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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송원에서 노닐 때 /昔我遊松源
멀리 속리산을 바라보았지/ 遙瞻俗離山
높이 솟아 푸른 허공에 섰고 / 嵯峨倚靑空
흰구름 속에 봉우리 드러났네/ 縞白露層巒
구름이 봉우리에 장막을 친 줄 처음 알았고 / 始信雲冪峀
옥이 산의 얼굴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 終覺玉爲顔
실학자 성호 이익은 친척 이성환이 보은현감으로 나가자 '족손(族孫) 천장(天章)에게 주다'라는 시를
선물했다. 주로 향리(鄕里)인 경기 안산에 칩거하며 학문에 몰두했던 이익이 속리산을 속속들이 걸으며
등정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산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와닿는 것을 보면 보은에 와서 산의 자태를 본 것은 틀림없을 터다.
아마도 보은현감에 부임한 이성환은 이익의 시를 읽고 속리산을 한달음에 가고 싶지 않았을까.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 8대(금강산·설악산·오대산·태백산·소백산·속리산·덕유산·지리산) 명산중
하나로 꼽은 속리산(해발 1058m)은 태백산맥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나온 소백산맥 줄기 가운데 위치해
계곡이 깊고 높은 봉우리가 즐비하다.
산의 기운(起運)이 좋아서 그런지 법주사를 중심으로 문장대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곳곳에 탈골암, 복천암,
상환암, 상고암, 관음암, 중사자암, 여적암, 법기암, 봉곡암등 수많은 암자가 숨어있다.
상환암의 들머리인 속리산 세조길은 '발상의 전환'으로 만들어진 훌륭한 산책코스다. 세조길이 생기기 전
문장대와 천왕봉 산행의 출발지점인 복천암·세심정까지 가려면 차도이자 인도인 콘크리트길 4km를
지루하게 걸어야 했다.
그래서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문장대에 올라가기 전에 이 길에서 체력이 방전된다는 말이 나왔다.
오죽하면 속리산 주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이 길에 '모노레일'을 설치해 등산객들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세조길이 길의 성격을 바꾸었다. 우선 기존 도로 옆 달천계곡 주변에 야자매트와 나무 데크를 깔아
등산객은 물론 탐방객들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호젓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또 길에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조카인 단종을 살해하고 정권을 탈취한 세조가 마음의 병과 피부병 치료를
위해 이 길을 따라 복천암에 다녀갔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세조길'이라는 이름을 정했다. 세조는 이 곳에
올 때마다 달천계곡에서 몸을 씻었다. 그곳 용소(龍沼)가 '목욕소'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다.
오솔길 주변에 생강나무, 전나무, 산갈나무, 소나무 그리고 조릿대가 우거진 세조길은 부드럽고 완만해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편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의 백미(白眉)는 상수원지 안쪽 오솔길이다. 홍송(紅松)에 둘러 쌓인 상수원지는 산의 옥수(玉水)를
모아놓은 저수지라고 할만큼 거을처럼 맑고 풍경이 빼어난 곳이다.
이 길을 걷다보면 조선 정조때 원로대신 김종수가 속리산으로 장기여행을 떠나자 여행의 즐거움을 짐작하니 돌아올 날을 묻지 않겠다는 정조임금의 유명한 시가 떠오른다.
늙은 정승에 대한 정조의 애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속리산 위 흐르는 샘물 있다 들었는데
석간수의 유천으로 옥수 같다하네
아침마다 잔 가득 폐부로 마신다면
바로 인간이 늙지 않을 신선임을 알리라
<봉조하 김종수 속리지행삼수 (贈奉朝賀金鍾秀俗離之行三首)중>
세조길의 끝이 세심정이다.
등산객들은 세심정에서 복천암을 거쳐 문장대로 가거나 상환암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른다.
혹은 세심정에서 상고암으로 직진해서 비로봉으로 갈 수도 있다.
녹색의 숲이 울창해 햇볕이 짱짱한 날에도 어두운 세심정에 들어서면 맑은 물이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른다.
가물어서 수량은 많지 않았다. 나무다리를 건너는데 더위에도 서늘한 기운이 엄습했다.
이 곳에서 상환암까지는 1km가 안되는 짧은 거리이지만 계속 오르막길이다.
우리 일행은 세심정과 상환암 사이에 있는 비로산장에서 잠시 쉬며 여유를 누렸다. 계곡을 끼고 있는 산장은 1965년에 문을 연 이후 한결같은 모습이다.
낡고 불편하지만 세계적인 관광가이드북 '론리 플래닛' 한국편에 소개된 명소다. 지금은 플라워디자이너,
서예가, 화가인 세자매가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오손도손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세자매에게 귀한 보이차 한잔씩 얻어 마시고 길을 재촉했다.
비로산장에서 상환암까지는 400m 남짓하지만 길이 좁고 제법 경사가 급하다. 숨을 헐떡이며 철제계단에서 올려다 보니 상환암은 암벽과 암벽 사이 산등성이에 걸쳐있는듯 서있다.
하지만 올라가서 보면 의외로 터가 아늑하다. 그늘진 요사채에 앉아 물을 마시며 땀을 식혔다. 상환암은
비록 암자지만 신라 성덕왕 19년(720) 의신조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전인 1391년(고려 공양왕 3년)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올렸으며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기 위해 이 암자에 올라 7일간 기도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암자 이름을 상환암(上歡庵)으로 정한것도 세조다.
본전격인 원통보전을 올려다보니 현판이 예사롭지 않다. 세조의 맏손자이지만 당대 세도가였던 한명회에
밀려 동생 성종에게 왕위를 빼앗긴 월산대군 글씨라고 한다.
암자뒤편 바위계단을 타고 독성각(獨聖閣)과 산신각에 올라갔다. 산신각을 가지 않으면 상환암에 간 의미가 없을 만큼 압도적인 '뷰'가 있는 곳이다. 암자 좌측에 학소대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다.
학소대에는 신선이 꽃아 둔 듯 가파른 절벽에 작은 소나무가 여러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참 기이하다. 시선을 정면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멀리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산신각에 서면 나도 모르게 한참을 머물게 된다. 푸른 허공에 서서 잠시 속세를 떠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