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터쇼에선 지리(吉利)자동차가 내놓은 'GE'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 최고급 자동차
롤스로이스의 팬텀을 그대로 베낀 '짝퉁'이었기 때문이다. 전체적 외형뿐 아니라 롤스로이스 특유의 앞면 대형 그릴과 날개 모양
엠블럼까지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팬텀은 가격이 5억원을 넘는 데 비해 GE는 6000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중국 자동차업계의 짝퉁차는 예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현대자동차 산타페와 GM대우 마티즈를 비롯해 외국의 유명 중소형 자동
차 모델 대부분이 피해를 봤다. 이젠 세계 최고급 승용차까지 그 목록에 올랐다. 비난이 쏟아져도 중국은 꿈쩍도 않는다. 지리 측
은 "롤스로이스의 클래식한 스타일을 재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언론도 "토종 회사가 드디어 고급차 시장에까지 뛰어들었다"며 오히려 지리를 치켜세웠다.
▶1998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민영 자동차회사 지리가 또다시 '사고'를 쳤다. 미국 포드 자동차로부터 볼보를 사들이기로 잠정 합
의했다. 볼보는 82년 역사의 스웨덴 자동차업체로 1999년 포드에 넘어갔다. 지리는 중국 내 10위 업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
리가 2007년 영국의 택시 생산업체 지분을 사들이고 올 들어 호주 변속기 전문업체를 인수한 데 이어 이번엔 유럽 명차(名車)를
품에 넣었다. 짝퉁차나 만드는 회사라고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의 쓰촨 텅중(騰中)중공업 역시 얼마 전 군용차량으로 유명한 미국 GM의 허머를 사들였다.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델
파이의 브레이크·서스펜션 부문도 중국에 넘어갔다. 쌍용차 대주주 상하이자동차는 영국 MG로버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미국 크라이슬러와 GM의 유럽 자회사 오펠에 대해서도 중국 업체들의 입질이 있었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세계 자
동차산업의 지형이 바뀌고 있는 중심에 중국이 서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자동차산업은 세계의 조롱거리였다. 100개 넘게 난립한 자동차업체 중 세계시장에 명함을 내밀 수 있
는 기업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세계 경제위기가 끝나면 중국 자동차산업의 위상은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선진국 업체들을 손
에 넣으며 기술력과 브랜드까지 갖춰 날개를 단 중국이 우선 세계 소형차시장부터 장악해 나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한국 자
동차산업이 중국발 쓰나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