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폴리 피자집 ‘브란디’에서 파는 마르게리타 피자. |
인터넷에서 찾아내 1㎏에 3.99달러 하는 나폴리산 ‘파리나(Farina)’를 주문했다. 파리나는 이탈리아어로 밀가루이다. 15㎏까지는 7.99달러의 운송비가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아예 10개를 주문했다. 가격이 보통 밀가루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 인터넷 구입자의 반응을 보면 평점이 별 다섯 개 중 4.5개에 달한다. 비싼 가격이지만 112명에 이르는 구입자 대부분이 대만족이다.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맛을 결정하는 핵심 중 하나가 밀가루라는 점을. 한국에서 사용되는 밀가루의 대부분은 미국산이다. 엄청나게 정제된 고운 밀가루지만, 이탈리아에서 먹는 파스타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파리나로 파스타를 만들자 식사를 함께한 모든 사람이 환호를 한다. 버리려던 치즈와 냉장고에 일주일 넘게 보관돼 있던 토마토로 만든 요리인데도 더 만들어 달라고 난리이다.
항상 강조하지만 음식의 포인트는 능숙한 요리 솜씨나 고급 재료보다 신선한 재료 그 자체에 있는 경우가 많다. 밭에서 막 수확한 채소는 크게 요리할 필요가 없다. 살짝 삶거나 볶은 뒤 소금·후추만으로 간을 맞춰 곧바로 먹으면 된다. 생으로 먹는 것도 좋다.
프랑스 요리가 여러 가지 재료를 녹여 만든 소스 중심이 된 이유는 신선한 재료를 구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쁜 냄새를 죽이고, 창고에 보관된 오래된 재료를 미각으로 커버하는 과정에서 비밀 소스가 필요하게 된다. 스페인·이탈리아·그리스는 굳이 소스를 만들어 먹을 필요가 없다. 막 잡은 해산물을 끓이거나 튀긴 뒤 올리브오일에다 소금·후추만 뿌려서 즐기면 된다. 가장 간단하고 신선한 건강식이다. 이른바 심플푸드(Simple Food)다.
피자는 심플푸드로 현재 전 세계가 즐기는 최고의 인기 요리 중 하나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햄버거와 더불어 피자를 만날 수 있다. 필자는 둘 중에 선택하라면 100% 피자이다. 조건은 있다. 전자레인지에 넣어 해동해 먹는 냉동 피자는 절대 피한다. 손으로 만든 피자판에다 재료를 올려서 장작불에 구운 피자만이 대상이다. 전자레인지용 냉동피자는 햄버거만큼이나 건강에 해롭고 맛도 없다.
‘나폴리탄 피자’의 명성
필자의 요구 조건에 맞는 피자는 사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찾기가 어렵다. 뭐가 그리 바쁜지 피자 반죽 하나 만들 시간도 없고, 토마토 소스도 깡통에 든 인스턴트로 대신한다. 무려 3만원대에 달하는 해산물 피자를 서울에서 먹은 기억이 있지만 피자 반죽에서부터 토핑된 해산물, 야채조차도 전부 냉동 제품이었다. 장작불이 아닌 가스로 만들어진 피자이다. 전자레인지가 아닌 것만 해도 고마웠다. 싸구려 치즈만 엄청 덮어서 신선한 것처럼 보이지만 피자라고 부를 수 없는, 무국적 음식이었다.
이탈리아는 필자의 ‘까다로운(?)’ 조건이 상식처럼 돼 있는 나라이다. 전자레인지로 만든 피자는 엄청 저가에 팔린다. 피자의 맛을 모르는 외국인을 위한 음식이라 보면 된다. 짜장면의 한국인, 라멘의 일본인처럼 피자에 관한 이탈리아인의 반응은 예민하고도 남다르다.
피자의 원조가 어딘지에 관한 얘기는 음식 역사가들의 끊임없는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올리브오일, 치즈, 꿀, 허브 등 토핑 재료와 관련된 기원(起源)은 제각각이다. 로마, 비잔틴제국, 터키, 불가리아, 알바니아가 피자의 원조 격에 해당하는 나라들이다. 분명한 것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발달한 요리가 피자라는 것이다.
이탈리아 나폴리는 피자의 고향으로 불린다. 이탈리아인 대부분이 최고의 맛으로 평가하는 것도 나폴리 피자이다. 토마토 소스와 모차렐라 치즈로 만들어진 피자는 아예 ‘나폴리 피자(Napolitan Pizza)’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터키 피자, 불가리아 피자는 없지만 나폴리 피자는 존재한다.
나폴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들른 곳이 나폴리 피자의 대명사인 브란디(Brandi)이다. 1780년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인 모두가 알고 있는 곳이다. 브란디의 명성은 피자의 기본인 마르게리타(Margherita)의 탄생지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메뉴판에 비슷한 종류의 음식이 넘치고, 레스토랑의 수준을 잘 모를 때 행하는 최적의 주문 요령은 무엇일까? 가장 싼 기본을 시켜보면 맛이나 실력을 알게 된다. 가장 싼 하우스 와인을 시켜보면 레스토랑의 포도주 실력을 알 수 있다. 짜장면 보통이 중국집을 평가하는 기본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르게리타는 피자의 기본이다. 특별한 치즈, 해산물, 버섯이 토핑된 피자보다 거의 반값에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처음 간 피자집의 경우 예외없이 마르게리타를 시킨다. 맛이나 서비스가 마음에 들면 이후 조금 비싼 다른 피자를 주문한다.
브란디 vs 안티카 피제리아
브란디가 마르게리타를 선보인 것은 정확히 1889년 6월이다. 통일 이탈리아로 발전된 이탈리아 왕국(Kingdom of Italy)의 마르게리타 여왕이 브란디에 들렀을 때이다. 브란디는 나폴리의 얼굴에 해당하는 플레비스시토(Plebiscito)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여왕이 왕궁인 산 정상의 카포디몬테(Capodimonte)에서 나와 광장에 들른 뒤 피자를 먹으러 왔다. 여왕에게 피자는 한번도 입에 대 본 적이 없는 신세계였다.
당시 브란디의 요리사이던 라파엘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는 여왕을 위한 특별한 피자를 준비한다. 폼페이 근처에서 자란 맛있는 밀가루를 피자판으로 삼고 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 그리고 바질을 토핑한 피자이다. 이미 존재하던 나폴리 피자에 바질을 하나 더 올린 것이다. 여왕은 맛과 함께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피자 위의 문양에 감동한다.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흰색, 붉은색, 그리고 초록색이 혼합된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여왕이 방문했던 시기는 이탈리아 통일이 이뤄진 1861년 이후 28년 만이다. 애국심이 불타던 시기에 이탈리아 삼색기가 장식된 피자를 여왕에게 선보인 것이다.
한번 피자맛을 들인 여왕은 이후 요리사를 궁전에 불러들인다. 직접 와서 피자를 만들 것을 요청한다. 당시 궁전까지 올라가는 것은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했다. 요리 도구와 재료를 전부 당나귀에 실은 뒤 궁전 부엌에 가서 여왕용 피자를 만들었다. 여왕의 이름을 딴 피자가 전 세계에 알려진다.
이탈리아는 명품의 고장인 동시에 짝퉁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꾼 데 이어, 그리스 신의 청동 조각품도 전부 이탈리아 대리석으로 바꿔서 원조인 것처럼 행세한다. 마르게리타 피자도 마찬가지다. 브란디가 아닌 진짜 원조라고 주장하는 곳이 나폴리에 있기 때문이다. 나폴리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피자집으로 알려진 안티카 피제리아(Antica Pizzeria)이다. 창립연도가 1830년이다. 창립연도가 1780년이라는 브란디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안티카의 주장이다.
파바로티의 단골
1780년 창립한 다른 피자 가게를 1850년대에 매입한 곳이 브란디라는 것이다. 브란디 자체만의 역사는 1850년 이후라고 한다. 나폴리 주민들은 세계 최초임을 주장하는 안티카의 주장에 동조하는 편이다. 안티카는 마르게리타 피자도 원래 자신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브란디가 개업하기 이전에 이미 바질을 넣은 피자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마르게리타 원조 논쟁은 나폴리타노가 풀지 못하는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다.
나폴리 중심 치아이아가(街)의 브란디에 들른 것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인 오후 2시50분이다. 이른바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Siesta) 시간대이기도 하다. 시칠리아에 비하면 약하지만 나폴리도 시에스타 풍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점심 직후에 낮잠을 자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상점은 대부분 문을 닫는다. 브란디는 오후 3시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문을 닫는다. 밤에는 새벽 1시30분까지 문을 연다. 낮과 밤 심야에도 손님들로 터져나가기 때문에 일부러 문 닫기 10분 전에 찾아갔다. 피자는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20분이면 끝낼 수 있다.
브란디는 입구에서부터 마르게리타의 원조임을 자랑하는 듯한 물건들로 가득 차 있다. 흑백의 마르게리타 여왕 사진이 야외 테이블 아래 세워져 있고 1780년 창립이라고 새겨진 이탈리아 국기도 여기저기 걸려 있다. 애국심과 여왕을 결합한 묘한 마케팅 전략이다.
사람이 빠져 나가는 시간이기에 레스토랑 안은 의외로 한산했다. 1층 계산대 벽에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현재의 3대째 주인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걸려 있다. 파바로티는 나폴리를 즐겨 찾은 인물이다. 나폴리 어디를 가도 파바로티의 사진이 걸려 있다. 1층 계단 아래에는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돌로 된 화로가 눈에 띈다. 장작의 종류를 물어보자 올리브 나무라고 한다.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작은 테이블 10개 정도가 놓여 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사진과 축구선수 프란체스코 토티의 모습도 보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유명한 듯한 이탈리아인들의 사진이 주인의 모습과 함께 걸려 있다. 유럽에서 이탈리아는 레스토랑의 벽면을 유명인의 사진으로 도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독일·영국의 경우 드물게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벽면의 사진도 늘어난다. 유명인을 통해 뭔가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강하다.
피자와 맥주의 궁합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주문을 했다. 마르게리타 피자이다. 더불어 나폴리 맥주도 한 병 시켰다. 이탈리아에 자주 다니면서 터득한 것이지만 피자에 맞는 음료는 단연 맥주이다. 담백한 맥주가 치즈의 느끼한 맛을 깨끗이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맥주를 멀리 한다면 드라이한 백포도주도 좋다. 식탁에 미리 나온 맥주는 이탈리아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페로니(Peroni)이다. 1846년 탄생된 음료로 로마에 공장이 있다. 맛은 라거 스타일이다. 이탈리아인은 포도주뿐만 아니라 맥주도 많이 마신다. 특히 젊은이는 포도주보다 맥주나 칵테일을 더 즐기는 편이다.
피자와 관련해 동서(東西)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미국은 물론 유럽의 경우 다섯 사람이 주문할 때 반드시 한 사람에 하나씩 따로 피자를 시킨다. 각각 다른 것을 시켜서 나눠가면서 조금씩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내가 주문한 나만의 피자’라는 생각으로 피자를 주문한다. 나눠 먹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 것만 묵묵히 먹는다. 많아서 남기더라도 옆사람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이나 동양의 경우는 남길 것을 예상해 5명이 가도 3개 정도를 시켜 함께 나눠 먹는다. 여러 가지 맛의 피자를 즐기고 돈도 아낄 수 있다. 음식을 함께 나누지 않는 서양식 테이블 매너는 이해하지만 단출하게 하나만 나오는 피자조차도 영역을 확실히 정해 먹는다는 것이 흥미롭다.
주문한 지 5분 만에 피자가 나왔다. 문을 닫기 직전이기에 모든 것이 빠르게 이뤄진다. 막 만들어낸 피자판 위에 재료를 올려서 장작불에 구운, 기본에 충실한 피자이다. 피자의 맛은 두 가지로 나눠지는 듯하다. 음식이라 부르기 거북한 피자와, 맛있는 피자이다. 냉동 인스턴트 피자 같은 것이 전자이고, 기본에 충실한 피자가 후자이다. 특별히 월등한 맛의 피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탈리아산 밀가루와 치즈·토마토·바질·버섯·해산물이 토핑된, 장작불에 구운 피자는 ‘전부’ 맛있다. 어디 피자가 특별하고 어디가 못하다가 아니라 그냥 전부 맛있다. 가을에 연탄불에 구워먹는 꽁치는 바닷가 주변이라면 어디에서 먹어도 맛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무향이 깊게 밴 피자는 맛 이전에 향으로 입맛을 북돋운다. 나폴리, 시칠리아, 로마, 밀라노, 피렌체, 베니스 등 이탈리아 어디를 가도 기본에 충실한 피자는 전부 맛있다. 먹은 지 3~4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각이 난다. 저녁에 다시 피자를 다시 먹기 위해 세계 최고의 피자집이라는 안티카 피제리아를 찾아간다면 너무 ‘유식(有食)’하게 보일까?
토토(Toto)
나폴리 레스토랑에 가면 반드시 만날 수 있는 흑백사진의 인물이 한 명 있다. 토토(Toto·1898~1967)이다. 나폴리타노가 가장 사랑하는, 나폴리를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다. 나폴리타노의 자랑이자 자존심, 그리고 아이덴티티이다. “나폴리의 열기는 그 어떤 도시에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로마의 분위기를 나폴리에 비교한다면 조용한 교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나폴리에 왔을 때 한 말이다. 이탈리아 그 어떤 지역보다도 낙천적이고 활기찬 곳이 나폴리이다. 토토는 그런 나폴리에서 ‘웃음의 왕자(Principe della Risata)’로 불렸다. 토토의 말투, 행동, 언어, 걸음걸이, 패션 등은 나폴리타노, 나아가 전후 이탈리아인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따라한 새로운 이탈리아인의 캐릭터를 창조해낸 모델이란 해석이다. 그는 연기자이자 시인, 작가, 가수, 작곡가로 생애를 마쳤다. 코미디언은 그가 가졌던 직업 중 하나였다. 1967년 69세로 숨질 때까지 1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영화 타이틀에는 반드시 토토라는 이름을 넣었다. 흥행 보증 수표이기 때문이다. 비평가로부터도 항상 좋은 평가를 듣는다. 이탈리아 영화를 대표하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야니, 소피아 로렌, 빅토리오 데 시카, 에두아르도 디 필리포와도 공연한다. 토토는 1898년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연기자로 데뷔한 것은 1937년 상영된 ‘꺼져버려!(Fermo con le mani!)’이다. 대머리 신사의 머리에 매니큐어를 칠하려 하고, 머리 위에 설치된 다섯 개의 포도주병에 물을 담아 줄을 당겨 목욕하는 장면은 이탈리아 코미디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찰리 채플린과 비슷하지만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캐릭터는 아니다. 가난 속에서도 웃고 우는 모습이 토토의 이미지이다. 토토가 극장 스크린에 등장한 것은 파시즘의 무솔리니 치하 때이다. 이념을 내세울 상황이 못 됐다. 영화 속에서 토토는 가난하고 무식하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단세포적 인물로 나타난다. 가끔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이며 자가당착에 빠지는 멍청이로도 나온다. 여자를 밝히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며 매사에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인, 특히 나폴리를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토토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이탈리아인 특유의 국민성인 웃음소리 속에 슬픔을 연출하는 배우로 와닿는다. 같은 말을 하면서도 정반대 의미를 가진 이른바 ‘도피오 센소(Doppio Senso)’ 스타일의 연기이다. 1967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숨진 뒤 이탈리아인 모두가 슬품에 빠진다. 장례식은 무려 세 군데에서 돌아가며 이뤄진다. 로마, 나폴리, 그리고 시칠리아의 마피아 보스에서 열렸다. 서로가 토토의 시신을 요구하면서 빚어진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현재 나폴리 내 토토 생가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나폴리타노는 토토의 박물관을 단순히 코미디언의 집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폴리타노가 어려울 때 기도를 받아주는, 나폴리의 수호천사로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