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분 안부입니다.
춘분에 듭니다.
춘분은24절기의 네번째 절기이고.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입니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습니다.
이 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집니다.
경칩과 청명의 보름 중간이 바로 춘분입니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입니다.
춘분을 전후하여 철 이른 화초는 파종을 합니다.
그리고 아울러 화단의 흙을 일구어 며칠 남지 않은 식목일을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겨울이 따뜻하고 봄이 일찍 찾아오기 때문에 묘목이며
씨앗들을 미리 심고 뿌리곤 합니다.
벌써 고사리와 취나물이 고개를 내밀엇습니다.
노지에서 참나무원목으로 키워낸 노지원목재배표고버섯들은 아우성입니다.
춘분을 즈음하여 농가에서는 농사준비에 바쁩니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 음력 2월중에는 바람이 많이 붑니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찹니다.
이는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래서 '꽃샘'이라고 합니다.
어찌나 바랍이 세던지 매화꽃잎들이 우수수 꽃비가 내리고 있엇습니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습니다.
유람선이나 여객선을 타고 가다가 갑판에서 바람에 쏠리면 큰일입니다.
그러니 미리 조심해야겟습니다.
옛날사람들은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초후(初候)에는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중후(中候)에는 우뢰소리가
들려오며, 말후(末候)에는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습니다.
곧이어 삼월 삼짇날이 되면 기쁜소식이 올듯합니다.
강남갔던 제비가 흥보네에 박씨를 물어다 주듯이 .....
삼월 삼짇날은 양력 4월 2일쯤인데 인근 양지바른곳을 찾아
꽃달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합니다.
긴 겨울을 버티고 나서 움트고 , 싹 튀우고, 꽃피우는 자연을 닮아보시게요...
그리하여 우리 사람들도 자연을 닮아 때가되면 그리하시게요...
소외되거나, 자살하거나, 가해받지 않도록....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저 또한 샤먼의 삶을 사는지라 피안으로 건너드리는일이 저의 할일입니다.
강을 건너드리고, 고갯마루를 넘어드리고, 모퉁이를 돌아드리고,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살리고, 넘겨드리고, 건너드리는....
겨울을 버틴 땅에서 새싹들이 올라옵니다.
얼레지 꽃이 벌써 꽃망울을 맺었습니다.
촉촉한 봄비가 대지를 적시니 움트는것들 아우성입니다.
심고 뿌리고 봄마중하는 부지런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긴 겨울을 버티고 튀운 노란 생강나무꽃 차를
이 차를 마시면 양기가 온몸으로 스며들어
몸이 차가운 사람,
속이 허한 사람,
여성들의 양기를 북돋는데큰 도움을 주고 특히 몸이 냉하여 아이를
갖지못하는 여인에게 특효가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생강나무꽃차 드시고 양기 회복하며 벙글어지시게요....
벗님들께 생강나무꽃차 한잔 올립니다.
2014.3.21(춘분),
청명 [淸明]
정의 음력 3월에 드는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청명(淸明)이란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청명주를 만드는 과정 | |||
---|---|---|---|
1. 찹쌀가루로 죽을 쑨 뒤 식힌다. |
2. 죽에 누룩가루와 밀가루를 넣고 섞는다. |
3. 술독에 담아 안친다.
(밑술 만들기) |
4. 주발효가 끝나고 후발효 중인
밑술독 |
|
|
|
|
5. 고두밥에 밑술을 섞는다. |
6. 골고루 버무린다. |
7. 술독에 담아 안친다.(덧술과정) |
8. 후발효가 끝난 술독에 용수를 박는다. |
음력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일에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 먹고 마시며 봄의 경치를 즐기는 풍속. 답백초(踏白草)라고도 한다. 특별히 삼월 삼짇날을 답청절(踏靑節)이라고 부르는데, 이날은 새봄이 찾아옴을 기뻐하여 술과 음식을 장만해 경치가 좋은 산이나 계곡을 찾아가 꽃놀이를 하고, 새 풀을 밟아 봄을 즐기는 것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용
청명은 음력으로는 3월에,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寒食)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 있으며,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에 있다.
중국에서는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의 기록에 따르면, 이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한다.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는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寒食條)에 기록하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아 오늘날 민간에서도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한다.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로 날씨와 관련된 속신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점친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어종이 많아져서 어획량이 증가한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이날 바람이 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파도가 세게 치면 물고기가 흔하고, 날씨가 맑아도 물밑에서 파도가 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경남 사천에서는 청명날의 날씨가 좀 어두워야 그 해 농작물(農作物)에 풍년(豊年)이 들고, 너무 맑으면 농사(農事)에 시원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 이날 성묘(省墓)를 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어서 특별히 택일(擇日)을 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해도 좋다고 믿는다. 또 이날은 손이 없기 때문에 묘자리 고치기, 비석 세우기,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 일이나 해도 좋다고 한다.
의의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고, 날씨가 좋아야 봄에 막 시작하는 농사일이나 고기잡이 같은 생업 활동을 하기에도 수월하다. 곳에 따라서는 손 없는 날이라고 하여 특별히 택일을 하지 않고도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묘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겨우내 미루어두었던 것들이다.
청명. 한식 안부입니다.
24절기의 다섯 번째 절기. 음력 3월 절기이며, 양력 4월 5, 6일경이 됩니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며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습니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으며 이날에 식목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식목일을 청명과 같은 날로 잡은 듯합니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초후(初候)에는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말후(末候)에는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엿습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작업이 됩니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 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며,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으며,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寒食(한식)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입니다.
<열양세시기>에서는 이와같이 불을 나누어주는 일을 한식조에 기록하고 있고, 청명에 대하여서는 언급이 없으며, 불은 한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 한식조에 기록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최남선(崔南善)은 한식의 풍속을 고대의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에서 나온 것으로 보았으며,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뒤섞이는 경우가 많으나, 청명은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하나이므로 농사관계사항을 기록하는 것이 옳습니다.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합니다.
이날 보통 성묘(省墓)를 갑니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청명(淸明), 여름에는 중원(中元, 음7월 15일), 가을에는 추석(秋夕), 겨울에는 동지(冬至)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 뵙고 산소위의 눈을 쓸어 내렸답니다.
한식 / 한식차례 돈돌날이
동지(冬至) 후 105일째 되는 날이며.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이다.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이다. 한식이 음력 2월에 들 경우, 세월이 좋고 따뜻하다고 여기며, 음력 3월에 들 경우 지역에 따라서 떼입히기(改莎草)를 하지 않는다.
한식은 불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금연일(禁煙日)이라 하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데서 냉절(冷節)이라 한다. 또한 한식을 숙식(熟食)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불을 사용하지 않는 한식날에는 미리 익혀둔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것이다. 강원도 영서지방에서는 마(魔)가 끼지 않은 날이라 해서 공마일(空魔日)이라 한다. 이날은 묘를 손질해도 뒤탈이 없다고 하여 묘를 안심하고 손질한다. 이외에 한식날 씨를 뿌리면 씨가 말라죽거나 새가 씨를 파먹는다는 믿음에서 고초일(苦草日)이라 부른다. 한식날에 사당이나 조상의 묘소에서 한식차례를 지낸다. 이를 명절 제사라는 뜻에서 일반적으로 절사(節祀)라고도 한다. 요즘은 일반적으로 차례를 설, 한식, 단오, 추석과 같은 명절에 지내는데 한식에 지내기 때문에 한식차례(寒食茶禮), 한식성묘(寒食省墓)라고도 한다.
논산 왕대리 한식절사 모습 | ||
---|---|---|
|
|
|
|
|
|
한식차례 모습 | |||
---|---|---|---|
|
|
|
|
|
|
|
|
한식에는 날씨를 보고 그 해 농작물이나 어획물의 풍흉을 점친다. 농촌에서는 이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적으면 그 해 풍년이 들고, 날씨가 궂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여긴다. 또 서리가 내리면 땅이 석 자 세 치나 타는 큰 가뭄이 와서 흉년이 들 징조라 여긴다. 특히 천둥이 치면 흉년이 들 뿐만 아니라 나라에 불행한 일이 생기거나 시끄러운 일들이 일어날 흉조로 여긴다. 어촌에서는 이날 비가 오거나 풍랑이 심하거나 바람이 불면 바다에 물고기가 많아져서 그 해 풍어가 될 조짐이라 하는 반면에 천둥이 치면 잔고기가 적게 잡힐 조짐이라 여긴다
유래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춘추시대의 인물인 개자추[介子推, 介之推] 설화이다. 개자추는 망명해 있던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를 위해 헌신했고, 중이는 마침내 진 문공(晉文公: 재위 B.C. 636~628)으로 즉위했지만, 개자추에게는 아무런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분개한 개자추는 면산(聃山)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이를 깨달은 진 문공이 개자추를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진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고 타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를 기리기 위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만을 먹는 한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의 개화(改火) 의례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사물이 생명을 가지며, 생명이란 오래되면 소멸하기 때문에 주기적 갱생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불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오래된 불은 생명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오래 사용한 불을 끄고 새로 불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개화 의례를 주기적으로 거행했는데, 한식이란 구화(舊火)의 소멸과 신화(新火) 점화까지의 과도기란 설명이다. 그리고 한식이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것도 28수(宿)의 하나이며 불을 관장하는 심성(心星)이 출현하는 것이 이때이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개자추의 죽음은 구화를 끄면서 제물을 태우는 관습을 반영한 설화라고 한다. 이 중 개화의례와 관련짓는 후자의 설이 더 유력하다.
내용 한국에서 한식을 언제부터 명절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고려 문종 24년(1070)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꾸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식에는 금화(禁火)와 성묘의 풍습, 투란(鬪卵: 계란 위에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를 겨루는 유희) 놀이가 있었으며, 소나기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로 여겨졌다. 고려시대에 한식의 시기가 변하였는데, 고려 후기에는 동지 후 105일이었지만, 전기에는 그보다 7일 정도 빠른 양력 3월 30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조선시대에도 한식은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한식을 주제로 한 많은 시가 전해지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한식에는 금화와 개화가 행해졌다. 세종 13년(1431)에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으며, 매년 임금은 내병조(內兵曹)에서 바친 버드나무를 마찰하여 일으킨 불을 궁중에 있는 관청과 대신 집에 나누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상 숭배였다. 왕실에서는 종묘 제향을 지냈고, 종묘에서 제외되었거나 후손이 없는 왕과 비빈 등에 대해서는 성묘를 했다. 허물어진 능묘를 보수하기도 하였다.
또 민간에서는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절사(節祀)라 하여 산소로 올라가 성묘를 했는데, 그 중에서도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하여 교외로 향하는 길에 인적이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농가에서는 이날을 기하여 밭에 파종을 했다.
이렇듯 한식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중요한 명절로 여겨졌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특별한 행사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불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조상 숭배와 관련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집안에 따라서는 사당에서 조상 제사를 지내기도 하지만, 많은 가정에서는 성묘를 하고 간단한 제사를 지낸다. 이때 서울 지역에서는 제사에 앞서 먼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성묘의 대상은 기제사를 받는 조상도 있지만, 기제사를 지내지 않는 먼 조상이나 후손이 없는 사람인 경우도 많다.
또 손 없는 날 또는 귀신이 꼼짝 않는 날로 여겨 산소에 손을 대도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소에 개사초(改莎草: 잔디를 새로 입힘)를 하거나 비석 또는 상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한다. 이렇듯 성묘와 산소 돌보기의 풍속이 유지되는 데에는 한식이 식목일과 겹치며, 식목일이 공휴일인 점이 크게 이바지했다.
한편, 한식은 농사를 준비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소를 부려보기도 한다. 또 한식 무렵이면 볍씨를 담근다. 그러나 씨를 뿌리면 말라죽거나 새가 파먹는 고초일(苦草日)이라 하여 씨를 뿌리지는 않는다. 또 강원도 지역에서는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넣는 과일나무 장가보내기를 하는데,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 한식의 날씨를 살펴서 그 해 시절의 좋고 나쁨이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곧 한식에 날씨가 좋고 바람이 잔잔하면 시절이 좋거나 풍년이 든다고 하며, 어촌에서는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그러나 폭풍이 불고 큰비가 내리면 그 반대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식날 새벽에 천둥이 치면 서리가 일찍 오고 저녁에 천둥치면 늦게 온다는 믿음도 있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에서 한식은 산서(山西)지방에서 시작되어 남북조시대 말부터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다. 시행 초기에는 날짜도 일정하지 않았지만, 후한(後漢)시대부터 동지 후 105일 전후 3일로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24절기의 하나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는 청명(淸明)은 동지 후 107일로 밀려났으며 한식의 일부로 포함되었다. 그리고 한식은 농사의 시작과 겹치므로 풍년을 기원하여 제기차기, 그네타기, 갈고리 던지기 같은 여러 가지 놀이를 하였으며 당나라 무렵부터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상묘(上墓)가 중요한 풍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남송 때부터 한식의 금화(禁火) 풍속이 쇠퇴하기 시작하여 명나라 때에는 한식 자체가 폐지되었다. 대신 청명이 다시 부각되었으며, 청명의 날짜도 다시 동지 후 105일로 환원되었다.
청명을 맞아 아주 간략한 안부 올립니다.
좋은기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4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