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정의 정치로 정치 회복 시급”
“인류 역사는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독일 철학자 헤겔이 설파했다. 헤겔의 ‘인정투쟁 이론’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이론은 미국 철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와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에 의해 더욱 발전되다가 이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개념화시킨 정치학자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야말로 ‘인정의 욕구’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 충족되는 사회라고 강조하면서 공감을 얻었다.
물론 ‘인정투쟁’은 그 목표가 권력 획득이 아니라 인정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권력 투쟁’과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의 통속화가 끝까지 가면 ‘인정’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인정의 정치학’에서 인정(Recognition)이야말로 정치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인정을 향한 인간의 욕구는 사실 복잡하다. 그냥 단순히 물질적인 자원을 향한 욕구와도 다르다. 예를 들어, 죽을 것이 확실한 전쟁에도 참가하여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러니까 인정의 대상은 자신의 신념이거나 삶의 방식이고 더 나아가 자신이 믿는 신(神) 또는 가치처럼 다양한데 물론 권력도 이 중 하나다.
찰스 테일러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서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사람들은 인정을 받아야만 각자의 정체성(Identity)을 지닐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정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엄성을 잃게 되어 자신에 대한 진정성조차 가질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남을 적절하게 인정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타인에게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라고도 한다. 오히려 남을 인정하지 않거나 잘못 인정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종의 억압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인정의 중요성은 근대 루소와 칸트도 강조했지만 헤겔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대두로 인정을 위한 투쟁의 역사가 시작되어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 것인데, 이를 후쿠야마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로 개념화했고, 찰스 테일러가 ‘인정의 정치학’으로 정립한 것이다.
사실,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을 인정하는 것은 인간이 존중받을 값어치를 평등하게 가졌다는 의미가 핵심이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신장하는 정치가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한 정치가 바로 ‘인정의 정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되는 셈이다.
문제는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상호 주관적 인정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써 형성된다는 점이다. 기존의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부정의가 상호 공감과 동감을 통해 인정되어야 한다. 그것이 공동선의 실현이고 현재의 시민적 공화주의의 요체이다. 이른바 ‘다 같이 살기’라는 정치의 본질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정치권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비난의 수위를 넘어 저주와 파멸을 부르는 사기와 폭력이 판을 쳤다. 몰상식한 수준의 저질적 언어는 물론 몰염치한 ‘내로남불’이 난무하면서 도저히 ‘다 같이 사는’ 정치가 아닌 다 같이 공멸하는 정치로 빠지더니 결국 정치를 실종시키는 모습을 연출했다. 정치가 사기와 폭력을 없애기 위해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치가 사기와 폭력을 일삼으며 무(無)정치 시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포리즘 떠나서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키는 핵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 역시 인정받기 위한 위정자들의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성숙된 민주주의에서의 시민의 ‘인정 정치’가 절실하다. 좋은 정치와 올바른 정치는 결국 시민이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자유, 평등, 우의’가 나타났듯이 ‘우의’는 바로 동료 시민의 ‘다 같이 사는’ 정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보이지 않는 적들의 공동체’라고 일찍이 루소가 갈파했듯이 사회 속의 인간은 상호 유기적 관계로 복잡다단하다. 루소는 그래서 사회 속 인간은 모두가 위선자라고 꼬집는다. 더군다나 위정자들은 권력 쟁취를 목표로 온갖 사기와 폭력을 일삼는다. 사기와 폭력을 막아야 하는 정치인들이 사기와 폭력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트리고, 민생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정치의 속성이다.
이는 모두가 ‘인정의 정치’를 간과한 독선과 고집으로 정치 실종을 낳기 때문이다. 정권욕에 빠진 정치인들의 빗나간 우월감, 삐뚤어진 허영심으로 정치가 실종되면서 우리 대한민국이 현재 커다란 갈등과 위기를 맞고 있는데,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인정의 정치’가 열려야 한다. ‘권력 무상, 권불 10년’은 동서고금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