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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탄핵 정국 25년 서서히 무너지는 한국 경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2025년에는 우리가 축복으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모두 아시겠지만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이 내전 아니냐고 생각할 정도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하시는 목사님들이 거의 없으시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은 생활입니다. 신앙을 종교라고 착각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은 우리의 삶입니다. 목사가 말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왜 성경 안 가르치고 이거 하냐고 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고 옆에 계십니다. 왜 말씀 안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살아있는 삶과 바로 연결되는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24년도 여러분 아시겠지만 내수 경기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자영업자들은 IMF는 저리 가라는 수도 없는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저도 쇼크를 받은게 강남역에 가면 가장 번화한 빌딩이 있습니다. 그 빌딩이 반 이상이 비어 있다고 합니다. 자영업하시는 분들은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내수 경기가 안 좋습니다. 어디 상가를 가도 비어 있는 상가가 굉장히 많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수출은 잘 되고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수출은 6,838억불로 역대 최대치입니다. 무역수지도 518억 달러로 흑자입니다.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말씀드렸지만 내수 경기는 가짜로 좋았을 여지가 굉장히 높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가령 집값이 오른다든지 이러면 당장 경기가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 이거는 생산한 것이 아닙니다. 생산하지 않은 것이 올라가게 되면 부담만 증가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통계적으로 집값이 올라가면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한국의 출산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예산을 썼습니까? 출산율을 높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집값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구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결혼을 합니까? 사실은 억지로 부양한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정권을 맡은 사람들은 아주 고생할거라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내수 경기가 현재 안좋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잘못된 부양 정책 때문입니다. 그 후유증은 국민이 받습니다. 그런데다 경기가 안좋으면 반드시 정치가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들은 경제가 안좋으면 현 정부에 대해서 분노와 그런 불만이 표출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한국 정국이 굉장히 혼란의 혼란을 지금 겪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전체적으로 우리가 통계나 수치 같은 것을 보면 다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당장 급합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 경기는 좀 다릅니다. 미래를 바라보고 정책을 실시해 주셔야 국민들이 점점 좋게 나갈 수가 있습니다.
미국은 지금 수축 경향적인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수출을 막으려 하고 자기 국가의 내수만을 좋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미국도 실패할 정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국민에게는 인기가 있습니다. 미국도 국민 인기 위주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또 전 세계 경기를 가라앉히는 하나의 나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에 악영향이 끼치면 미국도 안좋습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을 유발합니다. 나쁜 것은 나쁜 것을 유발합니다. 세계 경제는 계속 안좋게 갈 경향이 많습니다. 과거에 평화로웠던 시기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도 2025년에 경제 성장 전망치를 1.8%로 더 낮추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이 느끼고 있는 체감 경기는 굉장히 얼어붙고 있다고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식도 보게 하시고 직접 경제 활동을 하고 있어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따로 떨어져서 성경만 가지고 성도들과 동떨어진 이야기하고 붕 뜨게 하는 설교만 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옆에 계시고 우리 삶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까딱 잘못하다가는 한국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굉장히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또한 대공황에 들어갈 거라는 전망을 내놓는 경제학자들도 굉장히 많습니다. 코로나때 전 세계가 지폐를 굉장히 많이 찍었습니다. 어느 한 국가를 뺄 것 없이 수도 없는 지폐를 찍었습니다. 이렇게 지폐를 많이 찍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오게 됩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에 들어갔고 겉보기에는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물가가 올라서 살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경제라는 것은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무역이 막히는 바람에 전 세계 경제가 암울해야 되는데 지폐를 찍어서 암울하지 않은 것 같이 포장을 했습니다. 언젠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안으로 곪아 있다고 보셔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도 광화문쪽에 얼마나 난리가 나있습니까? 당장에 체포되니 안되니 하고 얼마나 큰 일들을 겪었습니까? 제가 가슴 아팠던 것은 중3 어떤 학생은 대통령이 체포되는거 막겠다고 간 친구가 있고 반대쪽에 대통령 체포돼야 된다고 간 친구가 있습니다. 부모님 따라서 자녀들도 정치에 마음이 뺏겨서 이 추운 겨울에 모두 얼마나 절실했으면 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되는가? 그리고 우리 한국 경제가 이러다 폭망하는거 아닌가? 모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보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온 세상을 주관하신다고 배우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만 닥치면 내가 하려 합니다. 제가 너무 가슴 아팠던 것은 (목사님 기도‘나’ 하세요) 라는 댓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나’를 붙입니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한국을 구할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한국의 경제를 책임질 분도 그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대로 나아가서 어떤 크리스천은 한국의 교회들 대형 교회 목사님부터 시작해서 누구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다 회개해야 된다고 왜 정치와 하나님을 연결시킵니까?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이 땅을 지켜주기 위해서 생명걸고 선지자적 사명으로 이 땅을 공산화로부터 막아야 되겠다고 나가들 계십니다. 두 분 다 하나님을 믿으십니다. 많은 크리스천의 마음속에 분노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게 진정한 하나님 믿는 행동입니까?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시편 1장 1절부터 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모든 정치에 함몰된 성도님들께 제가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가슴속에 어디에 위치해 계십니까? 왜 정치가 1번이 됩니까? 저는 동일한 말씀을 계속 전하고 있는데 자꾸 저보고 정치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왜 정치에 마음을 뺏기고 계십니까? 이 땅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 내 뜻대로 설교해 주지 않는다고 목사가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합니까? 저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예수께 중심을 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하며 말씀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자만이 하나님을 진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두시라고 계속 말씀을 전하는데 어떤 분은 자꾸 정치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정치에 함몰된 상황을 함몰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예수께 마음을 집중시켜 달라고 계속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이 멸망하느냐, 멸망치 않느냐, 경제가 부흥하느냐, 경제가 폭망하느냐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첫 절을 시작할 때 뭐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까? 복 있는 사람은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이 뜻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라크]가 아닙니다. [바라크]는 ‘무릎을 꿇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을 주는 행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복 있는 사람은 [아쉬레이 하이쉬]는 ‘그 사람의 복이여!’ 라는 뜻입니다. [아쉬레이] ‘복’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라크]의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아쉬레이] 뜻은 하나님의 법도 아래 바르게 살아가는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복은 하나님의 법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어떠한가가 시편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자가 받는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정확하게 정립된 자여!’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정립되어 행복한 자여! 하고 감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돌아보셔야 됩니다.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악인은 히브리어로 [라샤]라고 합니다. 뜻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어떤 자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일까요? 꾀를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꾀는 히브리어로 [에차] 라고 합니다. 의도, 도모, 인간의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자가 법정에서 벌써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일까요? 생각이 내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따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내 생각이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니라 내 생각이 중심이 된 자는 놀랍게도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앞서 있으면 이미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제가 한국이 지금 정치가 어지럽습니다. 그러자 많은 분들이 각자 자기의 생각대로 분노들을 하십니다. 이 나라를 지키겠다고 애국자가 되어 생명 다해서 하나님을 위해 국가를 위해 헌신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얼마나 열성적으로 일을 하시는데 놀랍게도 시편 1장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내 생각이 앞선 자는 어떤 자입니까?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생각을 지키셔야 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셔야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하지 마옵소서 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우리의 생각에서 우리는 사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지켜야 됩니까?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사람의 생각이 앞서면 하나님의 종이었던 베드로도 예수님께 꾸중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됩니다. 첫째는 생각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히브리어로 [하타임]이라 합니다. 뜻은 길을 잃은 사람, 표적을 벗어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길을 잃어버릴까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앞서게 되고 그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길에 들어섰다는 것은 생각만이 아닌 행동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는 히브리어로 [레침]이라 합니다. 이것은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길을 가다가 보면 나중에 누굴 욕하게 됩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뜻을 기다립시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음을 뺏기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기쁨이 사라지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와 찬양과 사랑이 사라지면 안됩니다. 여러분 마음의 중심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절대 마음을 뺏기지 않아야 됩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욕하고 조롱합니다. 많은 분들이 국가가 멸망되면 교회가 있을 줄 압니까? 누구 때문에 당신이 편하게 자고 있는데 라고 합니다. 어떤 분은 주술사가 가득 차있는 저런 자를 뽑아서 이 국가를 멸망시키는 한국 교회는 다 회개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자기들 생각입니다. 제가 두 분 다 뭐라고 하니까 두 분 다 공격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야 됩니다. 나중에 까딱 잘못하다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욕하고 조롱하게 됩니다. 이것은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 곧 죄가 점점 성장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을 따라 행동으로 하게 되면 그것이 확신이 되고 나중에는 상대방을 욕하고 조롱하게 됩니다. 같은 크리스찬이 서로 얼마나 많이 싸우고 있습니까? 이것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생각이 중요해졌더니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각을 가지고 죄를 짓게 되고 다음에는 행동을 하게 되고 다음에는 완전히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래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오만한 자의 자리입니다. 그곳에 앉아서 자기만이 정의롭고 옳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입니다. 많은 분들이 정치에 함몰되다가 이런 길들을 가고 계십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이 나라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노하게 만들어 멸망시키려고 그런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꾀에 빠지면 안됩니다. 사탄의 생각 곧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꾀에 빠지면 안 됩니다.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마귀가 생각을 줍니다. 그것을 따라갔다가는 멸망당합니다. 어찌하면 악인의 꾀를 이길 수 있을까요?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아멘.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 5경의 십계명에 우리가 늘 주목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미워하기만 해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미워하고 살인하게 됩니다. 수도 없는 자들이 자기 편을 위해서 거짓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웃에 대하여 수많은 모험하는 거짓 증거를 하고 또한 거짓 증거를 믿고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확산된 거짓이 우리나라에 꽉 차 있습니다. 작은 것들일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은 그것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묵상이라는 뜻이 조용하게 생각을 가만히 하는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워낙 점잖아서 유교를 믿던 한국 분들은 조용히 묵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옛날에 선비들이 수양하는 방법이 묵상법입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뜻으로 ‘묵상’이라고 번역을 했는데 실제 묵상은 원어와 완전히 다른 뜻입니다. 원어는 [하가]라고 합니다.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있지 않고 중얼거립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계명을 낮은 소리로 계속 중얼거리고 읽으셔야 됩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마음속에 여러분의 생각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성령께서 함께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내 속에 레마가 되고 주인이 되면 사탄의 생각에 빠지지 않고 생각을 뺏기지 않습니다. 생각을 빼앗긴 많은 분들은 말씀 곧 십계명의 언약을 매일 읽지 않아서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의 말씀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 주목되고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가]는 ‘으르렁거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짐승이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무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읽으라고 했으니까 할 수 없이 읽어야지 그 뜻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언약의 말씀을 읽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말씀이 곧 나의 양식이다. 매일 너희는 만나를 먹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매일매일 만나를 먹게 되면 미워하려다가 미워하지 않게 되고 죄를 지으려다가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부모님이 미웠다가 미워하면 안되겠구나.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으므로 나한테 나쁜 짓을 한 부모라도 공경하게 됩니다. 말씀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는 자꾸 ‘권선징악’ 하려고 합니다. 권선징악의 권리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내가 재판관이 되려 하고 심판자가 되려 합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비판하는 너의 그 비판으로 네가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네가 심판을 받으리라. 비판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정확한 뜻은 저지(judge)라는 뜻입니다. 결국은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르게 남을 심판합니다. 심판자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십니다. 우리의 생각을 빼앗기면 안됩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도 절대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셔야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끌려가서 짐승의 밥이 되고 목이 잘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순간까지 마음을 뺏기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생명자에 돌아가심을 감사하며 나를 죽이는 사람을 향하여 용서하며 복음을 전하고 기꺼이 순교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을 분노에 뺏기시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노하는 자마다 살인한 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분노를 마음에 품으시면 안됩니다. 그것을 정당화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하셔서 이기셨습니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조용하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시냇가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 시내는 히브리어로 [팔라그]라고 적혀 있습니다. 뜻은 인공적으로 만든 수로입니다. 시냇가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게 되면 분노하게 되어 있습니다. 슬퍼하게 되고 상대방과 싸우려 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인간이 만든 시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다른 시냇가를 주십니다. 어떤 시냇가입니까? 인공적으로 만든 하나님이 만드신 시냇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으르렁거리고 내가 이것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생각하고 말씀을 주목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인공적인 시내를 만들어 주십니다. 인공적인 시내는 마르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르지 않고 늘 기쁘고 감사와 찬양이 넘칩니다. 그럴때 여러분의 마음에 나무가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의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으려니와 나의 밖에 있으면 밖에 버리워 말라서 불에 살리우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됩니다. 인공의 수로에 물은 절대로 가물지 않습니다. 가물지 않고 그가 성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공의 수로에 있는 성도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결코 기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하나님께 맡기는 여러분이 있는 한 이 나라는 형통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많은 분들은 자기가 분노하여 나가서 내가 지켜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그를 기다리셔야 됩니다. 우리는 기다리기가 더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형통’은 히브리어로 [찰라흐] 라고 합니다. 뜻은 번영하다, 성공하다. 인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공한다는 뜻입니다. 형통이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우린 자꾸 성경을 내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내가 모든 하는 일이 형통하는구나, 복받는 방법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점입니다.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리로다. 하나님과 관계가 형통한 사람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감옥에 갇힌 요셉입니다.
여러분 보기에 요셉이 형통하고 있습니까? 안 형통합니까? 요셉은 감옥에 갇혔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도 복을 받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 뜻이 바로 형통하다는 뜻입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하면 복을 받는 자입니다. 이 형통은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관계를 돌아보셔야 됩니다. 수도 없는 재벌들이 이혼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관계가 형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꾸 물질에 형통의 기초를 두고 그것으로 기준점을 삼으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형통은 관계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모든 하는 일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돼 있느냐, 바로 돼 있지 않느냐, 이것이 인생이 행복하냐, 행복하지 않느냐의 기준점이라는 것입니다.
시작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적립되어 있는 자는 복있는 자입니다. 형통한 것도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주목하고 말씀이 내 생각을 이기는 자는 복 있는 자요, 형통한 자입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 자는 형통할 것입니다. 그런 자가 있는 국가는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있는 국가는 흉년에서 견뎌냈습니다. 형통한 자가 있는 국가는 흉년에 미리 대비케 하셨고, 형통한 자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치 않은 자들도 복을 받아서 흉년을 넘어갔습니다. 저는 우리 한국이 그 복을 받으리라 믿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통한 자가 자꾸 생겨야 됩니다. 그게 이 국가를 살리냐, 마느냐 입니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사탄의 생각을 따라가게 되면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회중 곧 의인이 앉아 있는 자리에 앉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전체 그리고 성경 전체는 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이야기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과정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종교입니다. 너의 생각과 삶이 어떠하냐, 그 결과 네가 어디에 앉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하게 둡시다. 우리의 길이 주님이 인도하신 길을 따라갑시다. 그 길은 좁고 협착합니다. 가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따라 갑시다. 그러면 의인의 회중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에게 축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것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3장입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은 기도나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대답을 드렸습니다. 저는 기도나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를 기다린다는 것이 힘듭니다. 말 안듣는 남편, 예수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수십 년을 기도하고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말 안듣는 자식, 하나님보다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식, 어긋나기만 하는 자식을 기다리기도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믿고 맡기고 기도하고 기다릴 때 그분이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기다릴 때 너무 힘듭니다. 이놈아 라고 한마디 하면 튀어나가버립니다. 내 생각대로 하면 더 어긋납니다. 하나님께 맡기시고 사랑하시고 기다려주셔야 됩니다.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가?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떠한가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절부터 4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이 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을 택하여 그 중에서 이천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일천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의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가증히 여김이 되었다 함을 듣고 길갈로 모여 사울을 좇으니라
사울이 왕이 됐습니다. 그가 삼천을 택해서 자기와 함께하고 일천은 요나단에게 주어서 블레셋 사람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상태입니다. 가장 위급한 상태인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무엘상 13장 5절부터 7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5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여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서 벧아웬 동편 믹마스에 진치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전쟁이 났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까? 블레셋 사람이 훨씬 많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병거가 3만이고 마병이 6천이고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더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엄청난 숫자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사울 왕을 제거하기 위해서 모든 국력을 다 동원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이 가벼울 줄 알았고 3천명 모였는데 저들은 몇 명 모였습니까? 3만이 모였고 10배 많습니다. 무기도 훨씬 좋고 말도 많습니다. 뒤에 보면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막대기로 싸우고 저들은 철기로 싸웁니다. 얼마나 겁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안에서 바깥으로 피난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히브리 사람들이 겁을 먹었으면 요단강까지 건너가고 있습니다.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은 떨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벌벌 떱니다. 그 상황을 또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13장 8절부터 10절까지입니다.
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립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이길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도 믿습니다. 하나님이 오시옵소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며 강력한 블레셋 군대와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사울은 목이 타게 기다립니다. 며칠 기다렸습니까? 7일 동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무엘은 안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울이 목이 탔을까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요. 남편이 12시인데 안오고 어디서 뭐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녀도 안들어오면 혹시 길에서 사고 났을까봐 얼마나 겁이 납니까? 더구나 지금은 전쟁 상태입니다. 일주일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안옵니다. 저도 인간적으로 사울이 이해가 됩니다. 저같아도 그랬겠습니다. 블레셋이 저렇게 오고 있는데 전쟁을 시작해도 막막한데 이스라엘 군사들이 도망가고 있습니다. 다 흩어지고 사울과 몇 명 남을것 같고 얼마나 겁나겠습니까? 사실은 지도자보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부추겨서 지도자가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나 밑에서 난리가 났겠습니까? 그런데도 사울이 기다려야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광화문에 나가신 분들을 이해못하는게 아닙니다. 어느 쪽이든 절박해서 나가셨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나간 애국자들입니다. 제가 뭐라고 말하기가 미안하고 곤란합니다. 너무 미안하고 곤란하지만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욕을 해도 제가 사실 별로 화가 안납니다. 왜냐하면 이해가 갑니다. 추운데 얼마나 절실했으면 독감이 유행하고 있는 이때 거기 나가셨겠습니까? 병원에 입원한 분들은 한 둘이시겠습니까? 사울의 심정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말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끝까지 못기다린것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하자. 우리가 기다리는 사무엘은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번제와 화목제와 함께 드립니다. 사무엘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사무엘이 왜 늦게 왔을까요?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제사가 끝나고 났더니 사무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까요? 오늘날 우리 한국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성도님들께 부탁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 11절부터 14절입니다.
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무엘을 기다려야 되는데 내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시편 1장의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면 멸망당합니다. 눈앞의 현실은 적들이 쫓아오고 군사들은 도망가고 있고 모든 군사는 겁에 질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다가 나라가 완전히 멸망당할것 같아서 사울은 떨치고 일어나서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리고 나아갔습니다. 예배를 안드린 자가 아닙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분을 기다려야 됩니다. 그분이 하실 때를 기다려야 됩니다. 내가 먼저 하려 할 때 결과는 참혹합니다. 국가가 멸망당할 지경이 되고 국가의 원수는 쫓겨납니다. 몇 주 전에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선포했을때 제가 뭐라고 했었습니다. 정말로 국가의 지도자는 기다릴 줄 알아야 됩니다.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분노를 따라간 것입니다. 그랬더니 국가의 국민 전체가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쪽과 저쪽이 서로 분노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을 지키는 자는 성을 지키는 자보다 더 낫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자기의 분노를 지키는 자가 가장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그래서 1차적 책임은 윤대통령에게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분노하고 참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참고 기다리라. 그 상태에서 반대편도 참고 있습니까? 계속 밀어붙입니까? 제가 보니까 똑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이 죽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국민을 안심시켜야 됩니다. 국가 지도자가 된 이유와 목적은 자기 명예 때문에 되는게 아닙니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이 안위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게 돕기 위해서 지도자를 뽑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좌도 우도 똑같습니다. 여러분께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차기 지도자는 누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경제를 생각하고, 국민이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그런 마음을 가진 분이 되셨으면 합니다. 우리편만 위하는 분 말고 모든 국민을 한 국민으로 여기고 사랑하시는 귀가 열린 분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주님께서 허락할줄 믿습니다. 모든 역사는 여호와께서 주관하십니다. 그분이 인도하십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따라가면 망합니다. 양비론이 아니고 성경으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됩니다. 참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할 때 그 왕은 뽑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자가 있습니다. 그가 진짜 우리가 기다리는 지도자입니다.
사무엘상 24장 8절부터 1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8 그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구원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11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찌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다윗은 사울을 위하여 좋은 일만 했고 충성했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다윗을 사랑하고 다윗에게 몰려가니 내 왕권이 위험하구나.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아까 사울이 왕이 되고 2년 되었을 때 벌써 사울은 사무엘에게 저주를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왕 될 것이라고 사울의 머리에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대신에 백성들이 사랑하는 자가 생겼습니다. 얼마나 경쟁심이 치열하겠습니까? 내가 안되는건 괜찮은데 이웃 사람이 잘 되면 배가 아픈게 인간의 속성입니다. 얼마나 사울이 분노했겠습니까? 사울이 하나님 뜻을 따라가려고 합니까? 자기의 후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명을 다하여 다른 짓을 하고 있습니까? 생명을 다하여 자기 생각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하셨던 말씀을 믿었다면 이스라엘에 혼란이 오지 않았을것입니다. 정상적으로 선위가 될 것이고 다윗이 왕권을 계승할 것입니다. 중국도 그런 요순의 정치가 있을 때 가장 평화로웠다고 합니다. 선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자에게 왕권을 물려주는 것이 국가에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여기에서 사울은 자기의 왕권을 뺏기지 않으려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수도 없는 도망을 가는데 사울 왕이 자기 굴에 용변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부하들이 한 칼에 죽일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못하게 합니다. 인간의 생각을 좇지 말아라.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 놀라운 인내입니다. 내가 죽게 생겼는데 나를 죽이려는 자를 안죽입니다. 사울이 들어왔을 때 다윗이 부하들과 함께 사울의 옆구리를 찔러서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내면 다윗은 일개 도망가는 두령밖에 못됩니다.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만드실 수가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사울을 건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이 다윗을 축복하시고 그를 왕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 사울같은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면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그래서 다윗을 10년간 연단시킵니다. 미친 사람으로 침을 흘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온갖 짓을 합니다. 적군에 가서 나는 당신 편입니다 하고 바짝 엎드려 그 사람의 수족 노릇을 하기도 하고 모든 수모를 당하면서도 누구를 기다립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저는 새로운 대통령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인지 모릅니다. 이 국가를 다스릴 자는 하나님께 납작 엎드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때를 기다리며 신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우리 그런 사람을 기다립시다. 그런 사람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합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십니다. 그럴때 주님께서 전 세계가 무너지려 하고 전 세계 경제가 아무리 피폐하려해도 하나님이 우리나라의 경제를 지켜주실줄 믿습니다.
한국 경제가 어렵고 쓰러지고 넘어지려고 합니다. 과거에 IMF는 갑자기 왔습니다. 지금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물속에 들어갔다가 온도가 올라갈 때 모르고 있다가 삶아 죽듯이 그렇게 되게 생겼습니다. 서서히 미끄러져 내려가니까 사람들이 인식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망합니다. 누군가 다시 혁신해야 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되고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동력을 창출해야 됩니다.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을 줘야 되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킬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설 수 있도록 비록 크리스천 아니어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을 그때마다 뽑으셔서 이 국가를 살리셨습니다.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잘했다 고맙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주목하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을 뽑으셨습니다. 그럴 때 이 나라가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하려 하지 말고 다윗과 같이 주님을 기다립시다. 내가 하려 할 때는 우리나라 무너집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내가 기도하며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 국가를 살린다고 믿고 우리가 그분께 나아갈 때,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뺏기지 않을 때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회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부흥하는 국가로 다시 올라설 줄 믿습니다. 저는 꿈이 있습니다. 한국이 전 세계를 다스리는 헤게모니(주도권) 가진 국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그 기초를 놓치면 안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뜻 안에서 하나가 됩시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을 기다립시다.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자기의 뜻을 꺾은 다윗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며 으르렁거리며 그 말씀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사는 자라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런 자가 사는 국가에 하나님께서 시냇가에 물이 마르지 않음과 같이 그가 하는 행사가 다 형통하며 열매 맺는 국가가 되게 해줄 줄 믿습니다.
이 나라 주님이 회복시켜 주옵소서.
사람들이 통계로 볼 때는 이 나라가 점점 망해갈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역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역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국가가 되게 아버지 역사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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