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 스님의 승만경 강화] 42. 불교의 근본 대승<大乘>에 있어
42. 대승(大乘)
〈원문〉
부처님께서 승만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바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이제 다시 말해 보라.” 승만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예, 세존이시여.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정법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곧 마하연(摩訶衍 : 대승)입니다. 그 까닭을 말하면, 마하연은 온갖 성문(聲聞)과 연각(緣覺)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을 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아뇩지(阿耨池) 큰 못에서 여덟 개의 큰 강이 흘러나오듯이, 마하연에서도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나옵니다.
세존이시여, 또 마치 온갖 씨앗이 모두 땅을 의지하여 싹이 나서 자라듯이, 온갖 성문과 연각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이 대승을 의지하여 자랍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대승에 머물러 대승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곧 이승(二乘)에 머물러 이승과 세간 선법과 출세간 선법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세존께서 여섯 가지 육처(六處)를 말씀하심과 같사오니, 육처란 것은, 바른 법이 머무는 것, 바른 법이 없어지는 것,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 비니(比尼), 출가, 구족계(具足戒)를 받는 것들입니다. 대승을 위하여 육처를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바른 법이 머문다는 것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므로 대승이 머무는 것이 곧 정법이 머무는 것이며, 정법이 없어진다는 것은 대승을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므로 대승이 없어지는 것이 곧 정법이 없어지는 것이며, 바라제목차와 비니의 두 가지 뜻은 한 가지면서 이름만 다른 것이니, 비니라는 것은 곧 대승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부처님을 의지하여 출가하였고, 그리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이므로 대승의 위의(威儀)인 계가 곧 비니이며 출가며 구족계를 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강설〉
부처님의 권고에 의해 승만 부인이 다시 정법의 수승함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마하연은 마하야나(mahayana)를 음사한 말로 대승(大乘)이란 말의 어원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이 마하야나가 바로 중생의 마음이라고 밝힌 말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중생의 본래 마음이 대승이라는 것이다. 이 대승이 세간법 출세간법의 모든 법을 거두어들인다고 기신론에서도 말하고 있다. 땅에서 온갖 종류의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듯이 이승법이나 세간법, 출세간법이 대승을 의지해 자란다 하였다. 물론 부처님의 법 자체에는 대승이니 소승이니 성문이니 연각이니 하는 것이 없다. 다만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구별돼 나눠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법에는 고하(高下)가 없으나 사람에 따라 고하가 있다는 말이다.
아뇩지는 인도 고대의 전설상의 큰 못으로 설산 속에 있다는 못이다. 여기서 물이 사방으로 흘러나와 강이 여러 개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정법인 대승이 일체 2승과 세간 출세간법을 내는 것이 아뇩지의 물이 흘러나와 여러 개의 강이 되고, 땅이 일체 씨앗의 싹을 트게 하여 자라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불교를 부파에 따라 구분하는 이름이 다르게 있고 종파에 따라 구분하는 이름들이 있고, 또 시대에 따라 구분하여 초기, 중기, 후기 불교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불교의 근본은 대승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육처 가운데 비구 비구니가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는 것까지 언급되고 있는데, 원래 구족(具足)이란 말은 범어 우파삼파다(upasampada)를 번역한 말로 열반에 가까이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이 출가를 하러 온 제자들에게 “잘 왔노라. 비구여!(善來比丘)”하면 출가가 이루어져 비구의 신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 북방권에서는 비구·비구니계를 구족계라 하여 이 계를 받아야만 비구, 비구니 계품(戒品)이 이루어져 수행자의 신분이 갖춰지므로 구족계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에서 정과 혜로 이어져 결국 계·정·혜(戒定慧) 삼학의 정신이 대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