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8:31-36절)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 중에서 우리가 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여자 선수가 있습니다. 그 선수는 키도 크고, 믿음직스러운 선수였습니다.
그 선수는 동계 올림픽 경기 때, 중국, 미국과 캐나다 선수들을 모두 따돌리고, 코너를 도는데, 정말 벼락같은 속도로 다른 선수들을 다 제쳤고, 결국 일등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금메달을 달았습니다. 우리는 그 선수가 부러웠습니다. 저 어린 나이에 모든 선수가 소망하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신문에 그 선수가 코치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상습적으로 구타와 폭행은 물론 성폭행까지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자랑스럽고, 행복한 것 같았지만, 행복하지 못했고, 폭력과 치욕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신문 칼럼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해서 이렇게 쓰고 있었는데 “그 어린 영혼이 출구가 없는 곳에 갇혀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넓은 사막(沙漠)에 나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끝없이 넓은 사막(沙漠)은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어디로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막(沙漠)에서는 물과 양식이 없어서 결국 하루나 이틀 혹은 일주일이 지나면, 탈진하여 쓰러져 죽고 말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이 살려고 하면, 그 사막(沙漠)에서 누군가 사람을 만나서 사람이 사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르쳐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설명을 듣고, 끝까지 그 길을 가면, 결국 사막(沙漠)은 빠져나오게 되고,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옥(監獄)들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우울증(憂鬱症)에 걸리면,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감옥(監獄)이 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고, 수시로 속에서 분노(忿怒)가 치밀어 오르고 숨이 막힙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정말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 분노(忿怒)가 치밀어 오르면,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살(自殺)하는 사람은 죽음이 자신을 자유(自由)케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은 자유(自由)가 아니라, 멸망(滅亡)의 길입니다. 우울증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돌연사(突然死)하는 사람이 1만 8천명이라고 합니다.
돌연사라는 것은 갑자기 심장(心臟)이 정지되어서 죽는 것인데,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3배나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돌연사의 주된 원인은 마음의 상처(傷處)이고,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예를 보면, 세계 최고의 스케이트 선수나, 전직(前職) 대통령, 미모(美貌)의 여성(女性)이나, 음악가(音樂家)나, 사업가(事業家), 직장(直腸)인이나, 고등학생(高等學生)들이나, 모두 자기(自己)라는 감옥(監獄)에 갇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또 나이가 들어가고, 죽는 것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부인(婦人) 사라의 여종 하갈이 여주인을 무시했다가 야단을 맞고는 임신(姙娠)을 한 채로 가출(家出)을 해버립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서 목이 말라서 쓰러져 죽게 되었는데, 그때 천사가 그녀를 만나서 창16:8절)...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인생에게 묻고 있는 질문입니다. 즉“누구누구야, 너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느냐?”하는 것을 묻고 계신 것입니다.
Ⅰ.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 시대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의 제자로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만일 그 사람들에게“당신은 요즘 누구의 가르침을 받고 있소?”라고 물으면, 그들을 서슴지 않고,“아, 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소. 나는 예수님의 제자요”라고 대답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새로운 가르침을 받고, 신선한 도전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 계속해서 가난한 예수님을 따라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적당하게 예수님의 교훈을 배운 후에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가서 배우든지, 세상에서 성공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31-3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거한다.”는 것은 “그 말씀 속에 들어와서 사는 것”을 말하고“그 말씀을 계속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면 진리를 알게 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유롭게 한다.” 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으며, 어떤 동굴 같은 데, 갇혀 있는 것을 전제(前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광야(廣野)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면, 그는 점점 방황하다가 나중에는 낭떠러지나, 수렁에 빠져서 죽든지, 독사(毒蛇)에게 물리든지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굴에 갇혔다면, 캄캄한 데서 이쪽으로 가고, 저쪽으로 가고, 하다가 나중에는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참 생명을 얻으려고 하면, 자신의 말씀 속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끝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결국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소개할 때“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광야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데, 세례 요한은 그들이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가르쳐준 길이 어디였을까?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북쪽으로 쭉 가면, 산(山)이 있는데, 그곳을 둘러서 가면, 길이 나온다고 했을까? 아닙니다. 세례 요한이 가르쳐준 길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고 요1:29절)...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사실에 “진리(眞理)”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문적(學問的)인 진리(眞理)라는 말을 합니다. 신학(神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신학적(神學的) 진리(眞理)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진리(眞理)들은 너무나도 어려워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과거가 완전히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과거가 완전히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라는 것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다고 하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는 없애고,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천국의 진액(津液)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과 예수님 사이에서 두 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과거가 지워지지 않으면, 미래가 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세상에서 보따리는 싸서 예수님에게 와서 예수님의 말씀을 죽도록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의 진액(津液)이 내 안에 쭉쭉 밀고 들어와서 과거는 다 지워버리고, 나를 새 인생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自由)를 얻는 것입니다.
Ⅱ.인간은 죄의 종이다. 예수님은 유대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죄(罪)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8:34절)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사람이 죄(罪)를 지으면, 그 죄(罪)가 그 사람에게 붙어서 절대로 그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살인(殺人)을 저지르면, 그는 살인자(殺人者)가 되어서 죄명(罪名)에도“살인(殺人)”이라고 쓰고, 그는 감옥(監獄)에서도 살인자(殺人者)로 통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사기(詐欺)를 치면, 그때부터 그는 “사기(詐欺)범”이 되고, 감옥(監獄)에서도 “사기(詐欺)범”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경찰은 이런 죄수(罪囚)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철장(鐵場)안에 집어넣고, 이동을 할 때도 철저하게 수갑(手匣)을 채워서 옮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에게 죄(罪)가 얼마나 접착제(接着劑)같이 달라붙는 성질이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좋은 대학(大學)을 졸업한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를 차려서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떼 부자(富者)가 된 것입니다. 그는 강연(講演)에서 말하기를“게임이야말로 미래의 산업이며, 청소년들에게 뇌(腦)를 쓰게 하는 창의적(創意的)인 프로그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혀 죄(罪)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자기 자신이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게임 중독(中毒)이 되어서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게임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자기가 폐인(廢人)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개발(開發)한 게임이 얼마나 많은 청소년과 청년의 인생을 망쳤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공식적(公式的)으로 말하기를 게임은 중독(中毒)이며, 자신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5:28절)...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너무 심한 비약(飛躍)을 하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번 음란(淫亂)한 동영상이나, 영화나, 만화를 보면, 또 보고 싶어지게 됩니다. 그 충동(衝動)이 얼마나 강(强)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은 또 보게 되고, 결국 중독(中毒)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겉으로는 동정심(同情心)도 있고, 상식(常式)과 예의(禮義)도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 또 다른 자아(自我)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죽이고, 강간(强奸)하고, 때리고, 자기 멋대로 하고 싶어 하는 자아(自我)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근거(根據)는 자기가 누구인지 진정한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목말라 합니다. 즉 학문(學文)에 목말라 하고, 사랑에 목말라 하고, 출세(出世)나 돈에 목말라 하고, 나중에는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다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빛이라고는 없는 동굴 같은 지옥(地獄)에서 끝없이 방황하게 됩니다. -5- 예수님은“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모든 사람은 다 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모든 사람이 죄수(罪囚)이고, 인질(人質)이고, 노예(奴隸)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이렇게 반발(反撥)했습니다.
8:33절)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自負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종이 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중에서도 이스마엘은 종의 아들이었고, 들 나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이 되었고, 바벨론에서도 종이 되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의 자존심(自尊心)만큼은 꺾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도 한국 사람의 자존심(自尊心)은 꺾인 적이 없습니다. 일본 강점기에 대해서도 일본은 자발적인 합병(合兵)이었다고 하고, 한국은 강제적(强制的)인 합병(合兵)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3.1운동(運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존심(自尊心)이 밥 먹여 줍니까? 우리는 모두 죄(罪)의 종이고, 이 세상에 살면서 부끄럽지 않은 과거를 산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산 것을 생각하면, 죄(罪)를 많이 지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미친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生水)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가르침을 죽을 각오를 하고 따라가면, 살게 됩니다. 우리에게 기적(奇蹟)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일어나고, 부흥(復興)이 일어나며, 결국 죽음도 이기게 될 것입니다.
Ⅲ.하나님의 아들의 해방 옛날 어느 집에 노예(奴隸)가 있는데, 그 집에 어른이 된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 아들이 아버지와 의논(議論)을 한 후에 자기가 늘 데리고 다니던 사랑하는 노예(奴隸)에게“오늘부터 너는 자유인이다”라고 한다면, 그 노예(奴隸)는 즉시 자유인(自由人)이 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들이 그 집의 실권(失權)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그 노예(奴隸)를 해방(解放)만 시킨 것이 아니라, 그를 다시 자기 집 식구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다시 그의 가족(家族)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의 아들이요, 실권자(實權者)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해방(解放)시킬 권한(權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8:35-36절)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종은 영원히 자기가 있는 집에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개 노예(奴隸)가 늙으면, 주인(主人)이 팔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노예(奴隸)는 요즘 우리가 타는 차(車)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자기가 타는 차(車)가 아무리 마음이 든다고 해도 영원히 타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차(車)는 새 차(車)일 때, 그 기분으로 타는 것이지, 낡아서 고장(故障)이 나게 되면, 그 차(車)를 팔아버리고, 다른 새 차(車)를 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헌 차(車)를 팔면서 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헌 차(車)를 팔고, 새 차(車)를 사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헌 차(車)는 폐차(廢車)장으로 가서 우겨져서 고철(古鐵)로 녹여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이 노예(奴隸)를 살 때는 죽을 때까지 데리고 있으려고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노예(奴隸)는 젊었을 때, 실컷 부려먹다가 나이가 좀 들면, 훨씬 더 못한데 팔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무도 파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은 소중한 상속자(相續者)이고, 내 몸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개(犬)를 아주 소중하게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는 수명이 짧기 때문에 주인(主人)보다 먼저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主人)중에는 개가 죽으면, 너무 충격(衝擊)을 받아서 병원(病院)에 입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개를 방 안까지 데리고 오고, 침대(寢臺)에까지 오게 해서 재우게 하는 데, 성공(成功)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와 함께 영원히 살 순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는 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에는 노화(老化) 프로그램이 심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노화(老化) 프로그램의 핵심(核心)은 죄(罪)요, 율법(律法)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罪)와 율법(律法)의 프로그램을 중지시키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늙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는 “잠시 잠잔다.”고했습니다. 우리가 잠시 한번 자고 나면,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죄(罪)의 노예(奴隸)가 아니라, 천사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자유(自由)롭게 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에게 자유(自由)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 허락(許諾)하시고, 합의(合意)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子女)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入養)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유(自由)합니다. 우리의 과거(過去)는 모두 다 지워져 버렸습니다. 우리의 기억하기 싫고, 수치스러운 과거는 모두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 일들은 안 일어난 것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子女)들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과거(過去)의 죄(罪)를 벗으려면, 과거의 죄(罪)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어야 하고, 새로운 지위(地位)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過去)는 없어졌고, 우리는 최고로 귀중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즉 우리는 돈으로부터도 자유(自由)롭고, 명예(名譽)로부터도 자유(自由)롭고, 과거(過去)로부터도 자유(自由)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自由)롭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유(自由)로운 것이 아니라, 미친 짓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공포(恐怖)로부터도, 병(病)으로부터도 자유(自由)롭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부(富)로부터도 자유(自由)롭습니다. 이제 자신의 욕망과 야망과의 선한 싸움을 믿음으로 이기고 자기 양심(良心)이 옳다고 하는 일을 기쁘게 하면 됩니다.
딛후4:7-8절)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카톡 선교센터를 설립하여 진리의 복음을 열방에 전하여 영혼을 살려 천국 백성으로 섬기는데 헌신과 봉사하므로 상급 받는 선한 청지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저는 1차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모두 돌려 드리고, 이제 땅 한평도 없고, 골방과 몸뚱이 하나 뿐입니다. 77회 생일 아침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진리의 복음 다음카페 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카톡선교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