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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우리의 뜻을 바꾸어야 합니다."
+ 본 문 : 누가복음 22장 39절 - 46절(구약 135쪽)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이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아멘!
신앙생활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가 “하나님의 뜻” 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고 살아가는 그 하나님의 뜻을, 오전히 나의 뜻으로 바꾸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의 질서 안에는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뜻이 오롯이 다 담겨 있고,
그 외에 무수한 자연 만물과 인간의 잡다한 것들에도, 여러 가지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의 유일한 뜻대로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고, 예나 지금이나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잠언서는 19장 21절 말씀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만사가 여호와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살면서, 어느 한편이 자기의 뜻을 굽혀야 행복한 가정생활이 됩니다.
부부간에 살면서도, 어느 한편이 자신의 뜻을 굽혀야 행복한 부부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뜻대로만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 집안은 함께 살아갈 수가 없는,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한편이 뜻을 굽히되,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가깝도록 굽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굽히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장래와 영원의 세계가 달라질 수 있고, 행복과 불행이 달라질 수 있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지만, 알아도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확실히 알고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만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신의 뜻을 바꾸어야만 합니다.
모든 만물은 그 종에 따라서 특유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식의 유무, 살아가는 삶의 환경에 따라서 각자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육신의 뜻을 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의 본능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독특한 삶을 지탱하도록 본능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육신의 본능이 하나님의 허용의 정도를 벗어날 때,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육신이라고 말씀하실 때의 경우를 보면, 하나님의 허용하신 한계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본능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바로 그 인간 이하의 뜻을 품을 수도 있고, 인간 이상의 뜻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다 좋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이하의 뜻을 품으면 짐승같이 되어 버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이상의 좋지 못한 뜻을 품고 살아가게 되면, 사탄마귀와 같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담과 하와는 육신 이상의 뜻을 품었기 때문에 하나님같이 되지 못했고,
사탄마귀와 같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인간 이하의,
뜻을 품고 살았으므로, 인간이하의 동물적인 존재들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도 인간 이하의 뜻을 품었으므로, 인간이하의 동물적인,
존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노아시대는 홍수로 소돔과 고모라는 불로 심판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시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말했습니다.(롬 8:5-9) 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한 번 더 종합해 보면,
①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②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③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④ 하나님께 굴복치 않으며 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⑥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롬 8:12-14)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바꾸어 육신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여러분!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반드시 이겨내야만 합니다.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여야만 합니다. 영이 아니면 육을 죽일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신학적인 공상이나 생각만은 아닙니다. 실제생활에서 절대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15절 말씀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을 죽일 수 있고 이겨 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성령의 힘으로, 거듭난 영의 힘으로 육신을,
죽이는 일이 절대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으로 죽여야 할 육신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9절 - 21절에서 죽여야 할 육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아멘! 무섭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육체의 일을 저지르는 우리의 육신을 죽여야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육체의 일을 저지르는 우리 육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어야 우리의 영혼도, 육신도 함께 사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우리 예수님은 기도로 육신의 소원과 소욕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버지의 원대로라는 기도로만이, 우리 육신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 로 육신의 소욕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도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103편 2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늘에서는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 이 말씀에서 보면, 하늘나라에서는,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누가 이루어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육신의 뜻을 포기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취해야만 합니다.
내 육신의 잔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잔, 아바 아버지의 잔, 창조주의 잔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셔야 할 하나님의 잔은 쓴 잔이요, 피의 쓴 잔이요, 고통의 쓴 잔이요,
눈물의 쓴 잔이요. 애가 끓는 통곡의 쓴 잔이며, 어려움과 괴로움의 쓴 잔이었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아버지의 원대로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이든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또 에베소서 5장 15절 - 17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4장 2절에서 이렇게 강권하며 말씀하십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로, 죄 사함을 받은 감격을 가진 그리스도인입니다.(요한일서 2장 12절).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다시 말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는 것은, 곧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사야서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아멘!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로마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아멘!
골로새서 1장 13절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아멘!
골로새서 1장 14절 말씀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아멘!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성경말씀처럼 예수님으로 인하여,
죄 사함의 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죄의 은총을 경험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듣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응답하였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였기에, 그는 이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감격을 가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내 육신의 뜻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반드시 행하게 됩니다.
둘째로,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뜻대로 행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사도 바울도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라."(엡 4:13).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깊은 교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 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일하려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옛말에 '간담상조(肝膽相照)'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한자 그대로 간과,
쓸개를 꺼내어 서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즉,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가까이 사귐을 뜻합니다.
중국에 한유와 유종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당대의 문장가들로서 고문(古文),
부흥운동을 제창했던 사람들입니다. 유종원이라는 분에게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유몽득(柳夢得)이란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먼 곳으로 좌천당하자 유종원이 대신,
그곳으로 가기를 자원했습니다. 몽득이 어머니를 모시고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해 배려하고자 함이었습니다. 한유는 그의 친구를 위한 그 배려에 감동했고,
그가 죽은 후, 세상의 그릇된 교제를 비난하며 유종원을 찬양하는 묘지명을 남겼습니다.
그가 쓴 묘지명의 글은 이랬습니다. "사람이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절의(節義)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대부분 간과 쓸개를 서로 꺼내 보이며, 우리는 죽어서도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이해라도 얽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변해버린다."
요즘 세대는 간과 쓸개를 꺼내어 보여주면, 그걸 빼내어 도망갈 판입니다.
이러한 세대에 진정한 사귐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사귐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간과 쓸개는 물론이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내어주셨던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사귐을 그토록 원하십니다.
왜 그렇게도 우리와 사귐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람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합니다.
셋째로,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악한 자를 이기는 힘을 가진 사람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우리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거할 때, 사단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으로 사단을 이길 수 있을까요?
사단 마귀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가 드리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마귀를 이길 힘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넷째로,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은 뜻을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나 세상 것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약 4:4)
왜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될까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세상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 것에 접하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세상에 물듭니다. 세상 친구들은,
우리에게 ‘예수를 믿어도 적당하게 믿으라.’ 고, “왜 그렇게 유별나게 믿느냐.” 고 말합니다.
남들이 가는 술집도 가고, 때로는 회식 자리에 가서 술도 한잔씩 받아 마시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개 집사도 마시더라. 그러니 한 잔쯤 마시면 어떠냐.” 는 것입니다.
처음 한 잔의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그때부터 믿음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잔의 유혹, 이번만 이번만이라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①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에 있는 것들에는 ‘육신의 정욕’ 이 있습니다.
육신은 생물학적인 육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대립되는 기관인 육을 말합니다.
정욕이 무엇입니까? 정욕은 금지된 일에 대한 근본적이고, 지극한 욕망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간이 필요한 생필품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창 1:28).
문제는 우리 인간이 육체의 노예로 전락하여, 육체를 위한 탐욕을 가지는 데 있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이 욕심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을 거스리며, 사는 삶이 육체의 정욕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주리시며 금식기도를 하실 때 마귀가 찾아와,
가장 먼저 먹는 것으로 시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는 말씀으로 사탄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②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에 있는 것들에는 ‘안목의 정욕’ 이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 판단은 거의 육신의 눈에 의하여 좌우됩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인간들이 입수하는 정보의 대부분은 눈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우리 인간들이 지은 죄의 대부분이 보는 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인간을 유혹할 때, 하와로 선악과를 바라보게 했더니, 보암직하였습니다.(창 3:6).
한가하게 궁궐을 거닐던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를 내려다보고 범죄했습니다(삼상 11:2).
롯과 그의 가족이 비옥한 요단들을 바라보았기에 때문에, 소돔으로 가게된 것입니다.
아간도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금덩이를 보고 탐내어,
취하여 감추어 두었습니다(수 7:21). 그러므로 우리 사람은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시각은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시키며, 사물이 있는 그대로 뇌신경에 전달해 줌으로써,
그 자극도가 매우 강합니다. 눈으로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눈으로 본 것을 소유하려는 지나친 욕구는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이에 물리쳐야 합니다.
③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세상에 있는 것들에는 ‘이생의 자랑’ 도 있습니다.
썩어질 이 세상의 삶을 자랑하는 것을,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물질, 명예, 지위 같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긍정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이 가진 물질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그의 영혼을 불러 감으로, 그가 자랑했던 것들이 뉘 것이 되었습니까?
세상의 유한한 것을, 마치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이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9장에서 부자 청년에게 “영생을 얻고자 하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그가 자랑하던 많은 물질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를 못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욕의 노예가 되거나, 눈에 보기에 좋은,
세상 것만 소유하고픈 욕망과 썩어질 세상의 삶을 자랑하는 것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것들은 지나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는 것에 목매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원한 것에 투자하며 살아야 할 하늘 사람들입니다.
다섯째로,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있는 정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 육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백성이,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전도와 선교하는 일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면, 결국 성령으로 살게 되고, 성령으로 살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 26절 말씀입니다.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괴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투기하지 말지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신 후,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살려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신,
말씀대로 모든 일이 잘 되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십니다.(롬 8: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육신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늘 사람입니까?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늘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십시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이해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성도들이 되어,
잘 했다 칭찬받고 면류관을 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