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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계시록!(13) : 이 땅에서도 천국인생을 삽시다!”
+ 본 문 : 요한계시록 5장 7절 - 14절 (신약성경 403쪽)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 만이요. 천 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아멘!
어느 경제 월간지에 “가치관이 확립된 회사는 뭐가 다를까?” 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그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라면의 본질은 면발에 있다. 국물과 양념이,
아무리 그럴싸해도 꼬불꼬불한 면발이 아니면 라면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치관이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이, 기업의 가치관을 지녀야 혼이 살아난다. CEO에서 말단 직원,
모두가 동일한 가치관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기업 활동을 벌이는 것, 이것이 바로 가치관경영이다.”
그 다음에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성숙해진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왜 존재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사업할 것인가? 앞으로 어떤 회사가 될 것인가가 명확해야 제대로 생존하고 장수도 할 수 있다.”
이 글이 돈벌이를 하는 기업을 위해 쓴 글이지만, 저는 이 글의 내용이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우리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히 요리문답에도 이 질문이 나오거든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이런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또한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도 많이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짧은 인생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또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 많은 것들을 압축해서 우리 인생을 딱 하나로 정리한 것이, 바로 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의 답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또한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보면, 그 안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교회에서 성부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습이,
그리고 5장에서는 성자 예수님을 향하여 전심으로 예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를 포함한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의 새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딱 하나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찬양과 경배입니다.
이러한 천국의 새 예루살렘교회를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해야 할 일도,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찬양하는 한 가지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요즘 교회들이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 해외 선교하는 일, 복지관을 운영하는 일 등등, 참으로 많은 일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귀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일들을 하려고 이 땅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자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구호처럼 말하는 예배 성공자가 인생 성공자요. 예배 실패자는 인생 실패자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구원 받은 목적대로, 성공한 예배자로 살아갈 때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무엘 상 초반부에 보면, 엘리 제사장과 한나가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은 당대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였고, 그에 비해 한나는 이름 없는 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과 그 가문들이 계속 대조가 되는 것은, 우뚝 선 존재로 시작한 엘리 제시장은,
점점 몰락해 가지만, 여기에 반해 한나는 그 아들 시무엘을 통해서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두 인생이 180도 대조된 인생을 살아가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먼저 철저하게 몰락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에 대한 말씀인데, 사무엘상 2장 17절 말씀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서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아멘!
이에 반해 놀라운 영광을 누리게 된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어땠습니까? 사무엘상 2장 18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아멘! 진실로 아멘입니다.
딱 비교해 보아도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는 예배 실패자였고,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하는 일에 쓰임 받았던, 예배 성공자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배실패자의 가문은 몰락하였고, 예배성공자의 가문은 크게 쓰임 받고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저는 저 자신이 항상 부족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의 기도는 늘 이것입니다. “예배에 목숨 걸겠습니다.”
그래서 40년이 넘게 설교하고 있지만, 저는 지금도 설교원고를 쓸 때 토씨 하나까지도 다 적습니다.
이렇게 강단에 서기 전까지 다시 설교 원고를 다듬고 또 다듬습니다. 그렇게 해야 저는 설교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 전할 때, 성령님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제가 먼저 참된 예배자가 될 때,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예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영적 원리를 기억하며 예배를 잘 드릴 때, 우리 인생의 회복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예배를 잘 드릴 때 가정이 회복되고, 생업이 회복되고, 치유와 회복이 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예배자로 이 땅에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진정한 성공한 예배자로 거듭나기 위해서, 꼭 회복해야 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9절, 10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아멘!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무엇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예수 십자가의 구원사역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므로 구원해 주신, 그 은혜로 회복된 자신의 정체성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정체성을 회복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도 “너는 하나님의 장자다.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상속자다.
너는 복의 근원이다.” 라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어 행복한 자녀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에 취하여 혼미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여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아가는 행복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 성공자가 될 때에만이 절대 가능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나, 오늘날 성도 여러분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는 초점이, 하늘나라가 아닌 전부 이 땅의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을 지난 7일 동안의 여러분의 삶을 가만히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삶이었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한 내용들을 한번 분석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대부분이 땅의 것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땅의 것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땅의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예배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 –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는 말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의 말씀처럼 “이리로 올라오라. 천국으로 올라오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8절 말씀입니다.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아멘! 아멘!
이 말씀이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이 기도는 “부자 되게 해주세요. 복 받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가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당시 엄청난 박해 속에서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의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오늘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으로 드려지는 기도일까요?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입니다. 땅에만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우리의 시야가 넓어져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갈망할 때,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1절 말씀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아멘! 아멘!
하나님은 사도 요한을 “이리로, 천국으로 올라오라.” 고 부르시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요한계시록 4장 1절 말씀입니다.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처럼 하나님은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기 위해서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결국은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현실 과장이 참 많습니다. 죽을 것같이 힘들게 살아가고, 화난다고 싸우고,
그래서 뒤늦게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내가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요한계시록 4장 1절의 말씀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 이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의 것이 보이지 않고,
그저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얻은 것도 없고, 그래서 만족도 없고, 그래서 그냥 짜증나고 화나고 그러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보이지 않고, 자꾸만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습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그런데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이 땅의 현실입니다.
그렇게 광야 같은 땅만 보고 살다보니, 죽을 시간도 없이 바쁩니다. 그래서 죽을 것처럼 힘듭니다.
왜 내가 이렇게 살지? 회의합니다. 사는 게 절망입니다. 기쁨이 전혀 없습니다.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령 임재가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한 은혜를 주셔서 땅의 것이 아니라,
절망하는 인생이 아니라, 멀리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를 바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현실에 초점을 두고 안달복달하고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좌절과 절망으로 미끄러지는 인생이 아니라, 멀리 눈을 돌려서 광야 너머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바라봄으로, 지금의 힘든 현실을 기쁨으로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올바른 예배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자녀된 기쁨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기뻐하며 산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누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기쁨을 누리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파송하신 전도대원들이 돌아와서 이런 보고를 하였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0장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아멘!
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너희들이 가쁨을 누리는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 기쁨이 땅에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얻는 기쁨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보면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는 “새 노래” 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해답이 요한계시록 14장 3절에 나옵니다.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자가 없더라.”
이 말씀에서 말씀하는 새 노래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시려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감격,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신앙고백 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저는 종종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수준 낮은 목사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교회가 부흥되어 간다거나, 내가 조금 유명해졌다고 기뻐하는 목사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만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변화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을 푯대삼고 천국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내 모습 때문에 기뻐하는 목사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만 이렇게 기도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신앙의 수준이 낮은 성도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거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박수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성도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만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십자가를 통하여 변화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주님을 푯대삼고 천국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내 모습 때문에 기뻐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영적 시야가 넓어져, 구원의 감격을 기뻐 노래하는 우리가 되기를 정말로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진심으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축복하며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장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잘 믿는 복의 근원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장자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상속자답게! 복의 근원답게!
날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면서 안달복달하지 마시고, 비록 우리의 몸은 광야를 살아가지만,
우리의 영안이 열려 있어 약속의 땅 가나안! - 저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기쁨으로 살아가시되 그 수준이 낮은 단계의 기쁨이 아니라,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영적 감격에서 우러나오는 하늘의 기쁨!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살아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님들과 성도님들의 기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