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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9일 해남도에서의 마지막 날
아시아의 하와이로 불리는 산야의 가장 좋은 해수욕장이라는 야롱만으로 향했다.
시내에서 우리가 달려왔던 223국도로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좀 멀다.
산야로 올 때는 야롱베이가 무엇인지 몰라서 깃발들이 달린 야롱만의 표지판을 보고도
그냥 리조트의 입구일 거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여기가 야롱만의 입구였다는 것을 알았으면
신고식 제대로 했을 텐데 아쉽다.ㅋ
야롱만으로 향하는 길엔 나무들이 멋지게 우거졌으며 오른편으론 대형 골프장이 들어서 있다.
길게 이어진 나무길이 끝나면 리조트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바다가 근처에 있음을 느낄 수 있지만 바다로 이어지는 길은 찾을 수가 없다.
길을 잘 못 들었나 싶어 호텔 사환에게 물어보니깐 리조트 뒤로 넘어가야 바다가 보이고
리조트를 통해 해수욕장 입장하려면 30元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니깐
무료로 입장 할 수 있는 입구는 앞으로 좀 더 가면 있다고 정보를 흘려준다.
그렇게 해서 하와이에서 가장 긴 해수욕장보다 훨씬 더 길다고 하는
장장 7km에 이르는 야롱만의 거대한 모래사장을 찾았다.
듣던 대로 맑고 푸른 바다가 잔잔한 파도를 타고 백사장을 적시는 것이
태평양 중심에 떠있는 섬을 생각나게 하듯 평화로워 보인다.
지금 12월 중순의 온도가 25도를 족히 넘기는 것을 봐선 겨울 내내 따뜻할 것 같다.
겨울휴가를 추운 지방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태평양의 섬들처럼 거리와 경비에 부담주지 않고
조용하게 쉬었다 갈 수 있는 따뜻한 해변을 제공해주니 왜 산야가 12월에서 2월까지 성수기라고 하는지 알겠다.
이곳으로 오느라 땀범벅이 되어서 바다 속으로 첨벙하고 싶긴 하지만
신철이는 그동안 달려오면서 살이 많이 탔고 어제도 태양을 너무 많이 받아서
선크림을 발라도 온몸이 따갑다며 도저히 못 들어가겠다고 한다.
내 피부도 아무리 야생의 본질이 많이 섞여 코끼리 가죽이라 불리지만 보호 좀 해줘야겠다 싶어서 참았다.
산야로 힘들게 달려온 것에 비해 만끽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어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야롱만은 다음에 가족이 생기면 한번 놀러 올 수 있는 곳으로 미리 답사 온 것이라 생각하고
물속에 발만 담그고 해변에 앉아 쉬다가 기차역으로 출발했다.
자전거 싣는데 착오가 없게끔 여유 있게 기차역에 도착했다.
어제 표를 살 때 자전거 화물비는 기차에 탑승 후 승무원에게 내면 된다고 해서 마음 놓고 있었는데
기차에 자전거를 실으려고 하자 화물칸은 지금 운영을 안 하고 광저우에서부터 열린다고 한다.
이런, 승무원에게 어떻게든 실어야한다고 하니 다른 승무원들과 얘기 끝에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들이 아무도 안 탄 기차의 첫 칸에 무료로 싣고 가게 되었다.^^
8시간 후면 나는 잔장에 도착할 것이고
거기서부터 8시간을 또 더 가야 신철이는 광저우에 도착한다.
그동안 신철이가 들어줬던 캠핑 장비를 내 가방으로 다시 옮겨 싣고 달리 면서부터
신철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조금씩 실감나기 시작했다.
쌘치해지려는 것도 잠시.
배가 고파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위 사진의 심각한 표정은 배고파서..)
어제 고기를 많이 먹긴 먹었는지 하루 종일 밥 생각이 안 나서 그냥 달리다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먹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거 간식수레아저씨 곧 안 나타나면 오늘 사람 한명 쓰러지겠는데..
중국에도 한국처럼 간식거리 파는 아저씨가 있을 텐데
사람이 타지 않은 칸이어서 그런지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인다.
승무원에게 물어봐도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지만
너무 안 오자 음료수와 도시락 정도는 이곳에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럼 도시락 두 개 음료수 두 개 주세요! 해서 닭고기덮밥 그림이 있는 박스를 하나씩 가져다준다.
이건 또 어떻게 먹으라고 가져다 준 것일까.
아저씨에게 먹는 법을 가리켜달라고 하니깐 박스를 까더니
한국의 햇반처럼 가공된 차가운 밥 위에 닭도리탕 비슷한 소스를 붓고
딱딱한 밥 사이에 소스가 스며들도록 마구 흠집을 낸다.
미군전투식량 MRE처럼 불꽃 없는 난로판 위에 약간의 물을 붓은 후
덮밥을 올리고 뚜껑으로 다시 봉쇄해 버리자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연기까지 난다.
5년 전 자동차타고 유럽여행 할 때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던 친한 형이 여행하면서 밥 거르지 말라고
MRE(Meal Ready-to-Eat) 한 박스를 줘서 불꽃 없는 난로 FRH(Flameless Ration Heater)라는
초 절정 가열 기술을 접하고 감동 먹었었는데 그 신기한 것을 중국 기차에서 다시 보다니.
이 난로는 금속에 녹이 슬 때 산화 현상으로 열이 발생하게 되는 원리를 활용한 것으로
가장 부식을 잘하는 마그네슘 가루에 금속 부식을 촉진하는 소금과 물을 넣으면
순식간에 물을 끓일 수 있는 정도의 열이 발생해서 뜨끈한 음식을 가스나 전기 없이 먹을 수 있게 해준다.
8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지만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맛있게 먹기 위해선 참을 줄도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 역시 칼로리가 높겠지만 활동량이 많은 우리에겐 전혀 개의치 않다.
중국 닭요리에 빠지지 않는 뼈들을 발라내가며 매콤한 덮밥을 다 먹으니깐
간식거리 파는 수레아저씨가 드디어 나타났다.
기차타면 찐 계란을 필히 먹어주는 것이 기차여행의 진가인데
아쉽게도 중국 기차의 손수레에는 찐 계란이 없어서 매운 맛 라면과 소시지를 비상식량으로 사 두었다.
중국 기차도 시베리아 횡단열차처럼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항상 있기 때문에
뜨끈한 컵라면을 국물과 함께 먹어주는 것도 장거리 기차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된다.
먹는데 정신 팔려 있다 보니깐 기차가 한참 동안 정차 해있다는 것을 뒤 늦게야 알아챘다.
하이난과 레이저우반도간의 해협을 넘기 위해 16칸이나 되는 열차를 토막 내어 배에 싣기 때문에
시간이 좀 지체된다.
영국과 프랑스간의 도버(칼레)해협(35km)과 비슷한 넓이를 가진 치옹저우(瓊州)해협도
북유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처럼 대형 선박에 기차를 실어서 33km의 해협을 건넌다.
그 동안 힘든 일 즐거운 일 모두 함께 나눈 동행과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구나.
잘해주지도 못했으면서 잔소리만 많이 하고
고생만 잔뜩 시켜서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다행히 신철이도 여행에서 몇 가지 얻어간다고 한다.
작은 돈으로 이리 오래 버틴 여행은 처음이고 돈이 많지 않아도 알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서
앞으로 돈을 어떻게 써야겠다는 개념이 섰다고 한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쓸 것인가 또한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광저우에서 있으면서 무슨 힘든 일이 생기면 무조건 한국으로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도망가려고 하지 않고 그 문제들과 맞싸워 하나하나씩 풀어나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광둥어의 중요성도 느껴 광둥어도 파헤쳐 볼 생각인가보다.
Easy come, easy go.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떠나버린다는 것처럼
쉽게 생긴 돈은 쉽게 써버리고
얼떨결에 난 생각도 얼떨결에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뭐든 쉽게 얻으려 하지 말고
힘든 여정을 통해 얻은 귀한 결심이니 만큼
오래오래 간직하고 실행에 옮기길 바란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광저우에 돌아가서도 요번 여행처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며 살아다오!
애써 슬픈 얼굴 하지 않으려고 참았는데 기차를 보내고 나니깐 갑자기 공허하다.
처음엔 또 하나의 짐수레가 되진 않을지 걱정했던 신철이가
알고 보니 산타할아버지가 끌고 다니는 선물 가득 실린 한번 밀면 멈추지 않는 썰매였다.
신철 이에게 전화해서
“너 또 조느라 못 내렸지!”
라고 습관처럼 잔소리 하고 싶기도 하고
기차를 그냥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기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예정보다 30분 늦은 새벽 1시 반에 도착했다.
당연히 내리게 될 잔장 서부역이 잔장 도심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에서 내린 몇 명이 대기하고 있던 택시 타고 가버리니깐 역 안엔 역무원과 나 밖에 없고
역 밖으로는 불빛 하나 안 보이고 바람 소리 밖에 안 들리는 것이 3류 공포 영화 분위기의 촌 바닥이다.
역무원에게 시내로 가려면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깐 지금 이 시간에 자전거 타고 가는 것은 무리라며
택시를 부르라고 한다.
택시는 괜찮고 그럼 알아서 찾아 가겠다고 우기고
출구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서 이쪽 벽 저쪽 벽 찍고 출구를 찾아
역전 밖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바람 불고 추워지는 것은 왜일까.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가지고 있던 잔장 지도를 봐도 중국 전국 지도책을 봐도 현 위치를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다.
기차역 이름이 서부역이니깐 잔장으로 가려면 동쪽으로 가야겠다 싶어
GPS를 보고 무조건 동쪽으로 달리려고 하지만 길은 북남 쪽으로만 뻗어있지 동쪽으로 이어진 길은 없다.
간신히 찾은 도로 표지판엔 X669번 도로라고 표기되었다.
성도보다 작은 X로 시작하는 도로는 전국지도에 표기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오늘은 이상하게 밤만 되면 뒤쫓아 오며 짖던 개들도 없다.
도로가 있는지 없는지 라이트를 끄면 1미터 앞도 안보이고 대략 난감하다.
한자리에 계속 서있기는 너무 무섭고 뒤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자니
바람에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에 무언가가 쫓아오는 느낌을 받아 등짝이 오싹해지곤 한다.
거기에 하이난 비포장도로에서 무리한 행군을 한 덕에
깜순이의 앞 드레일러(기어변속기)가 망가져서 3번째 체인링(톱니바퀴)에 기어가 며칠째 안 들어가는 상태였는데
쉬프터(기어 컨트롤러)의 와이어(줄)까지 끊어지는 바람에 2번째 체인링에도 기어가 안 들어간다.
다리의 힘을 전달하는 크랭크쪽의 BB라고도 불리는 바텀 브라켓(앞 톱니바퀴 축)도 맛이 갔는지
힘을 가할 때마다 “뚝..뚝..”거리며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5000km란 거리를 달려왔으니 여기저기서 삐꺽 거릴 때도 되긴 했다.
興盡悲來. 즐거움 끝의 비애인가.
어제 고진감래의 단맛을 맛봤는데
오늘 바로 흥진비래의 쓴맛이라니.
아무리 인생의 압축판인 여행이라 하지만
진행이 빨라도 너무 빠른 것 아니야?
그러던 중 저 멀리 하늘에서 뭔가가 깜빡깜빡 하면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기도의 응답이구나.
비행기다!
공항을 찾으면 오리엔테이션이 되니깐 비행기가 착륙한 방향으로 바로 핸들을 틀었다.
1시간 넘게 들길에서 헤매다가 잔장 공항을 찾아 가로등이 있는 도로를 따라 시내로 향할 수 있었다.
새벽 3시이니 열려있을지 모를 여관에 가는 것보다 해남도에서 찾을 생각도 안 했거니와 들을 겨를도 없었던
PC방에 가서 오래간만에 인터넷 세상 구경 좀 하기로 했다.
PC방에서 날 밤 새고 아침에 혼자 먹는 아침 식사.
둘이서 먹다가 혼자서 먹는 밥맛은 먹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맛있는 요구르트 같은 우유와 착한 가격 빼고는 아직까지 우울 모드이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이별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만남.
이별은 만남의 시작이고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다.
이것은 사람이 죽지 않는 한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한다.
애써 우울해할 필요 없다며 느끼는 감정을 외면해보려고 하지만
내 인생에서 ‘아무리 자주 해봐도 능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어서 쉽지가 않다.
그것 또한 ‘이별’이기 때문이다.
아침 9시가 되어 예전에 잔장 친구의 소개로 묶었던 여관으로 가보니 열어있다.
혼자라고 했는데도 왜 침대 두 개짜리 방을 줘서 빈자리를 확신 시켜주는 것인지.
우선 겨울 잠이나 자자!
일어나면 다시 기분 좋아지겠지!
이럴 땐 내 머릿속의 256MB도 안 되는 낮은 메모리가 한 몫 한다.
좋은 것만 기억하기도 힘들다며 슬픈장면의 용량초과되는 부분들은
일정한 시간 지나면 오토 델리트 해주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헤어짐은 만남을 잉태한다고하지 않았나.
어디 한번 믿어 보게쓰~!
2007년 12월 9일
이동거리 : 110km
세계일주 총 거리 : 5084km
마음의 양식 : 로마서 1장
지출 : 기차표 138, 도시락 20, 음료 10, 컵라면 햄 10, PC방 5시간 심야패키지 5, 아침 5. 계 188元
http://7lee.com
찰리의 자전거 세계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