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우대식
자화상 외
비트가 살아있는 거리
온갖 음식 냄새와 향신료와 연기가 피어오르는 야시장
개 한 마리가 걸어간다
사람과 트럭과 음악 사이에서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천천히 걷다가 나무의자 옆에
두 발을 모으고 앉아 본다
세상은 풍요롭고 나는 헐벗었도다
탁발 나온 스님처럼 왼쪽 어깨에 가사를 풀고
공손히 앉아 시주를 기다린다
턱 아래로 닭고기 한 점이 툭 떨어졌을 때
파라다이스를 향한 비트는 점점 거세진다
기름진 음식을 극구 사양하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먼 데
산을 보니 여전히 푸르다
야시장 한 켠에 놓인 거울을 본다
푸른 연기 속을 걸어가는
늙은 개 한 마리가 있다
붉은 석양이 강마을에 찾아들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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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냉담자
꿈의 냉담자로 살아왔다 그러니 빛과 그림자가 있을 수 없다 가을날의 억새를 볼 때마다 꿈도 이렇다 생각해왔다 꿈은 시린 물갈퀴, 꿈은 늘 차가운 것 불의 사주로 살아온 심장에 서늘한 칼을 찔러 넣는다
꿈은 늘 차가운 것
꺼지지 않는 불을 비웃으며 온몸에 갑옷 같은 비늘을 새긴다 꿈과의 거리, 비닐 한 장에 싸인 주검처럼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만남, 꿈과 한 몸인 육체를 혐오하다가 다시 육체에 도달하면 울음밖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차가운 육체가 온다
꿈의 노예가 되어 들판을 떠돌 때 어느 먼 고대 도시의 성곽에 머리를 기댄 한 노인네를 만난다 그때도 죽음이었고 지금도 죽음인 서늘한 꿈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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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1965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 등이 있으며 저서로 『죽은 시인들의 사회』,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해방기 북한 시문학사』 등이 있다. 현대시학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