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누가복음 9장 57-62절 /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참조구절. 누가복음 14:15-24)
성경 두 곳에서 해 주시고 있는 말씀을 봅니다. 먼저 누가복음 9:57-62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행하실 것과 그 후 승천하실 기약이 다 차가므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가시는 중에 어느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말하였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머리를 뉠 곳이 없다. 여우도 들어가 살 굴이 있고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나 인자는 이 땅에서 머리를 대고 편히 쉴 집이 없다.” 그리고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제가 주님을 따르기는 하겠습니다만, 그러기 전에 제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부친상을 당했으니 가서 먼저 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을 전파하여라.” 이 이야기를 들은 곁에 있었던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제게는 가족들이 있으니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가서 작별인사라도 하고 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다음으로, 말씀해 주시는 이야기의 내용은 다르지만,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 비유’(눅 14:15-24)에서는 잔치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한 사람은 밭을 샀으므로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겠다며,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샀기에 그 소가 과연 밭을 잘 갈며 일을 잘하는지를 시험해야겠다고 하고, 또 한 사람은 이제 장가 들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신부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가봐야겠다며, 이구동성으로 거절하는 모습을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를 따르라”는 명령이 주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열고 부르시는 초대에 “이러저러해야 하기에 지금은 따를 수 없습니다”하며 거부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먼저 이것을 하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자에게 맡기고 영생을 구하는 너는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구하는 영생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서 다음의 두 가지를 듣습니다. 하나는, “주님께서는 많은 고을을 다니시며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 해주시고 가르침을 주신 것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권능을 행하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모두를 보니 주님께서는 메시야이심에 틀림없습니다. 하여,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 주님과 함께 일하겠습니다. 하오니 주님의 나라가 설 때 주님과 주님을 위해 일한 저를 잊지 마시고 주님과 함께 영광스런 자리에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시면 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 가면 과연 제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얻을 수는 있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주님과 더불어 머리 댈 곳이 없이 지내도 견디겠습니다.” 그런데 제게 아직 처리하며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거 다 해결하고 몸을 툭툭 다 털어내어 홀가분하게 되면 주님을 따르며 주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하오니 제게 남아 있는 것부터 하고 그 모든 게 끝나면 주님 따라가겠습니다.”
주님을 따름과 관련하여 한 사람이 말한 바인 “주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든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에서 보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자기에게서 어떤 길인지를 알지 못하고서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구속의 십자가를 지실 것에서 사람들에게 미움과 배척을 받아 버림을 받게 될 자신을 따름에는 그 또한 예수님과 함께 머리를 뉠 곳이 없이 지내게 될 것을 알고는 있는가를 말씀해 주셨으며, 다른 하나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주님을 따르는 것에 앞서는 ‘자기를 위하는 것과 자기가 위하는 것’이 있어 이를 놓지 못하고 있으므로 생명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생명 없는 일은 생명 없는 자들에게 맡기고 너희는 너희가 구함에 있는 영생을 얻게 하는 나를 따르라. 영생이 내게 있어 나를 따름에 있게 부름을 주고 있는데 이것저것을 먼저 하고 나서 따르겠다는 게 말이 맞느냐? 나를 따르면 나에게서 나오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피의 언약에 의해서 구속을 받아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 없는 것을 따름에 있으면 거기에 엮어 나오는 욕망이란 사탕발린 것에 계속 따라갈 것이고 그 결국은 죄값을 받아 사망을 얻을 것이다. 어느 것을 따라가든지 그 결국을 얻을 것이다. 육의 욕망에 사로잡히든 성령의 욕망에 사로잡히든 그 결국에 이를 것이니, 이 차이의 구분을 깨닫는 마음에 있어 얻고자 하는 것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하여, 그들이 주님에게서 구함에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따름에서 그분을 통해서 영생을 얻음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생하는 생명이 주께 있으니, 영생을 구하는 자는 영생을 주러 오신 주님을 맞이하고 그분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할 것이라는 것이요, 이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따름에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주님을 따름과 관련하여 한 사람이 말한 바인 “주님이 가시는 곳이 어디든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에서 보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자기에게서 어떤 길인지를 알지 못하고서 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름에는 예수님과 함께 그 또한 머리를 뉠 곳이 없이 지내게 될 것을 알고는 있는가를 말씀해 주셨으며, 다른 하나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주님을 따르는 것에 앞서는 ‘자기를 위하는 것과 자기가 위하는 것’이 있어 이를 놓지 못하고 있으므로 생명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주님을 따름에 있는 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를 한 분이 다음과 같이 써서 적절히 잘 표현하여 말하였습니다.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지 않는 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이 좋아서 성경보고 말씀 듣고 하는 일도 일단 내 통장에 얼마 남았고 이달 생활비로 어디다 어떻게 쓸지 계산 끝난 다음 일 아니던가요? 성경보고 말씀 보다가 우리 집 쌀독에 쌀 떨어진 것도 잊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나면 그게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을 대하며, 왜 그처럼 주님을 따름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교를 듣고 가르침도 받고 하지만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그 말씀을 들음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잊고, 자신이 처한 상황도 다 있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그 따름에 있지 않으면 그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은혜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즉 은혜를 입지 못하고 집에 돌아감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내게서의 모든 것이 놓아지고 주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그에 따른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은혜 충만한 상태에 있는 자입니다. 은혜를 입지 못한 자와 은혜를 입은 자 간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은혜를 입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삶의 원칙도 세워져 있기 마련입니다. “너희가 참으로 구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영생이더냐? 그렇다면 생명 없는 일은 생명 없는 자들에게 맡기고,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영생을 얻게 하시는 주를 따르라!” 주님과 주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으며, 주님의 선한 일을 도모함에 있으며 힘씀은 그러함에서 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가치 판단과 그 기준이 서 있기에 먼저 해야 할 것을 알고 있음입니다. (*)
*202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