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1970년 런던의 하이드파크 도로변에는 비슷한 규모의 여인숙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밤이 되면 빈 객실이 있었 때 현관에 'Vacant'라고 쓴 빨간 등을 켰다. 값도 쌌다. 숙소는 침대와 화장실만 있을 뿐 다른 시설이 없다. 객실도 10개 내외였다. 여인숙은 아침식사를 포함해서 계산했다. 저녁에 아침식사를 주문받아 아침에 제공했다. 당시 유럽을 여행하면서 런던만큼 아침식사를 잘 차려주는 여인숙은 보지 못했다. 영국인은 유럽대륙 전체를 영국과 대등하게 대비시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콘티넨탈 조식'은 빵, 소시지, 베이컨, 계란, 블랙푸딩(순대), 구운 토마토가 나와 푸짐했고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영국의 아침식사는 특별했다. 우리도 1950∼60년대는 가난했던 시절, 인사가 "진지 드셨어요?"였다. 산업혁명으로 일찍 출근해야 하는 도시노동자들의 아침식사는 대단히 중요했다. 런던 여인숙의 아침식사가 무겁게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2002년에 다시 런던에 갔다. 하이드파크 주변의 여인숙은 사라졌고, 그때를 기억하는 대사관 직원은 없었다.
영국은 잉글랜드의 번역이다. 빅토리아시대 아편전쟁[1839~1842(1차), 1856~1860(2차)]으로 아시아의 패자로 등장한 영국을 중국에서 부친 이름이다. UK는 잉글랜드(인구 5500만명, 면적 13만㎢, 국회의원 522명), 스코틀랜드(540만명, 7만8천㎢, 국회의원 59명), 웨일스(3백만명, 2만㎢, 국회의원 40명), 북 아일랜드(190만명, 1만4천㎢, 국회의원 18명)를 합쳐서 UK가 되었다. 4개의 왕국이 하나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의 지방과는 다르다. 독립국가를 주장할 만한 자치가 강하다. 스코틀랜드는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다. 영국의 중심이 잉글랜드이다. UK 인구의 83.5%, 면적의 53.7%, 국회의원수의 80%를 차지한다. 잉글랜드는 북쪽 스코틀랜드와 서쪽 웨일스가 산지가 많고, 전체가 평야지대이다. 동서남이 북해, 영국해협, 대서양이 주변 바다이다.
'England'란 이름도 'Land of the Angels' 즉 앵글로족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그레이트브리틴 섬은 유럽대륙과 붙어 있었다. 1만 년 전 해수면의 상승으로 섬이 되었다. 유럽은 전역이 평야지역이므로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해 인구의 이동이 잦았다. 아시아에 비해 유럽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한 것도 유렵 평야와 같은 기후대에 속하고 있었던 이유이다. AD43년 로마가 쳐들어왔고 그때는 켙트족(Celts 族)이 살았다. 로마가 물러간 뒤 지금의 독일 덴마크에 살고 있었던 앵글로, 색손, 주트족이 잉글랜드로 들어왔다. 잉글랜드는 그레이트브리튼 섬 중에서 산이 없고, 평야 지역이다. 앵글로족이 쳐들어오자 잉글랜드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인 켈트족은 땅이 척박한 산지가 많은 지금의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지방으로 쫓겨났다. 앵글로 색손족은 북유럽 독일, 스웨덴계 민족이다. 그들이 쓰는 말이 잉글리시이다. 부족들은 비옥한 평야지역에 흩어져 10여 개의 소왕국을 건설했다. 지금의 잉글랜드의 지방을 형성하고 있는 노섬브라, 메르시아, 웨섹스, 이스트 잉글리, 에섹스, 켄트, 수섹스 지방이 옛날 왕국이었다.
1066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살고 있던 노르만족의 윌리엄공이 군사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쳐들어와 300여년간 지배했다. 세계사에서 보면 사소한 사건이지만, 영어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정복이다. 프랑스에서 살았던 윌리엄공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고, 잉글랜드에 흩어져 있던 공국(公國)들을 지배하고 데리고 온 프랑스 귀족들로 대체했다. 언어는 지배자를 따라가는 법. 지배자들의 귀족 언어는 프랑스어가 주류가 되었다. 정치, 학문, 사교계의 언어는 불어가 영어 속에 깊이 접목된 이유이다. 잉글랜드가 주축이 된 영국은 대영제국이 되어 전세계에 식민지를 갖게 되었고, 쓰는 언어는 영어였다. 지금 세계 언어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가 4억이다. 모국어로 쓰는 인구는 중국어, 서방아어 다음이다. 그러나 공용어로 쓰는 인구 4억, 제2외국어로 쓰는 인구가 7억이다. 전세계의 60개국이 모국어 또는 공용어로 쓰고 있다. 잉글랜드는 면적에서나 인구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하다.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잉글랜드와 대한민국은 비교가 안 된다. 영국의 역사는 잉글랜드 역사이고, 잉글랜드는 서양근대사를 만들어냈고, 20세기의 세계사를 주도했다. 한국의 토지이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법이 그린벨트법이다. 대도시 주변의 토지이용규제를 1971년 런던의 그린벨트법을 따랐다. 당시 그린벨트법을 시행한 나라는 영국과 네덜란드, 한국뿐이었다. 대도시 주변의 난개발을 방지하자는 목적이었다. 영국은 그린벨트를 확대하는 쪽으로 한국은 폐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大邱내일신문 朴贊石(전 慶北大 총장⋅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