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용서 할 수 없어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가볍고 은밀한 흔적들
생선과 맞바꾼 몇 개의 발자국 속엔
아직도 비린내의 안쪽을 훔쳐봤을 집요한 눈빛이 묻어있고
문 열린 주방 한 켠 함지박에 담가놓았던
저녁의 분량만이 온데간데없이 썰렁하다
도둑맞은 함지박 속의 물들은 꺼른하다
아직도 미련을 놓지 못한 듯 우물거리고 있는
갈치의 미세한 비늘만이
느릿한 공복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는 한때
함지박 속의 사연들은 내 오랜 날들의 청빈을 닮았다
쉽사리 쏟아버리기엔 못내 아쉬운 애증의 볼모같은 것
나는 오랫동안 비린내 어린 시장기를 구해와
어스름의 도둑들을 초대해 왔다
한낮의 환한 부주의를 풀어 놓고서
공복의 저녁들을 키워 왔다
아끼면 아낄수록 말썽을 부리는 무수한 날들의 불청객,
소금 한줌 집어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스름들에게
희고 짭짜름한 충고를 야광처럼 던져주었다
● 1959년 전북 완주 출생
● 2011년 평사리문학대상 대상 수상
● 차령문학 동인
● 한국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