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대중매체를 끊임없이 접한다. 각종 생활 정보를 구하기도 하고,
오락프로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며, 정치적 혹은 사회 문화적 여론을 형성
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중매체가 이러한 순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
편견, 갈등 등의 역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중은 이러한 대중매체의 역기
능에 대해 얼마나 경계하고 있을까? 과연 인지하고 있기는 한가? 의문이 앞서지 않
을 수 없다.
아침에 텔레비전을 켜면 드라마가 나온다. 바로 아침 드라마다. 그런데 이 아침 드
라마의 단골 메뉴가 바로 갈등이다. 등장 인물 모두가 얽히고 설키어 서로를 증오
하며 드라마를 꾸려나간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남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매가 서로 증오하는 스토리는 결코 일반적인 갈
등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갈등이
대중의식 속으로 주입된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주된 시청자인 주부들은 이
러한 갈등 일변도의 드라마를 비난하면서도 꼬박꼬박 시청한다. 결국 드라마에서의
갈등이 대중의 잠재의식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비단 아침 드라마만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다. 11월 17일 9시 뉴스에서 "10
억을 모아라." 라는 주제의 보도를 보았다. 10억을 모으는 방법을 소개한 책, 인터
넷 카페, 시민들의 인터뷰 내용 등을 방영하면서 이것이 현 사회의 분위기인양 보
도를 했다. 마치 10억을 모으지 못 하면 평생 곤궁하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식의 보
도였다. 물론 뒷부분에서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자기 수준에 맞게 목표를 설정해서
돈을 모으라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 뉴스를 본 사람들이 과연 자기 분수에 맞
게 살라는 내용을 "10억을 모아라"라는 내용보다 더 크게 받아들였을까? 받아들이
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차가 있을 테니 젖혀두고, 그러한 "10억 모으기"가 진
정 우리 사회의 분위기 일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10억을 모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대졸 초임이 3000만원이면 많이 받는 수준이라고 한다. 과장 부장이
되어도 많이 받아야 5~6000만원이다. 생활비 빼고, 뭐 빼고 하다보면, 10억 모으
기는 요원할 뿐이다. 결국 그 뉴스는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갈등을 조장하
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빈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관련 기사 및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최근 국내외 경제 사정이 악화되면서, 금리가 떨어지자 일반투자자
들이 부동산으로 대거 몰리고 있다. 그런 사회 현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부동산 관
련 광고 및 기사를 신문과 잡지, TV 등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제공받으니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사와 광고가 정보
만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얼마 전 강남 지역 관련 기사를 보니, 아파트 한 평이 몇
천 만원이라고 한다. 게다가 일반 셀러리맨이 몇 십 년을 모아야 조그만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을 버젓이 기사로 쓰고 있었다. 이 기사가 진정 정
보 전달을 위한 기사였을까?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그래서 자사의
매체 앞에 일반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술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기사 및 광고를
보면서 가진 자는 더욱 부에 대한 욕망을 키워가고, 가지지 못 한 자는 자포자기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그런 말이 있다. "오르지 못 할 나무는 쳐다보
지도 마라" 결국 그러한 대중매체의 상업성이 빈부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
다.
대중매체는 기본적으로 사실만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사회문화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 날의 대중매체는 기업화, 상업화 되면서, TV는 시청률
에 열을 올리고, 신문은 판매 부수에 열을 올린다. 그러다보니 좀 더 자극적이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사,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에 열중하게 되는 것
이다. 결국 사실보도, 올바른 사회문화 형성은 뒷전이 되고, 갈등 조장 등의 역기능
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역기능만을 수행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중매체가
기업화, 상업화 되면서 대중매체로써의 도덕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대중을 호기심 유발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매체의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광고비
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호기심과 계층간 갈등을 유발하는
내용이 아닌 사실만을 보도하는 기사, 올바른 사회문화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
들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 갈등 조장이 아닌, 공공성, 사실성, 책임성을
내포할 수 있는 대중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중매체가 올곧은 도덕성
을 확립했을 때 우리 사회에 한 층 더 높은 수준의 대중의식이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