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레기로 뒤덮인 지구. 청소 로봇 '월E'는 지구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로봇이다. 그의 일과는 지구의 쓰레기들을 압축시켜 빌딩처럼 쌓는 일과 자신에게 흥미로운 물건들을 수집하는 일이 전부이다. 그러던 그의 눈앞에 지구탐사로봇 '이브'가 나타나고 오랜 세월 외로이 지내던 월E는 이브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월E
픽사는 그동안 '토이스토리'에서 '라따뚜이'까지 8편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항상 평단의 호평과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어왔다. 과연 그들이 9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월E에서도 똑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너무나 멋지게 그들이 또 해냈다'이다.
픽사는 매 작품마다 다른 소재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왔는데-'토이스토리'의 장난감, '벅스라이프'의 곤충, '몬스터주식회사'의 괴물, '니모를 찾아서'의 물고기, '인크레더블'의 슈퍼히어로, '카'의 자동차, '라따뚜이'의 쥐-이번에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청소로봇이다. 근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이번 작품에서 다소 도전적인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바로 주인공인 청소로봇 월E가 쌍안경 모양의 눈이 얼굴의 전부라는 것과 그가 할 수 있는 대사란게 고작 '월E~''이브~''모~'등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아이언자이언트'나 '로봇'등의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사람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과연 얼굴 표정을 나타낼 수 없고 대사도 없는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하지만 픽사는 얼굴표정을 나타낼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월E의 몸짓, 행동, 심지어 배경음악까지 사용하여 너무나 멋지게도 월E의 감정을 표현해내었다. 특히나 월E의 눈에 비친 별들을 통해 월E의 외로움을 표현해낸 장면은 정말 엄지손가락을 쳐들수 밖게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이들은 천재인것이 분명하다)
로봇의 러브 스토리 + 자아찾기
영화 월E를 이끌어가는 것은 월E와 이브의 러브 스토리이다. 월E는 이브를 짝사랑하지만 이브는 그 마음을 처음엔 모르다가 점점 월E에게 마음을 연다는 러브스토리. 하지만 픽사는 이러한 월E와 이브의 사랑이야기에다 한가지를 더 얹는데 바로 '자신의 자아찾기'이다.

영화 월E는 쓰레기로 뒤덮인 황량한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는 마치 '나는 전설이다'에서의 황폐해진 지구를 보는듯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몸에 내장된 녹음기에 녹음해 놓은 음악을 틀어놓고 열심히 쓰레기를 치우는 월E의 모습이 비쳐진다. 이 오프닝은 지구에서 인간성(곧 자아)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월E뿐임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월E는 (비록 의도한 일은 아니지만) 프로그램되어진대로 행동하는 이브, 모등의 로봇들과 선장이라지만 하는 일이라곤 점심시간에 우주선의 승객들에게 방송 잠깐 하는 것이 유일한 우주선 AXIOM호의 선장 그리고 모든 일은 로봇이 해주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일어설수도 없는 뚱뚱보가 되버린 AXIOM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로 '자신'에 대해 자각하게 해준다.
월E의 모습은 마치 월E가 이브에게 건네주는 식물과도 같다 할 수 있다. 지구에서 다시 자라나게 된 최초의 식물이 황폐해진 지구를 다시 예전의 지구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게 되는 것처럼 월E는 자아를 잃어버렸던 자들에게 자신을 다시 되찾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월E에는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SF영화인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들이 몇가지 등장한다. 선장이 조종석을 둘러볼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배경음악으로 나오며 선장이 AXITOM호의 조종 로봇 '오토'와 싸울때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배경음악으로 나온다.(이 장면에서 폭소를 터트리는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오토'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HAL'과 그 모습이 유사하고 HAL이 인간에게 반항했던것처럼 선장에게 반항한다.

과연 월E에 이러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연관된 것들을 왜 등장시켰을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리뷰를 찾아보던 중 한가지 흥미로운 리뷰를 발견했다.
'....이 작품의 궁극적인 주제는 '신'의 문제와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간의 비인간화'이다. '인류의 기원'편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진보는 도구와 무기를 발견하고 만드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곧 인간의 비인간화를 낳고, 마침내 2001년에 이르면 컴퓨터가 더 인간적인 감성을 지니게 된다.....(중략)....또한 과학문명의 발달은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맥을 같이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 간접적'으로 되며, 그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진실이 왜곡되기 쉽다고 본다. 여기서 21세기의 많은 사람들은 통신수단을 통한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을 행하며, 또한 HAL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컴퓨터라는 절대적인 신뢰가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을 낳고 불행한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점차 간접적으로 변해가는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인간적 유대관계도 점차 상실되어 가는 것이다....-김지석 영화평론가-'
위 리뷰에서 처럼 영화 월E에서 우주선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노동을 로봇이 해주는 엄청난 기술 진보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지극히 '비 인간적'이다. 그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도 직접 대화하지 않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의자에 달려있는 홀로그램을 통해 대화한다. 그들은 서로간에 직접적인 교류가 전혀 없으며, 심지어 아기들까지 로봇에 의해 길러짐으로써 인간간의 최고의 유대관계라 할 수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기술의 진보와 인간의 비인간화에 대해 경고한 것처럼 월E 또한 똑같은 것을 경고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2008 최고의 애니메이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앞서 개봉했던 드림웍스의 '쿵푸팬더'가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음에도 2008년 최고의 애니메이션의 자리는 '월E'에게 주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만큼 월E는 영화를 보는내내 흠뻑 빠져들게 할 만큼 재미있으며 그 안에 담고 있는 주제도 상당히 진지하고 심오하다. 또한 픽사가 창조해낸 로봇캐릭터들은 다소 딱딱하고 차갑게 보이는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스럽다.

영화관에서 정말 너무너무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다소 투박해보이는 캐릭터지만 다른 애니메이션의 어떤 캐릭터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지실거에요~
첫댓글 ㅎㅎ 로봇의 사랑찾기와 자아 찾기. 어렵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