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일을 기다리며
왠지 모르게 큰아들에 대한 이미지는 이런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0^
큰아들이 "독립"을 한 이후 처음으로 설날인 내일 집에 오겠다고 해서 그 아이와의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큰아들은 작년인 2015년 12월 중순경에 "독립"을 했는데 1993년생으로 해가 바뀌어서 이제 24세이고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 "분가"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
큰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때는 제일 처음 생각나는건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었던 어느날입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저와 두 아들 이렇게 3명이 외출하였는데 점심식사는 했지만 출출할 때가 되었다 싶어 길을 가던 중에 보이는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주려고 했는데 신이 나서 들뜬 작은 아들과는 달리 이 아이는 시큰둥하면서 "돈 쓰지말고 그냥 집에 가요"라고 말하는 내용과 표정이 제게는 무척 큰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 때가 몇년도 몇월이었는지, 그 날 왜 외출하였는지, 그 곳이 어디였는지는 모두 잊어버렸지만 그렇게 말하는 내용과 표정만이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 후에 다른 기억들이 쌓이면서 어느 정도는 그 기억이 왜곡된 채로 남아 있는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기는 하지만 어떻든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2008년 하반기에 큰아들이 중학교 3학년일 때 진학할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훌쩍 뛰어 넘어갑니다.
저는 별다른 생각없이 자동배정받는 인문고교로 진학하는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큰아들이 "A컴퓨터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집은 서울의 동쪽 끝에 있고 학교는 서쪽 끝에 있어 원거리를 통학하는 어려움은 둘째치고 인문고에 가서 대학으로 진학하는 코스를 당연시 했던 저로서는 특성화고에 가서 졸업 후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하겠다는 큰아들의 장래 계획을 듣고는 한 때의 치기어린 결정이라 판단하고 그 뜻을 꺽으려고 몇번 얘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번을 얘기했는데도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길래 "A컴퓨터고등학교"가 대체 어떤 학교이길래 이렇게 가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서 그 학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에 큰아들이 2개의 질문을 등록하고 답변을 받은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생답게 그리 대단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두번이나 질문하였다는 점으로 보아 이 학교를 정말로 가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고는 오히려 제 뜻을 꺽고 원하는대로 진학시켰습니다.
그래, 이 결정이 훗날에 잘한 것으로 볼수도 있고 잘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네게 결정권을 넘기마. 그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도 있고, 특성화고 교육이 적성에 안맞으면 인문고로 전학하는 방법도 있는데 지금 네 뜻을 꺽었다가 인문고교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고교시절을 보내게 하는 것보다야 더 낫겠지 하는게 그 때의 제 심정이었습니다.
세번째는 2011년 상반기에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졸업 후 진로문제로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하여 학교에 방문한 때입니다.
담임선생님이 단체상담을 하는 자리에서 "큰아드님을 대학에 보내고자 하시나요?"라고 질문하였을 때 "네, 그러고 싶습니다만 큰아들과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는데, 학교에 방문상담하라는 가정통신문을 받고 큰아들과 얘기했지만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하겠다는 의견을 꺽지 못해서 곤혹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담임선생님이 단체상담을 끝낸 후에 추가 상담을 하고자 하니 남아있어 달라고 요청해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추가 상담을 했는데 그 때 담임선생님이 "큰아드님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하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부모님을 설득해달라고 저에게 요청했습니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또 다시 제 뜻을 꺽고 고교졸업 후 취업을 하는 것으로 진로를 결정하였습니다.
네번째는 2014년 추석으로 건너 뜁니다.
그 사이에 큰아들은 2012년 초에 고교를 졸업하면서 취업한 후 군에 입대하였다가 2014년 06월에 제대하여 입대 전에 취업하였던 회사에 재입사 하였는데 회사는 엘리베이터를 정비하는 회사이고 담당업무는 엘리베이터 정비원이며 담당지역은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인데 재입사 후 몇달동안 보니 평일에는 일한다고 집에 못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토요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많고 일요일에 집에 있다가도 전화를 받고 급하게 나가는 경우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추석에 가족들과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입대 전에는 위와 같은 상황이 드물었는데 제대 후에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왜 그러냐고 큰아들에게 물어봤더니 대답인즉슨 입대 전에는 나이도 어리고 기술도 변변치 않아서 도움이 크게 되지 않고 하니 일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먼저 퇴근하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고 여의도와 영등포 일대가 빌딩이 워낙 많아서 일거리가 많을 뿐더러 엘리베이터라는게 고장이 나면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고쳐서 다음날에는 정상 운행이 되도록 해야지 안그러면 빌딩관리회사로부터 항의가 심하다고 설명하길래 비로소 큰아들의 업무환경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그렇게 대답하면서 "독립"을 하고 싶다고 하기에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일 때문에 집에 못들어 올 때는 회사의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는데 그러면 너무 피곤하니 회사 근처에 방을 얻으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길래 취업을 했으니 필요한 돈은 네가 조달해야 하고, 방을 얻을려면 보증금이 있어야 하는데 전세방은 수천만원이 필요하고 월세방이라면 1천만원이면 되겠지만 제대한지 3개월 밖에 안됐으니 보증금을 낼 돈을 아직 모으지 못했을테고 월세와 전기료 등 주거비용을 내고 나면 안그래도 박봉에 생활비가 부족할 것이니 "독립"을 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있지 않겠냐고 대답해 주면서 돈 문제보다는 너무 어린 나이에 "독립"하는 것도 안좋으니 3~4년 후에 다시 검토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2015년 12월 초에 회사의 남자직원과 둘이서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주거비용을 반반씩 내기로 하고 방을 얻어서 "독립"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보증금은 자기가 모은 돈으로 내겠다고 하여 또 한번 제 뜻을 꺽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지만 큰아들은 제 품 안에 있을 때도 번번이 제 뜻을 꺽고 자기 뜻을 펼쳐나간 셈이 되어 "품 안의 자식"인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소위 "학벌"이라는게 없어서 앞으로의 삶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든 그렇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큰아들이 기술자로서 사회적 지위도 얻고 돈도 많이 모으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자녀도 낳고 기르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지만 정말 그렇게 될지 안될지는 전적으로 큰아들이 앞으로 하기 나름일 뿐이고, 저도 건강하게 살면서 돈을 늦게까지 벌어서 생활비나 의료비 등으로 큰아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있지만 그 또한 제가 앞으로 하기 나름일 뿐이니, 우선 오늘은 큰아들을 만나 지난 두어달의 "독립" 경험을 들어볼 요량으로 내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