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마초의 입촉 과정
Ⅲ. 마초의 활약상
__1. 임저로의 부임이 갖는 의미
_____1-1. 오나라와의 형주 분쟁
__2. 북벌에 참여한 마초
_____2-1. 마초의 임지 변경
_____2-2. 북벌에서의 활약상
_____2-3. 북벌 이후부터 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Ⅳ. 마초에 대한 다양한 견해.
__1. 장비는 마초를 견제했는가
__2. 마초는 입촉후 아무런 활약이 없었는가
__3. 마초전의 주에 실린 내용은 믿을만한가
__4. 마초의 유언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Ⅴ. 맺는말
l. 머리말
주제가 촉 정권에서의 마초의 위치. 역량. 활약상을 다루는 것이기에 글의 초점은 마초가 유비정권에 합류하는 시점에서부터 맞추어 나감을 밝힙니다.
ll. 마초의 입촉 과정
유비의 입촉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유비가 이미 익주 영내에 깊숙이 들어온 이후에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21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214년에 끝이난 3년에 걸친 길고도 힘든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막바지에 마초가 유비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마초는 그 아버지 마등이 거느리고 있던 부곡을 이어받은 자였고, 그 스스로도 융족들을 이끌었던 마초가 거느린 군사력은 막강했으며, 이러한 마초의 군사력은 장기간에 걸친 전쟁에 지친 촉군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전황을 살펴보자면, 맨 처음 유비는 북쪽의 가맹관으로부터 남쪽의 성도를 향해 남진하게 되고, 이에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지만 낙성에서 거센 저항에 부딫히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유비는 장비, 제갈량, 조운들을 불러들여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성도로 향해 나아갑니다. 결국, 익주의 전 지역이 유비군에 의해 장악당하고 남은것은 성도분지만이 남게 된 상황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유장은 많이 비축되어있는 물자를 바탕으로 하여 장기간에 걸친 농성을 택하여,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심신이 지치고 물자적으로 힘에겨운 촉군을 물리치려 했으나 마초의 등장은 이러한 가능성을 더욱 낮추어 버렸으니, 그가 비록 유비군에 합류한 시점은 늦으나 유비의 입촉에 무시못할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lll. 마초의 활약상
1. 임저(臨沮)로의 부임이 갖는 의미
마초는 임저현을 담당하게 됩니다. 임저는 형주 남양군의 현 명입니다.
유비가 마초를 임저에 둔 것은 다음의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첫째, 마초가 거느린 군사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의 군대가 빠져나간 형주를 보다 더 튼튼하게 방비하고자 합입니다. 둘째, 임저는 비교적 북방에 위치한 곳으로 위나라와의 접경지역에 상당히 근접한 곳입니다. 더구나 마초가 이 지역에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주둔할경우 위나라에 대한 압박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오나라에게 한치의 땅도 내줄수 없다는 유비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1-1. 오나라에게 한치의 땅도 내어줄 수 없다는 유비의 의지
유비는 입촉한 후, 강력한 사병을 거느린 마초를 임저에 주둔시키며 관우를 돕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에, 손권의 형주 반환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에 격분한 손권이 강제로 3개의 군을 점거하자, 촉은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유비 본인이 5만 대군을 이끌고 공안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관우에게 익양으로 진격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에서 이 모든것을 유비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본다면 지나친 추리일까요? 아무튼, 이러한 움직임에 마초를 강릉보다 상류에 위치하여 위와 가깝지만 오나라와는 연계가 되지 않는 임저에 주둔시킨 것은 다름아닌 위의 남침 개입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초가 거느린 군대는 비록 막강한 양주병단으로 육지에는 강하지만 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마초를 임저에 주둔시켜 위의 개입을 저지하려는 의도였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유비가 입촉을 한다면 손권의 형주 반환요구가 있을것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충분히 유비가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측한 행동이었다고 생각됩니다.
2. 북벌에 동원된 마초
2-1. 마초의 임지 변경
유비의 생각과는 달리 조조는 한중의 장로를 공격함으로써 유비의 뒤를 공략하게 됩니다. 이는 유비로서는 미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며 결국 유비는 어쩔 수 없이 손권에게 3군을 돌려줌으로써 형주분쟁을 마무리짓고 칼을 북쪽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마초역시 임저를 떠나 유비와 함께 한중으로의 북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같은 결정에는 오나라와의 형주 분쟁이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일 후에 오나라와 형주를 놓고 분쟁을 벌인 기록은 없습니다. 더불어 조조 본인이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공략하는 상황에서 형주가 당분간 안전할 것이라는 견해와 함께 양주일대에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마초를 동원하여 북벌에 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북벌에서의 활약상
마초가 북벌에서 활약했다는 것은 여러가지 내용으로 알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는것은 무제기의 기록입니다. 유비와 조조의 한중전투역시 약 3년에 걸친 치열한 전투였는데, 그 시작은 마초였습니다. 유비는 217년 10월. 장비, 마초, 오란등을 양주 무도군의 수부인 하변으로 진출하도록 하고, 그사이 자신은 양평군으로 진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유비의 군대와 마초등의 군대가 함께 양동작전을 펼쳤다는 것입니다. 마초는 양주 일대에 그 세력 기반이 있었으며 그 지역에 신임을 얻고 있었습니다. 저족과 강족 모두에게 영향력이 강했으며 조조에게 패할때도 융족과 함께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양주자사 위강을 죽이며 자신의 기반을 다지려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지요.(후에 그를 양주목에 임명한 것 역시 이러한 점에 일맥상통하겠지요) 이런 마초를 양주로 파견하여 양주에서의 호응을 기반으로 후방을 교란하고 유비 자신은 북으로 치고 올라가며 적을 섬멸하려는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듬해 3월 장비와 마초는 패하여 한중으로 도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이 유비는 양평관으로 진출하게 되고 수년간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장비는 파서에서 장합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마초는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싸웠는지가 나와있지 않으니 구체적인 점은 알 수 없습니다. 추리하건데 유비의 본대에 합류하여 장비, 황충과 함께 싸웠으리라 보입니다. 황충전에는 제갈량이 유비에게 간하여 말하길, "장비와 마초는 황충이 싸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으므로 불만이 없겠지만 그 활약을 보지 못한 관우는 불만을 품을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3. 북벌 이후인 219년부터 222년 그의 사망까지.
한중을 장악한 이후, 유비는 한중왕으로 등극하는데 여기서 이체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좌장군 가절에 임명되어 관우, 장비와 동급의 지위에 올랐으며 유비가 한중왕을 칭할 때 헌제에게 올린 표장에 신하 중 첫째 자리에 마초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 더하여 마초는 유비가 황제가 되면서 표기장군에 임명되고 양주목에 임명되었는데 무관으로서는 최고에 가까운 대우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얼핏보면 그가 엄청난 권한을 가지게 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절이란 것은 그가 다스리는 지역의 독자적인 군권을 부여하는 것인데, 당시 한중은 위연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정확한 임지가 어디였는지는 알지 못하나, 2년 뒤 유비가 한중왕이 되면서 부여한 양주목이라는 직위를 볼 때 그가 적어도 한중이나 양주의 접경지대인 농서정도에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더불어 그가 받은 표기장군은 중앙의 상비군을 통솔하는 직위인데, 지방의 마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입니다. 더불어 장비가 거기장군으로서 낭중에서 중앙군을 이끈 점으로 보아도 약간은 과대포장된 대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유비가 마초를 양주목에 임명한 것은 221년인데 이 해에 유비는 오나라와 대규모 전쟁을 벌였습니다. 따라서 마초를 양주목에 임명한 것을 양주로의 진출 의미로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당시의 마초의 역할은 다소 애매모호한 듯 보이는데 결론적으로 유비의 이러한 인사정책은 대규모 형주 탈환전을 일으킴에 앞서 양주의 이족들에게 영향력이 강한 마초를 양주목에 임명하며 후한 대우를 해주어 양주의 인사들을 회유함은 물론,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위의 남침 의도를 저지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이같은 점은 제갈량이 이례적으로 강유를 발탁하여 크게 기용하고, 강유와 함께 투항한 그의 친구들을 모두 양주 일대를 비롯한 촉의 북방 경계선의 방어에 기용한 점에서 양주인사들의 회유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점과 일맥 상통하는 부면입니다.
lV. 마초에 대한 난무한 추측들과 의문스러운 마초.
1. 장비가 마초를 견제했다?
입촉후 장비는 파서태수가 되어 낭중에 주둔하며 중앙군을 이끌었으며, 마초는 남양의 임저에 머물렀습니다. 낭중과 임저는 성도에서 한중보다도 더 먼 거리이기에 파서에서 군사훈련을 하며 마초를 견제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후에는 219년까지 함께 북벌을 행했으며 장비는 다시 파서의 낭중으로 이동했으며, 마초는 기록에는 자세하지 않으나 양주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므로 장비가 군사훈련을 하며 마초를 견제했다는 내용은 믿을 수 없습니다.
2. 마초는 입촉후 아무런 공이 없다?
유비가 입촉한 214년부터 마초가 죽은 222년까지 크게 두각을 드러낸 사람은 한중전에서 큰 전공을 세운 황충 이외에는 없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자세히 고려해보면 촉의 중요한 전쟁에는 언제나 마초가 참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마초는 관우와 장비의 노여움을 샀다?
마초전의 주에는 마초가 유비의 자를 함부로 불러서 관우, 장비가 그를 죽이고자 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의문이 과연 유비, 관우, 장비가 며칠씩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있었는가 입니다. 입촉 과정에서 관우는 함께하지 않았으며, 입촉 후 215년 오나라와의 전쟁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도 이 4명이 함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내용은 믿을 수 없습니다. 배송지는 자신이 주석을 달면서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라고 언급한 부분이 여럿 되는데 이 내용도 그중 하나입니다. 배송지 자신이 직접 주석을 달면서 이 내용은 창작이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4. 마초의 유언.
마승이라는 아들이 마초의 작위를 이었으니 마초에게는 분명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언에서 마대를 부탁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의아함이 남는 부분입니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마등 - 마초 - 마대에게로 부곡민들을 이어받게 된 듯한데 아마 이와 연관이 있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부곡민들이란 대계 그 가족들을 이끌고 호족 문하에 의탁해 오는데, 아마 이 마초의 집안의 우두머리가 마초의 아들이 아닌 마대에게로 넘어간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촉 정권에서 마초의 아들 마승은 전혀 그 활동 내용이 없으니까요. 이 점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으로서 마초의 딸이 유비의 아들인 안평왕 유리의 아내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촉한 정권의 외척 세력이 되었음을 뜻한다면 무리한 추리일런지요. 외척이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며 외척 세력으로서 마초의 아들이 촉한 정권에서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줍니다. 마초는 순수 한인이 아니었으며, 그 역시 이족들을 이끌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승의 나이가 너무 어렸었던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승이 아닌 마대가 촉한에서 중용된 점은 마초의 부곡민들이 마대에게 넘어갔음을 나타내며 마초의 유언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해석해야할 부면이라 생각합니다. 실지로 마대는 마초의 죽음 이후부터 두각을 드러냅니다.
V. 결
본인은 이 글에서 마초의 효용성이라는 측면이 아닌 촉한 정권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초는 촉한 정권에서 어느정도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이러한 마초에 대한 대우는 마초 개인의 역량이나 사병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양주지방에 대한 유비의 진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면입니다. 마초와 유비간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적대감은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 정사 삼국지, 삼국지사전
p.s - 글제주가 미흡하여 생각을 효과적으로 피력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남기며 이 글의 미흡한 점을 보충. 수정하여 더 좋은 내용이 되길 바랍니다.
잘 알겠지만 역삼에서 놀면서 어찌어찌하다보니 마초에 대한 정사의 자료도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고....해서 한번 적어봤어. 마음에 들어?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드네^-^;; 위연때문에 찝쩍거린 인물 중 한명인데...ㅎㅎ;; 역삼에도 올렸으니 한가하면 평 하나 해줘. 무위영땜시리 바쁜 것 같던데..^-^;
마초의 신념은 무엇이였을까요? 황실 부흥? 아니면 천하제패? 아니면 주군(유비)에 대한 절대 충성? 아니면 조조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 제 생각에 마초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민족을 대표하여 이민족의 권익보호가 아닐까요? 그게 조조가 되었던 유비가 되었던 이민족에 차별대우 했던 한족에 대항하다가 어쩔수 없이
한족의 힘을 빌어 자신의 민족을 보호하려 했을수도 있겠구요. 아니면 단순하게 무장으로서 눈앞의 이권만 노리는 필부였을수도 있구요. 왜 한수와 마등이 자주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적했던 바를 마초가 계승했을 수도 있겠지요. 아~ 어렵군요~ 마초는.... 그래서 흥미롭다는...
첫댓글 결국은 그걸로 글 쓰신거였군요^^;;;;;
잘 알겠지만 역삼에서 놀면서 어찌어찌하다보니 마초에 대한 정사의 자료도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고....해서 한번 적어봤어. 마음에 들어?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드네^-^;; 위연때문에 찝쩍거린 인물 중 한명인데...ㅎㅎ;; 역삼에도 올렸으니 한가하면 평 하나 해줘. 무위영땜시리 바쁜 것 같던데..^-^;
좋은 글이네요..^^ 마초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흥미로운 캐릭터임은 분명한 것 같은..
역풍님은 무위영보다는 황군전쟁에 좀 바쁘셨죠 ^^a 역풍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 글구 무적위연님 복귀 감사드리구요~
마초의 신념은 무엇이였을까요? 황실 부흥? 아니면 천하제패? 아니면 주군(유비)에 대한 절대 충성? 아니면 조조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 제 생각에 마초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민족을 대표하여 이민족의 권익보호가 아닐까요? 그게 조조가 되었던 유비가 되었던 이민족에 차별대우 했던 한족에 대항하다가 어쩔수 없이
한족의 힘을 빌어 자신의 민족을 보호하려 했을수도 있겠구요. 아니면 단순하게 무장으로서 눈앞의 이권만 노리는 필부였을수도 있구요. 왜 한수와 마등이 자주 반란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적했던 바를 마초가 계승했을 수도 있겠지요. 아~ 어렵군요~ 마초는.... 그래서 흥미롭다는...
전 개인적으로 조조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함..;; 자신과 마대를 뺀 모든 일족들이 전부 몰살당했으니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
잘 읽었습니다~ 마초에 대해서는 장비랑 싸워서 무승부다~ 뭐 이런거밖에는 몰랐었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