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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회 창작 연수 자료 ⓵
시조란 무엇인고 가람 이병기(李秉岐) 1926년 11월 24일 ~ 1926년 12월 13일(총18회 연재물) |
<공지>
1. 본 자료는 광주문협시조분과위원회의 창작 연수에 사용하기 위하여 서연정 분과위원장이 동아일보 지면에서 옮겨 적어 작성한 것입니다.
2. 1926년 언어를 가람 선생 논고의 본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현대어로 옮겼으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원본의 단어는 각주로 붙여 두었습니다.
3. 본 자료의 모든 각주는 가람 선생의 원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하여 옮긴이 서연정 분과위원장이 붙인 것입니다.
광주광역시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회 |
1회/ 1926년 11월 24일 수요일 동아일보 3면
서언(序言)
시조에 대하여 의문이 많다. 이 많은 의문을 가지고 몇 해 전부터 뜻을 두고 알려 하였으나 묻자니 물을 데도 없고 보자니 문헌에도 보이지 아니하여 그냥 생각으로만 어느 엉터리를 잡아 쉽사리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를 아는 이 가운데에는 일즉이 이것을 적어 발표하라고 여러 번 말하는 이도 있었으나 그동안 그럭저럭하여 지금토록 쓰지 못하였다.
늦은 가을 바람은 산들산들 불고 벌레1) 소리는 요란하고 밤은 길고 긴 이때 책상머리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갑자기 시조란 무엇인고 하여 되는 대로 적어본 것이 곧 명칭(名稱), 종류(種類), 자수(字數), 구조(句調), 운율(韻律), 체제(體制), 유래(由來), 낭음법(朗吟法), 수사법(修辭法), 신운동(新運動) 들이다. 이리하여 그 대개(大槪)를 말한 셈이나 이것 보시는 이는 의문에 의문을 더하게 될는지 모른다. 만일 얼마만이라도 그 의문이 적게 된다면 큰 다행인가 하겠다.
1. 명칭(名稱)
시조의 명칭은 때시ㅅ자(字) 시조(時調)라 할까, 글시자(字) 시조(詩調)라 할까. 혹은 시조(時調)도 시(詩)인즉 글시ㅅ자(字) 시조(詩調)라야 좋겠다 하지마는 그건 꼭 그렇다 할 수 없다.
한자(漢字)가 조선에 들어온 지 오래라 장구(長久)한 동안에 조선화한 것이 적지 않아 조선에서 쓰이는 한자는 지나(支那)에서 쓰이는 것과 다른 것이 많으니 한자의 의의(意義)나 혹은 자(字)통2) 만 취하여 쓰는 이두(吏讀)3) - 위고(爲古), 위칭(爲稱), 위비니(爲飛尼), 가우(加于)- 와 조선에서 지어 쓰는 조선속자(朝鮮俗字) - 탈(頉), 증(症), 답(沓), 곶(串), 언(焉)-와 문자(文字)-사돈(査頓), 야단(野壇), 양반(兩班), 부연(婦椽) - 가 각기 본자(本字)의 뜻을 고대로만 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4) 이런 문자들을 알자면 반드시 그 어학(語學)을 찾아보고 알 것이다.
글시5) 자 시조(詩調)가 아니기로 시(詩)는 시(詩) 아니랴. 향가(鄕歌)나 화가(和歌)가 글시(詩)자가 아니라 하여 시(詩)가 아닌 것 아니다. 향가는 조선의 시(詩)요 화가는 일본의 시(詩)다.
고인(古人)의 기록한 것을 보면 유문쇄록(諛聞瑣錄), 지봉유설노릉지(芝峯類說魯陵志),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패관잡기(稗官雜記), 상촌집(象村集), 고산집(孤山集), 낙하생고(洛下生稿)에서는 지금 시조(時調)란 것을 단가(短歌), 가사(歌詞), 곡(曲), 요(謠)로 썼고 구전(口傳)한 바를 들면 – 시절가 - 시조라 하여 많이 불러오다가 심지어 무당의 넋두리하는 데까지 참례하여 노랫가락이라는 별명(別名)까지 얻었다.
이상을 참작하여 보면 우리말로는 시절가라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었으니 시조(時調)는 시절가의 싯자(字) 곧 때 싯자(字) 시조(時調)임을 알 것이다.
2. 종류(種類)
조선가사(朝鮮歌詞)의 집대성인 가곡원류 – 가곡선원본(歌曲選原本) - 에는 평조(平調),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라 하는 것이 쓰이었고 우조 계면조에는 또 초중대엽(初中大葉), 이중대엽(二中大葉), 삼중대엽(三中大葉), 초삭대엽(初數大葉), 이삭대엽(二數大葉), 삼삭대엽(三數大葉), 평거(平擧), 중거두거(中擧頭擧), 소용(騷聳), 횡만(橫蔓), 농(弄)……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것은 모두 곡조의 명칭이오 시조의 종류는 아니다. 그러나 이걸 잘못 보아 시조의 종류라 하여 평조시조(平調時調), 우조시조(羽調時調), 계면시조(界面時調)가 있는 줄 아는 이도 있으며 또는 초이삼중대엽(初二三中大葉), 초이삼삭대엽(初二三數大葉)…… 들은 시조(時調)의 곡조의 종류인 줄 아는 이도 있다.
(계속)
2회/ 1926년 11월 26일 금요일
그런데 평조(平調)의 평(平)은 화평(和平)의 평이니 곱다는 뜻이고 조(調)는 목청이니 곧 평조(平調)는 고운 목청이요, 우조(羽調)는 청장(淸壯)한 조(調)니 곧 우렁찬 목청이요, 계면조(界面調)는 애원(哀怨)한 조(調)니 곧 처량한 목청이다. 그러므로 같은 가사(歌詞)를 가지고도 평조로나 우조로나 계면조로 다 부를 수 있으며 무론 시조(時調)도 이런 목청으로 어느 것이든지 다 부를 수 있거니와 초이삼중대엽(初二三中大葉), 초이삼삭대엽(初二三數大葉)…… 들은 가사에만 부르는 곡조요 지금 시조에서는 부르지 아니 한다. 그러나 『가곡원류』에 쓰인 노래들은 가사의 곡조로두 부르며 시조의 곡조로도 부른다. 그 예를 들어 표(表)하면
<시조>
초장 / 간밤에 부든 바람 만정도화 다 지것다
중장 /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고야
종장 / 락환들 치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가사>
초장/ 간밤에 부든 바람
2장/ 만정도화 다 지것다
3장/ 아이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고야
4장/ 락환들
5장/ 치 아니랴 쓸어 무삼하리오
이 표와 같이 시조의 초중종 3장은 가사로는 5장으로 나눠6) 어느 것이든지 다 부르나니 따라서 시조는 가사의 한 종류임을 알겠다. 그런데 시조의 종류는 알기 쉽게 형식으로 보아 나누면 평시조, 엇시조(於叱), 사설시조(辭說時調) 세 가지가 있다.
1) 평시조는 자수(字數)가 어떠한 범위까지는 제한이 있고 어조(語調)는 평정(平正)한 것이니 예를 들면
집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안즈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ㅣㄹ망정 업다 말고 내어라
2) 엇시조는 자수가 초중종 3장의 어느 일부분만 제한이 없고 어조는 좀 변조(變調)로 된 것이니 예를 들면
약산동대(藥山東臺) 여즐어진 바회 틈에 왜척촉(倭躑躅)7) 가튼 저 내 님이
내 눈에 덜뮙거든 남인들 지내보리 새만코 쥐것인 동산(東山)에 오조 간 듯 하여라
3) 사설시조는 자수가 초중종 3장이 다 제한이 없고 어조는 사설체(辭說體)로 된 것이니 예를 들면
모시를 이리저리 삼아 두루 삼고 감삼다가
가다가 한가운데 처지옵거든 호치단순(晧齒丹脣)8) 으로 흠며9) 잡아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두 마조 잡아 뱌뷔처 니으리라
우리도 사랑이 처지옵거든 저 모시가치 니으리라
이외에도 지름시조, 낙시조(樂時調) 들이 있으나 이것은 시조의 곡조의 종류다.
3회/ 1926년 11월 27일 토요일
3. 자수(字數)
자수는 종류에서 말한 것과 같이 평시조에만 어느 범위 안에서 일정한 제한이 있으니 평시조의 예만 알면 엇시조 사설시조는 따라 알 수가 있다.
지금 전하는 고시조(古時調) 천여 수(千餘 首) - 내가 얻어본 것만 - 를 가지고 자수를 조사해보면 초장 첫 구는 여섯 자로 아홉 자까지 끝구도 여섯 자로 아홉 자까지, 중장 첫구는 다섯 자로 여덟 자까지 끝구는 여섯 자로 아홉 자까지, 종장 첫구는 세 자 둘째 구는 다섯 자로 여덟 자까지 셋째 구는 네 자 혹은 다섯 자, 끝구는 세 자 혹은 네 자니, 이 범위 안에서는 형편(形便)을 따라 마음대로 자수를 취사(取捨)할 수가 있다. 다시 예를 들면
<평시조>
초장
첫구(6~9)
나비야 청산지,
끝구(6~9)
범나비 너도 가자,
중장
첫구(5~8)
가다가 저물거든,
끝구(6~9)
체 들어 자고 가자,
종장
첫구(3)
체서
둘째구(5~8)
푸대접하거던,
셋째구(4, 5)
니페서나
끝구(3, 4)
자고 가자,
이상을 보면 가장 적은 자수로는 전장(全章)의 총수(總數)가 38자, 가장 많은 자수로는 전장(全章)의 총수(總數)가 55자.
이 근래 신문 잡지에 새로 지어 발표하는 시조들을 보면 초중장까지도 대개 자수를 맞추되 종장에 이르러서는 종장 첫구를 석 자(字)10) 이상으로 하는 이도 있고, 둘째 구를 다섯 자 이내로 하는 이도 있고, 셋째 구를 네 자 이내 혹은 다섯 자 이상으로 하는 이도 있는 중(中)에도, 종장 둘째 구를 다섯 자 이내 곧 네 자로 하는 이가 많다. 만일 시조를 짓지 말고 자유시를 지으면 모르되 시조를 짓는다 하면 더구나 습자(習字)하는 것이면 아직 그대로 좇을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 근래 일본에서는 단가(短歌) 31자, 배구(俳句) 17자로 한두 자(字) 에누리를 더하는 신경향이 있다 하지마는 그만한 전통적(傳統的) 계승적(繼承的)의 수련(修練)도 없이 함세(歲)11) 로 호기적(好奇的) 변환(變換)을 취할 것은 아니다. 재(才)와 학(學)이 남보다 초월(超越)하게 되어 시(詩)의 법칙(法則)을 제 마음대로 지을 것 같으면 모르지마는 이 시조(時調) 한 형식을 빌어 쓰자면 그 법칙을 좇아야 할 것이다.
우에 말한 종장의 첫구 석 자 이상, 둘째 구 다섯 자 이내, 셋째 구 네 자 이내 · 다섯 자 이상은, 나의 본 고시조의 예에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최육당 찬시문독본(崔六堂 撰詩文讀本)에 적힌 고시조 가운데 정송강(鄭松江)의 작(作)인
내 마음 헐어내어 저 달을 맨들과저 구만리장천에 번듯이 걸려잇서
고운님 계신 곳에 비최여나 볼가 하노라
하는 것은 그 원본 『가곡원류』에는
고운님 계신 곳에 가 비최여나 보리라
하였고 또 실명씨(失名氏)의 작(作)인
가막위 칠하여 검으며 해오리 늙어 희냐 천성(天星) 흑백(黑白)은 녜부터 잇건마는
어타 날 본 님은 검다 희다 하나니
하는 것은 『가곡원류』에는
어타 날 보신 님은 검다 희다 하나니
라 하였다. 이외에도 이런 것이 몇 가지 있다. 아마 이것은 그때 인쇄(印刷)의 착오(錯誤)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것을 보고 새로 짓는 이들 가운데에는 효빈(效顰)12) 하다가 그렇게 되지나 않았는가 한다.
그리고 또 종장 끝구는 흔히 쓰지 않고 마는 이가 많으나 시조를 부를 때는 종장 셋째 구까지에 그치지마는 시조를 지을 때에는 끝구까지 적어야만 그 의미(意味)가 다 표현될 것이다. 엇시조는 다만 종장 첫 구의 자수만 변치 않고 그 외의 다른 구 일부분만은 평시조의 자수 이상으로 지어도 좋을 것이요 사설시조는 다만 3장만 구별하고 각 구의 자수는 평시조 같은 제한이 없으니 시조는 다른 나라의 시형(詩形)- 자유시 아닌 따위-에 비하면 퍽 자유롭다. 퍽 평이(平易)하다.
4회/ 1926년 11월 28일 일요일
4. 구조(句調)
구조(句調)는 구(句)의 조격(調格)을 말함이니 다시 말하면 언어의 음수(音數)가 모여 각기 조격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여 몇 음수가 모여 한 조격을 이룬 것이 한 구조(句調)가 되는 이유는 알 수 없이 다만 습관적 본능적으로 그걸 의식할 뿐이다. 그래서 구조(句調)의 좋고 낮음을 따라 그만큼 그 노래도 좋고 낫게 됨을 안다. 그러나 좋은 구조(句調)의 노래라도 그 구조(句調) 된 대로 부르지 아니하면 아니 좋을 뿐 아니라 그 노래의 기분(氣分)도 아니 난다. 가령 “자러가는 저가막이몃나치 다지나거니”를 “자러가는저 가막이몃나치다지나거니” 하거나 “날 그릴님이 한내게는업건마는”이라 하면 구조(句調)도 좋지 못하고 혹은 그 의의(意義)도 잘 모르기 쉬울 것이다.
그런데 시조의 구조(句調)를 찾아보면 초장 첫구에는 6자구(句)의 2/4조 3/3조, 7자구(句)의 3/4조 2/5조, 8자구(句)의 3/5조 4/4조, 끝구에는 6자구(句)의 2/4조 3/3조, 7자구(句)의 3/4조, 8자구(句)의 4/4조, 9자구(句)의 4/5조.
중장 첫구에는 5자구(句)의 2/3조, 6자구(句)의 3/3조 2/4조13) 2/5조, 8자구(句)의 3/5조 4/4조, 끝구에는 6자구(句)의 2/4조 3/3조, 7자구(句)의 3/4조 4/3조, 8자구(句)의 4/4조 3/5조, 9자구의 5/4조 4/5조 3/6조.
종장 첫구에는 3자구(句), 둘째 구에는 5자구(句)의 2/3조 3/2조, 6자구(句)의 2/4조 3/3조, 7자구(句)의 3/4조, 8자구(句)의 3/5조, 셋째 구에는 4자구(句) 5자구(句), 끝구에는 3자구(句) 4자구(句) 들이 있다.
초장
가막위싸호는골에 ― 8자(3/5조)
백로야가지마라 ― 7자(3/4조)
중장
성낸가막위 ― 5자(2/3조)
힌비츨새오나니 ―7자(3/4조)
종장
창랑(滄浪)에 ― 3자
조히 씻은 몸을 ― 6자(2/4조)
더레일가 ― 4자
하노라 ― 3자
이것은 그 일례다. 이상의 것을 보아도 가장 많이 쓰인 것이 7자구(句) - 2/5조 3/4조 -, 8자구(句) - 3/5조 4/4조- 다. 또한 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원래 습관적으로 자연어세(自然語勢)가 이러하여 잘 어울린 것이다.
그러고 또 일래(日來)의 역사와 습관을 따라 언어의 성질(性質)과 종류가 얼마큼 변화(變化)하고, 변화함을 따라 그 언어로 된 시가의 구조(句調)도 서로 다르게 된 것이니 그 다른 것을 대별(大別)하여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나 결식구조(訣式句調)라 하였다.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는 조선어의 근본미(根本美)를 나타내는 순조선어조(純朝鮮語調)로 된 구조(句調)를 이름이니 순조선어(純朝鮮語)로나 혹은 조선화(朝鮮化)한 외국어(外國語) - 한문(漢文)과 기타 - 를 명사(名詞)만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5회/ 1926년 11월 30일 화요일(신문 좌측 상단 찢겨져 내용 누락 부분 있음)
-『가람문선』(1966년 신구문화사)에 「시조란 무엇인고」는 전문이 수록되어 있지 않고 「시조와 그 연구」라는 제목으로 내용이 다시 조정되어 있음. 「시조는 혁신하자」는 수록되어 있음. 군데군데 예문이 있으므로 「시조란 무엇인고」의 누락 부분은 『가람문선』(1966년 신구문화사)에서 예문 일부를 보충함. 보충부분은 다른 서체(굴림체)로 표기하여 구분하고 각주에 논문의 제목을 밝혀 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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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락□
이야 걸어볼 줄 잇스랴
이 따위들이니 조선민요체에서 많이 우러난 것이다.
조선식구조(朝鮮式句調)는 조선어(朝鮮語)로 주체(主體)를 □고 얼마큼 한문식구조(漢文式句調)를 섞어 지은 것이니 이를테면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은 삼경(三更)인데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裏)벽해수(碧海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리
□□□
설월(雪月)이 만정(滿庭)한데 바람아 부지 마라
예리성(曳履聲) 아닌 줄은 판연(判然)히 알건마는
그립고 아쉬운 마음에 행혀 긘가 하노라
□□□ 곧 한시(漢詩)나 한(漢) □□□ 것이니 □□□
□□□ 자개자폐(自開自閉) □□□
□□□ 예리성(曳履聲)만
□□□(□望)하니
괴점창대(愧漸蒼大)하여라
백구(白鷗)는 편편대동강상비(片片大同江上飛)요
장송(長松)은 낙락청류벽상취(落落淸流壁上翠)라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点点山)에 석양은 빗겻는데 장성일면(長城一面)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에 일엽어정(一葉漁艇)을 흘리 저어
대취(大醉)코 재기수파(載妓隨波)하야 금수능라(錦繡綾羅)에 임거래(任去來)를 하리라
이 따위들이니 옛날 유교와 한문을 숭상하던 시대에 자기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온통 남의 것을 들었다 겨우 시조의 형식에 맞추어 놓을 뿐이다.
5. 음운(音韻)
시는 사람의 사상(思想) 감정(感情) 음악적(音樂的)으로 표백(表白)한 것이라 하면 시조(時調)도 시(詩)이면 시(詩)일사록 운율(韻律)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운율이란 무엇인가. 대개 말하자면 동일한 음(音)이나 유사한 음(音)이나 또는 다른 음(音)이 서로 조화되어 율격(律格) 있는 한 형식미(形式美)를 나타낸 것을 이름이니 이건 곧 일반적(一般的)이 아니고 특수적(特殊的)인 형식음(形式音)으로 보통 시에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운율의 어떠함은 그 음(音)의 성질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는 곧 운율의 기본(基本) 되는 음(音)의 장단(長短), 강약(强弱)을 따라 언의(言意), 언세(言勢), 어취(語趣)가 서로 다르게 되나니, 가령 밤(夜)과 밤(栗)과는 소리는 같아도 밤을 길게 부르면 먹는 밤(栗)이 되고 짧게 부르면 자는 밤(夜)이 되어 뜻은 다르며 머리(首)와 대가리와는 뜻은 같아도 머리는 약(弱)한 소리요 대가리는 강(强)한 소린데 전자(前者)는 전아(典雅)한 맛이 있고 후자(後者)는 비속(鄙俗)한 맛이 있어 소리는 다르다.
그런데 훈민정음(訓民正音)에는 모든 어음(語音)을 거상평입(去上平入)의 사성(四聲)으로 낫다.14) 거성(巨聲)은 가장 높은 소리라 하며 한 점(點)을 좌편(左便)에 더하여 표(表)하고, 상성(上聲)은 처음이 나찹고 내종(乃終)이 높은 소리라 하여 두 점을 더하여 표하고, 평성(平聲)은 가장 나차운 소리라 하여 표하지 아니하고, 입성(入聲)은 빨리 끝닿는15) 소리라 하여 한 점을 더하여 표하였는데 그 식(式)으로 표하여 적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16) 의 일장(一章)을 참고로 들면
불휘기푼 남 매 아니 뮐 곳됴코 여름하나니17)
이것은 한어(漢語)에 쓰이는18) 사성(四聲)을 설명하여 놓고 우리말에 응용(應用)하여 음(音)의 장단(長短)을 표함에 지나지 아니한다.
6회/ 1926년 12월 1일 수요일
위에 음의 장단(長短)의 일례를 들었으나 이 문제는 아직 유안(留案)하여 두고 다만 강약의 음도(音度)로만 보아 강음(强音), 격음(激音), 약음(弱音), 평음(平音), 네 명칭으로 하여 자음(子音)의 ㄱㄴㄷㅅ유ㅎ 들을 강음, ㅊㅕ19) ㅌㅍ 들을 격음, ㄴ 들을 약음, 모음(母音)의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ㅁㄹ 들을 평음이라 하자.
그 이유는 “안(抱)”과 “심(植)”에 “어, 으니” 토를 달면 그대로 소리가 나가가도 “고, 다” 토들을 만나면 “, ”의 된소리와 같이 나니 “안”의 ㄴ과 “심”의 ㅁ들의 자체가 다른 자음의 ㄱ ㄷ……만큼 강하지 못한 것이라 하여 약음이라 하며, ㄱ ㄷ……들은 “고, 다” 토들을 만나도 “고, 다”는 그대로 나니, 가령 “먹고, 먹다”는 “먹고, 먹다”로 “잡고, 잡다”는 “잡고, 잡다”로일 뿐이라 이 자음들은 자체가 강한 것이라 하여 강음이라 하며, 또 ㄹ은 ㄴ ㅁ보다 불규칙하기는 하지마는 가령 “알이”는 “알리”로 “알제”는 “알”, “알바”는 “알”, “알가”는 “알”로 소리를 내니 이것도 ㄴ ㅁ과 유사성을 가졌다 하여 여기에 붙이며, ㄷ ㅋ ㅌ ㅍ 들은 ㅈ ㄱ ㄷ ㅂ 들보다도 강한 소리임은 음리(音理)로 좇아20) 알지니 이는 격음이라 하여, ㅏㅑㅗㅛ…… 들은 각자 음(各子 音)의 공통성을 가졌으므로 평형(平衡)의 의의(意義)로 하여 이는 평음이라 하였다. 그러면 이 사음(四音)으로 그 예를 들어보자.
서리 찬/ 새벽바람에/ 울고 가는/ 저기 럭 아/
강약 반격/ 강강강약평/ 약강 강약/ 강강 반약 평/
추야장/ 깁 푼 밤 에/ 님의 방에/ 들 엇다가
강평강/ 강 반강 반강 평/ 강평 강평/ 반강 강강강
이 예를 보면 이 강, 약, 평 삼음(三音)이 어떠한 간격을 두고 서로 향응(響應)하여 좋은 음운(音韻)을 이뤘다.
그러면 운(韻)이란 것도 동일음(同一音)이나 유사음(類似音)이 어떠한 간격(間隔)을 두고 향응한 것이니, 시의 율격으로는 균일(均一)한 간격을 둔 것이 보통이지마는 운(韻)이란 꼭 일정한 간격을 둔 것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시의 압운(押韻)이나 첩음법(疊音法) 따위를 시조에서도 볼 수 있으니
이런들 엇하리 저런들 엇하리
만수산(萬壽山) 드렁츩이 얽어진들 어하리
우리도 이가티 얽어저 백년지 하리라 – 이조(李朝) 태종대왕(太宗大王)
녹이상제(綠駬霜蹄) 살지게 먹여 시내물에 싯겨두고
용천(龍泉) 설악(雪鍔)을 들게 갈아 들어메고
장부(丈夫)의 위국충절(爲國忠節)을 세워볼가 하노라 – 고려(高麗) 최영(崔瑩)장군(將軍)
에 “리” “고” 들은 압운이고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一百番) 고처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 되고 넉이라도 잇고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줄이 잇스랴 – 고려(高麗) 정포은(鄭圃隱)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峯)을 아는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白鷗)야 헌사하랴 못 미들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가 하노라 – 이조(李朝) 이퇴계(李退溪)
에 “죽어” “백구” “도화” 들은 첩음범운을 쓴 것이다. 그러나 억지로 운을 달랴고 애쓸 것이 아니다. 만일 언문풍월(諺文風月)과 같이 압운을 한 대도 귀할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조선어의 자재(自在)한 성향(聲響)의 근본미(根本美)를 잃기 쉽다.
기를 외올 두올 실과 골무 네 단골
사랑홉다 그 재조 듯 박이진솔 – 언문풍월, 침(針), 김금남(金琴南)
이 언문풍월은 그다지 나쁘지 않지마는 부자유 부자연한 운을 다노라고 애쓴 자취가 보이고 한시 그것과 같이 토를 달아야만 그 의미(意味)가 분명할 것이다.
7회/ 1926년 12월 2일 목요일
6. 체제(體制)
조선 자래(自來)의 가객(歌客)들이 노래에만 쓰는 말이 따로 있으니 그 일례를 들어 말하면 노래의 초장을 첫치 중장을 둘재치 종창을 셋재치라 하며 구(句)를 마루라 하여 한마루 두마루 세마루…… 이렇게 부르는데 시조의 초중종 3장으로 된 것은 조선 자래의 가사(歌詞)를 대표하였을 것이다. 워낙 조선 자래의 가사는 3장식으로 된 것이 많은데 시조만큼 합리(合理)한 형식(形式)으로서 발달되고 일반적으로 전승되는 문학적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시조는 단어가 모여 한 구가 되고 두 구식(句式) 모여 초장, 중장이 되고 네 구(句)가 모여 종장이 되나니, 초중종의 장이란 말은 한문(漢文)에서 이르는 자(字)가 모여 구(句), 구가 모여 절(節) - 단(段) - , 절이 모여 장(章)이 된다는 의미와 다르다.
그리고 초중종 3장이 모여 한 수(首) - 마리 - 가 되나니 이 수를 또는 장이라고도 하여 자래로 일컬었다. 그러면 초중종의 장과 혼동하기 쉬울 듯하니 초중종의 장은 반드시 장 한 자(字)만 가지고 일컫지 않고 초중종의 어느 자(字)든지 위에부터 한 명사를 만들어 조선음악 가사에만 쓰는 한 특수어(特殊語)다.
이상을 종합하여 보아도 알려니와 시조의 형식은 한시에서나 어데서든지 모방하여 온 것이 아니다. 조선의 국유(國有)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고려자기 제조법과 같이 뒤에 전하지 못하면 낡은 휴지(休紙)만 되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것이 아닌가.
이상의 종류(種類), 자수(字數), 구조(句調), 음운(音韻), 체제(體制) 등에 맞추는 것만이 상승(上乘)의 도(道)가 아니다. 산은 산만큼 바다는 바다만큼 그 질(質)과 양(量)이 노분21) 클 것이다. 아무리 짜야 우러날 것이 없으면 빈그릇만 남을 것이다. 인격과 학식도 산만큼 높고 바다만큼 커 그 피, 그 호흡(呼吸), 그 사상(思想)22) 감정(感情)에서 시도 나고 예술도 나야 한다.
7. 유래(由來)
일체(一切) 예술의 원시적 형식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든지 유사(有史)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하면 음악, 무도(舞蹈), 회화, 조각 들과 같이 사람의 사상 감정을 언어로 표출하는 일형식(一形式)인 시가도 무론 문자도 없을 시대부터 존재하여 문자의 발명된 후로 더욱 발달하여 왔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원을 두 가지로 말하여 하나는 최초(最初) 인류(人類)의 종족(種族)이 각기 단부생활(團部生活)을 할 제, 외래의 적을 방비(防備)하기 위하여 집단적 운동을 더욱 민속(敏速)케 하고저 박자를 맞추어 부르던 음성(音聲)이 점점 발달된 것이라는 공리적기원설(公利的起原說)과, 또 하나는 인류의 희로애락(喜怒哀樂) 등 감정이 일상생활에 자연히 발로(發露)됨을 인간의 심미적(審美的) 요구로 일종 쾌락을 얻기 위하여 영탄찬송(咏嘆讚頌)한 것이라는 향락적기원설(享樂的起原說)이 있으니, 전자(前者)는 집단적 훈련의 필요에서 생긴 것이요 후자(後者)는 감정 발로의 자연에서 생긴 것이나 전자 후자가 그 나라 그 민족의 생활상 시대상을 따라 서로 다를 것이다. 기후가 온난(溫暖)하고 물산(物産)이 풍부한 지역에서 편안히 거주한 민족들은 후자에 속하고 기후가 낫고23) 물산이 적은 지역에서 살아 전투나 힘쓰던 민족들은 전자에 속할 것이다.
8회/ 1926년 12월 3일 금요일
그러면 우리 조선인은 전자(前者)보다도 후자(後者)에 속한 것으로 최초부터 노래24) 곧 시가를 가장 좋아하는 민족이다. 노래라는 말부터 놀다는 말과 동원이의(同源異意)인 것을 보아도 노래부르기를 좋아하고 놀기를 즐기던 민족임을 알 것이다. 이뿐 아니라 고래(古來) 사서(史書)에 적힌 것을 보아도 부여(扶餘), 삼한(三韓), 삼국(三國) 이래(以來)로 어느 시대든지 노래를 얼마나 즐기고 숭상하였던 민족인가를 알 것이다.
본래 시조가 노래의 일종임은 위에 말하였거니와 과연 시조도 노래와 같이 그 시작은 썩 오랠 것이다. 적어도 천여 년 전부터 전래한 것으로 안다. 자래(自來)의 노래들을 보면 시조와 같은 3장식으로 많이 되었다는 말도 이미 한 것과 같이, 이 3장식은 조선인의 사상 감정을 발표하는 데 가장 적의(適宜)한 형식이어서 그런지 노래도 그렇고 시조는 더구나 그 대표로 가장 발달한 것이라 하겠다. 3장식인 노래의 예를 들어보자.
동경(東京) 밝은 달 알에 새도록 노니다가
들어 내 자리를 보니 가랄이 네히로새라
아으 둘은 내해어니와 둘흔 뉘해어니오
- 신라(新羅) 향가(鄕歌)의 처용가(處容歌) 일절(一節), 악학궤범(樂學軌範)에서
호미도 날이언마르는 낫가치 들리도 업스니이다
아버이도 어이신마르는 어머님가티 괴실이 업시다
위덩더둥성 아소님하 어머님가치 괴실이업시다 – 사모곡(思母曲)
살아리랏다 살아리랏다 드메에 살아리랏다
머루랑 달애랑 먹고 드메에 살아리랏다 – 청산별곡(靑山別曲)
충영봉에 날고 사자강에 달 진다
저 날 서 들에 나와 저 달 저서 집에 돌아간다
얼얼널널 상사뒤 어여뒤여 상사뒤 – 백제(百濟)의 산유화가(山有花歌) 일절(一節)
저 건너 갈모봉에 비무더들온다
우장을 두르고 깃음을 맬거나
얼얼널널 상사뒤 어여뒤여 상사뒤 –육자(六字)박이의 일절(一節)
이 따위 예는 이외에도 많거니와 신라 진성여주(眞聖女主) 2년(1037년 전)에 각우위홍(角于魏弘)과 대구화상(大矩和尙)을 명하여 수집한 향가인 삼대목(三代目)이란 책이 다행히 지금까지 전했더라면 거기서 아주 시조의 형식을 얻어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시조가 상당히 발달하였을 것인데 불교와 유학이 성행(盛行)하여 한문만 숭상함으로 많이 그 영향을 받아 그다지 왕성하든 못하였다. 그러나 고려말엽의 정포은(鄭圃隱), 원전곡(元轉谷), 이목은(李牧隱) 들의 작풍(作風)을 보면 그것이 아마도 숨은 세력(勢力)을 가지고 장구(長久)한 전통이 있었는 것 같다. 그가 다 유명한 한학자(漢學者)로서 이런 국시(國詩)의 작풍이 그만큼 성숙하게 되었을 때에는 벌써 그때가 혁창(革創)의 시기는 아닐 것이다.
그뒤 이조(李朝)에 들어서는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시조가 퍽 성행하였다. 그야말로 양반의 어학(語學), 풍월(風月), 찰한(札翰), 시조(時調) 등을 조금이라도 모른다면 그 세상에 행세(行世)를 못할 만큼 되었다.
그러므로 이조 중엽 전에는 산림학자(山林學者)들도 시조(時調) 팔장(八章)이나 얌전히 짓고 부르던 모양이더니 이것도 공자왈맹자왈(孔子曰孟子曰)이 다 잊었는지 이 근래 산림학자(山林學者)들은 시조(時調)란 이름조차 모를 이가 많을 것이다.
9회/ 1926년 12월 4일 토요일
그런데 자래(自來)로 시조의 작가는 잘 알 수 없다. 지금 누구 누구의 작(作)이 아니라 전(傳)함은 책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르니 그중에 분명히 아는 몇 사람의 것 외에는 꼭 믿을 수 없다. 가장 걸작(傑作)이라 할 만한 것은 흔히 무명작가(無名作家)의 것이다. 혹은 누구의 작이란 걸작도 실로 무명작가의 것인지 모른다. 일생에 뜻을 얻지 못하고 그 신세(身世)를 주사가도(酒肆歌道)에 잠처25) 다만 화조풍월(花鳥風月)로 벗 삼아 그 늣기움26) 을 읊조리던 무명작가의 것일 것이다. 이 무명작가야말로 무명시인(無名詩人)일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시조를 짓기 위하여 진 것이 아니고 부르는 김에 지어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즉흥적(卽興的)으로 지어본 것이다. 만일 짓기 위하여 진 이가 있다 하면 그는 소수(小數)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은 시조의 내용은 각각 시대의 사상감정(思想感情)을 영탄(咏嘆)한 것이므로 지금 보기에는 단조(單調)하고 고루(固陋)하고 빈약(貧弱)한 것이 많지마는 그렇다고 모두 나무라고 타기(唾棄)할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나마 그만한 형식(形式)이나마 우리 문단(文壇)에 남은 것만 다행으로 알고 자세히 읽어보고 깊이 연구하여 취(取)할 것은 취하며 버릴 것은 버릴 뿐이다.
8. 낭음법(朗吟法)
자래(自來)의 시조는 짓는 이보다도 부르는 것이 성행하였다 함은 이미 말한 바이어니와 이른바 평조(平調)니 우조(羽調)니 계면(界面)청이니 락이니 지름이니 또는 지방을 따라 영남(嶺南)에는 령판, 령판에도 원령판 반령판이니, 호서(湖西)에는 중얼잇제 내포ㅅ제, 내포ㅅ제에도 웃내포ㅅ제 알에내포ㅅ제27) 니 하여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런 곡조의 종류가 많이 있음을 보아도 과연 얼마나 성행하였든 것임을 알겠다.
그리고 또한 장구한 동안에 전통적 계승적으로 구전심수(口傳心授)하여 오던 것으로 가사(歌詞), 시조(時調), 속요(俗謠) 이렇게 일컬어 속요보다 훨썩 고상(高尙)하게 쳤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사보다도 어렵다 하여 자래로 노래의 명창은 있어도 시조의 명창은 없다 하며 여간 공정(工程)을 쌓아서는 잘 부르지 못하고 남의 부르는 것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하며, 일생을 불러도 묘리(妙理)를 얻지 못하는 일가 많다 한다.
시조도 그렇거니와 한시(漢詩)도 숭상하던 시대에는, 소위 시창(詩唱)이니 음영(吟詠)이니 하여 퍽 성행하였고 더구나 공령시(功令詩) 따위의 창법은 특수히 발달하여 흔히 가사에도 일컫는 “관산융마(關山戎馬)”는 그중에 유명한 거이다. 이는 일종 성향미(聲響美)를 가진 것이다. 진실로 시는 성향이 좋아야 하나니 문(文)은 보는 것 읽는 것이라 하면 시(詩)는 읊조리는 것 노래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자래의 시조창법은 좀처럼 사람마다 배우고 익혀 부를 수 없으니 그것은 특수한 몇몇 사람에게 맡겨두고 일반적으로는 자기의 마음대로 시조(時調)의 구사(句詞)나 띄워28) 불러볼지니 너무 큰소리도 지르지 말고 내기 쉬운 예삿소리로 하여 오랫동안 부르고 또 부르면 저절로 일가의 독특한 창법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마치 봄 동산에 앉아 보구미29) 옆에 놓고 나물 캐며 콧노래30) 하는 처녀의 소리와 같이 가을날 쌀랑쌀랑 부는 바람결에 속살거리는 나뭇잎31) 소리와도 같이 보드라운 아름다운 소리로 아침32) 저녁 생각나는 대로 몇몇 수(首)를 읊조려보면 스스로 속념(俗念)을 버리고 진계(塵界)를 떠나서 무상(無常)한 딴세계로 드는 듯한 느낌33) 을 얻을 것이다.
10회/ 1926년 12월 5일 일요일
시조를 짓자면 그 형식(形式)만 알아가지고 곧 기교(技巧)만 가지고는 겨우 문자유희(文字遊戱)에 지나지 못하며 본질적(本質的) 가치적(價値的)인 훌륭한 문예품(文藝品)은 이루기 어려우며 다만 그 혈맥(血脈)도 생명(生命)도 없는 한 조박(糟粕)에 구니(拘泥)할 뿐일 것이다. 이 근래 신문예(新文藝)의 경향으로는 형식(形式)보다 내용(內容), 낭만(浪漫)보다 현실(現實), 인공(人工)보다 자연(自然)을, 중히 여기고 힘쓴다. 그런즉 아주 형식은 아니 보아도 좋을까. 내용만 풍부하면 형식은 아무튼지 좋을까. 그러나 그 내용을 풍부케, 표백(表白)하자면 무론 그 질서(秩序), 연락(聯絡), 통일(統一), 변화(變化), 조응(照應), 반복(反復), 함축(含蓄) 등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만일 기교가 부족하다면 아무리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라도 과연 여실(如實)케 표백할 수 없을 것이고, 비록 자기는 여실케 표백하였다는 셈이라도 흔히 그것은 지리(支離), 난삽(難澁), 애매(曖昧), 몽롱(朦朧), 저어(齟齬)하며 일반독자가 좀처럼 알아보기 어려울지니 곧 내용을 풍부케 하자도 그만한 기교도 있어야 할 것이다.
이에 기교를 늘이기 위하여 수사법(修辭法) 가운데 고시조에서 보이는 것 몇몇 가지를 뽑아 좌(左)에 실례(實例)를 들어 말한다.
1) 직유법(直喩法)
직유법은 비유법(譬喩法) 가운데에 형식이 가장 솔직하고 가장 이해키 쉬운 것이니 곧 나타내는 한 사물(事物)을 다른 사물에 비유(譬喩)하여 유의(喩義)와 본의(本意)와를 분명(分明)히 구별(區別)하여 같이 들어 말하는 것인데 “같다” “비슷하다” 따위의 말을 붙인 것도 있고 아니 붙인 것도 있다.
천만리(千萬里)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희옵고
내 마음 둘 데 업서 내ㅅ가에 안젓스니
저 물도 날과 갓하여 울어 밤을 녜는고야
이 시조의 종장에 “저 물도 날과 갓하여” 따위는 전자(前者)의 예(例)다. 이 시조는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王邦衍)이 이조(李朝) 단종대왕(端宗大王)을 영월(寧越)- 강원도- 서강(西江) 청냉포(淸冷浦)에서 모시고 있을 때 밤에 곡탄안상(曲灘岸上)에 앉아 지은 것이다. 여북이 슯어워야34) 이렇게 읊조렸겠느냐. 냇물 여울물35) 조차 또한 슯어움을 못 이겨 밤새도록 오열(嗚咽)한 것처럼 여긴 것이다.
녹양이 천만사ᅟᅵᆫ들 가는 춘풍(春風)을 매어두며
탐화봉접(探花蜂蝶)인들 지는 것을 어이하리
아모리 사랑이 중한들 가는 님을 어이하리
이 시조는 “같다”의 말도 아니 쓴 따위니 곧 후자(後者)의 예(例)다. 이것은 이조(李朝) 광해조(光海朝) 시인 이원익(李元翼)의 작(作)이다. 아마 광해주(光海主)의 난정(亂政)을 바로잡지 못하여 인조(仁祖)의 반정(反正)이 있게 됨을 늣거워36) 지은 것 같다.
이 직유법을 쓴 예가 이밖에도 많이 있으나 일일이 들지 않고 다만 총괄(總括)하여 말하면 비유(比喩)는 너무 많이 쓰지 말 것이니 너무 많이 쓰면 보기가 슬케37) 된다. 또는 비유를 써도 마땅하게 쓸 것이니 마땅하게 못 쓰면 차라리 아니 씀만 못하다. 과연 비유를 쓰기는 추상적(抽象的)인 것을 구체적(具體的)으로 되게, 막연(漠然)한 것을 분명(分明)하게 하여 본의(本意)를 높이기도 하고 혹은 나채기38) 도 하는 것이다.
2) 은유법(隱喩法)
은유법은 직유법과 같이 “같다” “비슷하다” 따위의 말을 아니 쓰고 비유(譬喩)의 비유(譬喩)된 바를 매몰(埋沒)하여 유의(喩意)와 본의(本意)와의 구별(區別)까지 전혀 숨기고 두 사건을 혼합(混合)하여 하나로 만들어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가슴에 칼 품은 놈” “시간은 금이다” 하는 따위를 다시 풀어 말하면 “사람을 해치랴는 칼 같은 마음을 가진 놈” “시간은 금같이 귀중(貴重)하다”는 따위니 곧 직유법을 줄여논 것이다.
송풍(松風)은 검은고요 두견성(杜鵑聲) 놀애로다
지팽이 던저두고 바회에 안젓스니
석양(夕陽)이 서산(西山)을 넘어 지는 줄도 몰래라
이 시조의 초장은 은유법을 쓴 것이니 만일 “송풍은 검은고와 같고” “두견성은 놀애와 같다” 하면 어세(語勢)가 늘어져 아니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용례(用例)가 그리 많지 못하다.
11회/ 1926년 12월 6일 월요일
3) 풍유법(諷喩法)
풍유법39) 은 곧 우언법(寓言法)이니 표면상(表面上)에는 본의(本意)를 전혀 숨기고 다만 유의(喩意)만 들어 유의(喩意)를 통하여 본의(本意)를 짐작하는 바에 취미가 있는 것인데, 곧 인사상(人事上) 풍자권해(諷刺勸海)40) 의 의(意)를 가작물(假作物) 무생물(無生物) 기타 열등물(劣等物)의 동작에서부터 비유(比喩)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만 유사(類似)한 사실(事實)을 들어 말하는 것과 또 하나는 아주 사실도 없을 것을 가작(假作)하여 본의(本意)에 부치는41) 것이다. 첫째의 예를 들자면
가막위 싸호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성낸 가막위 힌비츨 새오나니
창파(滄波)에 조히 씻은 몸을 더레일가 하노라
이 시조는 정포은(鄭圃隱)의 모친 이씨(李氏)의 작(作)인데 고려말세(高麗末世)를 당(當)한 지라 왕실은 쇠약하며 인심은 흉흉(洶洶)하여 서로 덕의(德義)는 전중(專重)히 여기지 않고 명리(名利)만 다투어 시기(猜忌), 증오(憎惡) 살해(殺害)코저 하는 때라 처세(處世)하기가 칼날 우에 선 것 같으며 매우 조심을 아니 하면 아니 되겠다는 뜻으로 명리(名利)나 서로 다투는 무리를 가막위라 말하고 조신(操身)이 조촐한 이를 백로로 말한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중놈은 승(僧)년의 머리털을 손에 츤츤 휘감아 쥐고 승(僧)년은 중놈의 상토를 풀처잡고
이외고저외다 작자공이 첫는데 뭇소경들은 굿을 보는구나
그겨테 귀먹은 벙어리들도 외다올타하더라
이는 사실(事實)도 허무(虛無)한 것을 가지고 인간의 헛된 일 하는 것을 풍자한 말이다. 이따위 예밖에 다른 예는 얻어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만한 것이라도 실상 그 이면(裏面)을 알고 보면 꽤 자미(滋味)가 있을 것이다.
4) 활유법(活喩法)
활유법은 무생물에게 생(生)을 부여(賦與)하고 혹은 무생물, 하등동물급무형(下等動物及無形)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을 사람 비슷하게 함을 이름이니 또는 의인법(擬人法)이라고도 한다. 다시 말하면 무정물(無情物)을 유정물(有情物)과 같이 대우(待遇)함과 무생물을 생물같이 활동케 함을 이름이다.
삼남계 건에 매어 님과 둘이 어울니
사랑이 줄로 올라 가지마다 매첫세라
저님아 구르지 마라 어질가 하노라
해지고 돗는 달이 너와 기약(期約) 두엇든가
합리(閤裏)에 자든 치 향기(香氣) 노하 맛는고야
내 어 매월(梅月)이 벗되는 줄 몰랏는가 하노라 – 영매(咏梅), 안민영(安玟英)
간밤에 우든 여흘 슯피 울어 지내것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드라
저 물아 거슬러 흐르과저 나도 울어 보내리라
이 시조들 중에 “사랑이 줄로 올라 가지마다 매첫세라” 따위는 무생물을 생물과 같이 활동케 한 것이요, 그 다음에 “매월(梅月)”과 “여흘” 따위는 무정물을 유정물과 같이 대우한 것이다. 이 활유법은 이외에도 출례(出例)가 많거니와 워낙 이 법(法)은 인간의 성정(性情)에 기인(基因)한 수사법으로 시가(詩歌)는 무론이고 소설 기타 일반 문예에 퍽 많이 쓰이는 것이다.
12회/ 1926년 12월 7일 화요일(5면)
5) 돈호법(頓呼法)
돈호법은 평서(平叙)의 어세(語勢)를 갑자기 변하여 현금(現今) 보이지 않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生)이 없는 것을 생(生)이 있는 것처럼 부르며 또는 지금껏 하던 말을 다른 화제(話題)로 변함을 이름이니 어떤 것은 의인법의 어구(語句)를 가진 것도 있다.
서산에 일모(日暮)하니 천지에 가히업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니 님 생각이 새로워라
두견(杜鵑)아 너는 누를 그려 밤새도록 우느니
이 시조의 종장이 곧 돈호법을 쓴 것이라는 것도 의인법과 같이 시조에 많이 쓰일 수 있는 것이다.
6) 과장법(誇張法)
과장법은 사물(事物)을 실상(實狀)보다도 과장하여 과도히 크게 하든지 과도히 작게 하든지 하여 말하는 것이니 자래(自來) 시가(詩歌) 연설(演說) 등에 가장 많이 써왔다. 한시(漢詩) 문사(文辭) 등의 웅혼장려(雄渾壯麗)하다고 일컫는 것에는 이 법을 쓴 것이 많이 있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42) ” “어목고태산(魚目高泰山)” “건곤일야부(乾坤日夜浮)” “촉산올아방출(蜀山兀阿房出)”이라는 이 따위들이 곧 그것이다. 우리 시조에도
백두산(白頭山)에 노피 안저 압뒤ㅅ들 굽어보니
남북(南北) 만리(萬里)에 내 생각 새로워라
간 님의 정령(精靈) 게시면 눈물질가 하노라
하는 것은 얼마큼 이 법을 쓴 것인데 다시 말하면 어느 엉터리를 가지고 엄청나게43) 하는 말이니 잘만 쓰면 시인의 특색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이다.
7) 점층법(漸層法)
점층법은 어구(語句) 사상(思想)이 점점 강하게 점점 크게 점점 높게 점점 깊게 하는 법이니
이몸이 죽어죽어 일백 번 고처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 되고 넉이라도 잇고 업고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잇스랴
라 하는 시조가 그 일례(一例)다.
8) 문답법(問答法)
문답법은 2인 이상의 사람으로 하여 서로 문답케 하는 법을 이름이다.
사랑이 어트냐 둥그드냐 모나드냐
기드냐 저르드냐 밟고 남아 자일느냐
하 그리 긴 줄은 모르되 간데를 몰래라
네 집이 어데메뇨 이 뫼 넘어 긴 강 우희
죽림(竹林) 푸르고 외사립 다닷는데
그 아페 백구(白鷗) 스니 게가 물어보시오
하는 따위니 이 법도 흔히 의인법과 병동(幷同)하는데 평서보다 곡절변화(曲折變化)가 많이 있어 매우 자미(滋味)스러운 것이다.
9) 열서법(列叙法)
열서법은 여러 가지 사물을 가지고 일괄(一括)치 아니하고 각각 산열(散列)하여 쓰는 법이니
청산(靑山)이 적요(寂寥)한데 미록(麋鹿)이 벗이로다
약초(藥草)에 맛들이니 세미(世味)를 니즐노라
석양(夕陽)에 낙대를 메고 나니 어흥(漁興) 겨워 하노라
하는 따위다. 이렇게 구어(句語)의 의의(意義)가 직접으로 연속(連續)한 것은 없어도 서로 조응(照應)하여 그 의의(意義)를 통일(統一)케 한 것이다.
13회/ 1926년 12월 8일 수요일
10) 연서법(連叙法)
연서법은 구어(句語)의 의의(意義)를 위아래 바투 연속(連續)케 한 것을 이름이니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귀암의 넉이 되어
추야장(秋夜長) 기픈 밤에 님의 방에 들엇다가
날 닛고 기피 든 잠을 워볼가 하노라
하는 따위다. 일반 문사(文辭)도 그렇거니와 시조에도 이 법이 가장 많이 쓰이나니 “어” “니” 따위의 조사(助詞)나 “고” “다가” 따위의 접속사를 구절(句節)44) 말미(末尾)에 붙여 쓰는 것이 보통이지마는 이 따위 토를 아니 쓰고라도 이 법을 쓴 것이 시가에는 더욱 묘(妙)하다. 예를 들면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ㅅ결이 자노매라
낙시 들이오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빗만 싯고 빈배 돌오 오노라
하는 것은 한시(漢詩)의 “천척사륜직하수(千尺絲綸直下垂), 일파자동만파수(一派自動萬派隨), 야정수한어불식(夜靜水寒魚不食), 만선공재월명귀(滿船空載月明歸)”를 역의(譯意)를 한 것이겠지마는 과연 묘하기는 묘하다.
11) 도장법(倒裝法)
도장법은 문법상 논리상의 보통의 순서를 전도(轉倒)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면 우리말에는 보통 주격(主格)이 앞에 있고 설명격(說明格)이 뒤에 있는 것을 전도(轉倒)하여 설명격이 앞에 주격이 뒤에 있게 함을 이름이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峯)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미들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ㅣ일가 하노라
이 시조의 “나와 백구” “도화”는 각기 구어(句語)의 주격으로 전도(轉倒)된 것이니 경우를 따라 이렇게 쓰는 것은 평범치 않은 구조(句調)를 이루게 함이 많으나 함부로 쓸 것은 못 된다.
12) 연쇄법(連鎖法)
연쇄법은 전구(前句)의 말어(末語)를 다시 다음구(句)의 첫머리에 두거나 동어(同語)를 전후(前後)에 배열(排列)하여 위아래 받아가거나 하여 매우 묘미(妙味) 있는 법이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古人) 못 보오니
고인은 못 보아도 녜든 길 아페 잇네
녜든 길 아페 잇거든 아니 녜고 어하리 – 이퇴계(李退溪)
이 시조는 이 법을 쓴 좋은 일례다. 이퇴계의 작(作)은 이런 예가 많다. 믿을만한 작자(作者)로는 이퇴계만큼 잘 짓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13) 반복법(反覆法)
반복법은 동일 어구(語句)를 반복하여 취미(趣味)를 높이는 것이니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한데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중(中)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하리라
하는 따위다.
14) 전절법(轉折法)
전절법은 말하던 그 뜻이 그치려 할 때45) 달리 말하여 돌리는 것을 이름이다.
삼동(三冬)에 뵈옷 입고 암혈(岩穴)에 눈비 마자
구름 볏누를 적이 업건마는
서산(西山)에 해 지다 하니 눈물겨워 하노라
하는 따위니, 하여 오던 말끝에 “마는” 토를 달아 쓰는데쓰기가리론이만콤46) 이 법을 쓴 예도 적지 아니하다.
14회/ 1926년 12월 9일 목요일
15) 대우법(對偶法)
대우법은 조(調)의 유사한 어구(語句)를 병렬(竝列)하여 병행(竝行)의 미(美), 대립(對立)의 미(美)를 이룬 것이다.
청산(靑山)은 어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르며
녹수(綠水)는 어하여 주야(晝夜)에 긋지 아니는고
우리도 긋지지 말아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되 농자(聾者)는 못 듯나니
백일(白日)이 중천(中天)하여도 고자(瞽者)는 못 보나니
우리도 이목총명남자(耳目聰明男子)ㅣ로되 농고(聾瞽)가티 하리라
하는 시조들의 초중장은 다 이 법을 쓴 것이다. 이 법은 한문에서 이른바 사육변려(四六騈儷47) )니 하여 미사여구(美辭麗句)를 탐하며 한갓 부화(浮華)의 풍(風)에 흐르던 시대(時代)도 기왕(己往)에 있었지마는 지금은 이런 형식(形式)에만 힘쓸 수 없다. 이런 형식보다도 내용을 더 풍부케 하여야 함은 더 이를 것도 없다.
그러나 풍부한 내용을 가지고라도 이런 수사법들을 아니 쓰느니보다 쓰면 쓰느니만큼 더 나을 것은 무론일지니 다만 여기에 구속은 받지 말고 쓸 수 있는 대로 쓰는 것이 아는 길로 가기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사상, 감정 등을 표백(表白)하기에 더욱 자유롭고 더욱 자연스럽게 되면 마침내 무기교(無技巧)의 기교(技巧)라는 수사법(修辭法)의 상승(上乘)에까지 이를 것이다.
16) 신운동(新運動)
자래(自來)의 시조는 위에 말함과 같이 작가라 할 만한 작가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 시조를 부르는 이, 혹은 여기의 얼마큼 취미를 가진 이들이 그 시대의 사상과 감정을 즉흥적으로나 맹목적(盲目的)으로 자래(自來)의 시조란 형식을 빌어 발표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선인에게는 부자유(不自由) 부자연(不自然)한 한시(漢詩)나 한문(漢文)만큼도 발달치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위압(威壓)을 받으면서도 지금껏 일선명맥(一線命脈)이 끊어지지 않고48) 전해옴은 생각할수록 요행(僥倖)하고 신기(神奇)한 일이다. 만일 이런 것도 없었더라면 자래(自來)의 조선문학(朝鮮文學)을 말하자면 무엇이 있었다 하리오.
그러나 우리는 도저(到底)히 이것만으로 우리 문단(文壇)에서 만족한 감정을 가질 수 없다. 무론 신시(新詩), 소설 등의 신문예운동(新文藝運動)도 있어야 하려니와 시조에 대한 신운동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신시대상(新詩代相), 조선인생활 사상 감정을 담기에 마땅한 그릇을 만들어놓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이 시대를 따라가는 필연(必然)한 이세(理勢)다. 양복(洋服)을 입고 학교 다니는 것이 머리 땋고 서당에 다니는 것보다 자기의 이익 행복인 줄 아는 이로야 이 시대를 역행(逆行)하고자 아니 할 것이다.
그러나 신시(新詩)를 아니 짓고 시조를 짓는다고 시대의 역행으로 보는 이가 있다 하면 그는 착각이다. 오해다. 만일 시조에 대하여 심오(深奧)한 조예(造詣)가 있고 명석(明晰)한 감상(鑑賞)을 가지고 또한 다른 나라의 모든 시가에까지 비교라도 하여 보고 그 장점과 단점을 발견하고 설폐구폐(說弊救弊)를 한다 하면 과연 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15회/ 1926년 12월 10일 금요일
그러나 고만 수박의 거죽만 핥아보고 그 속이 달겠다 아니 달겠다 함은 믿을 수 없는 언론(言論)이요 또한 하나를 안다고 둘이나 셋까지 안다 함은 도리어 큰 해독(害毒)이 있을 것이다. 가성소다를 사탕(砂糖)덩이로 알고 집어먹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사물이든지 그 성질(性質)과 여하(如何)를 정확히 조사 연구하여 알고야 말 것이다. 이 시조에 대하여도 그렇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나는 시조에 대하여 무엇을 안다 말한다 하리오. 나의 아는 것 말하는 것도 가성소다를 사탕으로 앎과 수박 겉핥기의 유(類)나 아닐는지 그 글을 보시는 이는 살펴볼 줄로 안다.
이러하여 신운동(新運動)에 대한 이삼(二三) 관견(管見)을 말하면
⓵ 내용을 참신(斬新)케 함.
가령 이러한 시조를 지었다 하자.
부귀공명(富貴功名) 다 버리고 강호(江湖)로 돌아가서
백구(白鷗)로 벗을 삼고 어부(漁夫)나 되어볼가
어즈버 더러운 세상에 몸을 던저 무엇하리
× × ×
국화(菊花)를 거 들고 술을 대해 안젓스니
오류촌(五柳村) 도연명(陶淵明)이 불어울 것 업서라
치자(稚子)는 후원(後園)에 들어 밤을 주어 오더라
이것을 읽어보면 별로 신통한 맛이 없다. 기교야 그다지 부족한 것은 아니나 그 사상이 이고(泥古)하여 고인의 여타(餘唾)만 받아 되풀이한 것에 지나지 못한다. 이렇게 옛것을 모방(模倣)하고 스스로 그 노예(奴隸) 됨을 달게 여기는 시애에는 어떨는지 모르지마는 개성(個性)을 발로(發露)하여 실현(實現)을 힘쓰며 창작을 좋아하여 자기(自己)를 표창(表彰)코자 하는 이 시대에는 이런 투식(套式)으로는 그 생명이 길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 습작기(習作期)에는 어떤 이든지 모방을 아니 할 수 없지마는 언제까지든지 모방만으로 될 수 없으며 비록 모방을 하여 노작(勞作), 가작(佳作)이 있다드라도 마침내 자기는 표창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그런즉 어서 모방을 벗어나 독창(獨創)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뿐더러 자래(自來)의 시조만으로 영원히 그 생명을 지속(持續)할는지 못할는지가 또한 의문이다. 시조는 지금 변환기(變換機)에 있다. 우리는 이로 하여금 변환케 하여 더욱 문학적 지위와 가치를 높이고 더욱 융성(隆盛)케 하여야 할 것이다.
중국문호(中國文豪)의 한퇴지(韓退之)는 일즉 이런 말을 하였다.
한인(漢人)이 문(文)을 못하는 이가 없으나 오직 유향(劉向), 양웅(揚雄)의 도(徒)가 독수립(獨樹立)한 것이 있어 후세(後世)까지 일컫는다 하였으며, 자기(自己)도 경사자집(經史子集)을 모두 통(通)하여 이뤘다는 문장(文章)이지마는 전대(前代)에 없는 독특(獨特)한 문체(文體)를 세웠으며 당인시풍(唐人詩風)이 국풍(國風), 아송(雅頌), 초사(楚辭), 한위(漢魏) 육조시체(六朝詩體)에서 흐른 것이지마는 또한 다르며 그 후 (後) 송(宋), 원(元), 명(明), 청(淸)의 시풍(詩風)도 당시체(唐詩體)에서 흐른 것이지마는 또한 다르며 근작(近作)의 신진영재(新進英才)인 호적씨(胡適氏)는 또한 문학혁명(文學革命)을 주창(主唱)하여 이른바 백화문(白話文), 백화시(白話詩)가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도 적이49) 조선문학을 건설하자 하면 시조도 변환케 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그 내용을 새롭게 충실(充實)케 하여야 한다. 또한 그러자면 여기에 관련한 엄전(淹傳)한 학식(學識)도 있어야 하며 시재(詩才)인 천질(天質)과 인격(人格)도 있어야 하며 많은 소양(素養)과 수련(修鍊)도 있어야 한다. 이러하여 독창적 걸작품도 많이 내어야 할 것이다.
16회/ 1926년 12월 11일 토요일
⓶ 구조(句調)의 변화(變化)
내용을 참신케 충실케 하자면 따라서 그 형식(形式)도 얼마큼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만일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고시조(古時調)의 조격(調格)만 본받아 짓는다 하면 비록 참신한 내용을 가진 것이라도 참신케 보이지 아니할 뿐 아니라 흔히 단조(單調)하고 평범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낡은 집을 새집으로 고쳐 꾸미기는 누구나 쉽지 못한 일이다. 내남없이 말하기는 쉬워도 실상 하기는 어렵다. 자래(自來)의 시조는 구조(句調)에서 말함과 같이 세 가지 구조(句調)가 있는데 그중 결식구조(訣式句調)는 애적에 버릴 것이요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는 더러 쓸 수가 있으나 이것도 될 수 있는 대로 아니 쓸 것이다. 가령
영랑봉 비로봉(永郞峰毘盧峯)과 상하중향 일월출(上下衆香日月出)
망군대 지장백마(望軍臺地藏白馬) 상하금수 향로봉(上下錦繡香爐峯)
차례(次例)로 만이천봉(萬二千峯)이 고개 들어 보더라
– 춘원(春園)의 금강산 게성루(金剛山 揭惺樓)에서
하는 이 시조는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를 묘하게 쓴 것이다. 게성루에서 보이는 금강의 사십칠봉(四十七峯)을 잘 배치하여 쓴 것으로 워낙 봉의 이름마다 한자로 된 것이니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마는 이런 경우의 외에는 아니 쓸 것이다.
그러면 순조선어체(純朝鮮語體)로 된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를 써야 한다. 이리하여 조선어 의 근본미(根本美)를 발휘하여야 한다. 조선어식구조(朝鮮語式句調)는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와 같이 전아(典雅), 강건(剛健), 장쾌(壯快)한 맛은 적은 듯하나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에서 볼 수 없는 보드라운 아름다운, 알뜰살뜰한 맛은 많다. 또한 한시(漢詩)의 구조(句調)나 조한식구조(朝漢式句調)에서 보는 모든 맛을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에서도 다 못 보는 것이 아닐는지 모르지만은 자래(自來)로 한문(漢文)만 숭상하여 오던 습관을 이렇게 말하는 우리도 면치 못하여 자못 선천적(先天的) 맹목적(盲目的)으로 우리 조선말로 된 구조(句調)보다도 한문으로 된 구조(句調)를 더 좋게 여기는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 근래에는 또 일문(日文)과 영문(英文)을 숭상함으로 거기에 감화를 받은 이는 한문보다도 그것을 더 좋게 여기는 이가 많다. 이 모양으로 가면 조선어의 근본미는 언제나 발휘될는가. 또한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이나 몇몇이 될는가. 진실로 조선인(朝鮮人) 조선시(朝鮮詩)에는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를 써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러자면 먼저 용어(用語)에 대하여 생각하여 보자.
우리는 아직 언어가 정돈(整頓)되지 못하였으며 또한 이것을 정돈코자 하여도 일이(一二) 개인(個人)의 힘으로는 될 수 없으며 비록 뜻을 두고 연구하는 이가 몇몇 사람이 있다 하나 대개 생활난으로 여기에만 전심전력(傳心全力)하지 못하는 형편이며 조선인학교(朝鮮人學校)에서는 일주간(一週間) 일이(一二) 시간씩 조선어 혹은 조선문법을 가르친다 하나 통일이 못 되고 그나마 그럭저럭하는 세음이며 그 대신 타국어(他國語)의 세력은 점점 늘어가매 그것만 힘쓰게 되어 아든 조선말조차 잊어버리고 또는 알고도 아니 쓰고 보통담화나 강연까지라도 타국어로만 하는 이가 많이 생기니 아무리 조선인의 조선어일망정 배우지 않고 어찌 알며 쓰지 않고 어찌 발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조선어(朝鮮語) 조선문(朝鮮文)이 타국의 그것보다 나니 못하니 말할 수 있을까.
17회/ 1926년 12월 12일 일요일
그런데 조선어식구조(朝鮮語式句調)의 용어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첫째 일반적(一般的) 표준어를 정하며 사전도 간행하여야 할 것이나 쉽게 될 수도 없는 일이요, 둘째 문단적 표준어(文壇的 標準語)의 선택이니 대개 말하면 비어(鄙語)50) 보다 아어(雅語)51) , 술어(術語)52) 보다 통속어(通俗語)53) , 난삽54) 애매55) 어(難澁曖昧語)보다 평이56) 명료57) 어(平易明瞭語)로 적용할 것이요, 셋째 시어(詩語)의 선택이니 무론 시어도 문단적 표준어의 일종이지마는 더욱이 정취(情趣)58) , 성향(聲響)59) , 신운(神韻)60) 이 있는 말을 뽑아야 한다.
가령 “어찌”를 “어이”로 “세상”을 “누리”로 쓰는 따위니 “어이” “누리”는 고어(古語)라 하여 정취가 그만못한 “세상”으로 쓸 것이 아니다. 만일 말이 부족하다 하여 남조어(濫造語)61) 곧 “때박휘-시륜(時輪)-” “거울물-경수(鏡水)-” “구름나무-운수(雲樹)-” 따위를 쓰거나 또한 “면백(面白)한 일” “마록(馬鹿)” “모찌떡” “마메콩” 따위나 타국어(他國語)를 쓰느니보다는 낫지 아니할까.
그러나 고어(古語)는 특수적이요 일반적이 아니니 함부로 쓸 것은 아니다. 고어도 그렇거든 더구나 남조어(濫造語)랴. 남조어를 쓰자면 자기의 집에 인쇄소를 안치고 서기(書記)나 몇 두고 자기의 시문집을 일일이 주해(註解)하여 내기 전에는 될 수 없다.
또한 어떤 이는 고어폐지론(古語廢止論)까지 주창(主唱)한 일도 있었으나 그는 심(甚)한 말이거니와 거의 전용어(專用語)라 할 만한 부사(副詞)의 “어즈버” “아마도”며 종지사(終止辭)의 “노매라” “는고야” 따위가 있으니 워낙 시조는 그만한 유래가 있느니만큼 이런 용어야말로 더욱 정취(情趣)를 돕는 일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조(時調)는 시조(時調)니 다른 시가(詩歌)와도 다른 점이 많이 있을수록 좋을 것 아닌가.
또 그 예를 들어 말하면 “궐자(厥者)”를 “그이”로 “계집애”를 “처녀”로 “내빼다”를 “달아나다”로 쓰는 따위는 성향(聲響)이 더 좋을 것이요 “이러니저러니”를 “이런들저런들”로 “유두분면(油頭粉面)62) ”을 “명모호치(明眸皓齒)63) ”로 쓰는 따위는 신운(神韻)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하여 시어를 뽑아 씀이 조어식구조(朝語式句調)의 전적미(全的美)를 나타냄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⓷ 조구법(造句法)의 선택(選擇)
벨하-렌64) - 백이의 시인(白耳義 詩人)65) - 은 시의 형식은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라 하였으며 꾀테 – 독일시인(獨逸詩人) - 는 시의 법칙(法則)은 자기가 지을 것이라 하였다. 이런 대시인(大詩人)의 말과 같이 시인의 사상 감정은 무엇에든지 구속(拘束)을 받을 것이 아니다. 자유다. 이 의미에서 이 근래 자유시 곧 신시(新詩)의 운동이 생기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면 신시를 지을 것이지 시조를 왜 짓느냐 하는 문제가 또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말과 같이 자기가 선택하든지 자작(自作)하든지 하여보아 시조의 형식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시훈(時訓)을 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신시 혹은 민요 동요체의 어느 것이든지 취할 것이다. 또한 자유다.
그런데 시조의 조구법(造句法)에는 초중종 3장이 나뉘어66) 있어 보통으로는 평시조의 형식을 취하고 평시조의 형식에 맞지 못한 것은 엇시조나 서설시조의 형식을 취할 것이다.
18회/ 1926년 12월 13일 월요일
그러나 엇시조나 사설시조는 짓기도 어려우니만큼 자래(自來)로 명작(名作)을 볼 수 없다. 무론 어느 시든지 시형(詩形)이 길면 길수록 가작(佳作)67) 걸작(傑作)68) 을 얻기 어려운 듯하다. 지나(支那)69) 시에도 장편시(長篇詩)는 절구(絶句)70) 나 사율(四律)71) 만큼 명작이 적고 일본시에도 장가(長歌)는 단가(短歌)나 배구(俳句)만큼 명작이 적다. 딴테의 신곡(神曲)이나 밀톤의 실낙원(失樂園)은 각기 시대적 산물로 유명한 장편 걸작이지마는 포오 – 미국시인(米國詩人) - 는 이런 것도 감격(感激)의 집적(集積) 곧 단시(短詩)의 연속(連續)한 것이라 말하였다. 과연 포오의 시론을 보면 그중 단시형(短詩形)을 역설하였다. 이 시론으로도 우리 시조가 가장 이상적 시형으로 되었다 할 것이다.
그런데 시조는 보통 평시조 형식만으로 좋을까. 혹은 엇시조72) 사설시조의 형식도 써야 할까. 이 또한 자기가 자유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험과 의견으로는 엇시조 사설시조보다도 평시조 형식으로 하여 아무리 긴 것이라도 쓸 수 있다고 한다. 만일 짧은 것이면 평시조한 수에 마치고 긴 것이면 구조(句調)를 변화하여 한 수 이상 몇 수까지라도 쓸 수 있다. 이러하여 그 선율미(旋律美)를 나타내는 것이 마땅하다. 합리하다. 그렇다고 엇시조 사설시조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혹은 평시조 여러 수를 짓는니보다 엇시조나 사설시조 한 수에 마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이도 있을는지 모른다. 이뿐 아니라 이상 모든 문제가 다 그렇다. 다만 바라보시는 이의 고명(高明)한 비판만 바란다. 혹 참고나 될까하여 새 의사(意思)가 좀 보이는 시조 몇 수를 적어보자.
물은 팔안비치
언덕은 초록(草綠)비치
그건너 모래ㅅ벌은
안개와 한비친데
그속에 검붉은 무지개는
철교(鐵橋)이라 하더라 – 조운(曺雲)의 한강소경(漢江小景)에서
이것은 곧 그림이다. 사생(寫生)이다. 고시조에서는 이런 예를 얻어보기가 어렵다. 작자(作者)는 이것을 그리기 위하여 첫새벽에 한강까지 나아가 보았다 한다.
발설을73) 좁은 길에
밤눈이 안 보이니
얼굴은 모르지만
말소리 귀에 닉네
이제야 내 다시 오니
너를 맛나는구나
× ×
새삼스레 늣기나니
나는이 무슨낸가
흙내 물내 풀내
새짐승 깃들인내
차저온 벗들의 내
술내조차 나네나네
× ×
저녁이슬 저즌 옷을
거더낸 울타리에
호박곳츤 조하라고
반듸ㅅ불과 닙마추니
별들은 눈웃음치며
첨아테 나더라
× ×
달 업는 등 업는 밤에
그림자나 잇스리오
반듸ㅅ불 팔안불만
선득이는 바람ㅅ결에
춤추는 풀언덕 우로
오락가락 하더라
× ×
풀바테 작은버레
잔사설을 들으랴니
볏논에 맹이는
제소리 들으란듯이
들 건너 물방아ㅅ소리도
멀리 새워 하여라
(녀름ㅅ밤 시골ㅅ집에서)
이것을 여기 적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마는 나의 졸작(拙作)이다. 시작(試作)이다.
이상의 전편(全篇)을 통하여 오자(誤字) 낙자(落字)가 많으오니 독자(讀者) 여러분에게 미안(未安)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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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벌레: 원문은 ‘버레’
2) 원문 ‘字통만 取하여’: ‘자통’은 ‘음과 뜻’이라는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함. 보충 필요함.
3) 이두: 삼국 시대부터 한자(漢字)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 이도(吏道). 이서(吏書). 이토(吏吐).
4) 원문은 모두 ‘그럼으로’임.
5) 1920년대 언어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사이시옷’이 많은데 특별한 곳을 제외하곤 옮기면서 모두 삭제함.
6) 원문 ‘난하’, ‘난호면’을 ‘나눠’ ‘나누면’으로 옮김.
7) 척촉: 철쭉
8) 원문 ‘단진’의 ‘진(唇)’은 ‘놀라다, 놀라는 소리’라는 의미이니, ‘붉은 입술과 흰 이의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비유’라면, ‘호치단순-단순호치-’의 ‘丹脣’, 즉 입술 ‘순(脣)이라야 옳다.
9) 「시조란 무엇인고」에는 ‘홈며’ ‘홉며’ 등으로 보이는데, 『가람문선』, 「가곡의 명칭과 시조의 종류」(p.254)에는 ‘흠며’로 기록되어 있어 예문을 수정함.
10) 원문은 ‘섯字’임.
11) ‘함세(歲)로’의 뜻 확인할 것.
12) 효빈(效顰): 덩달아 남의 흉내를 내거나 남의 결점을 장점으로 알고 본뜸《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
13) 이 다음에 ‘7자구(句)의’가 누락된 듯함.
14) ‘낫다’의 정확한 의미 파악할 것. ‘놓았다’ 또는 ‘나누었다’?
15) 원본은 ‘닷는’임.
16)
17) 가람 선생의 원본임. 각주16의 『용비어천가』의 진짜 원본을 참고할 것.
18) 원문 ‘쓰애이는’은 ‘에 쓰이는’의 잘못으로 보임.
19) ‘ㅕ’는 격음과 평음에 중복된다. 확인할 것.
20) 원문은 ‘음리(音理)로조차’임.
21) 노분: 의미 확인할 것.
22) 사상: ① 생각. 의견. ② 사고 작용의 결과로 얻은 체계적 의식 내용. ③ 사회나 인생 따위에 관한 일정한 견해.
23) 낫고: 의미 확인할 것. 나쁘다, 좋지 않다, 못하다의 뜻일까?
24) 원본은 ‘놀애’.
25) 잠처: 정확한 의미 확인할 것.
26) 늣기움: 느낌? 느꺼움? 의미 확인할 것.
27) 령판, 령판에도 원령판 반령판이니, 호서(湖西)에는 중얼잇제 내포ㅅ제, 내포ㅅ제에도 웃내포ㅅ제 알에내포ㅅ제: 원본대로 기입함.
28) 원문은 ‘어’.
29) 보구미: ‘바구니’인 듯함. 의미 확인할 것.
30) 원본은 ‘코놀애’.
31) 원본은 ‘나무닙’.
32) 원본은 ‘아츰’.
33) 원문은 ‘늦김’.
34) ‘슯어워야’: 원문 그대로임. ‘슬퍼야’ ‘서러워야’의 의미일 것으로 보임.
35) 원문은 ‘여흘물’
36) 원본 ‘늣거워’: 느껍다(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차다).
37) 슬케 : 의미 확인할 것.
38) ‘나채기도’ : ‘낮추다’
39) 풍유법: 비유법 중에서 차원이 높은 것으로, 무엇을 무엇에 비유한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고 비유하는 말만을 들어 그 뜻을 알게 하는 방법《‘빈 수레가 더 요란하다’와 같은 속담·격언이 이에 속함》.
40) ‘풍자권해’ : 정확한 개념 확인 필요.
41) ‘부치는’: 원문 그대로임. ‘붙이는’의 의미일 수도 있고 ‘부치는’의 의미일 수도 있어보임.
42) 장(丈) : ① 길이의 단위. 한 자〔尺〕의 열 배로 약 3m에 해당함. ② 한자로 된 숫자 뒤에 붙여 ‘길-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 -’의 뜻을 나타내는 말.
43) 원본은 ‘엄창나게’임.
44) 원본은 ‘순절(旬節)’: ‘구절’의 오기인 듯함.
45) 원본은 ‘치려 할 제’임.
46) 원문은 ‘쓰는데쓰기가리론이만콤’: ‘쓰는데 쓰기가 이로우니만큼’의 의미인 듯함.
47) 사육변려: ‘변’의 한자는 ‘병’을 찾아야 함.
48) 원본은 ‘치지 안코’임. ‘그치지 않고’보다 ‘끊어지지 않고’가 더 적절한 듯함.
49) 원문은 ‘저으기’임.
50) 비어(鄙語): 점잖지 못하고 천한 말.
51) 아어(雅語): 바르고 우아한 말. 아언(雅言).
52) 술어(術語): ‘학술어’의 준말. ‘술어(述語)’는 ‘서술어(敍述語) - 풀이말 - ’의 준말임.
53) 통속(通俗): ① 세상에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풍속. ② 전문적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알기 쉬운 일.
54) 난삽하다: 말이나 문장이 어렵고 복잡하며 매끄럽지 못하다.
55) 애매: 희미하여 분명하지 않음.
56) 평이하다: 까다롭지 않고 쉽다.
57) 명료하다: 뚜렷하고 분명하다.
58) 정취(情趣): 깊은 정서를 자아내는 흥취(興趣).
59) 성향(聲響): 소리의 울림. 또는 울려서 나는 소리.
60) 신운(神韻): 신비롭고 고상한 운치.
61) 濫함부로람,남: 남조어: 함부로 만들어낸 말.
62) 유두분면: 기름 바른 머리와 분 바른 얼굴이라는 뜻으로, 여자의 화장한 모습을 이름.
63) 명모호치: 눈동자가 맑고 이가 희다는 뜻으로, 미인의 모습을 이르는 말.
64) 벨하렌=베르하렌. 1855. 5. 21 벨기에 생타망레퓌에르~ 1916. 11. 27 프랑스 루앙. 벨기에의 시인.
작품의 방대한 범위와 그 안에 담긴 열정으로 빅토르 위고나 월트 휘트먼의 작품과 비교된다.
65) 백이: ‘벨기에’인 듯함.
66) 원본은 ‘난호아’임.
67) 가작(佳作): 잘된 작품.
68) 걸작(傑作): 매우 훌륭한 작품. 걸작품. 달작(達作).
69) 지나(支那): ‘중국(中國)’의 딴 이름.
70) 절구(絶句): 한시(漢詩)의 근체시(近體詩) 형식의 하나《기(起)·승(承)·전(轉)·결(結)의 네 구로 됨》.
71) 사율(四律): 율시(律詩)의 하나. 오언(五言)이나 칠언(七言)으로 여덟 짝, 곧 네 구로 된 시.
72) 원문은 ‘엇던시조’임:
73) ‘발설을’: 정확한 의미 확인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