산기 무기 일천여인이나 이는 모두 수십년지내의 사방의 정예를 규합함이요 한 주의 소유가 아닙니다. 만일 수년이 지나면 삽분지 이를 잃을 터이니 어떻게 적을 도모하리오? 이는 신의 미해 오입니다.
지금 백성은 궁하고 군사는 피곤해도 일이 쉴 수 없습니다. 쉬지 못하면 멈춤과 감에 노비가 같습니다. 오늘 도모함을 미치지 못하고 일주의 땅으로 적과 더불어 지구하니
이는 신의 미해 육이옵니다.
무릇 평가하기 힘든 것은 일입니다. 옛 적 선제께서 초에서 패군 하셨을 적 이때를 맞아 조조는 손을 어루만지며 이르되 천하는 정 했도다 하였습니다. 연후 선제는동으로 오월과 연결하고 서에서 파와 촉을 취하여 군을 이끌어 북으로 정벌할 때 하후의 머리를 받았으니
이는 조의 실계요 한나라 일이 장차 이룩하려함이었습니다.
연후에 오가 동맹을 위반하여 관우가 훼패하고 자귀를 잃고 조비가 칭제합니다.
무릇 일이 이와 같아서 거꾸로 보기 힘듭니다. 신은 국궁진췌하여 죽어 끝날 뿐이오,
성패와 이둔에 이르러서는 신의 밝음으로 거슬려 볼 수 없습니다.

주유의 점장대 허덕형서

주유재시상도

주유의 점장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